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양행궁지를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 조성 방향 연구 A Study on the direction for the formation of a histor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around the site of temporary palace in Onyang원문보기
국 문 초 록
본 연구는 온양행궁의 역사 및 조성과정을 살펴보고 행궁지 주변의 도시변화와 그 특징을 파악하여 행궁복원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하며 온양행궁지를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 환경을 특화시켜 역사․문화 환경도시로서 새롭게 도약하고 1300여년의 온천역사가 있는 온양온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역사․문화환경 조성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제1장 및 제2장은 본 연구의 배경과 목적, 연구대상지, 조사와 분석방법, 그리고 행궁의 조영 및 공간연구, 행궁의 복원과 발굴조사연구, 역사․문화환경 조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사를 정리하였다.
제3장은 행궁의 정의를 기술하고 조선시대행궁에 대하여 고찰하였으며 우리나라 대표적 행궁인 수원화성행궁, 남한산성행궁을 온양행궁과 비교하여 입지와 배치, 공간구성원리 및 특징, 조경적 요소를 분석하였다. 온양행궁의 조성에 있어서는 온양행궁만이 가지는 특징적인 사항을 파악하였다. 또 역사문화․문화환경조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로 수원화성, 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역사문화․환경만들기 사례와 경주역사문화도시, 백제역사문화도시 등 고도(古都)역사문화도시 만들기 계획을 파악,정리하였고 행궁복원에 있어서 필요한 문화재 복원방법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였다.
제4장은 역대왕실의 온양행궁이용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온양지방의 도시변화를 행궁이전도시, 행궁조성과 이용시기의 도시, 행궁지주변 온천개발이후 도시변화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특히 온양읍치의 쇠퇴와 온양온천 신시가지 형성배경, 앞으로 행궁의 복원방향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 조성방향에 대하여 제안하였다.
제5장은 본론에서 얻은 연구를 통하여 온양행궁의 복원방향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조성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으며 본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행궁의 입지와 배치는 조성목적에 부합되는 장소를 선정한 후 배산원리에 충족되는 범위에서 남향이나 동향으로 배치되었다. 온양행궁의 경우에는 온양군 읍치에서 떨어진 서쪽에 온천을 중심으로 평지에 입지하였으며, 건물의 배치는 남향으로 하고 있으나 진입정문은 동쪽으로 하고 있다. 이는 남한행궁처럼 수비와 방어, 햇볕과 바람, 기온 등을 고려해야 하는 안전성과 보장적 기능을 가진 산악형 입지나 수원의 화성행궁처럼 도성과 가까운 거리로 접근성을 고려한 입지가 아니어서 좌향에 관계없이 이용과 접근성이 편리한 장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온양행궁의 공간구성은 전체적으로 외곽담장을 넓게 두르고 다시 내부를 중심부와 외곽부로 담장을 나누어 두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전란대비용으로 조성된 남한행궁이나 북한행궁은 조선시대 궁궐배치인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기본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유사시 정궁(正宮)을 대신해 정사와 종묘사직의 역할을 유지하고 방어적 기능을 강화한 반면 온양행궁은 외조공간, 연조공간, 진입로 구분 없이 통합 생략되는 특성을 가졌다.
셋째, 건물의 조영에 있어서 내정전(內政殿), 외정전(外政殿), 온천(溫泉)등의 중심건물과 외부관청인 병조빈청(兵曹賓廳), 사간원(司諫院), 홍문관(弘文館)등이 있었다. 특히 온천건물은 16칸의 전용 목욕시설로 냉방(冷房)과 욕실(浴室), 협루(狹樓), 협실(狹室)과 탕실로 구성되었고 온천내시설로 탕체(湯砌)와 상하탕간석(上下湯間石), 이층목층교(二層木層僑) 등을 두었다. 또 왕이 온천에 왔을때 같이 수행해온 신하들이 목욕하는 북탕(北湯)이 있었다. 이와같이 온양행궁은 온천과 온천관련시설로 조영되어, 휴양형 행궁의 특징적인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넷째, 행궁을 중심으로 한 온양․아산지방의 도시변화를 고찰한 결과 행궁이전의 도시변화에 있어서 삼한시대는 ...
