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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상세정보

磨崖佛 保存狀態 및 保存方法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keeping Environments and Methods of the Korea carved Buddha

문화사학 no.21 , 2004년, pp.1035 - 1054  
韓丙日
초록

중세시대 고려의 魚梁과 일본의 網代(어망)의 어업방식․소유형태․설치 장소․가치 설정․용도 등에 대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살펴보았다. 우선 어업의 방식에서 고려는 魚梁이 널리 통용되어 이 시대의 어업을 대표하고 있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網代가 어업의 기본적인 형태였고 중세 어업을 대표하고 있었다. 따라서 魚梁과 網代는 아직 정교한 어망이 나오기 이전에 보편화된 어업 방식으로서 고려와 일본이 공통으로 선택하고 있는 어로방법이었다. 어장의 소유 형태에 있어서는 고려가 司宰寺를 두고 어장을 통괄하는 국가소유의 원칙을 기본으로 삼고 있었던 반면에, 일본에서는 在地領主에 의한 사유화가 상당히 진행되어 국가소유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려의 경우 초기에 국가소유에서 후기에 접어들면서 귀족과 사원에 의한 어장의 사유화가 진행되어 가는 경향이었다. 일본의 경우는 在地領主의 사유화가 초기부터 인정되고 있었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소유자의 의지에 따라 매매와 양도가 자유롭게 이루어지면서 어장을 둘러싼 분쟁이 빈발하는 경향이었다. 漁具의 설치 장소는 고려와 일본이 공통적으로 일치한다. 즉 魚梁과 網代는 양국이 모두 바닷가나 하천변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 설치하는 이유는 조수간만의 차이와 수로의 낙차를 이용하여 위험을 무릅쓰고 먼바다에 나가지 않고서도 물고기를 쉽게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魚梁과 網代에 대한 가치는 양국이 모두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魚梁의 경우에 귀족이나 사원은 財源으로 인식하였고, 국가는 稅源으로 간주하였다. 중세 일본에서 網代의 경우는 비싼 값에 매매가 이루어질 정도로 그 가치가 충분히 인정되었다. 따라서 網代를 둘러싼 소송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에 대한 중재를 주변의 領主들이 합심하여 이끌어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魚梁과 網代의 차이점을 찾는다면, 고려의 경우 魚梁이 경제적인 용도뿐만 아니라 불교의 종교의식에도 이용되고 있었던 점이다. 또 고려의 경우 국가로부터 소유를 인정받으면 그대로 소유가 지속되어 가는 경향이었지만, 일본의 경우는 수시로 領主들 사이에 매매가 일어나므로 소유자의 변동이 심하였다. 이것이 매매 이후에 소송이 생기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또 고려 魚梁의 마지막 종착점은 국가로의 귀속이었으나, 일본의 경우 모두가 황실이나 귀족의 소유로 귀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일본 각 지역의 在地領主들이 제각기 토지와 網代를 장악하고서 각자가 구심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이때에 領主는 網代를 유지․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또 다른 차이점은 어장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이 이 시기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비좁은 어장의 한계를 극복하고 고밀도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網代의 이용 시기를 구분하거나 순번을 정하는 방법을 통해서 어장의 공동 이용을 활성화시켜 나가고 있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려의 魚梁과 일본의 網代는 소유의 형태와 그 용도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어업 방식과 설치 장소, 그리고 가치 설정에서 더 많은 공통점을 갖는다. 이것이 중세 한․일 어업문화의 비교를 통해서 얻어진 결론이며, 한․일 어업문화의 공통분모인 것이다. 본 연구는 주제를 중세 한․일 어업문화의 비교로 정하였으므로 중세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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