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에는 담임목사만이 목회자이고, 부목사는 단지 담임목사의 보조자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교인들이 갖고 있는 담임목사만 성직자라는 의식, 성직자는 한 교회에 한명이라는 의식 등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한국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성장제일주의가 이런 인식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는 지도력이 분산되어서는 안 되고 한 사람에게 강한 지도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강한 지도력을 가지고 일사불란한 체제를 갖출 때만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부목사의 역할을 담임목사의 목회방침과 목회철학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게 한다. 더욱이 성장제일주의는 신학적인 깊은 성찰을 결여한 까닭에 교회의 세습 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했으며, 이로 인해 교회의 사회적인 공신력이 상실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성서에도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구별이 나타난다. 이것은 사도행전 14장 23절에서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
한국교회에는 담임목사만이 목회자이고, 부목사는 단지 담임목사의 보조자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교인들이 갖고 있는 담임목사만 성직자라는 의식, 성직자는 한 교회에 한명이라는 의식 등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한국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성장제일주의가 이런 인식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는 지도력이 분산되어서는 안 되고 한 사람에게 강한 지도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강한 지도력을 가지고 일사불란한 체제를 갖출 때만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부목사의 역할을 담임목사의 목회방침과 목회철학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게 한다. 더욱이 성장제일주의는 신학적인 깊은 성찰을 결여한 까닭에 교회의 세습 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했으며, 이로 인해 교회의 사회적인 공신력이 상실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성서에도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구별이 나타난다. 이것은 사도행전 14장 23절에서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바울과 바나바가 개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12 사도와 바울과 바나바 등으로는 새롭게 개척한 모든 교회의 목회를 모두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사도들을 대신해 신생교회에서 목회할 장로들을 세웠고, 이들은 사도직을 위임받아 개 교회의 목회직을 수행하는 목회자들이 되었다. 장로들은 사도들을 대신하여 개 교회의 목회자로서 설교를 행하고, 떡을 떼며(성만찬 집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고(전도), 가르치며(교육), 회개를 촉구하며(용서의 선포), 가정을 방문하며(심방), 교회를 치리하며(감독), 양떼를 치는(목양) 직임을 위임 받았다(딤전4:14, 행20:17-38, 벧전5:1, 딛1:5-6). 게츠(G. Getz)는 초대교회 시대에 한 교회에 한 명의 장로만 임명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G. Getz, Sharpening the Focus of the Church (Chicago: Moody, 1974), 110. 그에 의하면, 한 교회에 여러 장로들이 있었고, 이들은 사역을 여러 분야로 나누어서 담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게츠의 주장을 따른다면, 초대 교회 시대에는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장로들이 한 교회의 사역에 임했고, 이들이 각각 오늘날의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나는 담임과 부담임은 역할과 기능에 의한 구별이었을 뿐, 본질적인, 존재론적인, 즉 계급적인 구별은 아니었다. 오히려 목회의 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동등한 직위에 있었다. 목회자들 사이에 계급적인 질서가 등장한 것은 대략 1세기를 전후하여 목회직이 감독, 장로, 집사로 세분화 되면서 부터이다. 이와 같은 목회직의 변천 과정에서 교회에는 교권 제도가 강화되어 성직자와 평신도의 두 계급이 생기게 되었으며, 목회자 안에서도 계급적인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의 이와 같은 계급적인 질서는 한국교회에서 더욱 극단화 되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성장제일주의에 기인한 바 크다. 이런 계급적인 질서 속에서 부목사는 담임목사 다음이 아니라 평신도, 특히 장로와 같은 유력한 평신도들보다 낮은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심지어 장로와 같은 유력한 평신도들 중에는 부목사를 자기들이 고용한 일꾼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부목사를 성직을 담당하는 목회자로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부목사는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에서 생존하는 일을 급선무로 여기게 되었다. 생존하기 위해 부목사는 담임목사 뿐 아니라, 평신도의 눈치까지 살펴야 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목사들 중에는 담임목사보다 유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부목사들도 있다. 부목사들 사이에서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자신의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있지만, 잘한다는 평가를 들으면 오히려 짐 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특히 설교는 매우 민감한 사항으로서, 부목사의 설교가 담임목사의 설교보다 반응이 더 좋을 경우에, 부목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교단은 부목사의 임기를 1년 임시직으로 정하고 있거나, 아예 명시하고 있지 않아서, 다음에 사역할 임지를 준비하지도 못한 채 담임목사의 방침에 따라 사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부목사의 운명은 담임목사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목사에게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부목사가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려 하면 할수록, 부목사의 역할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부목사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오히려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되고 있다. 