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에 대한 구조적 수사학적 이해를 시도해 봤다. 이 부분은 흔히 알고 있듯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역사적인 편지들의 수집물 또는 편지 형식의 글)' 보다는, 그 당시 로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널리 선포되던 '황제의 칙령(the royal or imperial edict)'에 가까운 구조와 장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하였다. 그러한 형식에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구원과 심판의 교훈(parenetic salvation-judgment oracle)을 전하는 예언적 연설(prophetic form speech)'을 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계시록 저자는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와 심판자는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신학적 주장을 강조하였다.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은 저자의 수사학적 작업이 확연히 드러나는 일정한 구조를 따라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칙령이 갖는 정형구('τα´δε λε´γει')와 이것에 연결되는 분사구문[그리스도론적 진술(the Christological Predications)], 그리고 "나는 알고있다"(οι˘δα: 2:2,9,13 등)로 시작하는 각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단, 구원과 심판의 교훈,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2:7a,11a,17a,29 등)라는 선포의 정형구와 "이기는 사람에게는 ~하겠다"라는 종말론적 약속(the escatological promise)이 일정하게 반복된다. οι˘δα 절의 내용과 이어지는 구원과 심판의 교훈에서 우리는 각 교회의 상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얻게 된다. 저자는 분명히 각 도시의 특징과 교회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진술에서 그러한 지리적, 종교문화적, 사회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역사실증 연구의 자료로 보고, 그것을 토대로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도교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것은 의도했던 결과를 얻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계시록 저자의 문학적, 수사학적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성서를 수사학적 분석 방법으로 읽을 때 관심을 갖는 '수사학적 상황(Rhetorical Situation)'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저자와 청중(독자) 사이에 발생하는 논쟁적인 이슈에 관한 것이다. 또 그러한 수사학적 상황에서 저자가 어떠한 설득 작업(Persuasive Power)을 펼쳤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에서 저자 요한은 자신이 경험한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에 대한 환상의 빛으로 일곱 교회들의 상황을 조명한다.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발달한 헬레니즘 도시문화, 그리고 황제 숭배를 비롯한 각종 이방 종교의 활성화라는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정치 종교적으로 약자(minority)의 위치에 처해 있었다. 96-117년 사이의 로마 황제 트라얀(Trajan)에게 소아시아 북쪽에 있는 비시니아(Bithynia)의 총독 플리니(Pliny)가 보냈던 편지에서, 1세기 말-2세기 초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볼 수 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이었기에 제 앞에 송치된 사람들의 경우에 제가 다룬 과정은 이러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인지를 묻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저는 두 세 번 그 질문을 반복하고, 극형에 처한다고 위협합니다.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하면 사형을 언도합니다. 그들이 고백하고 있던 것이 어떤 종류의 범죄일 수 있든간에 그들의 끈덕짐과 유연성 없는 완고함은 분명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그리스도인이었거나 또는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음을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은 석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 명령에 따라 신들을 불렀고, 여러 신들의 형상에도 향과 포도주로 경배했기 때문입니다. 더 특별한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저주했는데, 그와같은 일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결코 행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저는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하나의 미신 이외의 것은 찾아낼 수 없었기에, 저의 심문을 연기하고 폐하의 자문을 구하고하 하는 것입니다...연령이나 계층, 그리고 남녀 구별 없이 많은 사람이 고소를 당해 위협에 처해 있으며, 이것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로마 총독의 눈으로 볼 때, 황제 숭배를 거부하며 하나의 신만을 신앙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끈덕짐'과 '완고함' 자체가 로마 세계의 다신적 이데올로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제거리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신학적 주장(예를 들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에 대한 신앙과 종말론적 메시야 고백)은 미신처럼 여겨졌고, 시장에 나온 우상 제물을 사지 않는 등 헬라 도시 문화의 상식적인 모습과 다르게 사는 그들의 모습은 어리석게 보여졌을 것이다. 계시록의 사회적 자리(Social ...
