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뱅의 종말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창조에 대한 그의 사고에서 시작을 한다. 창조된 영혼과 육체와의 결합을 통해 타락과 구속으로 연결을 하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로 인한 소망, 회복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종말론적 관심에 그리스도가 있었기에 그의 종말론은 철저히 기독론 중심이다. 칼뱅에게 내세에 대한 열망을 가지는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진 것을 발견하기 위한 열망이다. 육체의 고통이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가 불행임을 그는 밝힌다.
죽음에 대한 칼뱅의 입장은 육체적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로, 영적 죽...
칼뱅의 종말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창조에 대한 그의 사고에서 시작을 한다. 창조된 영혼과 육체와의 결합을 통해 타락과 구속으로 연결을 하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로 인한 소망, 회복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종말론적 관심에 그리스도가 있었기에 그의 종말론은 철저히 기독론 중심이다. 칼뱅에게 내세에 대한 열망을 가지는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진 것을 발견하기 위한 열망이다. 육체의 고통이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가 불행임을 그는 밝힌다.
죽음에 대한 칼뱅의 입장은 육체적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로, 영적 죽음은 영혼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비록 육체는 다른 형태로 변형되지만, 영혼은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영적인 교제를 경험하는 것을 그는 죽음이라 본다. 죽음을 영혼의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는 것은 헬라적 발상이 아닌,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영적인 교제를 위한 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칼뱅은 죽음후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성서의 입장을 고수하며 변증하기 위해 그의 초기의 논문 『영혼의 잠』을 통해 재세례파로 대변되는 영혼수면론자들과 영혼사멸성을 주장하는 이론에 그는 철저히 성서에 입각한 변증을 실시한다. 칼뱅에게서 영혼은 실체이고, 육체로 이해 될 수 없는 하나님의 참다운 형상이자, 창조의 본질이다. 그러기에 죽음 후에 영혼이 일순간 무의식의 상태가 된다는 논리는 그에게 이해 될 수 없는 것이다.
참다운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영혼의 실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된 영혼이다. 이 회복은 영혼의 영적죽음 상태에서 회복하여 영적영생을 누리는 상태를 말하며, 하나님 안에서의 생명과 영혼을 동일시하여 회복된 인간은 창조된 인간의 열망인 하늘나라를 열망하는 상태를 추구하게 된다. 영혼불멸은 그리스도를 통한 창조의 회복을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행한 역사가 죄의 진멸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죄를 능가하는 은혜가 더욱 풍성한 생명으로 회복시켜서, 창조의 본 모습인 영생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다.
우리의 영혼은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전까지 지속되고,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의 미완결성과 미래의 완성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 존재하고, 비로소 그 날이 되면 하나님 안에 충만이 그들을 완전케 하실 것이고, 그들은 그 충만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영혼불멸에 대한 논쟁은 칼뱅의 지나친 헬라화에 대한 지적으로 인간론의 입장에서, 과도한 영혼불멸의 개념의 강조로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칼뱅의 그의 저서인 『영혼의 잠』, 『기독교강요』와 그의 주석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칼뱅의 역사이해가 처절한 종교개혁기의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대적자들과 심각하고, 긴박한 논쟁적 상황에서 성서의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판단하여 철학적 개념을 사용하였을 뿐이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죽은자들의 상태는 결코 버린바 되는 실종의 상태가 아니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고, 완성의 역사를 향한 흐름에 놓여 있다.
육체의 죽음 이후 의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위로를 얻도록 낙원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약속된 영광을 즐길 때를 기다리며 복된 안식으로 들어가고, 버림받은 자들은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갇혀 있게 된다. 중생한 영혼은 이미 부활의 기대 속에서 하늘의 평화를 누린다. 영혼은 지각과 지성을 지니고 있는 참 인간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교통의 과정에서 영혼을 살리는 역할은 성령이 하신다.
연옥에 대한 믿음은 칼뱅에게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인간의 죽음 후에 영원한 운명이 이 세상으로 부터의 어떤 영향에 의하여 변경 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로 인해 절대적으로 충분한 속죄사업은 무효가 되는 것이고, 죄의 용서함을 믿고, 구세주의 완전한 대속적 고난을 믿는 신앙으로부터 격리되게 된다.
재림에 대한 관점은 때가 아니라, 대망의 기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날이 지금은 숨겨져 있지만, 그 날의 생활을 신앙으로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기독교 소망의 본질은 육체의 부활이다. 그 부활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선취이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부활의 몸은 전혀 새로운 몸이 아닌, 동일한 육체의 부활이 될 것이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게 되고, 그리스도를 동일한 육체로 부활케 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육체 역시 동일한 육체로 부활로 인도할 것이다.
최후의 심판은 참다운 존재의 노출이다. 흑암 속에서 감추어졌던 것이 빛 가운데 숨김없이 드러나는 심판이기에 선악 간에 심판이 일어난다.
