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으로서 한 번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 기원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하면 가장 먼저 의문시되는 질문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예수인가 아니면 바울인가? 생각해보면 예수는 어떤 종교를 만들도록 지시한 적이 없으며, 또한 예수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유대교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생각할 때 예수와 더불어 바울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대다수 서신을 기록하였고, 누구보다 그리스도교를 전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전통적 그리스도교회가 ‘예수의 종교’ 보다 ‘바울의 복음’에 그 신앙적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바울서신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인용이나 언급이 사실상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바울의 서신에는 실제로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가르침과 지상적 활동이 누락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서신들이 복음서보다 일찍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바울은 복음서에 그토록 빈번이 보도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유들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심지어 복음서에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예수의 ‘수난사’ 조차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이처럼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이며, 특별히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의’에만 초점을 맞춘 듯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예수의 지상적 사역을 비역사화하고, 그의 십자가 수난과 처형을 신학적으로 추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은 팔레스틴 땅에서 갈릴리 민중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지상적 예수보다, 만인의 죄를 씻어준 보편적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있으며, 또한 예수의 의미를 과거에 맞추기 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공동체 안에 ‘현재화’하며,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의 예수 이해는 ‘역사적 예수’에 기초해 있기보다는 ‘신앙의 그리스도’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복음은 유대적 종말사상의 특수성을 반영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두기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속에 계시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미치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하나님의 의’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예수의 말씀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드물고, 암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번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 기원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하면 가장 먼저 의문시되는 질문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예수인가 아니면 바울인가? 생각해보면 예수는 어떤 종교를 만들도록 지시한 적이 없으며, 또한 예수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유대교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생각할 때 예수와 더불어 바울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대다수 서신을 기록하였고, 누구보다 그리스도교를 전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전통적 그리스도교회가 ‘예수의 종교’ 보다 ‘바울의 복음’에 그 신앙적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바울서신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인용이나 언급이 사실상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바울의 서신에는 실제로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가르침과 지상적 활동이 누락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서신들이 복음서보다 일찍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바울은 복음서에 그토록 빈번이 보도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유들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심지어 복음서에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예수의 ‘수난사’ 조차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이처럼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이며, 특별히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의’에만 초점을 맞춘 듯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예수의 지상적 사역을 비역사화하고, 그의 십자가 수난과 처형을 신학적으로 추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은 팔레스틴 땅에서 갈릴리 민중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지상적 예수보다, 만인의 죄를 씻어준 보편적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있으며, 또한 예수의 의미를 과거에 맞추기 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공동체 안에 ‘현재화’하며,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의 예수 이해는 ‘역사적 예수’에 기초해 있기보다는 ‘신앙의 그리스도’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복음은 유대적 종말사상의 특수성을 반영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두기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속에 계시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미치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하나님의 의’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예수의 말씀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드물고, 암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니체, 바우르, 브레데 등 몇몇 비평가들은 바울이 예수의 전승을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하였거나, 예수의 전승이나 역사적 예수에 관하여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한동안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그리스도론으로부터 ‘역사적 예수’로 그 관심을 돌리는 것이 참 그리스도교의 회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바울이 가르친 복음이 예수의 정신이나 의도와 부합되는지, 예수의 종교와는 전혀 다른 것은 아닌지, 또는 예수의 교훈을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닌지를 묻는 이들도 있었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라면 어떤 면에서 창시자이며, 어떤 점에서 예수의 추종자라고 할 수 있는가? 바울은 정말로 예수를 잘 알고 있었는가? 바울이 예수를 알았다면 얼마나 구체적으로 그분의 삶과 사역과 교훈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가? 바울의 신학은 역사적 예수의 인격과 교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아니면 그의 신학은 순전히 자기 회심경험에서부터 온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19세기 말로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신약학계에 커다란 문제로 던져져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울의 이해문제’로 집약되어 토론되어 왔다. 앞의 질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예수와 바울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주로 역사적 문제와 신학적 문제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전자는 초대 그리스도교회에서 예수와 바울의 역사적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려는 시도였고, 후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상이 누구인지, 즉 바울의 신앙 대상이 역사적 예수였는지 아니면 자기 신학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였는지를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본 연구는 이제까지의 이 논쟁의 연속선상에 서서 예수와 바울의 관련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왜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생애와 그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선포를 언급하지 않은 것일까? 