지금까지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에 대한 구조적 수사학적 이해를 시도해 봤다. 이 부분은 흔히 알고 있듯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역사적인 편지들의 수집물 또는 편지 형식의 글)' 보다는, 그 당시 로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널리 선포되던 '황제의 칙령(the royal or imperial edict)'에 가까운 구조와 장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하였다. 그러한 형식에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구원과 심판의 교훈(parenetic salvation-judgment oracle)을 전하는 예언적 연설(prophetic form speech)'을 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계시록 저자는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와 심판자는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신학적 주장을 강조하였다.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은 저자의 수사학적 작업이 확연히 드러나는 일정한 구조를 따라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칙령이 갖는 정형구('τα´δε λε´γει')와 이것에 연결되는 분사구문[그리스도론적 진술(the Christological Predications)], 그리고 "나는 알고있다"(οι˘δα: 2:2,9,13 등)로 시작하는 각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단, 구원과 심판의 교훈,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2:7a,11a,17a,29 등)라는 선포의 정형구와 "이기는 사람에게는 ~하겠다"라는 종말론적 약속(the escatological promise)이 일정하게 반복된다. οι˘δα 절의 내용과 이어지는 구원과 심판의 교훈에서 우리는 각 교회의 상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얻게 된다. 저자는 분명히 각 도시의 특징과 교회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진술에서 그러한 지리적, 종교문화적, 사회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역사실증 연구의 자료로 보고, 그것을 토대로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도교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것은 의도했던 결과를 얻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계시록 저자의 문학적, 수사학적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성서를 수사학적 분석 방법으로 읽을 때 관심을 갖는 '수사학적 상황(Rhetorical Situation)'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저자와 청중(독자) 사이에 발생하는 논쟁적인 이슈에 관한 것이다. 또 그러한 수사학적 상황에서 저자가 어떠한 설득 작업(Persuasive Power)을 펼쳤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에서 저자 요한은 자신이 경험한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에 대한 환상의 빛으로 일곱 교회들의 상황을 조명한다.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발달한 헬레니즘 도시문화, 그리고 황제 숭배를 비롯한 각종 이방 종교의 활성화라는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정치 종교적으로 약자(minority)의 위치에 처해 있었다. 96-117년 사이의 로마 황제 트라얀(Trajan)에게 소아시아 북쪽에 있는 비시니아(Bithynia)의 총독 플리니(Pliny)가 보냈던 편지에서, 1세기 말-2세기 초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볼 수 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이었기에 제 앞에 송치된 사람들의 경우에 제가 다룬 과정은 이러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인지를 묻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저는 두 세 번 그 질문을 반복하고, 극형에 처한다고 위협합니다.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하면 사형을 언도합니다. 그들이 고백하고 있던 것이 어떤 종류의 범죄일 수 있든간에 그들의 끈덕짐과 유연성 없는 완고함은 분명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그리스도인이었거나 또는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음을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은 석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 명령에 따라 신들을 불렀고, 여러 신들의 형상에도 향과 포도주로 경배했기 때문입니다. 더 특별한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저주했는데, 그와같은 일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결코 행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저는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하나의 미신 이외의 것은 찾아낼 수 없었기에, 저의 심문을 연기하고 폐하의 자문을 구하고하 하는 것입니다...연령이나 계층, 그리고 남녀 구별 없이 많은 사람이 고소를 당해 위협에 처해 있으며, 이것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로마 총독의 눈으로 볼 때, 황제 숭배를 거부하며 하나의 신만을 신앙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끈덕짐'과 '완고함' 자체가 로마 세계의 다신적 이데올로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제거리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신학적 주장(예를 들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에 대한 신앙과 종말론적 메시야 고백)은 미신처럼 여겨졌고, 시장에 나온 우상 제물을 사지 않는 등 헬라 도시 문화의 상식적인 모습과 다르게 사는 그들의 모습은 어리석게 보여졌을 것이다. 