부목사가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담임목사의 요구라도 그것이 신학적으로 혹은 성서적으로 옳지 않다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부목사가 담임목사의 요구를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거부하게 된다면, 부목사는 담임목사에게 순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곧 사임의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요즘처럼 목회지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임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부목사는 자신의 목회 철학을 갖지 않거나, 갖고 있더라도 내색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저 담임목사의 비위를 맞추고,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하고, 특히 설교에 있어서는 매우 조심해야 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에는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만이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 대화와 협력은 단절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목사가 교회의 고용인으로 취급당하고,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면, 교회의 건설적인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목회는 담임목사만의 사역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나가는 일은 전적으로 담임목사 혼자만의 임무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일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를 상하 관계로 설정하지 않고, 협력의 관계로 설정하게 될 때에 더욱 바람직하게 수행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에서는 부목사의 역할을 교육, 선교, 행정, 기획, 상담, 기획 등을 담당하는 전문 목회자로서 담임목사와 함께 하나님의 목회를 구현해가는 목회협력자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는 부목사의 목회자적인 지위를 회복시키는 길이며, 동시에 성장제일주의로 인한 한국교회의 부작용을 치유하고 극복하여 그동안 상실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에는 담임목사만이 목회자이고, 부목사는 단지 담임목사의 보조자라는 인식이 일반화되어 있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교인들이 갖고 있는 담임목사만 성직자라는 의식, 성직자는 한 교회에 한명이라는 의식 등 여러 요인들이 있겠지만, 한국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성장제일주의가 이런 인식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즉 교회의 성장을 위해서는 지도력이 분산되어서는 안 되고 한 사람에게 강한 지도력이 주어져야 한다는 논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담임목사가 강한 지도력을 가지고 일사불란한 체제를 갖출 때만 성장이 가능하다는 논리는 부목사의 역할을 담임목사의 목회방침과 목회철학을 보조하는 수준에 머물게 한다. 더욱이 성장제일주의는 신학적인 깊은 성찰을 결여한 까닭에 교회의 세습 과 같은 부작용을 초래했으며, 이로 인해 교회의 사회적인 공신력이 상실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성서에도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구별이 나타난다. 이것은 사도행전 14장 23절에서 볼 수 있다. 이 구절은 바울과 바나바가 개 교회에 장로들을 임명했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12 사도와 바울과 바나바 등으로는 새롭게 개척한 모든 교회의 목회를 모두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사도들을 대신해 신생교회에서 목회할 장로들을 세웠고, 이들은 사도직을 위임받아 개 교회의 목회직을 수행하는 목회자들이 되었다. 장로들은 사도들을 대신하여 개 교회의 목회자로서 설교를 행하고, 떡을 떼며(성만찬 집례),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고(전도), 가르치며(교육), 회개를 촉구하며(용서의 선포), 가정을 방문하며(심방), 교회를 치리하며(감독), 양떼를 치는(목양) 직임을 위임 받았다(딤전4:14, 행20:17-38, 벧전5:1, 딛1:5-6). 게츠(G. Getz)는 초대교회 시대에 한 교회에 한 명의 장로만 임명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G. Getz, Sharpening the Focus of the Church (Chicago: Moody, 1974), 110. 그에 의하면, 한 교회에 여러 장로들이 있었고, 이들은 사역을 여러 분야로 나누어서 담당했다고 한다. 따라서 게츠의 주장을 따른다면, 초대 교회 시대에는 최소한 두 명 이상의 장로들이 한 교회의 사역에 임했고, 이들이 각각 오늘날의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기능과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성서에 나타나는 담임과 부담임은 역할과 기능에 의한 구별이었을 뿐, 본질적인, 존재론적인, 즉 계급적인 구별은 아니었다. 오히려 목회의 직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동등한 직위에 있었다. 목회자들 사이에 계급적인 질서가 등장한 것은 대략 1세기를 전후하여 목회직이 감독, 장로, 집사로 세분화 되면서 부터이다. 이와 같은 목회직의 변천 과정에서 교회에는 교권 제도가 강화되어 성직자와 평신도의 두 계급이 생기게 되었으며, 목회자 안에서도 계급적인 차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의 이와 같은 계급적인 질서는 한국교회에서 더욱 극단화 되었는데, 이는 앞서 언급한 성장제일주의에 기인한 바 크다. 이런 계급적인 질서 속에서 부목사는 담임목사 다음이 아니라 평신도, 특히 장로와 같은 유력한 평신도들보다 낮은 위치를 차지하기도 한다. 심지어 장로와 같은 유력한 평신도들 중에는 부목사를 자기들이 고용한 일꾼 정도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고, 부목사를 성직을 담당하는 목회자로 인정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부목사는 사역을 하고 있는 교회에서 생존하는 일을 급선무로 여기게 되었다. 생존하기 위해 부목사는 담임목사 뿐 아니라, 평신도의 눈치까지 살펴야 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부목사들 중에는 담임목사보다 유능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부목사들도 있다. 부목사들 사이에서는 “무능하다는 소리를 들으면 자신의 자리를 오래 유지할 수 있지만, 잘한다는 평가를 들으면 오히려 짐 쌀 준비를 해야 한다”는 말까지 있다. 특히 설교는 매우 민감한 사항으로서, 부목사의 설교가 담임목사의 설교보다 반응이 더 좋을 경우에, 부목사가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경우도 있다. 또한 대부분의 교단은 부목사의 임기를 1년 임시직으로 정하고 있거나, 아예 명시하고 있지 않아서, 다음에 사역할 임지를 준비하지도 못한 채 담임목사의 방침에 따라 사임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한마디로 부목사의 운명은 담임목사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부목사에게 목회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이다. 