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구토광묘와 관련한 최근의 연구 경향은 내륙지역과 해안지역의 매장형식, 부장유물 등의 차이를 계통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서해안지역의 분구묘와 내륙지역의 주구토광묘로 대별하여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중서부지역에서 확인되는 주구가 부가된 분묘에 대하여 묘제의 수용 및 변화에 있어 차이가 자연지형 및 인문지리적 환경의 영향에 기인하였음을 염두에 두고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중서부지역의 주구가 부가된 분묘를 통칭하여 주구토광묘라 칭하고, 6개의 소지역권으로 중서부지역 내 공간을 분할하여 소지역권별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여 그 전개 양상과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주구토광묘의 특성을 보여주는 구성요소로 판단한 매장주체시설, 봉토, 주구, 매장형식의 요소를 결합하여 형식분류를 시도하여 총 10개의 형식을 도출하였다. (A1, A2, A3, ...
주구토광묘와 관련한 최근의 연구 경향은 내륙지역과 해안지역의 매장형식, 부장유물 등의 차이를 계통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서해안지역의 분구묘와 내륙지역의 주구토광묘로 대별하여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중서부지역에서 확인되는 주구가 부가된 분묘에 대하여 묘제의 수용 및 변화에 있어 차이가 자연지형 및 인문지리적 환경의 영향에 기인하였음을 염두에 두고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중서부지역의 주구가 부가된 분묘를 통칭하여 주구토광묘라 칭하고, 6개의 소지역권으로 중서부지역 내 공간을 분할하여 소지역권별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여 그 전개 양상과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주구토광묘의 특성을 보여주는 구성요소로 판단한 매장주체시설, 봉토, 주구, 매장형식의 요소를 결합하여 형식분류를 시도하여 총 10개의 형식을 도출하였다. (A1, A2, A3, B1, B2, B3, B4, B5, B6, B7). 또한 토기 및 철기를 중심으로 기존의 편년안을 기초로 하여 각 형식의 시간축을 설정하고 이를 각 유적별로 확인하여 유적별 편년안을 도출하였다. 주구토광묘는 경기 서해안지역에서 처음 등장하여, 남북교통로를 중심으로 한 선형상으로 나타나는 발형토기+원저단경호의 세트 부장이라는 정형적 부장의례를 기반으로 마형대구, 곡봉형 철기, 합장묘, 목곽묘, 합장묘 등의 요소가 등장하는 경기남부권, 아산만권, 충청내륙권과 상대적으로 세트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다양한 기종의 토기류가 부장되며 방형주구의 단장묘(A1, B1)에서 주구 및 봉토를 연접 확장하여 추가장을 실시하는(A2, A3) 충청 서해안권 및 금강 중・하류역으로분화되어 발전한다. A1형식과 B1형식은 주구토광묘 등장(Ⅰ기)부터 쇠퇴(Ⅲ기)까지 계속해서 조영되는 양상이 확인되었으며, A2, A3 및 B2, B3, B4, B5, B6, B7은 성행기(Ⅱ기)에 등장하여 쇠퇴기까지 조영되다가 소멸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등장기(Ⅰ기)에 등장하였던 A1, B1 형식은 중서부 전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조성되는 한편, 성행기(Ⅱ기)에 새롭게 도입되는 다양한 매장주체시설의 사용은 각 소지역권 별로 그 조성과 비율의 차이가 현격하며, 소지역권 내에서도 중심지역에 따른 차이가 인식된다. 쇠퇴기(Ⅲ기)가 되면 백제가 고대국가로서 본격적인 세력 확장을 시도하며 주구토광묘 또한 이러한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백제의 단순토광묘 및 석실, 석곽분으로 대체된다. 다만 지역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오산 수청동, 대전 노은동 등에서는 계속해서 주구토광묘가 조성되는 한편 부장유물은 완전히 백제계로 변화한다. 이는 기존의 지역집단이 백제와 관계 하에서 계속해서 해당지역을 영유하였음을 보여준다. 서산 부장리, 당진 도성리의 경우 수평적 확장 뿐 아니라 수직적 확장도 이루어져 고분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양상을 각각 중서부지역의 남북에 위치한 서북한지역과 영남지역의 같은 시기 분묘와 비교하면 서북한지역과 영남지역에서는 목관에서 목곽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확인되나 중서부지역에서는 충청 내륙지역에서 유의미하게 확인될 뿐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그 정형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이러한 요소들이 외부에서 유입된 것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외부세력의 직접적인 정착의 형태가 아니라 재지집단에 의한 선택적인 수용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부장유물인 원저단경호의 변화상에서도 시간에 따른 문화의 유입과 재지화의 양상이 확인되며 지역 내에서도 여러 