계시록의 사회적 자리(Social Setting)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3.1.3.3 '계시록의 사회적 자리(the Social Setting)'에서 이미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2-3장에서 특별히 나타나는 유대 공동체와의 관계 문제, 그리고 이른바 '니골라 당'이라 하는 교회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중심으로 '일곱 교회에게 주는 말씀'의 수사학적 상황을 고려해 본다. 유대인들은 한동안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든 자신들의 종교 행위를 마음껏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제 숭배 의식이나 병역에서도 면제되었다. 이러한 특권을 누리면서 이들은 로마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고 때로는 황제를 위해(for) 기도 할 것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점점 유대인들의 상황은 불리해 졌다. 황제 베스파시안(Vespasian: 69-79)은 모든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내는 세금을 로마에게 바치도록 명령했으며, 도미티안(Domitian: 81-96)도 유대 출신이 아닌 개종자들에게 특별세를 부과했다. 또한 유대인들의 색다른 관습과 도시의 종교제의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서 로마와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 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들에 정착하고 회당 중심의 결속력을 바탕으로 확고한 세력을 형성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소아시아 지역의 유대 공동체는 '메시아 사상' 등과 같이 로마 제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될 만한 요소들을 스스로 제거하여(get rid of) 체제 순응적인 경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유대인 출신이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들(계시록 저자와 같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유대인으로서 가지는 특권을 점점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됨과 동시에 유대교 회당 공동체에서 벗어나서 사회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신앙의 신실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이러한 갈등이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는 말씀에서 드러난다. 로마의 정치 종교적 지배 이데올로기와 도시 문화에 순응함으로써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궁핍하고 무력해 보일 뿐만 아니라 예수를 종말론적 메시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비방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임을 주장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시록 저자는 교회에게 주는 말씀에서 과연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를 논쟁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유대 사람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실은 '사탄의 무리'이며(2:9), '거짓말 하는 자들'(3:9)이라 판정하신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에서 계시록이 쓰여진 1세기 말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로마제국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박해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계시록의 저자가 볼 때, 이미 박해가 개별적인 차원에서 시작되었으며 전면적인 박해가 임박한 시기에 있어서 공동체 내부적으로 더 큰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분파(division)와 거짓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니골라당'과 '발람' 그리고 '이세벨'로 불려지는 이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도록 허용하고, 황제 숭배에 참여할 것을 수용하는, 같은 부류의 예언자들인데,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각 교회에서 활동했던 이들도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황제와 우상 숭배, 그리고 헬라 도시의 삶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정당화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피오렌자(Fiorenza)는 이들 교회의 수사학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이들 거짓 예언자들도 그리스도교적 전승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을 것으로 본다. 즉 사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고전 8:4), 황제의 권력도 하나님이 주셨기에 순종해야 한다(롬 13:1-7)고 주장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예수의 전승(요 18:36-38) 등을 근거로 아무런 신앙고백적 의미 없이도 도시의 시민으로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은 '하나님의 깊은 경륜(τα` βαθε´α)'을 알았기에 이방 제사나 로마 황제 숭배에 참여하는 자신들의 자유분방함을 과시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따라서 계시록 저자가 부딪힌 수사학적 상황은 이러한 맥락에서 단지 사회정치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인 도전에 대해 계시록 저자는 우상들의 배후에 있는 사탄의 악마적 힘을 강조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황제 숭배에 대해 어떠한 타협과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지금까지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에 대한 구조적 수사학적 이해를 시도해 봤다. 