부목사가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려 하면 할수록, 부목사의 역할에 오히려 장애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부목사로 오래 살아남으려면, 오히려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 되고 있다. 부목사가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담임목사의 요구라도 그것이 신학적으로 혹은 성서적으로 옳지 않다면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부목사가 담임목사의 요구를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부당하다고 생각하여 거부하게 된다면, 부목사는 담임목사에게 순종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곧 사임의 압력에 직면하게 된다. 요즘처럼 목회지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사임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와 같은 사정을 고려할 때, 부목사는 자신의 목회 철학을 갖지 않거나, 갖고 있더라도 내색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그저 담임목사의 비위를 맞추고, 그의 뜻을 받들어야 하고, 특히 설교에 있어서는 매우 조심해야 하는 실정이다. 따라서 담임목사와 부목사 사이에는 일방적인 지시와 복종만이 있을 뿐, 진정한 의미에서 대화와 협력은 단절 상태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부목사가 교회의 고용인으로 취급당하고,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된다면, 교회의 건설적인 성장을 기대하기가 어렵게 된다. 목회는 담임목사만의 사역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사역이고, 또한 하나님의 백성의 사역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 나가는 일은 전적으로 담임목사 혼자만의 임무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 전체의 일이다. 그러므로 이 사역은 담임목사와 부목사의 관계를 상하 관계로 설정하지 않고, 협력의 관계로 설정하게 될 때에 더욱 바람직하게 수행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본 논문에서는 부목사의 역할을 교육, 선교, 행정, 기획, 상담, 기획 등을 담당하는 전문 목회자로서 담임목사와 함께 하나님의 목회를 구현해가는 목회협력자로 규정하고자 한다. 이는 부목사의 목회자적인 지위를 회복시키는 길이며, 동시에 성장제일주의로 인한 한국교회의 부작용을 치유하고 극복하여 그동안 상실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The associate pastor tends to be acknowledged simply as an assistant of the senior pastor in the Korean Church. This acknowledgement of the associate pastor is due to the church members'' consciousness that the senior pastor is alone the minister and also that there is only one minister in the churc...
The associate pastor tends to be acknowledged simply as an assistant of the senior pastor in the Korean Church. This acknowledgement of the associate pastor is due to the church members'' consciousness that the senior pastor is alone the minister and also that there is only one minister in the church. However,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this acknowledgement of the Korean church is the church members'' misunderstanding that the growth of the church is above everything else. This misunderstanding has demanded a strict order in which the church leadership is not divided but converged in one person, namely the senior pastor. This logic that the church can grow only when the senior pastor takes a strict leadership makes the associate pastor''s position an assistant of the senior pastor. Moreover, since the church growth has not been carried out in theological reflection, it has brought about harmful effects like church-heredity; as a result, the church has lost its public confidence. Of course,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pastor are distinct even in the Scriptures. We can see this distinction in Acts 14:23, which says that Paul and Barnabas appointed elders in each church. The elders were appointed as pastors to take care new churches that Paul and Barnabas set up. The elders were authorized by the apostles to celebrate the Lord''s Supper, preach, teach, and take care of the community(1Timothy 4:14; Acts20:17-38; 1Peter 5:1; Titus 1:5-6). G. Getz maintains that multiple elders were appointed in one church and shared the community works during the period of the first church. G. Getz, Sharpening the Focus of the Church (Chicago: Moody, 1974), 110. If Getz''s assertion is correct, we can say that at least two or more elders took care of the community, and one of them took the role of the senior, and others associates. However, the distinction between senior and associate in the first church was only that of role and function. It was not an ontological or essential, namely hierarchical distinction.