그는 진정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일까? 만일 이러한 바울의 침묵이 의도적이라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또한 예수의 선포와 바울의 복음은 서로 상반되는 것일까, 아니면 바울의 복음이 예수의 선포를 더 발전시킨 것일까? 더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면 그 때 이 둘 사이의 연속성은 있을까, 없을까? 그리고 만약 둘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면, 그 연속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과 근거는 무엇일까? 이 논문의 목적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개연성 있는 답변을 사회학적 해석(사회학적 방법론)을 통해 찾으려는데 있다. 간략하게 종합하자면, 이 논문은 바울이 예수의 종교를 조직, 발전시켰는가, 아니면 예수와 상관없는 새로운 신학을 수립했는가? 라는 문제를 바울이 직면했던 특수한 상황들과 서신을 쓰게 된 상황, 바울의 의도와 목적 등을 토대로 한 사회사적 해석을 통해 다루면서, 예수의 신학과 바울의 신학이 상반되는 것인지 아니면 바울의 신학이 예수의 사상을 적절하게 발전시킨 것인지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검토하고자 하며, 최종적으로는 “바울과 예수의 신학 사이에 구체적인 연속성이 있는가? 바울을 예수의 계승자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밝혀내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번쯤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의 기원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그리스도교의 기원에 대한 연구들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그 기원에 대해서 생각하고자 하면 가장 먼저 의문시되는 질문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는 누구인가? 예수인가 아니면 바울인가? 생각해보면 예수는 어떤 종교를 만들도록 지시한 적이 없으며, 또한 예수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유대교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기원을 생각할 때 예수와 더불어 바울을 떠올릴 수 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울은 신약성경의 대다수 서신을 기록하였고, 누구보다 그리스도교를 전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도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전통적 그리스도교회가 ‘예수의 종교’ 보다 ‘바울의 복음’에 그 신앙적 기초를 두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바울서신에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인용이나 언급이 사실상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서, 바울의 서신에는 실제로 복음서에 등장하는 예수의 가르침과 지상적 활동이 누락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그의 서신들이 복음서보다 일찍 기록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바울은 복음서에 그토록 빈번이 보도되는 예수의 ‘하나님 나라’ 비유들에 대해서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며, 심지어 복음서에 그토록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예수의 ‘수난사’ 조차 일절 언급하지 않는다. 이처럼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과 행적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어 보이며, 특별히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부활 속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의’에만 초점을 맞춘 듯이 보인다. 이런 점에서 바울은 예수의 지상적 사역을 비역사화하고, 그의 십자가 수난과 처형을 신학적으로 추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바울은 팔레스틴 땅에서 갈릴리 민중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지상적 예수보다, 만인의 죄를 씻어준 보편적 ‘구원자’로서의 ‘그리스도’에 집중하고 있으며, 또한 예수의 의미를 과거에 맞추기 보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공동체 안에 ‘현재화’하며,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바울의 예수 이해는 ‘역사적 예수’에 기초해 있기보다는 ‘신앙의 그리스도’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의 복음은 유대적 종말사상의 특수성을 반영한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두기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사건 속에 계시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미치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하나님의 의’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렇게 바울이 예수의 말씀들을 언급하는 경우가 드물고, 암시적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니체, 바우르, 브레데 등 몇몇 비평가들은 바울이 예수의 전승을 그다지 많이 알지 못하였거나, 예수의 전승이나 역사적 예수에 관하여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따라서 한동안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그리스도론으로부터 ‘역사적 예수’로 그 관심을 돌리는 것이 참 그리스도교의 회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한 바울이 가르친 복음이 예수의 정신이나 의도와 부합되는지, 예수의 종교와는 전혀 다른 것은 아닌지, 또는 예수의 교훈을 잘못 해석한 것은 아닌지를 묻는 이들도 있었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교의 창시자라면 어떤 면에서 창시자이며, 어떤 점에서 예수의 추종자라고 할 수 있는가? 바울은 정말로 예수를 잘 알고 있었는가? 바울이 예수를 알았다면 얼마나 구체적으로 그분의 삶과 사역과 교훈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는가? 바울의 신학은 역사적 예수의 인격과 교훈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가? 아니면 그의 신학은 순전히 자기 회심경험에서부터 온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19세기 말로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신약학계에 커다란 문제로 던져져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울의 이해문제’로 집약되어 토론되어 왔다. 앞의 질문들에서 확인할 수 있는바와 같이, 지금까지의 예수와 바울의 관계에 대한 논쟁은 주로 역사적 문제와 신학적 문제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전자는 초대 그리스도교회에서 예수와 바울의 역사적 관계가 어떠했는지를 알아보려는 시도였고, 후자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대상이 누구인지, 즉 바울의 신앙 대상이 역사적 예수였는지 아니면 자기 신학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였는지를 확인하려는 시도였다. 본 연구는 이제까지의 이 논쟁의 연속선상에 서서 예수와 바울의 관련성을 고찰해보고자 한다. 왜 바울은 역사적 예수의 생애와 그의 핵심적인 가르침인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선포를 언급하지 않은 것일까? 그는 진정으로 ‘역사적 예수’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일까? 만일 이러한 바울의 침묵이 의도적이라면 무슨 이유 때문일까? 또한 예수의 선포와 바울의 복음은 서로 상반되는 것일까, 아니면 바울의 복음이 예수의 선포를 더 발전시킨 것일까? 더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면 그 때 이 둘 사이의 연속성은 있을까, 없을까? 그리고 만약 둘 사이에 연속성이 존재한다면, 그 연속성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과 근거는 무엇일까? 이 논문의 목적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개연성 있는 답변을 사회학적 해석(사회학적 방법론)을 통해 찾으려는데 있다. 간략하게 종합하자면, 이 논문은 바울이 예수의 종교를 조직, 발전시켰는가, 아니면 예수와 상관없는 새로운 신학을 수립했는가? 라는 문제를 바울이 직면했던 특수한 상황들과 서신을 쓰게 된 상황, 바울의 의도와 목적 등을 토대로 한 사회사적 해석을 통해 다루면서, 예수의 신학과 바울의 신학이 상반되는 것인지 아니면 바울의 신학이 예수의 사상을 적절하게 발전시킨 것인지를 심도 있게 연구하고 검토하고자 하며, 최종적으로는 “바울과 예수의 신학 사이에 구체적인 연속성이 있는가? 바울을 예수의 계승자라고 평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해답을 밝혀내고자 한다.
주제어
#예수와 바울의 연속성 예수와 바울의 불연속성 예수의 계승자 바울 바울의 역사적 예수 이해 바울의 칭의론 바울의 믿음 개념 바울의 Πίστις τοu' Χριστοu' 역사적 예수에 대한 바울의 침묵 이유 바울 서신에 누락된 역사적 예수 바울의 예수상 바울의 선교 전략 사회학적 해석
학위논문 정보
저자
전예원
학위수여기관
감리교신학대학교 대학원
학위구분
국내석사
학과
신약신학전공
발행연도
2010
총페이지
96 p.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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