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고는 매우 복잡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는 선사시대 토기 중에서도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 출토되고 있는 무문굽다리토기에 대한 연구이다. 특수한 기형의 이 토기는 보통 의례용으로서 인식되어져 왔으며, 그 명칭 또한 무분별하게 사용되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무문굽다리토기는 분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충분히 객관적이고 적절한 정립이 필요하다. 따라서 형식분류를 통해 지역적 분포 및 특징, 그리고 편년을 시도하여 무문굽다리토기의 변화상을 파악하고 그 발달과정을 상정하였다. 또한 발달과정상에 나타나는 이들 토기의 성격을 ...
본 고는 매우 복잡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는 선사시대 토기 중에서도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 출토되고 있는 무문굽다리토기에 대한 연구이다. 특수한 기형의 이 토기는 보통 의례용으로서 인식되어져 왔으며, 그 명칭 또한 무분별하게 사용되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무문굽다리토기는 분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충분히 객관적이고 적절한 정립이 필요하다. 따라서 형식분류를 통해 지역적 분포 및 특징, 그리고 편년을 시도하여 무문굽다리토기의 변화상을 파악하고 그 발달과정을 상정하였다. 또한 발달과정상에 나타나는 이들 토기의 성격을 추론하였다.
무문굽다리토기는 저부와 신부의 크기에 따라 대부토기와 대각토기로의 세부기종이 설정되었고 세부기종별 속성분석을 통하여 6형식의 형식분류가 이루어졌다. 각 형식의 지역적 분포 및 특징으로 알아본 편년과 형식간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북한지역에서는 모두 주거지에서만 출토되며, 1형식(B.C. 3000년)→5(B.C. 8~5세기)․6형식으로의 변화가 관찰된다. 공반유물은 동북지방의 경우 공렬토기, 서북지방은 각형토기, 그리고 원산만 일대는 위의 두 지역 출토유물이 공반되고 있다. 강원영동지역에서 출토된 토기는 2형식(B.C. 15~10세기)으로 주거지에서 출토되며, 공렬토기와 각형토기의 요소가 각각 독립, 혹은 복합되어 나타난다. 경기중부지역의 경우는 한강유역에 위치한 주거지 및 의례관련유구에서 출토되었다. 공렬+각형토기 요소가 복합시문되어 출토되는 주거지유적에서는 3형식(B.C. 8~5세기)의 토기가 출토되고 있으며, 점토대토기가 출토되는 의례관련유구에서는 5형식(B.C. 3세기 이전)이 출토된다. 충청서해안지역에서는 무문토기시대 주거지 및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무문토기시대 주거지는 다시 공렬토기로 대표되는 전기와 점토대토기를 출토하는 후기의 유적으로 구분되며, 각각 4형식(B.C. 9~7세기)과 5형식(B.C. 3세기)을 대표로 하는 토기가 출토되었다.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에서는 6형식(B.C. 3~2세기)의 토기가 출토된다. 마지막으로 호남 및 영남지역에서는 출토유구상에 있어 생활, 분묘, 생산, 폐기유구 등 다양한 유구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6형식(B.C. 3~1세기)의 무문굽다리토기가 급증하게 된다. 유물조합상도 원형 및 삼각형점토대토기를 대표로 하는 초기철기시대의 유물이 표지적이다.
결론적으로 1형식은 B.C. 3000년(북한 동북지역), 2형식은 B.C. 15~10세기(강원영동지역), 3형식은 B.C. 8~5세기(경기중부지역), 4형식은 B.C. 9~7세기(충청서해안지역), 5형식은 B.C. 8~5세기(북한 동북지역)와 B.C. 3세기 이전(경기중부․충청서해안지역), 6형식은 B.C. 3~1세기(경기중부․충청서해안․호남․영남지역)로 형식간 편년설정이 가능하다.
이상을 종합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발달과정을 상정하였다.
무문토기시대 전기 주거지유적에서 공렬 및 각형토기와 공반되는 1․2․3․4형식의 무문굽다리토기(북한→강원영동→경기중부․충청서해안지역)는 점토대토기문화가 도래하면서 생활, 분묘, 생산, 폐기, 그리고 의례관련유구에서 공반되는 5․6형식의 무문굽다리토기(경기중부․충청서해안→호남․영남지역)로의 변화를 보이면서 발전한다.
