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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플러 앞섰던 조선 천문학자 김담

2015-09-25

조선 초기 천문학자이자 우리나라 천문학의 수준을 끌어올린 인물 김담(金淡, 1416~1464년)이 재조명되고 있다. 고등과학원은 24일 한국천문학회 부설 소남천문학사연구소 및 한국과학사학회와 함께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김담 탄생 600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김담은 19세의 나이로 집현전 학사가 된 ‘천재 과학자’로 불린다. 그는 당시의 국립 천문대 격인 간의대(簡儀臺)에서 해가 뜨고 지는 시간을 쟀고, 이순지와 함께 조선의 독자적 역법(曆法)인 ‘칠정산(七政算)’을 만들었다. 또 태양통궤, 태음통궤 등 많은 천문역서를 편찬해 세종대왕의 천문역법 사업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김담은 동 시대에 활동했던 이순지와 달리 업적에 비해 빛을 발하지 못했다. 이용복 소남천문학사연구소장은 “당시 인기가 없는 천문학을 공부하겠다고 마음먹을 만큼 시대를 앞서는 마인드를 갖췄지만 후세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며 “학술회의를 기점으로 김담 선생이 새롭게 조명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행사의 취지를 설명했다.

조선 최초의 역법서 ‘칠정산’ 출판

이날 학술회의에서는 김담과 이순지가 1444년에 출간한 ‘칠정산’에 대한 강연이 총 두 차례에 거쳐 진행됐다. 천문연구원의 전준혁 연구원은 ‘칠정산외편에 수록된 별 목록의 연구’를 소개했다.
칠정산외편은 중국의 전통 천문학과 이슬람의 회회 천문학의 방법에 따라 제작된 조선 최초의 역법서로 꼽힌다. 당시 명나라에서 30개들의 별 목록을 황경좌표로 기록한 ‘명역 천문서’가 있었지만 칠정산외편의 별 목록에는 277개의 별들이 황경과 황위 좌표, 등급이 기록됐다.
전 연구원은 “칠정산외편이 명역 천문서보다 더 풍부한 자료가 기록됨으로써 동아시아에 전래된 이슬람 문화권의 역법체계와 관련한 실체를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은희 연세대학교 선임연구원은 ‘이순지, 김담과 칠정산’을 주제로 강연했다. 칠정산외편은 내편의 서문에 중국의 역관들에게 오류가 있음을 알게 돼 이를 다시 고쳐서 새롭게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이 오류는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계산의 기점인 역원이 틀렸을 때 다른 모든 계산 값들도 틀려지게 되는 ‘회회력법’의 역원(曆元)과 관계된 중대한 오류였다.
이 상황에서 김담과 이순지가 일월오성(一月五星)과 사여의 계도(計都)까지 관련된 수치의 보정을 통해 역원과 관계된 문제를 해결했다. 그 둘은 태양과 달의 위치를 계산하는 기점인 계도의 보정 값을 통해 한양에서의 일월식 계산하고, 일월식의 추보까지 정확하게 진행했다. 이 연구원은 “결국 조선의 역법이 칠정산으로 태어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이순지와 김담이 조선에 있었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김담, 혜성 관측의 새로운 역사를 쓰다

세종 31년(1449-1450)에 나타난 혜성, 김담과 이순지를 비롯한 조선의 서운관이 향후 혜성관측에 미친 영향의 분석에는 박창범 고등과학원 교수가 나섰다.
1449년 12월 26일과 1450년 1월 4일 두 차례에 거쳐 등장한 혜성을 두고 세종은 김담과 이순지에게 이를 관측하도록 명령했다. 당시 관측된 혜성은 이태리의 토스카넬리가 최초로 현대적인 정밀한 관측 기록을 남겨서 과학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혜성이었다. 조선은 이 혜성을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관측했으며 혜성의 나타난 위치와 방위, 꼬리의 길이를 측정해 보고했다.
이 혜성이 나타난 이후로 조선의 혜성 관측은 큰 변화를 보였다. 박 교수는 “세종 3년의 혜성은 조선시대의 혜성 관측사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됐을 정도다”고 설명했다.
두드러진 변화로는 각 혜성에 대한 관측기록 횟수가 크게 증가했고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집요한 관측이 수행됐다. 실제로 직후의 혜성은 세조 2년에 관측된 헬리 혜성이었는데 11회 관측·기록됐으며, 세조 3년의 혜성은 16회 기록됐다. 세조 4년과 성종 2년의 혜성은 무려 38회나 관측이 기록됐다. 뿐만 아니라 기록의 내용에 있어서도 혜성의 궤적을 정확히 재구성할 수 있을 정도로 주변 별자리에 대한 상대적 위치가 자세히 기록됐다.

케플러와 조선의 1604년 초신성 관측 비교

이날 학회의 마지막 강연은 김담의 후손인 김제완 서울대 명예교수가 맡아 진행했다. ‘케플러와 조선의 1604년 초신성 관측 비교’를 주제로 강연한 김 교수는 “광도곡선을 분석함으로써 1604년 왕조실록에 기록이 지금까지 가장 상세한 초신성의 자료임을 알 수 있었다”고 극찬했다.
케플러의 기록만으로는 TypeⅠ인지 TypeⅡ인지 구별하지 못할 만큼 자료가 충분치 않지만 왕조실록을 통해서는 1604년 초신성의 유형이 TypeⅠ인 것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김담 선생의 전통을 이은 조선조의 초신성과학이 세계 제일이었다“며 ”왕조의 기록이 과학적으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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