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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턴의 원자설, 즉 원자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다는 설과 게이 뤼삭의 기체 반응 법칙을 동시에 모두 성립시키는데는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이 필요하다.
1811년 아보가드로는 “같은 부피 속에 들어있는 기체의 분자 수는 기체의 종류에 관계없이 모두 같다”는 분자설을 발표했다.
게이 뤼삭이 기체 반응의 법칙을 증명하기 위해 이용한 산화 질소 반응을 돌턴의 원자설과 결합시켜 합리적으로 이 두 가설을 성립시키려면 필연적으로 아보가드로의 법칙에 도달하게 된다.
이 아보가드로의 법칙이 곧 학계에서 채택이 되었던들, 그 후에 원자량의 혼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법칙은 1858년에 그의 제자인 칸니자로에 의해 인정될 때까지 약 50여 년을 암흑 속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파묻혀 있었고, 자신의 학설이 세상에서 인정되어 빛을 보기 몇 해 전에 아보가드로는 80세의 긴 일생의 막을 내렸다.
당시에 이 법칙은 아보가드로의 가설이라고 불렸다. 이 가설은 현대 화학의 이론 체계를 세우는 근본을 확고히 하였다고 할만큼 중요한 것이었고 돌턴의 원자설의 결함을 충분히 설명해 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였던 것이다.
1860년 칼스루에에서 열린 만국 화학 회의에서 화학 기호의 통일 문제를 협의하였을 때, 아보가드로의 제자인 칸니자로가 그의 업적을 소개하여 비로소 아보가드로의 위대함이 인정받았다. 그의 가설은 오늘날 아보가드로의 ‘법칙’이라 바꾸어 일컬어지고 있다.
저자 | 사이언스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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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 사이언스타임즈 |
출처 | https://www.sciencetimes.co.kr/?p=12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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