이 부분은 흔히 알고 있듯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역사적인 편지들의 수집물 또는 편지 형식의 글)' 보다는, 그 당시 로마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널리 선포되던 '황제의 칙령(the royal or imperial edict)'에 가까운 구조와 장르를 가지고 있는 것을 전제하였다. 그러한 형식에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구원과 심판의 교훈(parenetic salvation-judgment oracle)을 전하는 예언적 연설(prophetic form speech)'을 담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계시록 저자는 이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와 심판자는 로마의 황제가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신학적 주장을 강조하였다.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은 저자의 수사학적 작업이 확연히 드러나는 일정한 구조를 따라 구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칙령이 갖는 정형구('τα´δε λε´γει')와 이것에 연결되는 분사구문[그리스도론적 진술(the Christological Predications)], 그리고 "나는 알고있다"(οι˘δα: 2:2,9,13 등)로 시작하는 각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판단, 구원과 심판의 교훈,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2:7a,11a,17a,29 등)라는 선포의 정형구와 "이기는 사람에게는 ~하겠다"라는 종말론적 약속(the escatological promise)이 일정하게 반복된다. οι˘δα 절의 내용과 이어지는 구원과 심판의 교훈에서 우리는 각 교회의 상황에 대해 시사하는 바를 얻게 된다. 저자는 분명히 각 도시의 특징과 교회 공동체의 상황에 대한 진술에서 그러한 지리적, 종교문화적, 사회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역사실증 연구의 자료로 보고, 그것을 토대로 소아시아 지역의 그리스도교 역사를 재구성하려는 것은 의도했던 결과를 얻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계시록 저자의 문학적, 수사학적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것이라 하겠다. 성서를 수사학적 분석 방법으로 읽을 때 관심을 갖는 '수사학적 상황(Rhetorical Situation)'은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저자와 청중(독자) 사이에 발생하는 논쟁적인 이슈에 관한 것이다. 또 그러한 수사학적 상황에서 저자가 어떠한 설득 작업(Persuasive Power)을 펼쳤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주는 말씀'에서 저자 요한은 자신이 경험한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에 대한 환상의 빛으로 일곱 교회들의 상황을 조명한다. 소아시아에 있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는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에서 발달한 헬레니즘 도시문화, 그리고 황제 숭배를 비롯한 각종 이방 종교의 활성화라는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정치 종교적으로 약자(minority)의 위치에 처해 있었다. 96-117년 사이의 로마 황제 트라얀(Trajan)에게 소아시아 북쪽에 있는 비시니아(Bithynia)의 총독 플리니(Pliny)가 보냈던 편지에서, 1세기 말-2세기 초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모습에 대한 일반적인 시각을 볼 수 있다. "그동안 그리스도인이었기에 제 앞에 송치된 사람들의 경우에 제가 다룬 과정은 이러합니다. 그들이 그리스도인인지를 묻습니다. 그것을 인정하면 저는 두 세 번 그 질문을 반복하고, 극형에 처한다고 위협합니다.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집하면 사형을 언도합니다. 그들이 고백하고 있던 것이 어떤 종류의 범죄일 수 있든간에 그들의 끈덕짐과 유연성 없는 완고함은 분명 처벌받아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그리스도인이었거나 또는 과거에 그리스도인이었음을 부인하는 모든 사람들은 석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 명령에 따라 신들을 불렀고, 여러 신들의 형상에도 향과 포도주로 경배했기 때문입니다. 더 특별한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저주했는데, 그와같은 일은 진짜 그리스도인들이라면 결코 행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저는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하나의 미신 이외의 것은 찾아낼 수 없었기에, 저의 심문을 연기하고 폐하의 자문을 구하고하 하는 것입니다...연령이나 계층, 그리고 남녀 구별 없이 많은 사람이 고소를 당해 위협에 처해 있으며, 이것은 계속될 전망입니다." 로마 총독의 눈으로 볼 때, 황제 숭배를 거부하며 하나의 신만을 신앙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끈덕짐'과 '완고함' 자체가 로마 세계의 다신적 이데올로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제거리로 간주되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신학적 주장(예를 들어,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에 대한 신앙과 종말론적 메시야 고백)은 미신처럼 여겨졌고, 시장에 나온 우상 제물을 사지 않는 등 헬라 도시 문화의 상식적인 모습과 다르게 사는 그들의 모습은 어리석게 보여졌을 것이다. 