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 its introduction in"Jeungbosallimgyeongje" in the mid-1700s, Chogyetang has continuously changed as a cooked food while still reflecting the era as in the following four phases. In the first phase from 1766 to 1920, Chogyetang was served as a hot pot dish consisting of boiled chicken with spri...
Since its introduction in"Jeungbosallimgyeongje" in the mid-1700s, Chogyetang has continuously changed as a cooked food while still reflecting the era as in the following four phases. In the first phase from 1766 to 1920, Chogyetang was served as a hot pot dish consisting of boiled chicken with spring onions, vinegar, soy sauce, oil, and egg. The second phase from 1930 to 1950 involved the removal of vinegar, an important seasoning. Instead, a wider variety of materials such as beef, sea cucumber, abalone, cucumber, and mushroom were added. Third, from the late-1950s to 1980s, there were significant changes both in the materials and recipe. Chogyetang was changed into a cold food for consumption in the summer in which sesame, a new material, was added to make soup. The prepared soup was then poured over the chicken and vegetables. Fourth, from the late-1980s to the present, sesame, the main ingredient added in the third phase, was removed. Instead, vinegar, mustard, and sugar were added in order to increase taste. Therefore, Chogyetang has been changed into an a la carte menu item in which vegetables and noodles are added to boiled chicken, and it has become a popular summer food consumed when eating-out.
Since its introduction in"Jeungbosallimgyeongje" in the mid-1700s, Chogyetang has continuously changed as a cooked food while still reflecting the era as in the following four phases. In the first phase from 1766 to 1920, Chogyetang was served as a hot pot dish consisting of boiled chicken with spring onions, vinegar, soy sauce, oil, and egg. The second phase from 1930 to 1950 involved the removal of vinegar, an important seasoning. Instead, a wider variety of materials such as beef, sea cucumber, abalone, cucumber, and mushroom were added. Third, from the late-1950s to 1980s, there were significant changes both in the materials and recipe. Chogyetang was changed into a cold food for consumption in the summer in which sesame, a new material, was added to make soup. The prepared soup was then poured over the chicken and vegetables. Fourth, from the late-1980s to the present, sesame, the main ingredient added in the third phase, was removed. Instead, vinegar, mustard, and sugar were added in order to increase taste. Therefore, Chogyetang has been changed into an a la carte menu item in which vegetables and noodles are added to boiled chicken, and it has become a popular summer food consumed when eating-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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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조선왕조 궁중연회식 의궤와 궁중 발기, 고문헌과 근대문헌, 대표일간지에 나타난 초계탕의 재료 및 조리방법을 고찰하여 명칭, 재료와 조리법을 살펴보면서 시대적인 변화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각 시대별 초계탕 조리법의 변화는 당시의 사회상과 식생활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되며 전통음식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화되고 재창조 되어가며 현세대에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지 고찰해보고자 시도되었다.
궁중의궤에서 사용된 초계탕 재료 [Table 4], 조리서에서 초계탕 재료 [Table 5], 초계탕의 조리법이 소개된 신문기사에 나타난 재료 [Table 6]의 조리법을 알아보고자 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조선왕조 궁중연회식 의궤와 궁중 발기, 고문헌과 근대문헌, 대표일간지에 나타난 초계탕의 재료 및 조리방법을 고찰하여 명칭, 재료와 조리법을 살펴보면서 시대적인 변화를 알아보고자 하였다. 각 시대별 초계탕 조리법의 변화는 당시의 사회상과 식생활문화 등을 엿볼 수 있는 자료가 되며 전통음식이 시대적 변화에 따라 변화되고 재창조 되어가며 현세대에 어떻게 전승되고 있는지 고찰해보고자 시도되었다.
여기에 후추, 천초, 회향, 물 1사발을 넣고 끓인다. 좋은 술을 좀 넣으면 더 좋다고 하여「증보산림경제」나 다른 조리서의 초계탕과는 다른 조리법으로 소개하였다. 「임원십육지」는 농사 및 가정생활 전반에 걸쳐 요긴한 일들을 16항목으로 나누고 각 항목마다 총론과 각론으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는 방대한 과학서이며 백과사전이다.
제안 방법
본 연구 궁중의궤, 궁중의 발기와 조리 관련 문헌, 대표일간지를 토대로 초계탕의 재료와 조리법에 대한 내용분석을 통하여 변천사와 조리법의 시대적 변천을 정리하였다. 자료분석에 사용된 문헌은 다음과 같다.
이처럼 신문에 소개된 깻국을 이용한 차가운 초계탕은 그 시대 변화한 현실성을 반영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후 북한에서 발행된 「북한전통요리」의 초계탕은 깻국은 빠지고 닭살과 녹두묵, 오이 등 다양한 재료를 식초와 겨자로 맛을 낸 찬 국물에 말아먹는 차가운 여름철 탕으로 소개하였다.