칼뱅의 종말론에 대한 그의 관심은 창조에 대한 그의 사고에서 시작을 한다. 창조된 영혼과 육체와의 결합을 통해 타락과 구속으로 연결을 하고 그 중심에 그리스도로 인한 소망, 회복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종말론적 관심에 그리스도가 있었기에 그의 종말론은 철저히 기독론 중심이다. 칼뱅에게 내세에 대한 열망을 가지는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겨진 것을 발견하기 위한 열망이다. 육체의 고통이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가 불행임을 그는 밝힌다.
죽음에 대한 칼뱅의 입장은 육체적 죽음은 육체와 영혼의 분리로, 영적 죽음은 영혼이 죄로 인해 하나님과 분리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비록 육체는 다른 형태로 변형되지만, 영혼은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영적인 교제를 경험하는 것을 그는 죽음이라 본다. 죽음을 영혼의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으로 여기는 것은 헬라적 발상이 아닌, 하나님과의 더욱 깊은 영적인 교제를 위한 발전으로 이해하는 것이 그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을 것이다.
칼뱅은 죽음후의 영혼의 상태에 대한 성서의 입장을 고수하며 변증하기 위해 그의 초기의 논문 『영혼의 잠』을 통해 재세례파로 대변되는 영혼수면론자들과 영혼사멸성을 주장하는 이론에 그는 철저히 성서에 입각한 변증을 실시한다. 칼뱅에게서 영혼은 실체이고, 육체로 이해 될 수 없는 하나님의 참다운 형상이자, 창조의 본질이다. 그러기에 죽음 후에 영혼이 일순간 무의식의 상태가 된다는 논리는 그에게 이해 될 수 없는 것이다.
참다운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영혼의 실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복된 영혼이다. 이 회복은 영혼의 영적죽음 상태에서 회복하여 영적영생을 누리는 상태를 말하며, 하나님 안에서의 생명과 영혼을 동일시하여 회복된 인간은 창조된 인간의 열망인 하늘나라를 열망하는 상태를 추구하게 된다. 영혼불멸은 그리스도를 통한 창조의 회복을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행한 역사가 죄의 진멸로 끝난 것이 아니라, 죄를 능가하는 은혜가 더욱 풍성한 생명으로 회복시켜서, 창조의 본 모습인 영생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두게 되었다.
우리의 영혼은 마지막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전까지 지속되고,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의 미완결성과 미래의 완성사이의 긴장 관계 속에 존재하고, 비로소 그 날이 되면 하나님 안에 충만이 그들을 완전케 하실 것이고, 그들은 그 충만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영혼불멸에 대한 논쟁은 칼뱅의 지나친 헬라화에 대한 지적으로 인간론의 입장에서, 과도한 영혼불멸의 개념의 강조로 비판받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칼뱅의 그의 저서인 『영혼의 잠』, 『기독교강요』와 그의 주석들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칼뱅의 역사이해가 처절한 종교개혁기의 상황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대적자들과 심각하고, 긴박한 논쟁적 상황에서 성서의 중요한 가르침을 전하기에 적합한 방법으로 판단하여 철학적 개념을 사용하였을 뿐이지, 결코 성경의 가르침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았다. 죽은자들의 상태는 결코 버린바 되는 실종의 상태가 아니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와 연합한 상태의 과정을 경험하는 것이고, 완성의 역사를 향한 흐름에 놓여 있다.
육체의 죽음 이후 의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위로를 얻도록 낙원으로 인도함을 받는다. 약속된 영광을 즐길 때를 기다리며 복된 안식으로 들어가고, 버림받은 자들은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갇혀 있게 된다. 중생한 영혼은 이미 부활의 기대 속에서 하늘의 평화를 누린다. 영혼은 지각과 지성을 지니고 있는 참 인간으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교통의 과정에서 영혼을 살리는 역할은 성령이 하신다.
연옥에 대한 믿음은 칼뱅에게서 받아들여질 수 없다. 인간의 죽음 후에 영원한 운명이 이 세상으로 부터의 어떤 영향에 의하여 변경 될 수 있다면, 그리스도로 인해 절대적으로 충분한 속죄사업은 무효가 되는 것이고, 죄의 용서함을 믿고, 구세주의 완전한 대속적 고난을 믿는 신앙으로부터 격리되게 된다.
재림에 대한 관점은 때가 아니라, 대망의 기대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 날이 지금은 숨겨져 있지만, 그 날의 생활을 신앙으로 바라볼 것을 촉구한다.
기독교 소망의 본질은 육체의 부활이다. 그 부활의 근거는 그리스도의 부활의 선취이고, 하나님의 전능하심이다.
부활의 몸은 전혀 새로운 몸이 아닌, 동일한 육체의 부활이 될 것이다.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게 되고, 그리스도를 동일한 육체로 부활케 하신 성령께서 우리의 육체 역시 동일한 육체로 부활로 인도할 것이다.
최후의 심판은 참다운 존재의 노출이다. 흑암 속에서 감추어졌던 것이 빛 가운데 숨김없이 드러나는 심판이기에 선악 간에 심판이 일어난다.
주제어
#죽음 칼뱅 종말 개인종말 영혼불멸 영혼수면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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