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롯기의 성격 룻기의 정경적 형태는 경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가운데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용기(用器)로서 원래의 이야기를 보존하였다. 그 이야기의 모든 특징들은-예술적 기교, 구성, 인물들, 진행-변화 없이 전달되었다. 그 이야기는 단순한 교훈으로도 변경되지도 않았으며 요나처럼 교훈적인 이유들 때문에 축약되지도 않았다. 어떤 유형론적인 경향이나 알레고리적인 움직임도 없었다. 원래의 이야기가 이미 상당히 신학적이었기 대문에, 정경화 과정에서 세속적인 이야기를 종교적인 이야기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치 않았다. Humbert를 비롯한 Hertzberg, Hals 등은 실제로 그 이야기의 주된 목적은 한 가족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길들을 보여주는 것이라 보고 있다. 그 원래 적인 이야기는 노오미의 대답(2:21f)에서 명백하게 신학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음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길들은 2장(12, 20절)과 3장(10, 13절)에서 중심 된 구성의 줄거리를 형성하면서 4:14의 축복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훌륭한 이야기의 특질들을 구성하는 모든 특징들은 하나님이 역사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 보아스는 "우연히도" 친척이었다. 노오미는 룻과 보아스가 혼인하도륵 계략을 꾸몄다. 정경적 편집자들은 그 이야기를 그 전체성에서 하나의 증거로 받아들이며 그 사건들을 정당화하거나 도덕화하려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 룻기를 해석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그 이야기의 몇몇 특징들이 독자들에게 불분명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를 들면, 노오미가 여전히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데도 왜 룻이 이삭을 주워야 했는가 하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또한 시형제가 아닌 보아스에게 시형제혼인법을 직접 분명하게 적용시키고 있는 이유도 불확실하다. 또한 만일 보아스가 땅을 원했다고 한다면, 룻과 혼인하는 일에 관하여 보아스가 가지고있던 것과 같은 정보를 4장의 □□□은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의문스럽다. 끝으로 말론에게 보다는 노오미에게 한 아들이 고지되었다는 것은 다소 당황스러운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혼란 중 어떤 것도 정경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 같지 않으며 다른 자료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의 어떤 문제들은 그 이야기가 전제한 정보를 현대의 독자가 결여하고 있는 것의 성격과 범위에 대하여 그 정확한 전후 관련을 이해할 만 하게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자 자신이 관습에 대하여 몰랐다는 증거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학자들을 당혹하게 한 어떤 특징들은 이야기하는 자가 어떤 요소를 강조하고 다른 것들을 약하게 말하는 그의 자유를 속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아들을 말론에게 돌리지 않고 노오미에게 속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은(4:17) 그 이야기의 배경을 형성하였던 시형제혼인법의 분부들에 거슬리는 것일지라도 한 중요한 신학적 주제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적인 이야기의 정경적 형성에 대한 가장 중요한 표시는 책의 마지막 장, 곧 17절 하반절과 18-22절에서 나온다. 두 첨가 모두 원래 적인 이야기에 이차적인 것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관찰은 룻을 다윗에 연결시키는 전승의 역사성에 대하여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다만 그 문학적 양식이 원래의 기초적인 이야기가 후에 확대되었음을 시사해줄 뿐이다. 17절 하반절의 첨가 효과는 그 자료에 새로운 신학적 역할 하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 구절은 이제 한 가족의 삶에서 하나님의 길들을 보여 주는 것을 넘어서서 이스라엘의 전 민족을 포함하도록 확장된다. 하나님의 길들이 구속사라는 보다 광범한 맥락에서 두어진 것이다. 노오미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치하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8-22절의 계보첨가는 다만 17b절이 공포한 동일한 역사를 공식화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의 다윗왕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다윗은 특별한 왕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는 대표적이면서도 서로의 관점이 너무나도 차이나는 두 관점인 신명기적사가와 역대기적사가, 이 둘 모두에게서 이스라엘 사상 최고의 왕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또한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메시아의 기대는 역사적인 다윗왕조를 둘러싸고 잘 발달하였다. 