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은 누구나 복락(福樂)의 상태를 원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잘살고 존귀해지는 그런 복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믿었다. 복을 받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는 한국인이었다. 그것을 받고 또 누리기 위해서 중개자(仲介者)로 무당(巫堂)을 통해 굿을 행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은 무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며, 또한 복 받기를 좋아하는 습성(習性)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의 복 가운데 잘못 이해된 신명기서 28장, 말라기서 3장, 요한삼서2절, 마태복음7장을 중심 하여 살펴보았다. 말라기서 3장이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헌금은 물질로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며, 이미 주신 은총을 감사하면서 마음을 실어 드리는 것이 헌금이요 십일조이다. 그러나 잘못 이해된 것이 헌금은 복을 보증하는 착수금이 되었다. 헌금이 복을 받기 위하여 심는 씨앗으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헌신의 표징이었던 헌금은 자기 번영과 소원성취의 수단이 되었으며 헌금을 드리는 것은 복을 받기를 고대하는 욕망을 전제로 한 것이 되었다. 기도 또한 물질과 번영과 복으로 환산되는 공로가 되었다. 기도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분별하려는 묵상기도나 성령에 이끌리어 주님과의 깊은 교제라는 가르침은 미약했다. 그리하여 기도는 욕망의 배출구가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대화이기보다는 일방적인 강청으로 이어져서, 오랫동안 쌓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응답되어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것들은 무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습성에 쉽게 접목되고 어우러져 교회성장 차원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2) 편협한 이해는 편협한 생각과 행동을 낳는다. 성경에서의 복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이해가 부족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복신앙을 갖게 하는 잘못을 부분적으로 범했다. 고층 빌딩을 짓는데 있어서 철근은 꼭 필요한 것이다. 건물을 지탱해 주는 뼈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해서 철근을 적정량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훗날에의 대 참사를 예약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해서는 감독자는 알고 있다. 안전하게 살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헐고 다시 철근을 사용해 지어야 한다. 야곱은 자기 가족들이 벧엘로 올라가기전 ‘우상’과 ‘고리’를 상수리 나무아래 묻었다(창 35:4). 또한 ...
1) 인간은 누구나 복락(福樂)의 상태를 원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잘살고 존귀해지는 그런 복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믿었다. 복을 받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는 한국인이었다. 그것을 받고 또 누리기 위해서 중개자(仲介者)로 무당(巫堂)을 통해 굿을 행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은 무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며, 또한 복 받기를 좋아하는 습성(習性)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의 복 가운데 잘못 이해된 신명기서 28장, 말라기서 3장, 요한삼서2절, 마태복음7장을 중심 하여 살펴보았다. 말라기서 3장이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헌금은 물질로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며, 이미 주신 은총을 감사하면서 마음을 실어 드리는 것이 헌금이요 십일조이다. 그러나 잘못 이해된 것이 헌금은 복을 보증하는 착수금이 되었다. 헌금이 복을 받기 위하여 심는 씨앗으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헌신의 표징이었던 헌금은 자기 번영과 소원성취의 수단이 되었으며 헌금을 드리는 것은 복을 받기를 고대하는 욕망을 전제로 한 것이 되었다. 기도 또한 물질과 번영과 복으로 환산되는 공로가 되었다. 기도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분별하려는 묵상기도나 성령에 이끌리어 주님과의 깊은 교제라는 가르침은 미약했다. 그리하여 기도는 욕망의 배출구가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대화이기보다는 일방적인 강청으로 이어져서, 오랫동안 쌓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응답되어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것들은 무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습성에 쉽게 접목되고 어우러져 교회성장 차원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2) 편협한 이해는 편협한 생각과 행동을 낳는다. 성경에서의 복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이해가 부족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복신앙을 갖게 하는 잘못을 부분적으로 범했다. 고층 빌딩을 짓는데 있어서 철근은 꼭 필요한 것이다. 건물을 지탱해 주는 뼈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해서 철근을 적정량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훗날에의 대 참사를 예약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해서는 감독자는 알고 있다. 안전하게 살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헐고 다시 철근을 사용해 지어야 한다. 야곱은 자기 가족들이 벧엘로 올라가기전 ‘우상’과 ‘고리’를 상수리 나무아래 묻었다(창 35:4). 또한 바울은 사람의 수고를 공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잘못된 것은 고치고 버려야 함을 강조 하고 있다. 주님은 (마 7:22, 23)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고 예언의 말씀을 주고 있다. 여기에서 ‘불법’은 위법자를 말한다. 3) 잘못 이해된 것은 결과적으로 기복주의를 낳는다. 이 기복주의적 요소는 21세기를 시작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 교회성장의 정체 및 감소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충분한 생각을 해 보아야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음과 같이 기복주의적 성향을 극복함으로 다시금 국가와 민족의 등불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회내의 내적 영성을 회복함으로 기복신앙의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차원을 탈피하여야 한다.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는 말씀을 매개로 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이다. 물질의 번영으로 오염되었던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이제 하나님과의 순전함을 회복하여야 한다. 