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적으로 이민 목회는 기반이 없다. 특히 애틀랜타 같은 급격한 인구 증가가 이어지는 지역은 더욱 그렇다. 어려서부터 그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가정을 이루어 그 2세들이 계속 그 교회를 섬기는 풍토가 교회를 건강하고 곧게 자라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대를 이어서 한 교회를 섬기는 것이야 말로 성경말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각종 이단 사상과 허탄한 신화들은 뿌리 없이 신앙 생활하는 유약한 성도들을 먹이 감으로 삼고 오늘날은 그런 것들이 신앙의 기준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과거 기독교의 발생과 이단의 분파를 찾아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후, 오순절에 예수살렘에서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전도로 시작한 교회는 유대 본국 내에 사는 유대인들로 이룩한 교회였다. 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을 준수하였고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일반적으로 유대 적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보아 나사렛파라고 불렀다. 그래도 이 나사렛파는 다른 유대 교파 화 본질적으로 다른 점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배척과 십자가의 죽으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고 그는 주검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할 것이요, 세상은 말세가 가깝다는 신앙에 서 있다. 교회의 발생과 이교의 세계로의 진출을 밝혀 주는 기본 사료는 아무래도 사도행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원래 이름은 없다. 오순절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발생에서 시작하여 사도 바울이 선교를 통한 로마 제국 수도 로마에서까지의 진출로 끝맺음을 염두에 둔다면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로마로 가는 길-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또 사도들만의 행전도 아니다. 전체의 2/6는 베드로의 선교, 3/6은 ...
현실적으로 이민 목회는 기반이 없다. 특히 애틀랜타 같은 급격한 인구 증가가 이어지는 지역은 더욱 그렇다. 어려서부터 그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가정을 이루어 그 2세들이 계속 그 교회를 섬기는 풍토가 교회를 건강하고 곧게 자라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대를 이어서 한 교회를 섬기는 것이야 말로 성경말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각종 이단 사상과 허탄한 신화들은 뿌리 없이 신앙 생활하는 유약한 성도들을 먹이 감으로 삼고 오늘날은 그런 것들이 신앙의 기준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과거 기독교의 발생과 이단의 분파를 찾아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후, 오순절에 예수살렘에서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전도로 시작한 교회는 유대 본국 내에 사는 유대인들로 이룩한 교회였다. 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을 준수하였고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일반적으로 유대 적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보아 나사렛파라고 불렀다. 그래도 이 나사렛파는 다른 유대 교파 화 본질적으로 다른 점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배척과 십자가의 죽으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고 그는 주검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할 것이요, 세상은 말세가 가깝다는 신앙에 서 있다. 교회의 발생과 이교의 세계로의 진출을 밝혀 주는 기본 사료는 아무래도 사도행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원래 이름은 없다. 오순절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발생에서 시작하여 사도 바울이 선교를 통한 로마 제국 수도 로마에서까지의 진출로 끝맺음을 염두에 둔다면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로마로 가는 길-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또 사도들만의 행전도 아니다. 전체의 2/6는 베드로의 선교, 3/6은 바울의 선교, 나머지 1/6은 평신도 지도자들, 또 이름 없는 평신도들의 선교 기록이다. 야고보와 요한의 이름이 나오나 야고보는 첫 순교자로, 요한은 베드로의 선교동역자로 나오고 그 외에 다른 사도들의 이름은 없다. 다른 사도들은 선교하지 않았다는 말은 물론 아닐 것이고 누가의 의도가 선교는 베드로 바울 같은 사도들만의 사명이 아니라 구원 얻은 모든 사람들이 다 책임져야 할 문제임을 시사하는 것 같다. 교회의 이방 진출의 교량 역할을 한 자들이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 신자들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나서 살며 세계를 호흡하여 그 시야가 넓을 뿐만 아니라 고국에 돌아와서 조상 전래의 신앙에 살던 자들이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이 유대교도들과의 충돌로 인하여 순교하게 되고, 사도들 외의 다른 교인들은 각기 다른 곳으로 피하여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런 이들 중 어떤 이들이 국경을 넘어 시리아의 안디옥에 와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세웠고 또 여기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제 1세기 교회의 최대의 의를 가진 사건이었다. 