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방법을 고대 희랍 교육의 두 축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교육론 속에서 찾아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교육론 비교 연구를 통해, 진정으로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모습을 생각해봄으로써 교육의 의미와 교육의 방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심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간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상태에 놓여야 한다. 인간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상태가 된다는 것은 도덕적 규범을 알고 외적으로 실천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도덕적 가치가 새겨져 있어야 하며, 자연스럽게 외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희랍 사상에서는 도덕의 의미를 인간의 마음과 연결하여 생각하였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도덕의 의미를 ‘좋은 것의 형식’이라고 제시한다. ‘좋은 것의 형식’은 가시계(可視界)를 벗어나 가지계(可知界)에 도달했을 때의 인간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인간의 마음을 가시계와 가지계로 구분한다. 가시계는 볼 수 있는 영역으로 감각 대상들을 통해 의견, 판단을 내린다. 가지계는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알 수 있는 세계로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여 지성에 의한 앎(이해)를 얻는다. 가시계와 가지계에서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가시계에서 가지계로 나아간다. 플라톤은 지식을 통해서 가지계에 있는 ‘좋은 것의 형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교육방법은 지식을 통한 교육으로 학습자의 능력에 맞도록 크게 전기 교육과 후기 교육으로 나뉜다. 전기 교육은 ...
본 연구는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방법을 고대 희랍 교육의 두 축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교육론 속에서 찾아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교육론 비교 연구를 통해, 진정으로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모습을 생각해봄으로써 교육의 의미와 교육의 방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심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간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상태에 놓여야 한다. 인간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상태가 된다는 것은 도덕적 규범을 알고 외적으로 실천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도덕적 가치가 새겨져 있어야 하며, 자연스럽게 외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희랍 사상에서는 도덕의 의미를 인간의 마음과 연결하여 생각하였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도덕의 의미를 ‘좋은 것의 형식’이라고 제시한다. ‘좋은 것의 형식’은 가시계(可視界)를 벗어나 가지계(可知界)에 도달했을 때의 인간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인간의 마음을 가시계와 가지계로 구분한다. 가시계는 볼 수 있는 영역으로 감각 대상들을 통해 의견, 판단을 내린다. 가지계는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알 수 있는 세계로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여 지성에 의한 앎(이해)를 얻는다. 가시계와 가지계에서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가시계에서 가지계로 나아간다. 플라톤은 지식을 통해서 가지계에 있는 ‘좋은 것의 형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교육방법은 지식을 통한 교육으로 학습자의 능력에 맞도록 크게 전기 교육과 후기 교육으로 나뉜다. 전기 교육은 어린 학생을 위한 교육으로 무시케(musikē) 교육과 김나스티케(gymnastikē) 교육이 있다. 무시케 교육은 문학, 음악, 조형 예술을 포함한 전반적인 예술 교육으로 감각을 통해 ‘좋은 것의 형식’을 알아간다. 김나스티케 교육은 ‘좋은 것의 형식’과 닮은 것을 몸으로 표현함으로써 ‘좋은 것의 형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된다. 후기 교육은 전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받는 것으로, 전기 교육에서 알게 된 ‘좋은 것의 형식’을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알아가는 단계이다. 후기 교육에서는 과학 교육(산술과 수론, 평면 기하학 입체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과 철학 교육(변증법)을 한다. 과학 교육에서는 ‘좋은 것의 형식’에 해당하는 것을 수학적, 과학적 용어로 정의내리고, 원리를 파악한다. ‘좋은 것의 형식’을 이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마지막 철학 교육에서는 자신이 배운 지식들을 활용하여 올바른 추론을 통해 도덕적으로 가장 올바른 상태를 알아가고, 그에 맞는 안목인 ‘좋은 것의 형식’을 갖추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도덕의 의미를 ‘프로네시스’(phronēsis)로 규정한다. ‘프로네시스’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것들 중 최선의 것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을 이성의 유무에 따라 둘로 나누었다. 그 자체 안에 이성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지성의 덕이라 하였으며, 이성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혼재한 것으로 이성에 의해 설복과 저항을 반복하는 영역을 성품의 덕이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통해서는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지식보다는 실천을 통해서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지성의 덕보다는 성품의 덕에 더 관심을 가졌다. ‘프로네시스’는 이성적 사유를 요구하므로 지성의 덕에 속하나, 실제로 행동에 옮기며 실천하는 역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품의 덕에서 발현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을 통해 ‘프로네시스’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을 통한 교육을 강조한다. ‘프로네시스’를 갖기 위해서는 각 상황마다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최우선의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각 상황마다 도덕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른 도(道)에 모자람과 지나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잘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잘 숙고하는 것은 합리적 추론(logos)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이성의 도움을 통해 무엇이 올바른 행동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상황에 알맞은 행동이 무엇인지 숙고한다음, 숙고한 도(道)를 실천한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숙고한 도를 마음에 새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반복 연습하여 자신의 것으로 습관화시켜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다른 도덕 교육론을 내세운다. 