국 문 초 록
본 연구는 온양행궁의 역사 및 조성과정을 살펴보고 행궁지 주변의 도시변화와 그 특징을 파악하여 행궁복원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하며 온양행궁지를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 환경을 특화시켜 역사․문화 환경도시로서 새롭게 도약하고 1300여년의 온천역사가 있는 온양온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역사․문화환경 조성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제1장 및 제2장은 본 연구의 배경과 목적, 연구대상지, 조사와 분석방법, 그리고 행궁의 조영 및 공간연구, 행궁의 복원과 발굴조사연구, 역사․문화환경 조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사를 정리하였다.
제3장은 행궁의 정의를 기술하고 조선시대행궁에 대하여 고찰하였으며 우리나라 대표적 행궁인 수원화성행궁, 남한산성행궁을 온양행궁과 비교하여 입지와 배치, 공간구성원리 및 특징, 조경적 요소를 분석하였다. 온양행궁의 조성에 있어서는 온양행궁만이 가지는 특징적인 사항을 파악하였다. 또 역사문화․문화환경조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로 수원화성, 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역사문화․환경만들기 사례와 경주역사문화도시, 백제역사문화도시 등 고도(古都)역사문화도시 만들기 계획을 파악,정리하였고 행궁복원에 있어서 필요한 문화재 복원방법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였다.
제4장은 역대왕실의 온양행궁이용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온양지방의 도시변화를 행궁이전도시, 행궁조성과 이용시기의 도시, 행궁지주변 온천개발이후 도시변화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특히 온양읍치의 쇠퇴와 온양온천 신시가지 형성배경, 앞으로 행궁의 복원방향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 조성방향에 대하여 제안하였다.
제5장은 본론에서 얻은 연구를 통하여 온양행궁의 복원방향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조성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으며 본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행궁의 입지와 배치는 조성목적에 부합되는 장소를 선정한 후 배산원리에 충족되는 범위에서 남향이나 동향으로 배치되었다. 온양행궁의 경우에는 온양군 읍치에서 떨어진 서쪽에 온천을 중심으로 평지에 입지하였으며, 건물의 배치는 남향으로 하고 있으나 진입정문은 동쪽으로 하고 있다. 이는 남한행궁처럼 수비와 방어, 햇볕과 바람, 기온 등을 고려해야 하는 안전성과 보장적 기능을 가진 산악형 입지나 수원의 화성행궁처럼 도성과 가까운 거리로 접근성을 고려한 입지가 아니어서 좌향에 관계없이 이용과 접근성이 편리한 장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온양행궁의 공간구성은 전체적으로 외곽담장을 넓게 두르고 다시 내부를 중심부와 외곽부로 담장을 나누어 두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전란대비용으로 조성된 남한행궁이나 북한행궁은 조선시대 궁궐배치인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기본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유사시 정궁(正宮)을 대신해 정사와 종묘사직의 역할을 유지하고 방어적 기능을 강화한 반면 온양행궁은 외조공간, 연조공간, 진입로 구분 없이 통합 생략되는 특성을 가졌다.
셋째, 건물의 조영에 있어서 내정전(內政殿), 외정전(外政殿), 온천(溫泉)등의 중심건물과 외부관청인 병조빈청(兵曹賓廳), 사간원(司諫院), 홍문관(弘文館)등이 있었다. 특히 온천건물은 16칸의 전용 목욕시설로 냉방(冷房)과 욕실(浴室), 협루(狹樓), 협실(狹室)과 탕실로 구성되었고 온천내시설로 탕체(湯砌)와 상하탕간석(上下湯間石), 이층목층교(二層木層僑) 등을 두었다. 또 왕이 온천에 왔을때 같이 수행해온 신하들이 목욕하는 북탕(北湯)이 있었다. 이와같이 온양행궁은 온천과 온천관련시설로 조영되어, 휴양형 행궁의 특징적인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넷째, 행궁을 중심으로 한 온양․아산지방의 도시변화를 고찰한 결과 행궁이전의 도시변화에 있어서 삼한시대는 마한의 염로국이었고 백제․통일신라 시대는 탕정군, 아술현, 굴직현이었다. 고려시대(1018년, 현종 9년)에는 온양군이 온수군으로 개칭되어 천안부에 소속되었고 아산군이 아주현으로, 신창군이 신창현으로 각각 개칭되어 도시가 변화하였다. 행궁 이용 시기 도시변화는 조선 태종 13년(1413)에 아주군(牙州郡)을 아산현으로 개편하였고 세종 24년(1442)에 온양현(溫陽縣)이 온양군(溫陽郡)으로 승격되었다. 고종33년(1896년)에는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13도로 개편되어 37개조중 4등조, 5등조로 편성, 변화하였다. 행궁지 주변 온천개발 이후 도시변화는 일제시대(1900~1945년), 해방이후(1946~1950년), 온천관광지 개발이후(1951년 이후)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일제시대에는 1914년 지방제도를 대폭 개편하여 아산, 온양, 신창의 3개 군현을 아산군으로 통폐합하여 온양(溫陽) 등 12개 면(面) 162개리(里)로 행정체계를 개편하였다.
