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서의 신명기 역사서에는 왕정시대 이전 이스라엘에 고정된 제의 장소가 없었다는 일반적인 전승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기에 야웨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은 회막과 법궤였는데 이는 여러 장소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예를 들어 미스바(삿 19-20, 2:1), 벧엘(27, 21:21), 실로(21:19), 그리고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의 세겜(수 8:33) 등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다윗시대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왕정의 건설과 고정된 종교중심지의 생성이라는 혁명적인 전환점을 갖게 되었고, 중심 성전 도시이자 수도로 선택된 곳은 바로 예루살...
열왕기서의 신명기 역사서에는 왕정시대 이전 이스라엘에 고정된 제의 장소가 없었다는 일반적인 전승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기에 야웨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은 회막과 법궤였는데 이는 여러 장소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예를 들어 미스바(삿 19-20, 2:1), 벧엘(27, 21:21), 실로(21:19), 그리고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의 세겜(수 8:33) 등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다윗시대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왕정의 건설과 고정된 종교중심지의 생성이라는 혁명적인 전환점을 갖게 되었고, 중심 성전 도시이자 수도로 선택된 곳은 바로 예루살렘이었던 것이다. 즉,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주된 예배장소는 법궤의 이동에 따라 길갈, 세겜, 실로 등이었으며 왕정시대에 이르러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가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다윗에 의해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지정된 예루살렘은 다른 많은 성소들로 인하여 중앙의 장소로서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웬함(G.J.Wenham)은 왕정시대에 예루살렘 중앙화의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팔레스틴에서 예루살렘이 유일한 유대인의 성소가 된 것은 포로기 이후였다고 한다. 또한 신명기서 내에는 "야웨께서 택하신 곳",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이라는 언급 등 제의중앙화 사상이 기본적인 것이라고 여기게 하는 본문들이 많이 있다. 이에 대해 월치(A.C.Welch)는 그 본분들이 단일성소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빙가드(J.N.Wijngaards)역시 신명기가 예루살렘에서의 제의중앙화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파 성소처럼 다양한 성소를 전제하고 있다고 한다. 월치는 만약 신명기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예배를 제한했다면 야웨께서 에발산에 희생제의 장소를 명하여 세웠다는 내용(신27장)은 제의중앙화 선포를 매우 어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신명기에는 "예루살렘"이라는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예루살렘 중심의 제의중앙화가신명기의 기본사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신명기는 여러 야웨 성소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신 16:1-8의 유월절 의식을 설명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초저녁 해질 때 제사를 드리고(6절)""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라(7절)""제 칠일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라(8절)"는 본문 중에서, 현실적으로 백성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이 율법이었다고 하기에는 납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6절의 "하나님의 택하신 곳"은 예배자에게 가까이 있는 지방 성읍의 한 제의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명기 역사서에 이르러서는 예루살렘 특히, "야웨께서 택하신 성, 예루살렘"이라는 분명한 언급이 나타난다는 사실(왕상 11:13,32,36, 14:21, 왕하 21:4,7, 23:27)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예루살렘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두기 위하여 택하신 "전(□□)", 흑은 "성읍(□□)"이라는 표현은 택하신 "그 곳(□□□□)"으로 언급되는 신명기에 비하면 구체적인 장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암시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에로의 제의 중앙화 사상이 신명기서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시의 점진성, 계시의 판명성이라는 관점에서 그 곳은 예루살렘 성전으로의 제의 중앙화를 의미 한다고 할 수 있다.
열왕기서의 신명기 역사서에는 왕정시대 이전 이스라엘에 고정된 제의 장소가 없었다는 일반적인 전승을 보여주고 있다. 그 시기에 야웨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은 회막과 법궤였는데 이는 여러 장소에서 여러 번 언급된다. 예를 들어 미스바(삿 19-20, 2:1), 벧엘(27, 21:21), 실로(21:19), 그리고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의 세겜(수 8:33) 등에서 나타난다. 그러나 다윗시대에 이스라엘의 역사는 왕정의 건설과 고정된 종교중심지의 생성이라는 혁명적인 전환점을 갖게 되었고, 중심 성전 도시이자 수도로 선택된 곳은 바로 예루살렘이었던 것이다. 즉, 이스라엘 사사시대의 주된 예배장소는 법궤의 이동에 따라 길갈, 세겜, 실로 등이었으며 왕정시대에 이르러 블레셋에 빼앗긴 법궤가 다윗에 의해 예루살렘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다윗에 의해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지정된 예루살렘은 다른 많은 성소들로 인하여 중앙의 장소로서 제대로 인식되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웬함(G.J.Wenham)은 왕정시대에 예루살렘 중앙화의 시도가 성공적이지 못했음을 지적하면서 팔레스틴에서 예루살렘이 유일한 유대인의 성소가 된 것은 포로기 이후였다고 한다. 또한 신명기서 내에는 "야웨께서 택하신 곳", "그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 이라는 언급 등 제의중앙화 사상이 기본적인 것이라고 여기게 하는 본문들이 많이 있다. 이에 대해 월치(A.C.Welch)는 그 본분들이 단일성소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빙가드(J.N.Wijngaards)역시 신명기가 예루살렘에서의 제의중앙화를 강조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파 성소처럼 다양한 성소를 전제하고 있다고 한다. 월치는 만약 신명기가 예루살렘으로 모든 예배를 제한했다면 야웨께서 에발산에 희생제의 장소를 명하여 세웠다는 내용(신27장)은 제의중앙화 선포를 매우 어색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신명기에는 "예루살렘"이라는 언급이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예루살렘 중심의 제의중앙화가신명기의 기본사상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오히려 신명기는 여러 야웨 성소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신 16:1-8의 유월절 의식을 설명하는 내용이 그것이다.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초저녁 해질 때 제사를 드리고(6절)""고기를 구워먹고 아침에 네 장막으로 돌아갈 것이라(7절)""제 칠일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성회로 모이라(8절)"는 본문 중에서, 현실적으로 백성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이나 예루살렘에 모이는 것이 율법이었다고 하기에는 납득이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6절의 "하나님의 택하신 곳"은 예배자에게 가까이 있는 지방 성읍의 한 제의장소를 의미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신명기 역사서에 이르러서는 예루살렘 특히, "야웨께서 택하신 성, 예루살렘"이라는 분명한 언급이 나타난다는 사실(왕상 11:13,32,36, 14:21, 왕하 21:4,7, 23:27)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예루살렘이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그의 이름을 두기 위하여 택하신 "전(□□)", 흑은 "성읍(□□)"이라는 표현은 택하신 "그 곳(□□□□)"으로 언급되는 신명기에 비하면 구체적인 장소를 보다 적극적으로 암시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에로의 제의 중앙화 사상이 신명기서에는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계시의 점진성, 계시의 판명성이라는 관점에서 그 곳은 예루살렘 성전으로의 제의 중앙화를 의미 한다고 할 수 있다.
주제어
#종교개혁 산당제거 요시야왕 요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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