이러한 다윗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업적 및 활동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길보아에서 블레셋에게 당한 궤멸로 이스라엘의 운명은 블레셋인들의 처분에 맡겨졌는데, 이로써 이스라엘의 처지는 절망적인 듯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재기하였고, 수년 내에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다윗의 업적이었다. 다윗도 사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의해 지명되어 백성들과의 개인적인 언약과 환호를 통해 왕으로 추대된 지도자였다. 사울과 마찬가지로 다윗은 유서 깊은 성소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새 왕국은 옛 체제와는 크게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다. 다윗의 집권은 단지 과거의 고전적인 방식을 따라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
1. 롯기의 성격 룻기의 정경적 형태는 경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가운데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용기(用器)로서 원래의 이야기를 보존하였다. 그 이야기의 모든 특징들은-예술적 기교, 구성, 인물들, 진행-변화 없이 전달되었다. 그 이야기는 단순한 교훈으로도 변경되지도 않았으며 요나처럼 교훈적인 이유들 때문에 축약되지도 않았다. 어떤 유형론적인 경향이나 알레고리적인 움직임도 없었다. 원래의 이야기가 이미 상당히 신학적이었기 대문에, 정경화 과정에서 세속적인 이야기를 종교적인 이야기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치 않았다. Humbert를 비롯한 Hertzberg, Hals 등은 실제로 그 이야기의 주된 목적은 한 가족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길들을 보여주는 것이라 보고 있다. 그 원래 적인 이야기는 노오미의 대답(2:21f)에서 명백하게 신학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음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길들은 2장(12, 20절)과 3장(10, 13절)에서 중심 된 구성의 줄거리를 형성하면서 4:14의 축복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훌륭한 이야기의 특질들을 구성하는 모든 특징들은 하나님이 역사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 보아스는 "우연히도" 친척이었다. 노오미는 룻과 보아스가 혼인하도륵 계략을 꾸몄다. 정경적 편집자들은 그 이야기를 그 전체성에서 하나의 증거로 받아들이며 그 사건들을 정당화하거나 도덕화하려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 룻기를 해석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그 이야기의 몇몇 특징들이 독자들에게 불분명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를 들면, 노오미가 여전히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데도 왜 룻이 이삭을 주워야 했는가 하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또한 시형제가 아닌 보아스에게 시형제혼인법을 직접 분명하게 적용시키고 있는 이유도 불확실하다. 또한 만일 보아스가 땅을 원했다고 한다면, 룻과 혼인하는 일에 관하여 보아스가 가지고있던 것과 같은 정보를 4장의 □□□은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의문스럽다. 끝으로 말론에게 보다는 노오미에게 한 아들이 고지되었다는 것은 다소 당황스러운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혼란 중 어떤 것도 정경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 같지 않으며 다른 자료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의 어떤 문제들은 그 이야기가 전제한 정보를 현대의 독자가 결여하고 있는 것의 성격과 범위에 대하여 그 정확한 전후 관련을 이해할 만 하게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자 자신이 관습에 대하여 몰랐다는 증거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학자들을 당혹하게 한 어떤 특징들은 이야기하는 자가 어떤 요소를 강조하고 다른 것들을 약하게 말하는 그의 자유를 속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아들을 말론에게 돌리지 않고 노오미에게 속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은(4:17) 그 이야기의 배경을 형성하였던 시형제혼인법의 분부들에 거슬리는 것일지라도 한 중요한 신학적 주제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적인 이야기의 정경적 형성에 대한 가장 중요한 표시는 책의 마지막 장, 곧 17절 하반절과 18-22절에서 나온다. 두 첨가 모두 원래 적인 이야기에 이차적인 것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관찰은 룻을 다윗에 연결시키는 전승의 역사성에 대하여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다만 그 문학적 양식이 원래의 기초적인 이야기가 후에 확대되었음을 시사해줄 뿐이다. 17절 하반절의 첨가 효과는 그 자료에 새로운 신학적 역할 하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 구절은 이제 한 가족의 삶에서 하나님의 길들을 보여 주는 것을 넘어서서 이스라엘의 전 민족을 포함하도록 확장된다. 하나님의 길들이 구속사라는 보다 광범한 맥락에서 두어진 것이다. 