위와 같이 점토대토기문화가 도래하면서 무문굽다리토기의 형식도 변화․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상의 변화는 곧 성격의 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공렬 및 각형토기를 수반하는 무문굽다리토기는 출토맥락, 형식조합, 제작기술 등의 관점에서 일상 생활용기(1․4형식)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한편, 무문굽다리토기가 출토된 흔암리 및 조양동주거지는 타 주거지와의 차별성이 보이는 점을 들어 의례용(2․3형식)으로의 상정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반면 점토대토기와 조합을 이루는 토기(5․6형식)는 의례관련유구와 분묘유구에서 기형상의 변화를 보이며 다량 출토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기원이나 소원과 관련된 의례용기, 그리고 부장용으로의 기능분화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팔달동유적의 유물조합상과 유구배치, 그리고 규모를 비교하여 무문굽다리토기가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본 고는 매우 복잡 다양하게 출토되고 있는 선사시대 토기 중에서도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초기철기시대까지 출토되고 있는 무문굽다리토기에 대한 연구이다. 특수한 기형의 이 토기는 보통 의례용으로서 인식되어져 왔으며, 그 명칭 또한 무분별하게 사용되어져 왔다. 뿐만 아니라 무문굽다리토기는 분류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충분히 객관적이고 적절한 정립이 필요하다. 따라서 형식분류를 통해 지역적 분포 및 특징, 그리고 편년을 시도하여 무문굽다리토기의 변화상을 파악하고 그 발달과정을 상정하였다. 또한 발달과정상에 나타나는 이들 토기의 성격을 추론하였다.
무문굽다리토기는 저부와 신부의 크기에 따라 대부토기와 대각토기로의 세부기종이 설정되었고 세부기종별 속성분석을 통하여 6형식의 형식분류가 이루어졌다. 각 형식의 지역적 분포 및 특징으로 알아본 편년과 형식간의 관계는 다음과 같다.
북한지역에서는 모두 주거지에서만 출토되며, 1형식(B.C. 3000년)→5(B.C. 8~5세기)․6형식으로의 변화가 관찰된다. 공반유물은 동북지방의 경우 공렬토기, 서북지방은 각형토기, 그리고 원산만 일대는 위의 두 지역 출토유물이 공반되고 있다. 강원영동지역에서 출토된 토기는 2형식(B.C. 15~10세기)으로 주거지에서 출토되며, 공렬토기와 각형토기의 요소가 각각 독립, 혹은 복합되어 나타난다. 경기중부지역의 경우는 한강유역에 위치한 주거지 및 의례관련유구에서 출토되었다. 공렬+각형토기 요소가 복합시문되어 출토되는 주거지유적에서는 3형식(B.C. 8~5세기)의 토기가 출토되고 있으며, 점토대토기가 출토되는 의례관련유구에서는 5형식(B.C. 3세기 이전)이 출토된다. 충청서해안지역에서는 무문토기시대 주거지 및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에서 출토되었다. 무문토기시대 주거지는 다시 공렬토기로 대표되는 전기와 점토대토기를 출토하는 후기의 유적으로 구분되며, 각각 4형식(B.C. 9~7세기)과 5형식(B.C. 3세기)을 대표로 하는 토기가 출토되었다. 초기철기시대 분묘유적에서는 6형식(B.C. 3~2세기)의 토기가 출토된다. 마지막으로 호남 및 영남지역에서는 출토유구상에 있어 생활, 분묘, 생산, 폐기유구 등 다양한 유구에서 출토되고 있으며, 6형식(B.C. 3~1세기)의 무문굽다리토기가 급증하게 된다. 유물조합상도 원형 및 삼각형점토대토기를 대표로 하는 초기철기시대의 유물이 표지적이다.
결론적으로 1형식은 B.C. 3000년(북한 동북지역), 2형식은 B.C. 15~10세기(강원영동지역), 3형식은 B.C. 8~5세기(경기중부지역), 4형식은 B.C. 9~7세기(충청서해안지역), 5형식은 B.C. 8~5세기(북한 동북지역)와 B.C. 3세기 이전(경기중부․충청서해안지역), 6형식은 B.C. 3~1세기(경기중부․충청서해안․호남․영남지역)로 형식간 편년설정이 가능하다.
이상을 종합해 필자는 다음과 같은 발달과정을 상정하였다.
무문토기시대 전기 주거지유적에서 공렬 및 각형토기와 공반되는 1․2․3․4형식의 무문굽다리토기(북한→강원영동→경기중부․충청서해안지역)는 점토대토기문화가 도래하면서 생활, 분묘, 생산, 폐기, 그리고 의례관련유구에서 공반되는 5․6형식의 무문굽다리토기(경기중부․충청서해안→호남․영남지역)로의 변화를 보이면서 발전한다.
