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

AI-Helper

이문구의 대표적 소설들에는 한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그 양상은 부분적으로 중복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르게 나타나면서 하나의 구조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초기 대표작인 `장한몽`과 같은 초기 소설들에서는 소외심리와 부정의식으로 점철된 탈향민들의 한이 서사 표면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반면에, 중기 대표작인 `관촌수필`에서는 작가 자신이 체험한 상실의 한으로 요약되는 정서가 점차 서사의 표면에서 화자에게 내면화되고 있음을 보인다. 후기 대표작인 `나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서는 앞에서 내면화 된 한을 주로 언술로...

이문구의 대표적 소설들에는 한의 정서가 흐르고 있다. 그 양상은 부분적으로 중복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르게 나타나면서 하나의 구조적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초기 대표작인 `장한몽`과 같은 초기 소설들에서는 소외심리와 부정의식으로 점철된 탈향민들의 한이 서사 표면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반면에, 중기 대표작인 `관촌수필`에서는 작가 자신이 체험한 상실의 한으로 요약되는 정서가 점차 서사의 표면에서 화자에게 내면화되고 있음을 보인다. 후기 대표작인 `나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서는 앞에서 내면화 된 한을 주로 언술로써 갈무리 하여 삭히고 승화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나 있다.
이러한 초.중.후기 소설에 나타난 한의 양상을 종합해보면 한의 흐름이 표면에서 내면으로 그리고 공간으로의 승화를 보이는 일종의 구조적 흐름을 띤다. 동시에, 이와 같은 한의 발생에서부터 해한에 이르는 구조적 양상은 각각의 텍스트 내에서도 보인다.
`장한몽`에서는 공동묘지 이관 작업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데, 저승의 문턱일수도 있고 세상의 문턱일 수도 있는 무덤에서 등장인물들이 자신들의 한을 언어로 토해 냄으로써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언어를 통한 소산이 이루어지고 나아가 한이 정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한의 맺힘과 풀이로서의 서사 구조인 것이다. `관촌수필`도 초반에서는 작가가 6.25 전쟁의 비극 속에서 겪은 외상을 방어하고자하는 심리기제에 의해 상실을 부정함으로써 한이 더욱 퇴적되고 응축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중반에서는 퇴행과 초월을 반복하는 사이에 상실의 한은 유토피아 지향으로 전위되며 서사의 표면에서 모습을 감춘다. 후반엔 상실감을 한층 더 내면화 시키는 한편, 현실의 속악한 변화에 대한 강한 반감의 표시로서 사람간의 불문율이 통하는 공동체를 대안세계로 제시함으로써 내면화된 상실감을 희석시키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즉, 응고되었던 한이 액화되고 삭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걸어왔다`에서는 가슴에 맺힌 여러 가지 유형의 응어리를 대화와 언술을 통해서 풀어내고 있는데, 웃음을 유발시키는 풍자와 어깃장으로 비판과 화해를 모색하고 있으며, 자기 긍정을 통해 스스로 응어리를 무화시키기도 한다. 그리고 가슴 뭉클한 웃음을 유발시키는 해학적 언술을 통해 인간 보편의 콤플렉스를 포용하고 그리움으로 승화시키는 양상을 보인다. 역시, 단단한 응어리를 풀어 기화시키는 구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논의한 이러한 구조를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데에는 이문구 소설에 특징적으로 나타나 있는 문체의 역할이 무엇보다도 크다.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한의 정서는 판소리 문체와 과거형 서술 어미체를 통해 구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의 정서가 문체와 결합하여 미학적인 성과로 나타나는 것은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한의 중요한 특징이다. 나아가 이문구 소설이 성취한 의미 있는 미학적 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