1941년에는 아산군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되었으며, 해방이후 변화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신정관, 혜파정, 함락당 등 도로의 중심가 건물이 불타 없어졌다. 1955년 교통부에서 온양온천철도호텔을 신축하고 허니문 밀월열차를 운영하여 온양온천이 신혼여행지로 급부상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큰 인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온천관광지 개발 이후 도시변화로서 1970년대 중반까지 온양은 온천도시로서 명성은 표면적으로 계속 유지되어 왔으나 시가지 정비, 도로개설 등 기반시설의 구축은 미약한 상태였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정부가 관광진흥책에 관심을 가지면서 민간인에 의한 새로운 온천공이 개발되고 1970년대에는 현충사를 비롯하여 신정호유원지, 온양민속박물관 등 새로운 관광코스가 생겨나 국내관광객이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전하였다. 1986년에는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 1월 1일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하여 아산시가 되었다. 현재는 인구 30만에 가까운 충남 서부권중형도시로 성장하였다.
다섯째, 온양읍치가 쇠퇴하고 온양 신시가지가 형성된 계기는 1922년 경남철도주식회사가 천안에서 군산에 이르는 약 158km의 장항선 철도를 부설하여 천안, 온양간 노선을 개통하고 역(驛)을 설치하여 인구가 유입되면서 시가지가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1914년 일제가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의 3개 군현을 통합, 아산군으로 행정체계를 개편하면서 당시 온양면 읍내리를 통과하는 철도노선을 계획하였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철도노선을 온천리로 변경하고 군청소재지도 온천리로 옮겼다. 이후 1926년 경남철도주식회사가 온양온천(주)회사를 인수하여 신정관(神井館)을 새로이 신축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신정호(神井湖)라 불리는 인공저수지가 준공되고 유원지화 되어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온천관광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여섯째, 온양행궁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 조성방향을 제시하였다. 우선 핵심적인 역사․문화 관광지인 온양행궁을 복원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왕실 관련 공간의 조성이 필요하였다. 온양행궁지를 연결하는 도로에 왕실온천지임을 나타낼 수 있는 「온양행궁 거리」를 만들고 조선조 역대 임금이 즐겼던 온천탕을 복원하여 관광객들이 온행을 체험할 수 있도록 「왕실온천탕」을 제안하였다. 행궁 주변 온천천은 과거 하천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생태하천으로 복원이 필요하였다.
온양 원도심 개발지역에는 온천을 주제로 온양온천공원을 조성하여 시민의 휴식처는 물론 온양의 관광명소를 조성하고 한국적인 정원을 조성하도록 제안하며 온양행궁지를 거점으로 현충사, 맹사성고택, 세심사, 인주공세리성당, 온양읍치 관아시설, 외암리 민속마을, 온양민속박물관 등 역사문화 유적을 정비․보완하고 관광코스로 활용하도록 제안하였다.