계시록의 사회적 자리(Social Setting)에 대해서는 본 논문의 3.1.3.3 '계시록의 사회적 자리(the Social Setting)'에서 이미 다루었기에, 여기서는 2-3장에서 특별히 나타나는 유대 공동체와의 관계 문제, 그리고 이른바 '니골라 당'이라 하는 교회 공동체 내부의 갈등을 중심으로 '일곱 교회에게 주는 말씀'의 수사학적 상황을 고려해 본다. 유대인들은 한동안 로마 제국으로부터의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들은 어디서든 자신들의 종교 행위를 마음껏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황제 숭배 의식이나 병역에서도 면제되었다. 이러한 특권을 누리면서 이들은 로마 황제의 권위를 인정하고 때로는 황제를 위해(for) 기도 할 것에 동의하였다. 그러나 점점 유대인들의 상황은 불리해 졌다. 황제 베스파시안(Vespasian: 69-79)은 모든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보내는 세금을 로마에게 바치도록 명령했으며, 도미티안(Domitian: 81-96)도 유대 출신이 아닌 개종자들에게 특별세를 부과했다. 또한 유대인들의 색다른 관습과 도시의 종교제의에 참여하지 않는 것에서 로마와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으며 마침내 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 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은 로마 제국의 여러 도시들에 정착하고 회당 중심의 결속력을 바탕으로 확고한 세력을 형성했다.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 소아시아 지역의 유대 공동체는 '메시아 사상' 등과 같이 로마 제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될 만한 요소들을 스스로 제거하여(get rid of) 체제 순응적인 경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유대인 출신이면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진 이들(계시록 저자와 같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유대인으로서 가지는 특권을 점점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됨과 동시에 유대교 회당 공동체에서 벗어나서 사회 경제적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신앙의 신실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이러한 갈등이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주는 말씀에서 드러난다. 로마의 정치 종교적 지배 이데올로기와 도시 문화에 순응함으로써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궁핍하고 무력해 보일 뿐만 아니라 예수를 종말론적 메시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비방하면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선민임을 주장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시록 저자는 교회에게 주는 말씀에서 과연 '누가 참 이스라엘인가?'를 논쟁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유대 사람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은 실은 '사탄의 무리'이며(2:9), '거짓말 하는 자들'(3:9)이라 판정하신다. 일곱 교회에 보내는 말씀에서 계시록이 쓰여진 1세기 말에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대한 로마제국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박해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계시록의 저자가 볼 때, 이미 박해가 개별적인 차원에서 시작되었으며 전면적인 박해가 임박한 시기에 있어서 공동체 내부적으로 더 큰 문제로 다가오는 것은 분파(division)와 거짓된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니골라당'과 '발람' 그리고 '이세벨'로 불려지는 이들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우상에게 바쳐졌던 음식을 먹도록 허용하고, 황제 숭배에 참여할 것을 수용하는, 같은 부류의 예언자들인데, 쉽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각 교회에서 활동했던 이들도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황제와 우상 숭배, 그리고 헬라 도시의 삶에 순응하며 사는 것을 정당화했을 것이라는 점이다. 피오렌자(Fiorenza)는 이들 교회의 수사학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이들 거짓 예언자들도 그리스도교적 전승을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을 펼쳤을 것으로 본다. 즉 사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며(고전 8:4), 황제의 권력도 하나님이 주셨기에 순종해야 한다(롬 13:1-7)고 주장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의 것들과는 전혀 다르다는 예수의 전승(요 18:36-38) 등을 근거로 아무런 신앙고백적 의미 없이도 도시의 시민으로서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또한 자신들은 '하나님의 깊은 경륜(τα` βαθε´α)'을 알았기에 이방 제사나 로마 황제 숭배에 참여하는 자신들의 자유분방함을 과시하기까지 했을 것이다. 따라서 계시록 저자가 부딪힌 수사학적 상황은 이러한 맥락에서 단지 사회정치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신학적 도전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인 도전에 대해 계시록 저자는 우상들의 배후에 있는 사탄의 악마적 힘을 강조한다. 또한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황제 숭배에 대해 어떠한 타협과 압력에도 굴복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세상의 진정한 통치자이신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에 대한 확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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