소국들이 존재하여 권역별로 새로운 문화의 유입과 수용 양상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원삼국시대 중서부지역에서는 외부의 영향과 토착문화의 결합 과정에서 주구토광묘라는 특유의 묘제가 형성되었고, 각 지역집단의 자연・인문지리적 환경에 의하여 변화되어 중서부전역에 걸쳐 사용되다가 백제의 확장과정에서 점차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그 당시 중서부지역의 사회가 지역적・토착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주구토광묘와 관련한 최근의 연구 경향은 내륙지역과 해안지역의 매장형식, 부장유물 등의 차이를 계통성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서해안지역의 분구묘와 내륙지역의 주구토광묘로 대별하여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본고에서는 중서부지역에서 확인되는 주구가 부가된 분묘에 대하여 묘제의 수용 및 변화에 있어 차이가 자연지형 및 인문지리적 환경의 영향에 기인하였음을 염두에 두고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중서부지역의 주구가 부가된 분묘를 통칭하여 주구토광묘라 칭하고, 6개의 소지역권으로 중서부지역 내 공간을 분할하여 소지역권별 공통점과 차이점을 파악하여 그 전개 양상과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주구토광묘의 특성을 보여주는 구성요소로 판단한 매장주체시설, 봉토, 주구, 매장형식의 요소를 결합하여 형식분류를 시도하여 총 10개의 형식을 도출하였다. (A1, A2, A3, B1, B2, B3, B4, B5, B6, B7). 또한 토기 및 철기를 중심으로 기존의 편년안을 기초로 하여 각 형식의 시간축을 설정하고 이를 각 유적별로 확인하여 유적별 편년안을 도출하였다. 주구토광묘는 경기 서해안지역에서 처음 등장하여, 남북교통로를 중심으로 한 선형상으로 나타나는 발형토기+원저단경호의 세트 부장이라는 정형적 부장의례를 기반으로 마형대구, 곡봉형 철기, 합장묘, 목곽묘, 합장묘 등의 요소가 등장하는 경기남부권, 아산만권, 충청내륙권과 상대적으로 세트관계가 성립하지 않고 다양한 기종의 토기류가 부장되며 방형주구의 단장묘(A1, B1)에서 주구 및 봉토를 연접 확장하여 추가장을 실시하는(A2, A3) 충청 서해안권 및 금강 중・하류역으로분화되어 발전한다. A1형식과 B1형식은 주구토광묘 등장(Ⅰ기)부터 쇠퇴(Ⅲ기)까지 계속해서 조영되는 양상이 확인되었으며, A2, A3 및 B2, B3, B4, B5, B6, B7은 성행기(Ⅱ기)에 등장하여 쇠퇴기까지 조영되다가 소멸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등장기(Ⅰ기)에 등장하였던 A1, B1 형식은 중서부 전지역에서 지속적으로 조성되는 한편, 성행기(Ⅱ기)에 새롭게 도입되는 다양한 매장주체시설의 사용은 각 소지역권 별로 그 조성과 비율의 차이가 현격하며, 소지역권 내에서도 중심지역에 따른 차이가 인식된다. 쇠퇴기(Ⅲ기)가 되면 백제가 고대국가로서 본격적인 세력 확장을 시도하며 주구토광묘 또한 이러한 흐름에 따라 사라지고 백제의 단순토광묘 및 석실, 석곽분으로 대체된다. 다만 지역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오산 수청동, 대전 노은동 등에서는 계속해서 주구토광묘가 조성되는 한편 부장유물은 완전히 백제계로 변화한다. 이는 기존의 지역집단이 백제와 관계 하에서 계속해서 해당지역을 영유하였음을 보여준다. 서산 부장리, 당진 도성리의 경우 수평적 확장 뿐 아니라 수직적 확장도 이루어져 고분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양상을 각각 중서부지역의 남북에 위치한 서북한지역과 영남지역의 같은 시기 분묘와 비교하면 서북한지역과 영남지역에서는 목관에서 목곽으로 전환되는 양상이 확인되나 중서부지역에서는 충청 내륙지역에서 유의미하게 확인될 뿐이며, 다른 지역에서는 그 정형성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이러한 요소들이 외부에서 유입된 것임을 보여주는 동시에 외부세력의 직접적인 정착의 형태가 아니라 재지집단에 의한 선택적인 수용이 이루어졌음을 시사한다. 부장유물인 원저단경호의 변화상에서도 시간에 따른 문화의 유입과 재지화의 양상이 확인되며 지역 내에서도 여러 소국들이 존재하여 권역별로 새로운 문화의 유입과 수용 양상에서 차이가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원삼국시대 중서부지역에서는 외부의 영향과 토착문화의 결합 과정에서 주구토광묘라는 특유의 묘제가 형성되었고, 각 지역집단의 자연・인문지리적 환경에 의하여 변화되어 중서부전역에 걸쳐 사용되다가 백제의 확장과정에서 점차 사라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그 당시 중서부지역의 사회가 지역적・토착적 성격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The latest research trend in relation to Jugu-Togwangmyo(Pit tomb with ditch) is being recognized in some respects difference between burying styles and burying artefacts which are corresponded to inland area and seaside district. In this connection, it’s general to classify as Mounded burial of the...