주요어 : 온양행궁, 온천, 역사․문화환경, 복원
국 문 초 록
본 연구는 온양행궁의 역사 및 조성과정을 살펴보고 행궁지 주변의 도시변화와 그 특징을 파악하여 행궁복원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하며 온양행궁지를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 환경을 특화시켜 역사․문화 환경도시로서 새롭게 도약하고 1300여년의 온천역사가 있는 온양온천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역사․문화환경 조성방향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제1장 및 제2장은 본 연구의 배경과 목적, 연구대상지, 조사와 분석방법, 그리고 행궁의 조영 및 공간연구, 행궁의 복원과 발굴조사연구, 역사․문화환경 조성에 대한 기존의 연구사를 정리하였다.
제3장은 행궁의 정의를 기술하고 조선시대행궁에 대하여 고찰하였으며 우리나라 대표적 행궁인 수원화성행궁, 남한산성행궁을 온양행궁과 비교하여 입지와 배치, 공간구성원리 및 특징, 조경적 요소를 분석하였다. 온양행궁의 조성에 있어서는 온양행궁만이 가지는 특징적인 사항을 파악하였다. 또 역사문화․문화환경조성에 대한 이론적 고찰로 수원화성, 서울 북촌 한옥마을의 역사문화․환경만들기 사례와 경주역사문화도시, 백제역사문화도시 등 고도(古都)역사문화도시 만들기 계획을 파악,정리하였고 행궁복원에 있어서 필요한 문화재 복원방법에 대한 몇 가지 사항을 언급하였다.
제4장은 역대왕실의 온양행궁이용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온양지방의 도시변화를 행궁이전도시, 행궁조성과 이용시기의 도시, 행궁지주변 온천개발이후 도시변화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특히 온양읍치의 쇠퇴와 온양온천 신시가지 형성배경, 앞으로 행궁의 복원방향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 조성방향에 대하여 제안하였다.
제5장은 본론에서 얻은 연구를 통하여 온양행궁의 복원방향과 행궁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조성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으며 본 연구에서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일반적으로 행궁의 입지와 배치는 조성목적에 부합되는 장소를 선정한 후 배산원리에 충족되는 범위에서 남향이나 동향으로 배치되었다. 온양행궁의 경우에는 온양군 읍치에서 떨어진 서쪽에 온천을 중심으로 평지에 입지하였으며, 건물의 배치는 남향으로 하고 있으나 진입정문은 동쪽으로 하고 있다. 이는 남한행궁처럼 수비와 방어, 햇볕과 바람, 기온 등을 고려해야 하는 안전성과 보장적 기능을 가진 산악형 입지나 수원의 화성행궁처럼 도성과 가까운 거리로 접근성을 고려한 입지가 아니어서 좌향에 관계없이 이용과 접근성이 편리한 장소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온양행궁의 공간구성은 전체적으로 외곽담장을 넓게 두르고 다시 내부를 중심부와 외곽부로 담장을 나누어 두개의 영역으로 구분하였다. 전란대비용으로 조성된 남한행궁이나 북한행궁은 조선시대 궁궐배치인 전조후침(前朝後寢)의 기본원리를 그대로 적용하면서 유사시 정궁(正宮)을 대신해 정사와 종묘사직의 역할을 유지하고 방어적 기능을 강화한 반면 온양행궁은 외조공간, 연조공간, 진입로 구분 없이 통합 생략되는 특성을 가졌다.
셋째, 건물의 조영에 있어서 내정전(內政殿), 외정전(外政殿), 온천(溫泉)등의 중심건물과 외부관청인 병조빈청(兵曹賓廳), 사간원(司諫院), 홍문관(弘文館)등이 있었다. 특히 온천건물은 16칸의 전용 목욕시설로 냉방(冷房)과 욕실(浴室), 협루(狹樓), 협실(狹室)과 탕실로 구성되었고 온천내시설로 탕체(湯砌)와 상하탕간석(上下湯間石), 이층목층교(二層木層僑) 등을 두었다. 또 왕이 온천에 왔을때 같이 수행해온 신하들이 목욕하는 북탕(北湯)이 있었다. 이와같이 온양행궁은 온천과 온천관련시설로 조영되어, 휴양형 행궁의 특징적인 요소를 구성하고 있다.