또한「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에서 책차례에는 초교탕으로 본문에서는 초계탕으로 표기하였다. 조자호 역시 「조선요리법」에 초교탕을 영계를 삶아 살을 바르고 오이는 볶고 전복과 해삼은 저미고 배와 달걀지단을 깻국물에 말아 먹는 음식으로 소개하여 초계탕과 동일한 음식으로 소개하였다. 이처럼 1930~1950년대 조리서의 초계탕과 초교탕은 명칭은 다르지만 같은 조리법으로 소개되었고 신지식인에 의해 음식의 조리법이 주도적으로 변화되었다고 생각된다.
자료분석에 사용된 문헌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궁중의 연회음식의 기록인 진찬의궤나 진연의궤로 현재 남아 있는 18건의 의궤(이 1986) 중 초계탕이 나온 7건을 고찰하였고 [Table 1]과 같다. 발기는 각종 의식에 소용되는 물품의 목록과 수량을 적거나 인명을 나열한 것으로 긔, 건긔로 쓰이며 한자로는 發記, 撥記, 件記 등으로 표현한다.
특이한 점은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에 소개된 초계탕의 조리법을 11년전 발간된 방신영의 다른책인 「조선 음식 만드는 법」에서 같은 재료와 같은 조리법이지만 초교탕으로 소개하였다. 또한「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에서 책차례에는 초교탕으로 본문에서는 초계탕으로 표기하였다.
대상 데이터
닭고기를 삶아 살을 바르고 해삼과 전복, 오이, 배 등을 먹기 좋게 잘라 깻국을 부어 먹는 것으로 설명한다. 1973년 5월 21일자 기사에서 초계탕의 재료로 화학조미료를 들고 있다. 화학조미료는 1940년대 아지노모토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미원이라는 조미료의 대명사를 만들어낸 글루타민산은 음식을 만들 때 많은 재료를 넣지 않아도, 수고와 고생을 하지 않아도, 적은 양으로 원하는 맛을 내는 대단한 식품으로 사용된다(Kim & Chung 2009).
이처럼 화학조미료가 사용된 초계탕은 같은 해인 7월 21일에 소개된 초계탕에 비하여 주재료는 영계, 배, 오이 뿐이고 깨의 양도 적어져 영계 한마리에 깨를 반컵 사용하였다. 1975년 6월 19일 조선일보 계절에 미각에 소개된 초계탕 역시 화학조미료가 사용되어 삶은 닭과 죽순, 오이 등의 재료를 사용하였다. 유계완의 「계절과 식탁(1976)」에서 여름철 음식으로 초계탕이 소개되었는데 닭을 삶아 닭살과 전복, 해삼, 달걀, 배, 표고 뿐 아니라 당근이나 양파 등도 볶아 준비하여 깻국을 부어 먹는 음식으로 소개하였다.
「진찬의궤」 (1848)와 「진연의궤」 (1902)에서 진계(묽은닭)이 사용되었으며 그 외의 의궤에서는 연계를 사용하였다. 「증보산림경제」,「정일당잡지」,「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조선요리제법」은 살찐 암탉을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1960년 6월 15~1975년 5월 5일 까지의 5차례의 초계탕 일간지 기사와「계절과 식탁」의 초계탕은 영계를 사용하였으며 이후의 조리서와 신문기사 소개된 초계탕에서는 중닭 또는 닭을 사용하여 주재료인 닭의 사용이 시대적으로 약간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초계탕의 주재료는 닭으로 시대별로 변화가 있었다. 「진찬의궤」 (1848)와 「진연의궤」 (1902)에서 진계(묽은닭)이 사용되었으며 그 외의 의궤에서는 연계를 사용하였다. 「증보산림경제」,「정일당잡지」,「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조선요리제법」은 살찐 암탉을 주재료로 사용하였다.
궁중 의례식 의궤에서 초계탕은 육류 및 난류 9종, 어패류 2종, 채소 및 견과류 7종, 양념 5종으로 총 23종의 식품재료가 쓰였다. 조리서에서 초계탕의 재료는 닭이 주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육류 및 난류 4종, 해삼과 전복 등의 어패류 2종, 채소와 과일 및 견과류 10종, 양념 14종, 기타 2종으로 총 32종의 식품재료가 쓰였다.
세 번째로 신문(경향신문, 매일경제, 동아일보, 조선일보)은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초계탕 기사를 분석하였고 목록은 [Table 3]과 같다. 신문은 시대를 반영하고 대중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매체이다.