위와 같이 점토대토기문화가 도래하면서 무문굽다리토기의 형식도 변화․발전되고 있다. 이러한 형식상의 변화는 곧 성격의 분화를 의미하는 것으로 공렬 및 각형토기를 수반하는 무문굽다리토기는 출토맥락, 형식조합, 제작기술 등의 관점에서 일상 생활용기(1․4형식)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았다. 한편, 무문굽다리토기가 출토된 흔암리 및 조양동주거지는 타 주거지와의 차별성이 보이는 점을 들어 의례용(2․3형식)으로의 상정 가능성도 제시하였다. 반면 점토대토기와 조합을 이루는 토기(5․6형식)는 의례관련유구와 분묘유구에서 기형상의 변화를 보이며 다량 출토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기원이나 소원과 관련된 의례용기, 그리고 부장용으로의 기능분화를 보이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또한 팔달동유적의 유물조합상과 유구배치, 그리고 규모를 비교하여 무문굽다리토기가 신분이나 계급의 차이를 반영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This treatise concerns high-footed pottery which was made from neolithic age to bronze age. These extra-ordinary shape potteries were considered as of ceremonial use and their name was given indiscreetly, thus objective and proper classification was needed. Consequently, through typological classifi...
This treatise concerns high-footed pottery which was made from neolithic age to bronze age. These extra-ordinary shape potteries were considered as of ceremonial use and their name was given indiscreetly, thus objective and proper classification was needed. Consequently, through typological classification we can apprehend regional distribution , characteristics, and chronology of these pottery, and based on these, we can deduce their changes, course of development, and their cultural characteristics.
These high-footed potteries can be divided into two classes, and these two classes can also be divided into 6 types by attribute units analysis. The chronological order of these 6 types by regional distribution and characteristics analysis is as follows.
In North Korea, all these potteries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its types changed from type I(3000 B.C)to type V(8th century B.C.~5th century B.C.), VI. In north-east area, rim-perforated potteries were excavated simultaneously with these potteries, in north-west area, top-shaped potteries were excavated simultaneously, and in Wonsan gulf area, those two types of pottery were excavated simultaneously with these vessels. In Gangwon-Youngdong region, type II of these potteries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of 15th century B.C.~10th century B.C. In Mid-gyeonggi area, these potteries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and ceremonial sites on the Han gang river basin. Type III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of 8th century B.C.~5th century B.C. with pottery which includes characteristics of both rim-perforated pottery and top-shaped pottery, type V, were excavated from ceremonial sites of before 3rd century B.C. where potteries with clay-stripes were excavated simultaneously. In west coast area of chungcheong region, these poeeries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of plain pottery period and tomb sites of early iron age. The pit-house sites of plain pottery period divide into two classes, the first one is of early period(9th~7th century B.C.) from which type IV and rim-perforated potteries were excavated, and the second is of late period(3rd century B.C.) from which type V and potteries with clay-stripes were excavated. Type VI were excavated from tomb sites of early iron age(3rd~2th century B.C.). Finally, in Honam and Youngnam region, these pottries of type VI suddenly increased, and were excavated from various sites of 3rd century B.C.~1st century. such as settlements, tombs, production, shell mounds. Typical artifacts of this region are potteries with triangular and circular section clay stripes of early iron age.
Consequently, chronological order and regional distribution of these 6 types can be summed up as follows ;
type I : about 3000 B.C., north-eastern region of North Korea
type II : about 15th~10th century B.C., Gangwon-youngdong region
type III : about 8th~5th century B.C., mid-Gyeonggi region
type IV : about 9th~7th century B.C., west coast of Chungcheong region
type V : about 8th~5th century B.C., north-eastern region of North Korea and before about 3th century B.C., mid-Geyonggi region, west coast of Chungcheong region
type VI : abou 3rd~1st century B.C., (mid-Geyonggi region, west coast of Chungcheong region, Honam and Youngnam region)
Based on these, we can assume the process of development as follows.
Type I․II․III․IV of these pottries, which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of early plain pottery period(north korea, gangwon-youngdong, mid-gyeonggi, west coast of chungcheong region) with rim-perforated and top-shaped potteries were developed into type V and VI of these pottries(mid-gyeonggi, west coast of chungcheong, Honam, Youngnam region) which were excavated from settlement, tomb, production, shell mound sites. And these changes were in accordance with the introduction of pottery with clay-stripes culture.