노오미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치하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8-22절의 계보첨가는 다만 17b절이 공포한 동일한 역사를 공식화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의 다윗왕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다윗은 특별한 왕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는 대표적이면서도 서로의 관점이 너무나도 차이나는 두 관점인 신명기적사가와 역대기적사가, 이 둘 모두에게서 이스라엘 사상 최고의 왕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또한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메시아의 기대는 역사적인 다윗왕조를 둘러싸고 잘 발달하였다. 이러한 다윗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업적 및 활동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길보아에서 블레셋에게 당한 궤멸로 이스라엘의 운명은 블레셋인들의 처분에 맡겨졌는데, 이로써 이스라엘의 처지는 절망적인 듯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재기하였고, 수년 내에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다윗의 업적이었다. 다윗도 사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의해 지명되어 백성들과의 개인적인 언약과 환호를 통해 왕으로 추대된 지도자였다. 사울과 마찬가지로 다윗은 유서 깊은 성소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새 왕국은 옛 체제와는 크게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다. 다윗의 집권은 단지 과거의 고전적인 방식을 따라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권력 기반은 지파동맹 체제가 아니었다. 이와는 반대로 이미 블레셋인들의 동의를 얻어 이미 유다에서 왕으로 군림하던 한 군사 지도자가 지금 백성들의 환호를 통해 북쪽 지파들까지 다스리는 왕으로 추대되었던 것이다. 다윗에 의한 새로운 국가는 즉시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블레셋인들은 다윗의 등극이 재통일된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그들은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네들이 다윗을 격멸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당장 격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후, 다윗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자 국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는 것에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을 염두에 두고 다윗은 헤브론에서 수년을 통치한 뒤 여부스족의 도시인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그곳으로 왕궁을 옮겼다. 예루살렘은 남부와 북부 두 지역의 중앙에 위치했으며, 어느 지파의 영토에도 속해 있지 않았으므로 지파들 사이의 훌륭한 타협점을 제공하였으며, 이스라엘이 비(非)이스라엘적인 배경을 지니게 하였다. 다윗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든 간에 그는 이스라엘의 옛 제도들의 정신적인 영향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막이 세워졌고, 성대한 예식과 환희 속에서 언약궤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성막 안에 안치되었다. 다윗은 실로 제사장 가문의 아비달과 출신 배경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사독을 새로운 성소의 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성경은 예루살렘 점령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만, 다윗은 팔레스타인에 여전히 남아있던 가나안족의 다른 도시 국가들도 장악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영토 일대를 완전히 평정했음을 의미했다. 실제로 그것은 가나안 정복 사업의 완수였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원래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만을 점령하고 있었던 족속들의 지파동맹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으나, 이제는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 전체를 포괄하는 지리학적 실체를 표시하게 되었다 수많은 가나안족들이 이스라엘의 구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파 체제 안에 통합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다윗의 등극 후의 최초의 전쟁은 암몬과의 싸움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다위은 모압과 애돔을 정복함으로써 영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였다. 특히 다윗은 모압과 애돔의 두 나라에게는 다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게 다루어졌다. 모압족의 전투부대는 무자비한 대량학살로 무력화되었고, 모압은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는 봉신의 국가로 전락했다. 다윗의 정복 사업은 극적일 정도로 급속하게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및 시리아의 제일 강대국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잠시 동안 당시 세계에서 어느 나라 못지 않게 강성했다. 