The latest research trend in relation to Jugu-Togwangmyo(Pit tomb with ditch) is being recognized in some respects difference between burying styles and burying artefacts which are corresponded to inland area and seaside district. In this connection, it’s general to classify as Mounded burial of the west coast and Jugu-Togwangmyo of inland area broadly. But this manuscript want to look on tombs which were confirmed in the Midwest Region as Jugu-Togwangmyo. Because tombs which were confirmed in the Midwest Region have a kind of circumferential ditch. These tombs seem to result from topography and anthropogeography. Anyway, I want to divided into the 6 small areas of the Midwest Region and want to investigate the common feature and difference of these areas. In view of burial facilities for the dead, earth mound, a circumferential ditch and burying style, the form of Jugu-Togwangamyo came up with 10 form in total(A1, A2, A3, B1, B2, B3, B4, B5, B6, B7). Also, on the basis of previous chronology of earthen wares and iron wares set up with each form in relation to chronology. So I came up with chronology as to each historical sites. Jugu-Togwangmyo appeared on in the west coast of Kyoung gi Province for the first time. The structure of these tombs changed tombs for one person, which were made up a square shaped ditch(A1, B1) into tombs for two person and over, which were made up a ring shape gutter and mound(A2, A3). Especially, tombs for two person and over were divided and developed in the west coast of Chungcheong Province and the midstream · downstream of Keumgang area. And a lot of earthenwares were buried at these tombs. Meanwhile, tombs of an underground receptacle of a coffin and tombs for two person and over appeared on the south part of Kyoung gi Province, the Asan bay part of Chungcheong Province, the inland part of Chungcheong Province and in the center of traffic route of north and south. These bowl tombs have a burial ceremony, namely, bowl shaped earthenware + pot with round shaped bottom and short neck including a horse shaped buckle and iron wares which have curve rounded rod etc. Anyway, the difference of Jugu-Togwangmyo and tombs of an underground receptacle of a coffin including tombs for two person and over result from more the burial system’s factor of each small area including topography than a Jugu-Togwangmyo(A1, B1) were confirmed from period of appearance(Ⅰ) to period of decline(Ⅲ). And Jugu-Togwangmyo(A2, A3, B2, B3, B4, B5, B6, B7) appeared on period of prevalence(Ⅱ) and have disappeared in period of decline(Ⅲ). Jugu-Togwanrgmyo(A1, B1) in relation to period of appearance(Ⅰ) were built the whole area of the midwest region. The use of various burial facilities for the dead which were corresponded to Ⅱ was seen the difference of each small areas in relation to construct and ratio. Meanwhile, the western part of North Korea and the southeastern part of South Korea are located at the southnorth part of the midwest region. The burial system of these parts were changed a wooden coffin into an underground receptacle of a coffin and have consfirmed the inland part of Chungcheong Province partially. These burial system regard as selective acceptance by the native forces as to external forces. Entering the period of decline(Ⅲ), Baekje have developed in earnest as a ancient country. According to these trend, Jugu-Togwangmyo were vanished and changed into earthen tombs, stoned coffin tombs of Baekje etc. Only, Jugu-Togwangmyo were built the center of those area continually, namely, Osan sites of Kyoung gi Province, Noeum sites of Daejeon, Chungcheong Province. But the burial artefacts of these sites were changed into the system of Baekje entirely. Eventually, Jugu-Togwangmyo were formed in the process of combination, which were corresponded to external forces and indigenous culture in relation to the midwest of Proto-Three Kingdoms of Korea. These burial system were affected by natural environment․human geography and used the whole places of the midwest zone. Since then, These burial system were changed into the system of Baekje entirely. Above-mentioned, we can insist that Jugu-Togwangmyo have the strong feature of regional and indigenous at the time.