As we have seen above, introduction of pottery with clay-stripes culture caused change and development of high-footed pottery types. These changes indicate differentiation of use, and based on manufacturing technique, assemblage, context, it appears that high-footed pottery excavated with rim-perforated and top-shaped potteries were for daily use(type Ⅰ and Ⅳ). On the other hand, type II and III of these pottries could have been for ceremonial use because the pit-house sites(Heunam-ri, Joyang-dong) which these were excavated from are distinguished from the others. Type V and VI associated with potteries with clay-stripes are abundantly excavated from ceremonial and tomb sites, and their shape varies. Based on these, it can be supposed that these pottries become functionally differentiated into ceremonial vessels and funerary objects. Also, through comparative study of assemblage, disposition of archaeological features, and scale of Paldal-dong site, it can be deduced that these pottries reflect difference of social status and class.
This treatise concerns high-footed pottery which was made from neolithic age to bronze age. These extra-ordinary shape potteries were considered as of ceremonial use and their name was given indiscreetly, thus objective and proper classification was needed. Consequently, through typological classification we can apprehend regional distribution , characteristics, and chronology of these pottery, and based on these, we can deduce their changes, course of development, and their cultural characteristics.
These high-footed potteries can be divided into two classes, and these two classes can also be divided into 6 types by attribute units analysis. The chronological order of these 6 types by regional distribution and characteristics analysis is as follows.
In North Korea, all these potteries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its types changed from type I(3000 B.C)to type V(8th century B.C.~5th century B.C.), VI. In north-east area, rim-perforated potteries were excavated simultaneously with these potteries, in north-west area, top-shaped potteries were excavated simultaneously, and in Wonsan gulf area, those two types of pottery were excavated simultaneously with these vessels. In Gangwon-Youngdong region, type II of these potteries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of 15th century B.C.~10th century B.C. In Mid-gyeonggi area, these potteries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and ceremonial sites on the Han gang river basin. Type III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of 8th century B.C.~5th century B.C. with pottery which includes characteristics of both rim-perforated pottery and top-shaped pottery, type V, were excavated from ceremonial sites of before 3rd century B.C. where potteries with clay-stripes were excavated simultaneously. In west coast area of chungcheong region, these poeeries were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of plain pottery period and tomb sites of early iron age. The pit-house sites of plain pottery period divide into two classes, the first one is of early period(9th~7th century B.C.) from which type IV and rim-perforated potteries were excavated, and the second is of late period(3rd century B.C.) from which type V and potteries with clay-stripes were excavated. Type VI were excavated from tomb sites of early iron age(3rd~2th century B.C.). Finally, in Honam and Youngnam region, these pottries of type VI suddenly increased, and were excavated from various sites of 3rd century B.C.~1st century. such as settlements, tombs, production, shell mounds. Typical artifacts of this region are potteries with triangular and circular section clay stripes of early iron age.
Consequently, chronological order and regional distribution of these 6 types can be summed up as follows ;
type I : about 3000 B.C., north-eastern region of North Korea
type II : about 15th~10th century B.C., Gangwon-youngdong region
type III : about 8th~5th century B.C., mid-Gyeonggi region
type IV : about 9th~7th century B.C., west coast of Chungcheong region
type V : about 8th~5th century B.C., north-eastern region of North Korea and before about 3th century B.C., mid-Geyonggi region, west coast of Chungcheong region
type VI : abou 3rd~1st century B.C., (mid-Geyonggi region, west coast of Chungcheong region, Honam and Youngnam region)
Based on these, we can assume the process of development as follows.
Type I․II․III․IV of these pottries, which excavated from pit-house sites of early plain pottery period(north korea, gangwon-youngdong, mid-gyeonggi, west coast of chungcheong region) with rim-perforated and top-shaped potteries were developed into type V and VI of these pottries(mid-gyeonggi, west coast of chungcheong, Honam, Youngnam region) which were excavated from settlement, tomb, production, shell mound sites. And these changes were in accordance with the introduction of pottery with clay-stripes culture.
As we have seen above, introduction of pottery with clay-stripes culture caused change and development of high-footed pottery types. These changes indicate differentiation of use, and based on manufacturing technique, assemblage, context, it appears that high-footed pottery excavated with rim-perforated and top-shaped potteries were for daily use(type Ⅰ and Ⅳ). On the other hand, type II and III of these pottries could have been for ceremonial use because the pit-house sites(Heunam-ri, Joyang-dong) which these were excavated from are distinguished from the others. Type V and VI associated with potteries with clay-stripes are abundantly excavated from ceremonial and tomb sites, and their shape varies. Based on these, it can be supposed that these pottries become functionally differentiated into ceremonial vessels and funerary objects. Also, through comparative study of assemblage, disposition of archaeological features, and scale of Paldal-dong site, it can be deduced that these pottries reflect difference of social status and cla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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