이러한 변모를 계기로 이스라엘은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질서를 갖추게 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국가의 성격 자체 가 옛 질서로부터 전면적인 변화의 조짐을 보여 주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환호로써 왕으로 추대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영도되는 지파동맹이 아니라 왕권의 지배 아래 조직된 복잡한 제국이었다 지파동맹은 더 이상 "이스라엘"과 같은 의미도 아니었고 또 대다수의 지파들을 포괄하고 있지도 않았다. 지파동맹은 단지 제한된 의미로서만 이스라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 병합된 가나안 족 주민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신민이 아니라 다윗 왕권의 신민이었다. 다윗의 사후에 솔로몬은 재빠르게 움직여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해 버렸다 이후의 솔로몬의 통치는 전적으로 평화스러웠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는 중요한 군사작전을 수행한 적은 없었다.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다윗의 아래에서 최대의 규모에 도달했던 영토를 더욱더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봉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평화 속에서 잠재력들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슬기로운 동맹정책을 통해 이를 달성하려고 하였다. 이 동맹 관계들은 다수의 혼인을 통해 확인 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이방의 귀부인들이 솔로몬의 후궁으로 들어왔다. 이렇듯 순전히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임무만을 수행해 온 다윗왕조가 종교적 위치를 차지하고 메시아 기대의 기원이 된 것은 첫째는 다윗의 통치 덕분이고, 둘째는 야훼신앙에 의한 끊임없는 비평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기틀 마련에는 다음의 두 가지 점이 공헌했다. 첫째는, 다윗 왕조의 종교적 합법성 획득에 기여한 나단선지자의 예언으로 야훼의 모든 축복과 함께 야훼 하나님과의 사이에 언약을 맺게 하였다. 둘째는, 제왕시를 통한 신성한 종교적 왕권의 표현을 들 수 있다. 이 제왕시가 후대에 와서는 철저하게 메시아적 시로 해석되어 진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사실상의 통일군주시대의 초대 왕이라 할 수 있는 다윗에 대한 탄생에 대하여서 룻기는 간략한 족보를 통해서 기록하고 있다. 한 사무엘서를 통하여서 다윗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룻1:16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의 섬기기로 약속하고 따라나선 룻에게서 우리는 이방인인 룻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룻기에서 다윗왕통의 핏줄 속에 모압인의 피가 섞였다는 전통을 보존하고 따라서 모압인까지도 이스라엘 신앙에 관련하여 뜻 있게 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이스라엘 신앙의 보편성을 찾아볼 수 있다. 룻기는 야훼의 선하신 인도를 다룬 책으로 중심인물이 야훼이다. 이방 여인이 야훼의 인도를 받았다는 사실은 구원의 보편성, 곧 우주성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날개 아래서 도피처를 찾는 일은 찬양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서 안식처를 발견한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상황 아래서 결정적인 힘으로 입증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민족이나 외모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룻기는 잘 나타내주고 있다. 3. 다윗왕조에 있어서의 룻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룻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기록된 역사적인 이야기로서, 사사기의 전쟁과 투쟁의 역사와는 대조적으로 야훼신앙으로 살아가는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사사기에서는 야훼신앙의 쇠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룻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이 개인적인 신앙은 여전히 강한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사시대에 있었던 룻의 이야기는 포로시대 이후 편협한 민족주의 사상을 단호히 배격하고 있다. 즉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이방여자들과의 혼인을 엄금하는 법이 선포되고 완전히 쇄국적인 정신에 사로잡혀서 다른 민족은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은 것을 통한히 여긴 어떤 유대인에 의해 이 글이 기록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앞서 살펴본 우리나라의 고려조의 역사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역사서의 편찬은 대체적으로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기록되어지고 읽혀짐으로써 혼란한 시기에 어느 특정한 공동체-정부, 혹은 반정부단체를 포함할 수 있다-를 통한 단결을 강조하며 그 공동체를 통하여 그 혼란한 시기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리하여 편찬자가 의도한 대로 그 공동체의 수장을 신성화시키며, 공동체의 현실에 필요한 부분들을 강조하거나 추가하며,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시킨다. 