The latest research trend in relation to Jugu-Togwangmyo(Pit tomb with ditch) is being recognized in some respects difference between burying styles and burying artefacts which are corresponded to inland area and seaside district. In this connection, it’s general to classify as Mounded burial of the west coast and Jugu-Togwangmyo of inland area broadly. But this manuscript want to look on tombs which were confirmed in the Midwest Region as Jugu-Togwangmyo. Because tombs which were confirmed in the Midwest Region have a kind of circumferential ditch. These tombs seem to result from topography and anthropogeography. Anyway, I want to divided into the 6 small areas of the Midwest Region and want to investigate the common feature and difference of these areas. In view of burial facilities for the dead, earth mound, a circumferential ditch and burying style, the form of Jugu-Togwangamyo came up with 10 form in total(A1, A2, A3, B1, B2, B3, B4, B5, B6, B7). Also, on the basis of previous chronology of earthen wares and iron wares set up with each form in relation to chronology. So I came up with chronology as to each historical sites. Jugu-Togwangmyo appeared on in the west coast of Kyoung gi Province for the first time. The structure of these tombs changed tombs for one person, which were made up a square shaped ditch(A1, B1) into tombs for two person and over, which were made up a ring shape gutter and mound(A2, A3). Especially, tombs for two person and over were divided and developed in the west coast of Chungcheong Province and the midstream · downstream of Keumgang area. And a lot of earthenwares were buried at these tombs. Meanwhile, tombs of an underground receptacle of a coffin and tombs for two person and over appeared on the south part of Kyoung gi Province, the Asan bay part of Chungcheong Province, the inland part of Chungcheong Province and in the center of traffic route of north and south. These bowl tombs have a burial ceremony, namely, bowl shaped earthenware + pot with round shaped bottom and short neck including a horse shaped buckle and iron wares which have curve rounded rod etc. Anyway, the difference of Jugu-Togwangmyo and tombs of an underground receptacle of a coffin including tombs for two person and over result from more the burial system’s factor of each small area including topography than a Jugu-Togwangmyo(A1, B1) were confirmed from period of appearance(Ⅰ) to period of decline(Ⅲ). And Jugu-Togwangmyo(A2, A3, B2, B3, B4, B5, B6, B7) appeared on period of prevalence(Ⅱ) and have disappeared in period of decline(Ⅲ). Jugu-Togwanrgmyo(A1, B1) in relation to period of appearance(Ⅰ) were built the whole area of the midwest region. The use of various burial facilities for the dead which were corresponded to Ⅱ was seen the difference of each small areas in relation to construct and ratio. Meanwhile, the western part of North Korea and the southeastern part of South Korea are located at the southnorth part of the midwest region. The burial system of these parts were changed a wooden coffin into an underground receptacle of a coffin and have consfirmed the inland part of Chungcheong Province partially. These burial system regard as selective acceptance by the native forces as to external forces. Entering the period of decline(Ⅲ), Baekje have developed in earnest as a ancient country. According to these trend, Jugu-Togwangmyo were vanished and changed into earthen tombs, stoned coffin tombs of Baekje etc. Only, Jugu-Togwangmyo were built the center of those area continually, namely, Osan sites of Kyoung gi Province, Noeum sites of Daejeon, Chungcheong Province. But the burial artefacts of these sites were changed into the system of Baekje entirely. Eventually, Jugu-Togwangmyo were formed in the process of combination, which were corresponded to external forces and indigenous culture in relation to the midwest of Proto-Three Kingdoms of Korea. These burial system were affected by natural environment․human geography and used the whole places of the midwest zone. Since then, These burial system were changed into the system of Baekje entirely. Above-mentioned, we can insist that Jugu-Togwangmyo have the strong feature of regional and indigenous at th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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