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ll who attend to pastorship are equal as the people of God, and there is no hierarchy among pastors, even between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The hierarchy among pastors began with the division of pastorship into bishop, elder, and deacon around the first century. With this division of pastorship, ecclesiastical authority was built up. As a result, the hierarchy between the clergy and the laity and even among pastors was set up. The hierarchy between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pastor has been even more strengthened in the Korean church because of the church members'' consciousness that the leadership should be converged in the senior pastor as mentioned above. In this hierarchical order, the associate pastor''s position is not only lower than the senior pastor''s but also the laity elders''. Moreover, most laity elders tend to regard associate pastors as employed workers rather than as the clergy. In these circumstances, the associate pastor may study the pleasure of not only the senior pastor but also the church members to survive. The associate pastor should not be recognized as an abler person than the senior pastor. If the associate pastor‘s preaching were appraised higher than the senior''s, it might bring about losing hisher position. Furthermore, according to the laws of the Korean church denominations, the associate pastor''s term is just one year, and when the senior pastor quits his post, the associate must also quit automatically. The senior pastor alone makes a decision whether or not to make a contract with associates yearly. In short, the associate pastor''s destiny is determined by the senior pastor. In this situation, it is very hard to expect the associate pastor to have the ministerial identity. For the associate pastor the ministerial identity may be an obstacle to performing hisher work. In the case that the associate pastor has the ministerial identity, heshe could refuse to accept even the senior pastor''s request if it were not right theologically or biblically. However, when the associate pastor refuses to accept hisher senior''s request, heshe may be dismissed because heshe is appraised disobedient. If this is so, it may be advantageous to the associate pastor that heshe does not have the ministerial identity. However, when associate pastors are regarded as employees and their ministerial identity is ignored, it is hard to expect the church to be matured because ministry is not merely the senior pastor''s but essentially God''s work, and so the work of the people of God. That is to say, performing the will of God is not merely the senior pastor''s but the church community''s mission as a whole. Therefore, the pastoral work can be rightly performed when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pastor are related not hierarchically but cooperatively. At this point, this thesis designates the associate pastor as a pastoral cooperator performing the will of God together with the senior pastor, as a professional worker taking charge of education, mission, administration, planning, pastoral counselling, or music. The reason of this designation is that it is a way of making the associate pastor have the ministerial identity. When the associate pastor has the ministerial identity, the Korean church can overcome harmful effects which have been brought about by the senior pastor''s strict leadership. Moreover, when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pastor have a cooperative relationship, the Korean church''s public confidence, which has been lost by the harmful effects mentioned above, can also be restored.
The associate pastor tends to be acknowledged simply as an assistant of the senior pastor in the Korean Church. This acknowledgement of the associate pastor is due to the church members'' consciousness that the senior pastor is alone the minister and also that there is only one minister in the church. However, the most important factor in this acknowledgement of the Korean church is the church members'' misunderstanding that the growth of the church is above everything else. This misunderstanding has demanded a strict order in which the church leadership is not divided but converged in one person, namely the senior pastor. This logic that the church can grow only when the senior pastor takes a strict leadership makes the associate pastor''s position an assistant of the senior pastor. Moreover, since the church growth has not been carried out in theological reflection, it has brought about harmful effects like church-heredity; as a result, the church has lost its public confidence. Of course,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pastor are distinct even in the Scriptures. We can see this distinction in Acts 14:23, which says that Paul and Barnabas appointed elders in each church. The elders were appointed as pastors to take care new churches that Paul and Barnabas set up. The elders were authorized