이러한 모습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서, 특히 룻기에서 등장한다고 보여진다. 이방땅인 모압에서 살던 유대여자 노오미가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모압에서 얻은 이방인 인 두 며느리와 함께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오는 중 큰 며느리는 노오미의 재가 권고에 따르지만 작은 며느리 룻은 끝내 노오미를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통 왕족의 떳떳한 한 사람으로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 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한 마음을 고쳐보고, 인정이 메말라 찬바람이 나돌던 시대에 이 따스한 아름다운 역사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인정을 되찾게 되는 꿈을 가지게 된다. 룻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윗의 조상인 룻과 보아스의 세계에 대하여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았다. 노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 이웃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노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버지였음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이렇듯 룻기에서는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율법을 통해서 그렇게 경계하던 이방지역에서 생활하는 엘리멜렉의 가족과 분명히 족내혼이라는 관습이 있으며, 율법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족외혼, 특히 이방여인과의 혼인을 하는 두 명의 신실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로써 룻기가 기록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이 룻기를 통하여서 기록되고 처음 읽혀질 당시의 상황이 이방인들과의 화합이 필요한 시기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하여 이방인과의 치열한 전쟁의 이야기인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그리고 몇몇의 큰 적들을 상대하면서 왕정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의 가교적 역할로써 룻기가 임무를 다했을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이 필요치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철저하게 이방인을 배척해야 할 시기에 이르러서는 룻기를 아가서와 잠언 사이의 성문서에 배치시키면서 이러한 의도를 감소시키려는 의도가 보여지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가교 역할을 하는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족보에는 4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가장 신성함을 원하는 유대인의 관습에 반하여 부정한 여인이거나 수치스러움 사실을 지닌 여성들이다. 이 중에서 두 사람은 이방인이며, 세 사람은 불륜의 관계에 있던 여인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참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인간의 역사는 그 모두 불결한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서 이를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동양에 있어서 영웅들의 전기처럼 자기들의 오점을 숨기고 좋은 점만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둘째는 유대인은 그 혈통을 사랑하고 또한 자국민을 위한 배타주의적인 사고 방식에서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과 메시아의 혈통중에서 더러움이 있고 또한 이방인의 피도 섞여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유대인들의 교만을 꺾는데 있다. 진정 룻과 노오미에 관한 이야기로서 민족적 또는 개인적 이해의 관계를 초월한 인정과 헌신의 이야기이다. 룻기는 오랫동안 이야기 기법의 완벽한 표본으로 인용되어 온 구약성서의 한 책이다. 베들레헴 태생의 히브리인 보아스와 이방인인 모압여인 룻과의 혼인,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이새의 아버지이자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는 오벳이 나왔으며, 룻이 다윗의 조상으로 언급된 사실은 아무리 반복해서 언급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1. 롯기의 성격 룻기의 정경적 형태는 경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가운데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용기(用器)로서 원래의 이야기를 보존하였다. 그 이야기의 모든 특징들은-예술적 기교, 구성, 인물들, 진행-변화 없이 전달되었다. 그 이야기는 단순한 교훈으로도 변경되지도 않았으며 요나처럼 교훈적인 이유들 때문에 축약되지도 않았다. 어떤 유형론적인 경향이나 알레고리적인 움직임도 없었다. 원래의 이야기가 이미 상당히 신학적이었기 대문에, 정경화 과정에서 세속적인 이야기를 종교적인 이야기로 변화시키는 작업이 필요치 않았다. Humbert를 비롯한 Hertzberg, Hals 등은 실제로 그 이야기의 주된 목적은 한 가족의 생활에서 하나님의 길들을 보여주는 것이라 보고 있다. 그 원래 적인 이야기는 노오미의 대답(2:21f)에서 명백하게 신학적인 문제를 중심으로 구성되었음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길들은 2장(12, 20절)과 3장(10, 13절)에서 중심 된 구성의 줄거리를 형성하면서 4:14의 축복에서 그 절정을 이룬다. 