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가족관」에 대한 고찰 : 『도다가의 형제자매들(戶田家の兄弟)』과 『아버지가 있었다(父ありき)』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Family Values of Ozu Yasujiro : based on 『The Brothers and Sisters of the Toda Family』and 『The Was a Father』원문보기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와 일본의 ‘한류’ 붐으로 양국은 서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전개가 뚜렷하지 않은 일본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 지루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일본 내 흥행작이 한국에서 부진한 이유는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의 인지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함께 일본 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이후, 오즈)의 작품에는 주인공도 플롯도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적 문제나 개인 간의 문제를 카메라 기법을 통해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어서 지루함마저 느끼게 한다. 미조구치 겐지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프랑스와 서구의 영화 애호가들에게 소개되고 극찬 받아 온 것에 비해, 지나치게 소심한 제작사 때문에 오즈의 영화는 유럽 영화제에 참가해 본 적이 없었으며, 사후 2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세계 영화의 거목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일본이나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오즈의 작품에서는 한결같은 주제인 소시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40년 동안 꾸준히 반복된다. 특히 그는 감독이면서도 초기부터 ‘제임스 마키’라는 필명을 사용하면서까지 꾸준히 원안이나 각본을 공동집필했다. 오즈의 작품들에서 이에(家)제도의 변화를 분석하는 중 주안점을 둔 것은 가장권(家長權)의 소멸로 인한 부권(父權)과 모권(母權)의 상실이다. 이런 측면을 분석하기 위해, 우선 감독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한다. 그 중, 『도다가의 형제자매들(郞田家の兄妹)』을 중심으로 이에(家)제도의 변화로 인한 ‘모권(母權)상실’을 고찰하고, 『아버지가 있었다(父ありき)』를 통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 가는 과정으로 작품에서 자식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의 역할’로 분석해 보고, 앞에서 고찰한 것을 접목해 일본적 효(孝)사상과 연관시켜 ‘부모의 마음’과 ‘자식들의 냉정함’의 대립적 양상을 작품에서 찾아내어 살펴보았다. 일본영화보다 미국영화에 더 매료되어 있던 오즈가 이에(家)제도나 일본적인 효(孝)사상이라는 인위적인 제도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은 일본 소시민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오즈는 약화된 부모에 대한 효(孝)사상이 각박한 현실과 맞물려 잊혀져가는 인간적인 ...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와 일본의 ‘한류’ 붐으로 양국은 서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전개가 뚜렷하지 않은 일본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 지루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일본 내 흥행작이 한국에서 부진한 이유는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의 인지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함께 일본 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이후, 오즈)의 작품에는 주인공도 플롯도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적 문제나 개인 간의 문제를 카메라 기법을 통해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어서 지루함마저 느끼게 한다. 미조구치 겐지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프랑스와 서구의 영화 애호가들에게 소개되고 극찬 받아 온 것에 비해, 지나치게 소심한 제작사 때문에 오즈의 영화는 유럽 영화제에 참가해 본 적이 없었으며, 사후 2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세계 영화의 거목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일본이나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오즈의 작품에서는 한결같은 주제인 소시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40년 동안 꾸준히 반복된다. 특히 그는 감독이면서도 초기부터 ‘제임스 마키’라는 필명을 사용하면서까지 꾸준히 원안이나 각본을 공동집필했다. 오즈의 작품들에서 이에(家)제도의 변화를 분석하는 중 주안점을 둔 것은 가장권(家長權)의 소멸로 인한 부권(父權)과 모권(母權)의 상실이다. 이런 측면을 분석하기 위해, 우선 감독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한다. 그 중, 『도다가의 형제자매들(郞田家の兄妹)』을 중심으로 이에(家)제도의 변화로 인한 ‘모권(母權)상실’을 고찰하고, 『아버지가 있었다(父ありき)』를 통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 가는 과정으로 작품에서 자식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의 역할’로 분석해 보고, 앞에서 고찰한 것을 접목해 일본적 효(孝)사상과 연관시켜 ‘부모의 마음’과 ‘자식들의 냉정함’의 대립적 양상을 작품에서 찾아내어 살펴보았다. 일본영화보다 미국영화에 더 매료되어 있던 오즈가 이에(家)제도나 일본적인 효(孝)사상이라는 인위적인 제도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은 일본 소시민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오즈는 약화된 부모에 대한 효(孝)사상이 각박한 현실과 맞물려 잊혀져가는 인간적인 정(情)을 작품 전반에 그리려했다고 본다. 본고를 통해서 40-60년대 일본 소시민의 가족관계의 변화를 접할 수 있으며, 오즈의 가족관을 명확히 하는데 본고의 의의를 둘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조치와 일본의 ‘한류’ 붐으로 양국은 서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나, 만화나 애니메이션에 비해, 전개가 뚜렷하지 않은 일본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 지루하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또한 일본 내 흥행작이 한국에서 부진한 이유는 영화에 대한 사전정보의 인지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문화의 차이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구로사와 아키라(黑澤明)와 함께 일본 영화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의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다. 오즈 야스지로(이후, 오즈)의 작품에는 주인공도 플롯도 존재하지 않으며, 개인적 문제나 개인 간의 문제를 카메라 기법을 통해 섬세하게 조명하고 있어서 지루함마저 느끼게 한다. 미조구치 겐지와 구로사와 아키라가 프랑스와 서구의 영화 애호가들에게 소개되고 극찬 받아 온 것에 비해, 지나치게 소심한 제작사 때문에 오즈의 영화는 유럽 영화제에 참가해 본 적이 없었으며, 사후 2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세계 영화의 거목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렇게 일본이나 미국이 아닌 유럽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오즈의 작품에서는 한결같은 주제인 소시민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40년 동안 꾸준히 반복된다. 특히 그는 감독이면서도 초기부터 ‘제임스 마키’라는 필명을 사용하면서까지 꾸준히 원안이나 각본을 공동집필했다. 오즈의 작품들에서 이에(家)제도의 변화를 분석하는 중 주안점을 둔 것은 가장권(家長權)의 소멸로 인한 부권(父權)과 모권(母權)의 상실이다. 이런 측면을 분석하기 위해, 우선 감독의 생애와 작품을 소개한다. 그 중, 『도다가의 형제자매들(郞田家の兄妹)』을 중심으로 이에(家)제도의 변화로 인한 ‘모권(母權)상실’을 고찰하고, 『아버지가 있었다(父ありき)』를 통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해 가는 과정으로 작품에서 자식의 마음을 ‘그리움’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의 역할’로 분석해 보고, 앞에서 고찰한 것을 접목해 일본적 효(孝)사상과 연관시켜 ‘부모의 마음’과 ‘자식들의 냉정함’의 대립적 양상을 작품에서 찾아내어 살펴보았다. 일본영화보다 미국영화에 더 매료되어 있던 오즈가 이에(家)제도나 일본적인 효(孝)사상이라는 인위적인 제도로 인해, 상처를 주고받은 일본 소시민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오즈는 약화된 부모에 대한 효(孝)사상이 각박한 현실과 맞물려 잊혀져가는 인간적인 정(情)을 작품 전반에 그리려했다고 본다. 본고를 통해서 40-60년대 일본 소시민의 가족관계의 변화를 접할 수 있으며, 오즈의 가족관을 명확히 하는데 본고의 의의를 둘 수 있다.