넷째, 행궁을 중심으로 한 온양․아산지방의 도시변화를 고찰한 결과 행궁이전의 도시변화에 있어서 삼한시대는 마한의 염로국이었고 백제․통일신라 시대는 탕정군, 아술현, 굴직현이었다. 고려시대(1018년, 현종 9년)에는 온양군이 온수군으로 개칭되어 천안부에 소속되었고 아산군이 아주현으로, 신창군이 신창현으로 각각 개칭되어 도시가 변화하였다. 행궁 이용 시기 도시변화는 조선 태종 13년(1413)에 아주군(牙州郡)을 아산현으로 개편하였고 세종 24년(1442)에 온양현(溫陽縣)이 온양군(溫陽郡)으로 승격되었다. 고종33년(1896년)에는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이 13도로 개편되어 37개조중 4등조, 5등조로 편성, 변화하였다. 행궁지 주변 온천개발 이후 도시변화는 일제시대(1900~1945년), 해방이후(1946~1950년), 온천관광지 개발이후(1951년 이후)로 나누어 고찰하였다. 일제시대에는 1914년 지방제도를 대폭 개편하여 아산, 온양, 신창의 3개 군현을 아산군으로 통폐합하여 온양(溫陽) 등 12개 면(面) 162개리(里)로 행정체계를 개편하였다.
1941년에는 아산군 온양면이 온양읍으로 승격되었으며, 해방이후 변화는 1950년 한국전쟁으로 신정관, 혜파정, 함락당 등 도로의 중심가 건물이 불타 없어졌다. 1955년 교통부에서 온양온천철도호텔을 신축하고 허니문 밀월열차를 운영하여 온양온천이 신혼여행지로 급부상하게 되었으며 1970년대 중반까지 큰 인가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온천관광지 개발 이후 도시변화로서 1970년대 중반까지 온양은 온천도시로서 명성은 표면적으로 계속 유지되어 왔으나 시가지 정비, 도로개설 등 기반시설의 구축은 미약한 상태였다. 그러나 1960년대 중반 정부가 관광진흥책에 관심을 가지면서 민간인에 의한 새로운 온천공이 개발되고 1970년대에는 현충사를 비롯하여 신정호유원지, 온양민속박물관 등 새로운 관광코스가 생겨나 국내관광객이 증가하면서 도시가 발전하였다. 1986년에는 온양읍이 온양시로 승격되었고 1995년 1월 1일로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하여 아산시가 되었다. 현재는 인구 30만에 가까운 충남 서부권중형도시로 성장하였다.
다섯째, 온양읍치가 쇠퇴하고 온양 신시가지가 형성된 계기는 1922년 경남철도주식회사가 천안에서 군산에 이르는 약 158km의 장항선 철도를 부설하여 천안, 온양간 노선을 개통하고 역(驛)을 설치하여 인구가 유입되면서 시가지가 발전하게 되었다. 특히 1914년 일제가 온양군, 아산현, 신창현의 3개 군현을 통합, 아산군으로 행정체계를 개편하면서 당시 온양면 읍내리를 통과하는 철도노선을 계획하였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철도노선을 온천리로 변경하고 군청소재지도 온천리로 옮겼다. 이후 1926년 경남철도주식회사가 온양온천(주)회사를 인수하여 신정관(神井館)을 새로이 신축하였으며 이와 동시에 신정호(神井湖)라 불리는 인공저수지가 준공되고 유원지화 되어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온천관광도시로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여섯째, 온양행궁을 중심으로 한 역사․문화환경 조성방향을 제시하였다. 우선 핵심적인 역사․문화 관광지인 온양행궁을 복원하고 이를 중심으로 한 왕실 관련 공간의 조성이 필요하였다. 온양행궁지를 연결하는 도로에 왕실온천지임을 나타낼 수 있는 「온양행궁 거리」를 만들고 조선조 역대 임금이 즐겼던 온천탕을 복원하여 관광객들이 온행을 체험할 수 있도록 「왕실온천탕」을 제안하였다. 행궁 주변 온천천은 과거 하천의 모습을 체험할 수 있도록 생태하천으로 복원이 필요하였다.