훌륭한 이야기의 특질들을 구성하는 모든 특징들은 하나님이 역사하고 있음을 증거하고 있다. 룻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다. 보아스는 "우연히도" 친척이었다. 노오미는 룻과 보아스가 혼인하도륵 계략을 꾸몄다. 정경적 편집자들은 그 이야기를 그 전체성에서 하나의 증거로 받아들이며 그 사건들을 정당화하거나 도덕화하려는 아무런 시도도 하지 않는다. 룻기를 해석함에 있어서의 어려움은 어느 정도 그 이야기의 몇몇 특징들이 독자들에게 불분명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에 일어난다. 예를 들면, 노오미가 여전히 재산을 소유하고 있는데도 왜 룻이 이삭을 주워야 했는가 하는 이유가 분명치 않다. 또한 시형제가 아닌 보아스에게 시형제혼인법을 직접 분명하게 적용시키고 있는 이유도 불확실하다. 또한 만일 보아스가 땅을 원했다고 한다면, 룻과 혼인하는 일에 관하여 보아스가 가지고있던 것과 같은 정보를 4장의 □□□은 가지고 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 의문스럽다. 끝으로 말론에게 보다는 노오미에게 한 아들이 고지되었다는 것은 다소 당황스러운 것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이 혼란 중 어떤 것도 정경적 의도를 반영하는 것 같지 않으며 다른 자료들에서 유래하는 것이다. 그 이야기의 어떤 문제들은 그 이야기가 전제한 정보를 현대의 독자가 결여하고 있는 것의 성격과 범위에 대하여 그 정확한 전후 관련을 이해할 만 하게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이야기하는 자 자신이 관습에 대하여 몰랐다는 증거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학자들을 당혹하게 한 어떤 특징들은 이야기하는 자가 어떤 요소를 강조하고 다른 것들을 약하게 말하는 그의 자유를 속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아들을 말론에게 돌리지 않고 노오미에게 속한 것으로 이야기하는 것은(4:17) 그 이야기의 배경을 형성하였던 시형제혼인법의 분부들에 거슬리는 것일지라도 한 중요한 신학적 주제의 절정을 이루는 것이다. 원래 적인 이야기의 정경적 형성에 대한 가장 중요한 표시는 책의 마지막 장, 곧 17절 하반절과 18-22절에서 나온다. 두 첨가 모두 원래 적인 이야기에 이차적인 것이었던 것으로 나타난다. 이 관찰은 룻을 다윗에 연결시키는 전승의 역사성에 대하여 아무 것도 말하지 않고, 다만 그 문학적 양식이 원래의 기초적인 이야기가 후에 확대되었음을 시사해줄 뿐이다. 17절 하반절의 첨가 효과는 그 자료에 새로운 신학적 역할 하나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그 구절은 이제 한 가족의 삶에서 하나님의 길들을 보여 주는 것을 넘어서서 이스라엘의 전 민족을 포함하도록 확장된다. 하나님의 길들이 구속사라는 보다 광범한 맥락에서 두어진 것이다. 노오미에게 한 아들이 태어났을 뿐만 아니라 다윗의 치하에서 하나님의 통치의 역사가 시작된 것이다. 18-22절의 계보첨가는 다만 17b절이 공포한 동일한 역사를 공식화하는 구실을 하는 것이다. 2. 이스라엘의 다윗왕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다윗은 특별한 왕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하는 대표적이면서도 서로의 관점이 너무나도 차이나는 두 관점인 신명기적사가와 역대기적사가, 이 둘 모두에게서 이스라엘 사상 최고의 왕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또한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지향하는 메시아의 기대는 역사적인 다윗왕조를 둘러싸고 잘 발달하였다. 이러한 다윗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의 중요한 업적 및 활동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길보아에서 블레셋에게 당한 궤멸로 이스라엘의 운명은 블레셋인들의 처분에 맡겨졌는데, 이로써 이스라엘의 처지는 절망적인 듯했다. 그렇지만 이스라엘은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재기하였고, 수년 내에 팔레스타인과 시리아에서 가장 앞선 나라가 되었다. 이것은 다윗의 업적이었다. 다윗도 사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에 의해 지명되어 백성들과의 개인적인 언약과 환호를 통해 왕으로 추대된 지도자였다. 사울과 마찬가지로 다윗은 유서 깊은 성소에서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새 왕국은 옛 체제와는 크게 다른 면모를 보여 주었다. 다윗의 집권은 단지 과거의 고전적인 방식을 따라 된 것이 아니었다 그의 권력 기반은 지파동맹 체제가 아니었다. 이와는 반대로 이미 블레셋인들의 동의를 얻어 이미 유다에서 왕으로 군림하던 한 군사 지도자가 지금 백성들의 환호를 통해 북쪽 지파들까지 다스리는 왕으로 추대되었던 것이다. 다윗에 의한 새로운 국가는 즉시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블레셋인들은 다윗의 등극이 재통일된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을 그들은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자기네들이 다윗을 격멸해야 한다는 것, 그것도 당장 격멸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후, 다윗은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자 국내에서 자신의 세력을 강화하는 것에 주의를 돌릴 수 있었다. 바로 이것을 염두에 두고 다윗은 헤브론에서 수년을 통치한 뒤 여부스족의 도시인 예루살렘을 장악하고 그곳으로 왕궁을 옮겼다. 예루살렘은 남부와 북부 두 지역의 중앙에 위치했으며, 어느 지파의 영토에도 속해 있지 않았으므로 지파들 사이의 훌륭한 타협점을 제공하였으며, 이스라엘이 비(非)이스라엘적인 배경을 지니게 하였다. 