닭의 조리법은「술 만드는 법」에서는 닭은 삶아 저미고 「정일당잡지」는 좋은 암탉을 물 두 양푼 부어 한 양푼 이 못하게 고은 후 다른 재료를 넣어 조리하여 대부분 푹 삶아서 사용하였다. 쇠고기는「진찬의궤」 (1901)부터 사용되었으며 쇠고기의 부위 중에서도 연한 부위인 우내심육(안심)이 사용되었다.「술 만드는 법」에서는 “쇠고기를 저며 알처럼 빚어 가루 묻혀 물에 삶아 쓴다”고 하였으며 1900년대 들어「간편조선요리제법」과「음식 만드는 법」에서는 쇠고기를 잘게 썰어 닭과 함께 끓인다고 하였고「북한전통요리」에서는 쇠고기를 다져 완자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화학조미료는 1940년대 아지노모토라는 이름으로 들어와 미원이라는 조미료의 대명사를 만들어낸 글루타민산은 음식을 만들 때 많은 재료를 넣지 않아도, 수고와 고생을 하지 않아도, 적은 양으로 원하는 맛을 내는 대단한 식품으로 사용된다(Kim & Chung 2009). 이처럼 화학조미료가 사용된 초계탕은 같은 해인 7월 21일에 소개된 초계탕에 비하여 주재료는 영계, 배, 오이 뿐이고 깨의 양도 적어져 영계 한마리에 깨를 반컵 사용하였다. 1975년 6월 19일 조선일보 계절에 미각에 소개된 초계탕 역시 화학조미료가 사용되어 삶은 닭과 죽순, 오이 등의 재료를 사용하였다.
궁중 의례식 의궤에서 초계탕은 육류 및 난류 9종, 어패류 2종, 채소 및 견과류 7종, 양념 5종으로 총 23종의 식품재료가 쓰였다. 조리서에서 초계탕의 재료는 닭이 주재료로 사용되었으며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육류 및 난류 4종, 해삼과 전복 등의 어패류 2종, 채소와 과일 및 견과류 10종, 양념 14종, 기타 2종으로 총 32종의 식품재료가 쓰였다. 의궤에 사용된 재료를 보면 「원행을묘정리의궤」는 닭(연계), 파, 후춧가루, 참기름, 녹말, 초 등 6종류이고 「진작의궤」(1828)는 닭(연계), 계란, 파, 잣, 초로 총 5종류로 비교적 적은 재료가 사용되었다.
이론/모형
“깨를 거피하여 깻국을 만들어 영계를 삶아 썰은 것에 해삼과 전복, 오이, 표고버섯 등의 재료를 손질한 것에 부어 섞어 먹는다”고 하여 깨가 초계탕에 중요한 재료로 사용되었다. 이후 주요 일간지 [Table 6]를 보면 1960년대부터 1987년까지 초계탕 조리법에 깻국을 이용하였다. 이후 초계탕 조리법이 소개된 경향일보(1995.
성능/효과
1. 초계탕의 명칭은 의궤에서는 1828년부터 1902년의 사이의 7건의 의궤와 발기 모두 초계탕으로 표기되었다. 고조리서에서는 「증보산림경제」에서는 총계탕방, 「주찬」에서는 초계법(楚鷄湯)이라고 하였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잡채가 처음 소개된 1600년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 속 잡채는 어떤 형태인가?
그러나 음식문화 역시 사회를 대변하며 변화한다. 현재 잡채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알려졌지만, 잡채가 처음 소개된 1600년대 조리서인 「음식디미방」의 잡채는 당면은 없고 다양한 채소에 된장으로 간을 한 걸죽한 밀가루즙이 뿌려진 음식이다. 이처럼 전통음식은 그 시대를 반영하며 변화되고 재창조된다.
과거에 초계탕은 언제 먹는 음식이었는가?
국은 갱(羹), 학(臛), 탕(湯)으로 표기되며(Lee 등 1992) 우리나라 상차림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다. 초계탕은 조선조 궁중에서 대규모의 행사나 경사스러운 일이 있을 때 잔치기록인 조선왕조 궁중연회식 의궤와 조선왕조 음식 발기(件記)에 여러 번 소개된 음식이며 1700년대 조리서인「증보산림경제」부터 현재까지 약 250여 년간 문헌에 꾸준히 소개되고 현재 빈번히 조리되는 전통음식이다. 초계탕이 처음 소개된 「증보산림경제」에는 “살찐 암탉과 파 흰부분을 솥에 넣고, 좋은 초와 청장과 참기름을 부은 뒤 센불과 약한 불로 푹 고아 닭뼈가 발라질 수 있을 정도까지 이른 뒤에 달걀 6~7개를 국물에 풀어 먹으면 그 맛이 매우 좋다”고 하였으나 국어사전(이 2004)에서는 “여름에 먹는 음식의 한가지, 닭의 고기를 뼈째 토막을 치고 잘게 썬 쇠고기와 함께 간을 맞추어 끓여서 식힌 담은 후 오이, 석이, 표고 등을 볶은 것과 달걀로 고명을 만들어 얹고 초를 쳐서 먹는 음식이다.
동아일보(1997) 기사에서 소개된 초계탕은?
그러나 동아일보(1997) 기사에서 초계탕은 전혀 다른 음식으로 소개된다. “통마늘 대파 통후추를 넣어 닭을 삶아 굵직하게 찢어놓고 육수는 가제에 걸러 차게 식힌다. 오이, 무, 당근, 배 등 야채는 5 cm 길이로 납작하게 썬다. 식힌 육수에 식초 겨자 소금 간장 약간을 넣고 소스를 만들어 닭살 야채 위에 뿌린다.” 이처럼 초계탕의 조리법은 「증보산림경제」에 처음 소개된 후 현재와는 다르지만 시대를 반영하면서 변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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