플라톤은 도덕적 지식을 알면 바로 도덕적 행동으로 연결되어 나타난다고 생각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지식을 아는 것과 도덕적 행동을 하는 것은 별개의 것으로 여겼다. 플라톤의 주장을 보충하기 위해서 메타프락시스 담론을 활용하면 지식이 행동으로 바로 연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메타프락시스는 초자연적인 것(supernatural being)을 인식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본 연구는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방법을 고대 희랍 교육의 두 축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교육론 속에서 찾아내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도덕 교육론 비교 연구를 통해, 진정으로 도덕적인 인간이 되는 모습을 생각해봄으로써 교육의 의미와 교육의 방향성을 짚어보고자 한다. 교육을 통해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인간의 심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인간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상태에 놓여야 한다. 인간의 마음이 도덕적으로 올바른 상태가 된다는 것은 도덕적 규범을 알고 외적으로 실천하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도덕적 가치가 새겨져 있어야 하며, 자연스럽게 외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을 의미한다. 고대 희랍 사상에서는 도덕의 의미를 인간의 마음과 연결하여 생각하였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론」에서 도덕의 의미를 ‘좋은 것의 형식’이라고 제시한다. ‘좋은 것의 형식’은 가시계(可視界)를 벗어나 가지계(可知界)에 도달했을 때의 인간의 마음 상태를 말한다. 플라톤은 인간의 마음을 가시계와 가지계로 구분한다. 가시계는 볼 수 있는 영역으로 감각 대상들을 통해 의견, 판단을 내린다. 가지계는 지성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알 수 있는 세계로 지성에 의해 알 수 있는 것들을 대상으로 하여 지성에 의한 앎(이해)를 얻는다. 가시계와 가지계에서는 다른 세계가 아니라,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교육을 통해 가시계에서 가지계로 나아간다. 플라톤은 지식을 통해서 가지계에 있는 ‘좋은 것의 형식’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플라톤의 교육방법은 지식을 통한 교육으로 학습자의 능력에 맞도록 크게 전기 교육과 후기 교육으로 나뉜다. 전기 교육은 어린 학생을 위한 교육으로 무시케(musikē) 교육과 김나스티케(gymnastikē) 교육이 있다. 무시케 교육은 문학, 음악, 조형 예술을 포함한 전반적인 예술 교육으로 감각을 통해 ‘좋은 것의 형식’을 알아간다. 김나스티케 교육은 ‘좋은 것의 형식’과 닮은 것을 몸으로 표현함으로써 ‘좋은 것의 형식’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관심을 갖게 된다. 후기 교육은 전기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받는 것으로, 전기 교육에서 알게 된 ‘좋은 것의 형식’을 더 구체적인 방법으로 알아가는 단계이다. 후기 교육에서는 과학 교육(산술과 수론, 평면 기하학 입체 기하학, 천문학, 화성학)과 철학 교육(변증법)을 한다. 과학 교육에서는 ‘좋은 것의 형식’에 해당하는 것을 수학적, 과학적 용어로 정의내리고, 원리를 파악한다. ‘좋은 것의 형식’을 이전보다 더 구체적으로 논의하게 된다. 마지막 철학 교육에서는 자신이 배운 지식들을 활용하여 올바른 추론을 통해 도덕적으로 가장 올바른 상태를 알아가고, 그에 맞는 안목인 ‘좋은 것의 형식’을 갖추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도덕의 의미를 ‘프로네시스’(phronēsis)로 규정한다. ‘프로네시스’는 인간의 행위에 의해 성취될 수 있는 것들 중 최선의 것을 판단하는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마음을 이성의 유무에 따라 둘로 나누었다. 그 자체 안에 이성을 가지고 있는 영역을 지성의 덕이라 하였으며, 이성이 있는 부분과 없는 부분이 혼재한 것으로 이성에 의해 설복과 저항을 반복하는 영역을 성품의 덕이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식을 통해서는 도덕적인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는 지식보다는 실천을 통해서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지성의 덕보다는 성품의 덕에 더 관심을 가졌다. ‘프로네시스’는 이성적 사유를 요구하므로 지성의 덕에 속하나, 실제로 행동에 옮기며 실천하는 역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품의 덕에서 발현이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교육을 통해 ‘프로네시스’를 확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을 통한 교육을 강조한다. ‘프로네시스’를 갖기 위해서는 각 상황마다 인간이 실천할 수 있는 최우선의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각 상황마다 도덕적으로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상황에 따른 도(道)에 모자람과 지나침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잘 숙고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잘 숙고하는 것은 합리적 추론(logos)를 기반으로 한 것으로 이성의 도움을 통해 무엇이 올바른 행동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상황에 알맞은 행동이 무엇인지 숙고한다음, 숙고한 도(道)를 실천한다. 도덕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숙고한 도를 마음에 새기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반복 연습하여 자신의 것으로 습관화시켜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제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와는 다른 도덕 교육론을 내세운다. 플라톤은 도덕적 지식을 알면 바로 도덕적 행동으로 연결되어 나타난다고 생각한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도덕적 지식을 아는 것과 도덕적 행동을 하는 것은 별개의 것으로 여겼다. 플라톤의 주장을 보충하기 위해서 메타프락시스 담론을 활용하면 지식이 행동으로 바로 연결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메타프락시스는 초자연적인 것(supernatural being)을 인식하는 과정을 설명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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