by the apostles to celebrate the Lord''s Supper, preach, teach, and take care of the community(1Timothy 4:14; Acts20:17-38; 1Peter 5:1; Titus 1:5-6). G. Getz maintains that multiple elders were appointed in one church and shared the community works during the period of the first church. G. Getz, Sharpening the Focus of the Church (Chicago: Moody, 1974), 110. If Getz''s assertion is correct, we can say that at least two or more elders took care of the community, and one of them took the role of the senior, and others associates. However, the distinction between senior and associate in the first church was only that of role and function. It was not an ontological or essential, namely hierarchical distinction. According to the Scriptures, all who attend to pastorship are equal as the people of God, and there is no hierarchy among pastors, even between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The hierarchy among pastors began with the division of pastorship into bishop, elder, and deacon around the first century. With this division of pastorship, ecclesiastical authority was built up. As a result, the hierarchy between the clergy and the laity and even among pastors was set up. The hierarchy between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pastor has been even more strengthened in the Korean church because of the church members'' consciousness that the leadership should be converged in the senior pastor as mentioned above. In this hierarchical order, the associate pastor''s position is not only lower than the senior pastor''s but also the laity elders''. Moreover, most laity elders tend to regard associate pastors as employed workers rather than as the clergy. In these circumstances, the associate pastor may study the pleasure of not only the senior pastor but also the church members to survive. The associate pastor should not be recognized as an abler person than the senior pastor. If the associate pastor‘s preaching were appraised higher than the senior''s, it might bring about losing hisher position. Furthermore, according to the laws of the Korean church denominations, the associate pastor''s term is just one year, and when the senior pastor quits his post, the associate must also quit automatically. The senior pastor alone makes a decision whether or not to make a contract with associates yearly. In short, the associate pastor''s destiny is determined by the senior pastor. In this situation, it is very hard to expect the associate pastor to have the ministerial identity. For the associate pastor the ministerial identity may be an obstacle to performing hisher work. In the case that the associate pastor has the ministerial identity, heshe could refuse to accept even the senior pastor''s request if it were not right theologically or biblically. However, when the associate pastor refuses to accept hisher senior''s request, heshe may be dismissed because heshe is appraised disobedient. If this is so, it may be advantageous to the associate pastor that heshe does not have the ministerial identity. However, when associate pastors are regarded as employees and their ministerial identity is ignored, it is hard to expect the church to be matured because ministry is not merely the senior pastor''s but essentially God''s work, and so the work of the people of God. That is to say, performing the will of God is not merely the senior pastor''s but the church community''s mission as a whole. Therefore, the pastoral work can be rightly performed when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pastor are related not hierarchically but cooperatively. At this point, this thesis designates the associate pastor as a pastoral cooperator performing the will of God together with the senior pastor, as a professional worker taking charge of education, mission, administration, planning, pastoral counselling, or music. The reason of this designation is that it is a way of making the associate pastor have the ministerial identity. When the associate pastor has the ministerial identity, the Korean church can overcome harmful effects which have been brought about by the senior pastor''s strict leadership. Moreover, when the senior and the associate pastor have a cooperative relationship, the Korean church''s public confidence, which has been lost by the harmful effects mentioned above, can also be resto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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