둘째, 기복주의의 극복은 개인주의적이고 번영 숭배적인 복의 개념을 비판하고 기독교적인 바른 복을 이해하고 회복함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성경에서 복이 표면적으로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이면서 현세적인 면을 나타나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참된 교훈은 영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육이 아니라 영적인 면의 고귀함을 알고 좇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가시적이고 현세적인 복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신령한 복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경상의 복을 특히 신약과 구약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과 구약의 단일성을 믿는바 동일성으로 이해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은 종말론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삶의 형태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 “복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와 성경적 고찰”의 논문을 통해 한국인의 복에 대한 이해와 성경에 나타난 복의 의미들을 성경적, 신학적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낙담 가운데 엠마오로 향하던 두 사람에게 주님이 나타나서 성경을 풀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져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서 주께서 살아 나셨다는 것을 증거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했다. 강단에서 선포하는 복을 현세적인 면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이상의 것, 즉 구속사적인 관점까지 이해하고 또한 바라보게 하는 사도적 계승의 교회의 강단으로서 기복주의에 물들지 않으며, 또한 변하지 않는 신앙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1) 인간은 누구나 복락(福樂)의 상태를 원한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건강하고, 잘살고 존귀해지는 그런 복은 하늘에서 내려온다고 믿었다. 복을 받기 위해 하늘을 바라보는 한국인이었다. 그것을 받고 또 누리기 위해서 중개자(仲介者)로 무당(巫堂)을 통해 굿을 행했다. 이로 인해 한국인들은 무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편적인 현실이며, 또한 복 받기를 좋아하는 습성(習性)을 가지고 있다. 성경은 창세기에서부터 요한 계시록까지 복을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의 복 가운데 잘못 이해된 신명기서 28장, 말라기서 3장, 요한삼서2절, 마태복음7장을 중심 하여 살펴보았다. 말라기서 3장이 복을 받기 위한 수단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헌금은 물질로 드리는 감사의 표현이며, 이미 주신 은총을 감사하면서 마음을 실어 드리는 것이 헌금이요 십일조이다. 그러나 잘못 이해된 것이 헌금은 복을 보증하는 착수금이 되었다. 헌금이 복을 받기 위하여 심는 씨앗으로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헌신의 표징이었던 헌금은 자기 번영과 소원성취의 수단이 되었으며 헌금을 드리는 것은 복을 받기를 고대하는 욕망을 전제로 한 것이 되었다. 기도 또한 물질과 번영과 복으로 환산되는 공로가 되었다. 기도에서 하나님의 은총을 분별하려는 묵상기도나 성령에 이끌리어 주님과의 깊은 교제라는 가르침은 미약했다. 그리하여 기도는 욕망의 배출구가 되었으며, 하나님과의 대화이기보다는 일방적인 강청으로 이어져서, 오랫동안 쌓인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응답되어지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러한 것들은 무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의 습성에 쉽게 접목되고 어우러져 교회성장 차원에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있었다. 2) 편협한 이해는 편협한 생각과 행동을 낳는다. 성경에서의 복에 대한 충분한 고찰과 이해가 부족함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복신앙을 갖게 하는 잘못을 부분적으로 범했다. 고층 빌딩을 짓는데 있어서 철근은 꼭 필요한 것이다. 건물을 지탱해 주는 뼈대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보이는 물건이 아니라 해서 철근을 적정량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훗날에의 대 참사를 예약하는 것이다. 결과에 대해서는 감독자는 알고 있다. 안전하게 살고 이용하기 위해서는 헐고 다시 철근을 사용해 지어야 한다. 야곱은 자기 가족들이 벧엘로 올라가기전 ‘우상’과 ‘고리’를 상수리 나무아래 묻었다(창 35:4). 또한 바울은 사람의 수고를 공력으로 표현하고 있다. 잘못된 것은 고치고 버려야 함을 강조 하고 있다. 주님은 (마 7:22, 23)에서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고 예언의 말씀을 주고 있다. 여기에서 ‘불법’은 위법자를 말한다. 3) 잘못 이해된 것은 결과적으로 기복주의를 낳는다. 이 기복주의적 요소는 21세기를 시작하고 있는 시점에서 지금 교회성장의 정체 및 감소의 결정적인 요인으로 충분한 생각을 해 보아야 하겠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음과 같이 기복주의적 성향을 극복함으로 다시금 국가와 민족의 등불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첫째, 교회내의 내적 영성을 회복함으로 기복신앙의 감각적이고 본능적인 차원을 탈피하여야 한다. 성도와 하나님의 관계는 말씀을 매개로 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이다. 물질의 번영으로 오염되었던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는 이제 하나님과의 순전함을 회복하여야 한다. 둘째, 기복주의의 극복은 개인주의적이고 번영 숭배적인 복의 개념을 비판하고 기독교적인 바른 복을 이해하고 회복함으로 이루어 질 수 있다. 성경에서 복이 표면적으로 육체적인 것과 물질적이면서 현세적인 면을 나타나지만 보다 구체적이고 참된 교훈은 영적인 것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사람이란 육이 아니라 영적인 면의 고귀함을 알고 좇아가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구약에서의 가시적이고 현세적인 복들은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신령한 복으로 이해해야 한다. 성경상의 복을 특히 신약과 구약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약과 구약의 단일성을 믿는바 동일성으로 이해해야 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은 종말론적이며 미래 지향적인 삶의 형태를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까지 “복에 대한 한국인의 이해와 성경적 고찰”의 논문을 통해 한국인의 복에 대한 이해와 성경에 나타난 복의 의미들을 성경적, 신학적 입장에서 살펴보았다. 낙담 가운데 엠마오로 향하던 두 사람에게 주님이 나타나서 성경을 풀어 주실 때, 그들의 마음은 뜨거워져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가서 주께서 살아 나셨다는 것을 증거하며, 현실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했다. 강단에서 선포하는 복을 현세적인 면만 부각시킬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이상의 것, 즉 구속사적인 관점까지 이해하고 또한 바라보게 하는 사도적 계승의 교회의 강단으로서 기복주의에 물들지 않으며, 또한 변하지 않는 신앙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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