온양 원도심 개발지역에는 온천을 주제로 온양온천공원을 조성하여 시민의 휴식처는 물론 온양의 관광명소를 조성하고 한국적인 정원을 조성하도록 제안하며 온양행궁지를 거점으로 현충사, 맹사성고택, 세심사, 인주공세리성당, 온양읍치 관아시설, 외암리 민속마을, 온양민속박물관 등 역사문화 유적을 정비․보완하고 관광코스로 활용하도록 제안하였다.
주요어 : 온양행궁, 온천, 역사․문화환경, 복원
This research seeks to grasp the history and change of the Onyang temporary palace to use it as a set of basic data for the restoration of the temporary palace. Also, we attempted to propose a direction for the formation of a histor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of an Asan city, centered on the site ...
This research seeks to grasp the history and change of the Onyang temporary palace to use it as a set of basic data for the restoration of the temporary palace. Also, we attempted to propose a direction for the formation of a histor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of an Asan city, centered on the site of temporary palace in Onyang.
Onyang temporary palace is positioned on a flatland around the hot spring to the west of Onyang-gun. The building faces the south but the entrance faces the east. The spatial composition of Onyang temporary palace is separated into two areas, which are the outer wall and the inner wall. Because the Onyang temporary palace was a resort-type palace, it carries a characteristic of a combined government office spaces for officials, spaces for the royal family and an entrance. The main structures of the Onyang temporary palace are the key buildings which were the spaces for the king's bedroom, spaces for government office and the hot springs.
There were external government offices, such as the meeting room for officials of the Ministry of War, an office for discussing social affairs and an office for consulation. Especially, the hot spring was a bathing facillity with 16 private rooms and a coolingroom, a bathroom, a small pavillion, a small room and a room with bat htubs. The inside of the hot springs had bath tubs, consisting of upper and lower tubs and a two story wooden bridge. And also, there was a bathhouse in the northern are a for the courtiers.
The city have been changed of the Onyang province centered on the temporary palace. During the Three Han State Era, Onyang was Yeomroguk of Mahan. During the United Shilla Era, it was Tangjeong-gun, Ashool-hyun and Gooljik-hyun. During the Koryeo Era, Onyang-gun changed is name to Onsu-gun. During the Chosun Era, Aju-gun was restructured to Asan-hyun in the 13th year of Taejong(1413). In the 24th year of Sejong(1442), Onyang-hyun was elevated to Onyang-gun. In the 33th year of Gojong(1896), Onyang-gun, Asan-hyun and Shinchang-hyun were restructured into 13 provinces and were changed to the 4th and 5th group among the 37 groups. The city was changed after the development of the hot springs near the temporary palace. The Japanese Colonial Era (1900~1945) merged the three gun and hyun into Asan-gun in 1914. In 1941, Onyang-myun was elevated to Onyang-eup.
After the liberation, due to the Korean War in 1950, Shinjunggwan(神井館), Hyepajung(惠波亭), Hamlakdang(涵樂堂) and the post office were gone. In 1955, the Ministry of Transportation newly constructed Oyang Hot Spring Railway Hotel. Then, Onyang Hot Springs took off as the place for the honeymooners and was very popular until the mid 1970s. However, it had a poor establishment of infrastructure, such as the town maintenance and the roads. During the mid 1960s, new hot spring wells were developed by civilians as the government encouraged the interest with the tourism promotion policy. During the 1970s, the city advanced with the development of tourism courses and maintenance of the city's infrastructure. Onyang-eup elevated to Onyang city in 1986 and in 1995, Asan-gun and Onyang city merged to Asan city. Currently, it has grown into a mid-sized city in the western part of Choongcheong province with a population of nearly 300,000.
The direction for the formation of a histor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around the Onyang temporary palace is as follows. First of all, the Onyang temporary palace, which is a key historical and cultural tourist sight, needs to be restored and then the spaces relating to the royal family needs to be constructed.
The connecting road of the Onyang temporary palace land is to be constructed as Onyang Temporary Palace Road, which represents the fact that it was a hot spring land for the royal family. It is proposed that the hot spring bath house for the royal family is to be restored so that the tourists can experience it. The hotsprings around the temporary palace suggests there storation of the ecosystem of the river. The Onyang city development area proposed the construction of a hotspring park.
