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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제1호 「명주 청학동 소금강」에 대한 지명 재고(再考)
Reconsideration on the Place Name of the Scenic Site No.1 「Myeongju Cheonghak-dong Sogumgang」 원문보기

韓國傳統造景學會誌 = 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Traditional Landscape Architecture, v.32 no.4, 2014년, pp.1 - 13  

노재현 (우석대학교 조경도시디자인학과) ,  김현 (단국대학교 녹지조경학과)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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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명승 제1호 "명주 청학동 소금강"의 지명 유래와 변천과정 등에 대한 오류 검토의 일환으로, 관련 고지도, 지리지, 유산기 등의 고문헌 그리고 바위글씨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확인된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지리지 분석 결과 '소금강'이란 지명은 17세기 중반의 "여지도서"에서 처음 등장한 이래, 20세기 초반 발간된 "증수임영지"에서 재현되고 있으나 고지도에서는 청학동 청학산 청학사 등의 지명 이외에 소금강이란 지명은 발견되지 않는다. '청학산'이란 지명이 최초로 발견되는 문헌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지만, 지명으로서의 최초 기록은 율곡의 "유청학산기"로 이 기록에는 소금강'이란 지명은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청학산'이란 지명만 확인될 뿐이다. '이후 이순인의 "고담일고", 허균의 송별기, 허목의 "청학동구룡연기", 윤순거의 "파동일기" 그리고 이원조의 서간(書簡) 등을 볼 때 약 3세기 이상 이곳은 '청학산' 또는 '청학동'이란 지명으로 불려온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소금강'이란 지명이 확인되는 최초 기록은 18세기 중반 작(作)인 강재항의 시이다. 또한 금강사 앞 이능암(二能巖)에 새겨진 '소금강(小金剛)'이란 바위글씨의 주체는 크기, 서법, 전체적인 배치구도와 마모 정도 그리고 지리지의 기록 등을 고려할 때 1870년 또는 1930년에서야 동일한 주체인 이능계원(二能契員)에 의해 새겨진 것으로 보임에 따라 이곳 지명 유래의 탄탄한 근거였던 '소금강(小金剛)' 바위글씨를 율곡의 글씨로 단정할 만한 근거는 없다. 이상의 결과를 종합할 때, 율곡의 "유청학산기" 이후 이곳은 줄곧 '청학산 청학동'으로 불려왔으며 '소금강'이란 지명은 18세기 중반 이후 "입재선생유고" 중 "오언고시조"와 "여지도서"를 시작으로 "동유일기" 등 유람기 등에서도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후기 소금강이란 이칭(異稱)이 일반화되면서 혼용되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요컨대 기존 명승 제1호 지명에 큰 오류가 있다고 보기는 곤란하지만 율곡의 유람과 관련된 명소로서의 장소성을 부각시키는 측면에서는 '청학동 소금강'보다는 '청학산 청학동'이란 지명이 보다 합당한 지명인 것으로 판단한다. 아울러 본 연구과정에서 확인된 1664년 윤선거 일행이 현 식당암에 각자한 '청학산(靑鶴山)', '경담(鏡潭)'의 지명 바위글씨는 고전적 유람 텍스트로서의 "유청학산기"의 영향력을 살필 수 있는 증표이자 기호학파 선비들의 율곡에 대한 숭모와 추념의식이 고스란히 담긴 표식으로 보존이 요망된다.

Abstract AI-Helper 아이콘AI-Helper

As part of reconsideration on naming of the scenic site No.1 "Myeongju Cheonghak-dong Sogumgang," this study attempts to identify whether there is any mistake with reference to place naming of Korea's No.1 scenic site and if so, to correct the problem by examining the origin of the name and its tran...

주제어

AI 본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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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증수임영지(增修臨瀛誌)』 『여지도서(輿地圖書)』와 『대동지지(大東地志)』 「강릉조」등의 지리지를 통해 연구범위내 관련 지명을 고찰하였다. 또한 명승 지정 당시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1970년 명승 지정 당시 문화재위원회 제3분과 회의록을 열람 검토하였다. 이와 함께 서울대학교규장각 한국학연구원(http://e-kyujanggak.
  • 명승 제1호 “명주 청학동 소금강” 지명에 대한 이해와 타당성 재고의 일환으로 지리지, 유산기 등의 고문헌와 고지도 그리고 주변 바위글씨 등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이곳 명승 1호의 명칭과 관련 지명의 유래와 변천 과정 및 그 오류 등을 살펴볼 목적으로 시도된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이에 본 연구는 ‘청학동 소금강’ 관련 유산기 등의 고문헌과 고지도 그리고 주변 바위글씨(石刻)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이곳 지명의 유래와 변천과정을 살핌으로써 지명의 유래와 관련 오류 등을 고찰하는 한편 옛 선인들과 현재의 지명 및 공간인식 특성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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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금강산은 무엇으로 부르는가? 17세기 중반 제작된 『여지도서』 「강릉조」에서는 “청학동 오대산 북쪽 기슭에서 힘차게 뻗어나와 바닷가에 따로 한 지역을 이룬다. 세상에서는 작은 금강산이란 뜻으로 소금강이라 부른다. 골짜기 안에는 구룡연, 학소암, 백마봉, 식당암이 있고 골짜기 어귀에 청학암이 있다(Kim, translation and annotation, 2009: 48).
율곡이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비견하여 이곳을 소금강이라 했다는 말은 진실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 이유는? 율곡은 도가(道家)에 관용적이었고 일찍이 19세에 도교와 불교사상에 심취한 바 있으며, 또한 금강산에 들어가 1년간 공부한 적도 있다(Kim, 1997: 27). 따라서 율곡이 금강산의 아름다움과 비견하여 이곳을 소금강이라 했다는 말은 진실에 근거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다.
지리지는 무엇으로 불리는가? 지지(地志) 또는 지지(地誌)로 불리는 지리지(地理志)는 일정 지역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기록으로. 특정 시대 지역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Wonju city and Korea national university of edu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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