다윗이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든 간에 그는 이스라엘의 옛 제도들의 정신적인 영향력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막이 세워졌고, 성대한 예식과 환희 속에서 언약궤는 예루살렘으로 옮겨져 성막 안에 안치되었다. 다윗은 실로 제사장 가문의 아비달과 출신 배경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은 사독을 새로운 성소의 제사장으로 임명하였다. 성경은 예루살렘 점령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지만, 다윗은 팔레스타인에 여전히 남아있던 가나안족의 다른 도시 국가들도 장악하였다. 이것은 이스라엘 영토 일대를 완전히 평정했음을 의미했다. 실제로 그것은 가나안 정복 사업의 완수였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원래 팔레스타인 지역의 일부만을 점령하고 있었던 족속들의 지파동맹을 가리키는 명칭이었으나, 이제는 실질적으로 팔레스타인 전체를 포괄하는 지리학적 실체를 표시하게 되었다 수많은 가나안족들이 이스라엘의 구조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이들은 아마 몇몇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지파 체제 안에 통합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다윗의 등극 후의 최초의 전쟁은 암몬과의 싸움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다위은 모압과 애돔을 정복함으로써 영토를 동쪽으로 확장하였다. 특히 다윗은 모압과 애돔의 두 나라에게는 다 잔인할 정도로 가혹하게 다루어졌다. 모압족의 전투부대는 무자비한 대량학살로 무력화되었고, 모압은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는 봉신의 국가로 전락했다. 다윗의 정복 사업은 극적일 정도로 급속하게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및 시리아의 제일 강대국으로 변모시켜 놓았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잠시 동안 당시 세계에서 어느 나라 못지 않게 강성했다. 이러한 변모를 계기로 이스라엘은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질서를 갖추게 되었다 바로 이와 같은 국가의 성격 자체 가 옛 질서로부터 전면적인 변화의 조짐을 보여 주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환호로써 왕으로 추대된 카리스마적 '지도자'에 의해 영도되는 지파동맹이 아니라 왕권의 지배 아래 조직된 복잡한 제국이었다 지파동맹은 더 이상 "이스라엘"과 같은 의미도 아니었고 또 대다수의 지파들을 포괄하고 있지도 않았다. 지파동맹은 단지 제한된 의미로서만 이스라엘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에 병합된 가나안 족 주민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신민이 아니라 다윗 왕권의 신민이었다. 다윗의 사후에 솔로몬은 재빠르게 움직여서 자신의 권위에 도전할 만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제거해 버렸다 이후의 솔로몬의 통치는 전적으로 평화스러웠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 그는 중요한 군사작전을 수행한 적은 없었다. 그의 앞에 놓인 과제는 다윗의 아래에서 최대의 규모에 도달했던 영토를 더욱더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으로 그리고 자신의 봉신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이스라엘이 평화 속에서 잠재력들을 발전시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는 슬기로운 동맹정책을 통해 이를 달성하려고 하였다. 이 동맹 관계들은 다수의 혼인을 통해 확인 되었기 때문에, 수많은 이방의 귀부인들이 솔로몬의 후궁으로 들어왔다. 이렇듯 순전히 세속적이고 정치적인 임무만을 수행해 온 다윗왕조가 종교적 위치를 차지하고 메시아 기대의 기원이 된 것은 첫째는 다윗의 통치 덕분이고, 둘째는 야훼신앙에 의한 끊임없는 비평을 들 수 있다. 이에 대한 기틀 마련에는 다음의 두 가지 점이 공헌했다. 첫째는, 다윗 왕조의 종교적 합법성 획득에 기여한 나단선지자의 예언으로 야훼의 모든 축복과 함께 야훼 하나님과의 사이에 언약을 맺게 하였다. 둘째는, 제왕시를 통한 신성한 종교적 왕권의 표현을 들 수 있다. 이 제왕시가 후대에 와서는 철저하게 메시아적 시로 해석되어 진 것이다. 이러한 이스라엘의 사실상의 통일군주시대의 초대 왕이라 할 수 있는 다윗에 대한 탄생에 대하여서 룻기는 간략한 족보를 통해서 기록하고 있다. 한 사무엘서를 통하여서 다윗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다. 룻1:16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의 섬기기로 약속하고 따라나선 룻에게서 우리는 이방인인 룻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룻기에서 다윗왕통의 핏줄 속에 모압인의 피가 섞였다는 전통을 보존하고 따라서 모압인까지도 이스라엘 신앙에 관련하여 뜻 있게 이를 공유할 수 있다는 이스라엘 신앙의 보편성을 찾아볼 수 있다. 룻기는 야훼의 선하신 인도를 다룬 책으로 중심인물이 야훼이다. 이방 여인이 야훼의 인도를 받았다는 사실은 구원의 보편성, 곧 우주성을 말하는 것이다. 누구나 이스라엘 하나님의 날개 아래서 도피처를 찾는 일은 찬양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서 안식처를 발견한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가 모든 상황 아래서 결정적인 힘으로 입증된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다. 민족이나 외모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룻기는 잘 나타내주고 있다. 3. 