It proposed that the tourist attractions and resort spaces for citizens of Onyang be made and a Korean garden be created. A suggestion was made for the old residences, government office facilities, folk villages and folk museums in nearby areas to be serviced and used as tourist attractions.
Key Words : temporary palace in Onyang. histor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hotsprings, restoration
This research seeks to grasp the history and change of the Onyang temporary palace to use it as a set of basic data for the restoration of the temporary palace. Also, we attempted to propose a direction for the formation of a histor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of an Asan city, centered on the site of temporary palace in Onyang.
Onyang temporary palace is positioned on a flatland around the hot spring to the west of Onyang-gun. The building faces the south but the entrance faces the east. The spatial composition of Onyang temporary palace is separated into two areas, which are the outer wall and the inner wall. Because the Onyang temporary palace was a resort-type palace, it carries a characteristic of a combined government office spaces for officials, spaces for the royal family and an entrance. The main structures of the Onyang temporary palace are the key buildings which were the spaces for the king's bedroom, spaces for government office and the hot springs.
There were external government offices, such as the meeting room for officials of the Ministry of War, an office for discussing social affairs and an office for consulation. Especially, the hot spring was a bathing facillity with 16 private rooms and a coolingroom, a bathroom, a small pavillion, a small room and a room with bat htubs. The inside of the hot springs had bath tubs, consisting of upper and lower tubs and a two story wooden bridge. And also, there was a bathhouse in the northern are a for the courtiers.
The city have been changed of the Onyang province centered on the temporary palace. During the Three Han State Era, Onyang was Yeomroguk of Mahan. During the United Shilla Era, it was Tangjeong-gun, Ashool-hyun and Gooljik-hyun. During the Koryeo Era, Onyang-gun changed is name to Onsu-gun. During the Chosun Era, Aju-gun was restructured to Asan-hyun in the 13th year of Taejong(1413). In the 24th year of Sejong(1442), Onyang-hyun was elevated to Onyang-gun. In the 33th year of Gojong(1896), Onyang-gun, Asan-hyun and Shinchang-hyun were restructured into 13 provinces and were changed to the 4th and 5th group among the 37 groups. The city was changed after the development of the hot springs near the temporary palace. The Japanese Colonial Era (1900~1945) merged the three gun and hyun into Asan-gun in 1914. In 1941, Onyang-myun was elevated to Onyang-eup.
After the liberation, due to the Korean War in 1950, Shinjunggwan(神井館), Hyepajung(惠波亭), Hamlakdang(涵樂堂) and the post office were gone. In 1955, the Ministry of Transportation newly constructed Oyang Hot Spring Railway Hotel. Then, Onyang Hot Springs took off as the place for the honeymooners and was very popular until the mid 1970s. However, it had a poor establishment of infrastructure, such as the town maintenance and the roads. During the mid 1960s, new hot spring wells were developed by civilians as the government encouraged the interest with the tourism promotion policy. During the 1970s, the city advanced with the development of tourism courses and maintenance of the city's infrastructure. Onyang-eup elevated to Onyang city in 1986 and in 1995, Asan-gun and Onyang city merged to Asan city. Currently, it has grown into a mid-sized city in the western part of Choongcheong province with a population of nearly 300,000.
The direction for the formation of a histor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around the Onyang temporary palace is as follows. First of all, the Onyang temporary palace, which is a key historical and cultural tourist sight, needs to be restored and then the spaces relating to the royal family needs to be constructed.
The connecting road of the Onyang temporary palace land is to be constructed as Onyang Temporary Palace Road, which represents the fact that it was a hot spring land for the royal family. It is proposed that the hot spring bath house for the royal family is to be restored so that the tourists can experience it. The hotsprings around the temporary palace suggests there storation of the ecosystem of the river. The Onyang city development area proposed the construction of a hotspring park.
It proposed that the tourist attractions and resort spaces for citizens of Onyang be made and a Korean garden be created. A suggestion was made for the old residences, government office facilities, folk villages and folk museums in nearby areas to be serviced and used as tourist attractions.
Key Words : temporary palace in Onyang. historical and cultural environment, hotsprings, resto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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