With Kenji Mizoguchi, Kurosawa Akira, Ozu Yasujiro was considered as 3 big masters in Japanese movie. In his pieces, there is no main character and plot. Moreover, because his pieces spotlight personal problems and relationship among individuals by camera technique in detail, they are seemed to be b...
With Kenji Mizoguchi, Kurosawa Akira, Ozu Yasujiro was considered as 3 big masters in Japanese movie. In his pieces, there is no main character and plot. Moreover, because his pieces spotlight personal problems and relationship among individuals by camera technique in detail, they are seemed to be boring to many people. Though he is a movie director, from beginning of his career, he has been also trying to co-write original plan or scenarios steadily. Like this, he has repeated the story on the family of petit bourgeois for 40 years. In this study, in the analysis of the change of 'IE' system, a japanese family system, it was trying to emphasize on the loss of father's and mother's authority caused by extinction of patriarchal rights. In chapter 1 in the body, the life and pieces of the director were introduced. In paragraph 1 in chapter 2, as following 『The Brothers and Sisters of the Toda Family』,'the loss of mother's authority' caused by the change of 'IE' system was examined. In paragraph 2, through 『The Was a Father』, the process overcoming an Oedipus complex was analyzed and considered as 'longing', the mind of offspring and 'the role of a father', the mind of a father. In paragraph 3, as connecting the content examined in previous paragraphs with a traditional japanese idea of filial piety, it was examined by opposite conditions between 'the mind of parents' and 'cool-heartedness of offspring'. Because Ozu fascinated in American movies, he expressed the mind of wounded petit bourgeois, caused by artificial systems such as 'IE' system or japanese filial piety. Besides, the weakened filial piety was drawn in his pieces totally as human affection, which has been forgotten in hard-hearted world. This study has the meaning the change of family relationship in Japanese petit bourgeois in the 40's ∼ 60's could be understood and the view on the family of Ozu could also be clarified.
With Kenji Mizoguchi, Kurosawa Akira, Ozu Yasujiro was considered as 3 big masters in Japanese movie. In his pieces, there is no main character and plot. Moreover, because his pieces spotlight personal problems and relationship among individuals by camera technique in detail, they are seemed to be boring to many people. Though he is a movie director, from beginning of his career, he has been also trying to co-write original plan or scenarios steadily. Like this, he has repeated the story on the family of petit bourgeois for 40 years. In this study, in the analysis of the change of 'IE' system, a japanese family system, it was trying to emphasize on the loss of father's and mother's authority caused by extinction of patriarchal rights. In chapter 1 in the body, the life and pieces of the director were introduced. In paragraph 1 in chapter 2, as following 『The Brothers and Sisters of the Toda Family』,'the loss of mother's authority' caused by the change of 'IE' system was examined. In paragraph 2, through 『The Was a Father』, the process overcoming an Oedipus complex was analyzed and considered as 'longing', the mind of offspring and 'the role of a father', the mind of a father. In paragraph 3, as connecting the content examined in previous paragraphs with a traditional japanese idea of filial piety, it was examined by opposite conditions between 'the mind of parents' and 'cool-heartedness of offspring'. Because Ozu fascinated in American movies, he expressed the mind of wounded petit bourgeois, caused by artificial systems such as 'IE' system or japanese filial piety. Besides, the weakened filial piety was drawn in his pieces totally as human affection, which has been forgotten in hard-hearted world. This study has the meaning the change of family relationship in Japanese petit bourgeois in the 40's ∼ 60's could be understood and the view on the family of Ozu could also be clarif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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