다윗왕조에 있어서의 룻기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룻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기록된 역사적인 이야기로서, 사사기의 전쟁과 투쟁의 역사와는 대조적으로 야훼신앙으로 살아가는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사사기에서는 야훼신앙의 쇠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룻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많은 백성들이 개인적인 신앙은 여전히 강한 모습으로 살아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사시대에 있었던 룻의 이야기는 포로시대 이후 편협한 민족주의 사상을 단호히 배격하고 있다. 즉 에스라 느헤미야 시대에 이방여자들과의 혼인을 엄금하는 법이 선포되고 완전히 쇄국적인 정신에 사로잡혀서 다른 민족은 사람으로 대우하지 않은 것을 통한히 여긴 어떤 유대인에 의해 이 글이 기록되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다르게 앞서 살펴본 우리나라의 고려조의 역사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역사서의 편찬은 대체적으로 나라가 혼란한 시기에 기록되어지고 읽혀짐으로써 혼란한 시기에 어느 특정한 공동체-정부, 혹은 반정부단체를 포함할 수 있다-를 통한 단결을 강조하며 그 공동체를 통하여 그 혼란한 시기를 종식시키고자 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리하여 편찬자가 의도한 대로 그 공동체의 수장을 신성화시키며, 공동체의 현실에 필요한 부분들을 강조하거나 추가하며, 불필요한 부분은 삭제시킨다. 이러한 모습들이 이스라엘의 역사서, 특히 룻기에서 등장한다고 보여진다. 이방땅인 모압에서 살던 유대여자 노오미가 남편도 죽고 두 아들도 죽고 모압에서 얻은 이방인 인 두 며느리와 함께 다시 고향땅으로 돌아오는 중 큰 며느리는 노오미의 재가 권고에 따르지만 작은 며느리 룻은 끝내 노오미를 따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정통 왕족의 떳떳한 한 사람으로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 줌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의 완고한 마음을 고쳐보고, 인정이 메말라 찬바람이 나돌던 시대에 이 따스한 아름다운 역사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인정을 되찾게 되는 꿈을 가지게 된다. 룻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다윗의 조상인 룻과 보아스의 세계에 대하여 보아스가 룻을 취하여 아내를 삼고 그와 동침하였더니 여호와께서 그로 잉태케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았다. 노오미가 아기를 취하여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 이웃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주되 노오미가 아들을 낳았다 하여 그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버지였음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이렇듯 룻기에서는 이스라엘의 배타적인 율법을 통해서 그렇게 경계하던 이방지역에서 생활하는 엘리멜렉의 가족과 분명히 족내혼이라는 관습이 있으며, 율법에서도 금지하고 있는 족외혼, 특히 이방여인과의 혼인을 하는 두 명의 신실한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이로써 룻기가 기록된 시기는 불분명하지만, 이 룻기를 통하여서 기록되고 처음 읽혀질 당시의 상황이 이방인들과의 화합이 필요한 시기였을 것으로 보여진다. 그리하여 이방인과의 치열한 전쟁의 이야기인 여호수아서와 사사기, 그리고 몇몇의 큰 적들을 상대하면서 왕정을 이루어 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의 가교적 역할로써 룻기가 임무를 다했을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역할이 필요치 않고, 오히려 더욱 더 철저하게 이방인을 배척해야 할 시기에 이르러서는 룻기를 아가서와 잠언 사이의 성문서에 배치시키면서 이러한 의도를 감소시키려는 의도가 보여지고 있다. 구약과 신약의 가교 역할을 하는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족보에는 4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가장 신성함을 원하는 유대인의 관습에 반하여 부정한 여인이거나 수치스러움 사실을 지닌 여성들이다. 이 중에서 두 사람은 이방인이며, 세 사람은 불륜의 관계에 있던 여인들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참으로 깊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인간의 역사는 그 모두 불결한 그대로 하나님 앞에 나타나서 이를 숨길 수 없다는 것이다. 동양에 있어서 영웅들의 전기처럼 자기들의 오점을 숨기고 좋은 점만을 살리는 일은 하나님 앞에서 무효임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둘째는 유대인은 그 혈통을 사랑하고 또한 자국민을 위한 배타주의적인 사고 방식에서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다윗과 메시아의 혈통중에서 더러움이 있고 또한 이방인의 피도 섞여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유대인들의 교만을 꺾는데 있다. 진정 룻과 노오미에 관한 이야기로서 민족적 또는 개인적 이해의 관계를 초월한 인정과 헌신의 이야기이다. 룻기는 오랫동안 이야기 기법의 완벽한 표본으로 인용되어 온 구약성서의 한 책이다. 베들레헴 태생의 히브리인 보아스와 이방인인 모압여인 룻과의 혼인,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 이새의 아버지이자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는 오벳이 나왔으며, 룻이 다윗의 조상으로 언급된 사실은 아무리 반복해서 언급해도 부족함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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