두 형태의 기독교, 유대인 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가 발생하여 발전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다. 이방인 기독교의 발전과 확장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난 디아스포라의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의 활동과 역사와 많은 관계가 있다. 그는 위대한 선교자로 로마 제국 내에 광범위하게 교회를 세워 뿐만 아니라 그가 세운 교회를 위하여 율법에서 해방된 순복음주의 기독교를 최초의 예루살렘 총회에서 승인하도록 하게 한 위대한 신학자이기도 하였다. 만약 이 예루살렘 총회에서 복음주의 기독교가 승인되지 못하였더라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요 따라서 세계적 종교로 발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바울의 승리로 기독교는 유대교와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다. A.D. 70년대 예루살렘은 로마의 디도(Titus)에 의하여 함락되고 동시에 국가로서의 유대 나라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유대주의 기독교는 급격히 쇠퇴하여 요단강 동편 시리아 지역에 국한되고 말 뿐만 아니라, 이방인 기독교의 눈에는 한 이단적 종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래는 이방인 기독교에 있었던 것이다. 이즈음 기독교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구라파 각지로 발전하였고 사도 바울 이전에 로마에까지 발전하였다. 물론 바울이 로마에 와서 최소한 2년간 비록 옥중에 갇히기는 하였지만 가이사의 집에 복음을 전 할 뿐더러 별로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전도 할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다. 모름지기 베드로도 로마에서 순교했을 것이나 그 연대에 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 없다. A. D. 60년 초기에 주의 동생 의인 야고보가 유대인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그는 예수의 생시에는 믿지 않았으나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 믿게 되었고, 베드로가 예수살렘을 떠난 후 예루살렘 교회 감독이 되었고 제 1차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를 사회하였다. 유대인들이 로마를 반하여 전란을 일으켰을 떄(A.D. 66-70) 예루살렘 교회는 전란을 피하여 요단강 동편 펠라(Pella)로 옮겼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일찍이 그 형제 야고보와 함께 순교했다고 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행전에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하여 누가 아무 취급도 안 한 것을 보아 신빙성이 적고 노년까지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교회의 지도자로 있다가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 시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전통적인 견해가 더 믿을만하다. 이단의 분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유대주의 기독교 사도행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시 기독교 시대에 이미 율법을 고수하는 유대주의 기독교가 있어서 바울을 배척하며 복음주의 기독교와 대립하였다. 후에 3파로 나뉘어 극단적인 에비온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고 그는 단순히 사람이나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는 예언자와 교사로서 구약성서의 율법을 더 엄격 화했으며 확대하였고 이적을 행하신 자라 한다, 보다 더 온건한 나사렛파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에서 수난하시고 부활하셨다고 한다. 율법은 유대인에게만 의무 일 뿐이다. 카톨릭 신앙과 일치하고 바울을 인정하나 히브리 복음서만 사용하였다. 유대주의 기독교는 5세기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2) 노스틱 이단 펄시아의 물질적 이원론과 플라톤적 정신적 이원론의 영향을 받은 이원론에 입각한 일종의 혼합 주의로 사변적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으나 구원을 목표로 한 종교를 자처하는 이단이다. 기독교 이전에 발생하였으나 기독교에 접근하여 교회 안에 들어와서 어지럽게 한 이단으로 예루살렘 첫 총회에서 율법과 복음주의의 충돌이 있은 후 교회가 당면한 최대의 이단이었다. 사톤니루스, 바실리데스, 발렌티누스 등이 그 대표적인 자들로서 이 우주는 신적 세계의 최하의 에온인 창조의 신이 신약성서의 최고의 선한 하나님을 대항할 목적으로 지었다. 그리스도는 최고 선한 하나님을 계시하는 에온 중 최선한 자나 죄악 된 육신을 입고 사람 된 자가 아니요, 사람인 것처럼 보였으나 십자가 지시기 직전 하늘의 그리스도는 올라가고 인간 예수만이 죽었다고 한다. (3) 말키온 이단 이 이단이 노스틱 이단에 속하느냐의 기부는 논쟁이 되었다.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점도 있어서 독자적인 자로 취급함이 옳다. 소아시아 시노페에서 생장한 부유한 선주의 아들이었다. 139년경 로마에 와서 교회에 가입하였으나 후에 교회가 순복음주위에서 떠났다 생각하고 바울의 순복음주의 신앙개혁운동을 일으켜 144년경 이단으로 정죄되고 교회를 갈라 나간 후 이들을 위하여 목회서신을 제한, 바울의 10서신과 율법적인 부분을 삭제한 누가복음으로 구성된 최초의 신약성서 캐논을 편찬하였다. 노스틱 이단처럼 이원론에 입각하여 구약성서와 구약의 하나님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나 구원을 지식으로가 아니라 신앙으로 얻는다 하며 진리의 원천은 그가 편찬한 신약성서 캐논이다. (4) 몬타누스 분파 비록 이단으로 몰리기는 했으나 분파로 봄이 옳다. 말키온 이단이 교회 안에서 신학적인 개혁운동을 하던 자임에 비하여 몬타누스는 교회 안에서 신학적인 개혁운동을 하던 자임에 비하여 몬타누스는 교회 안에서 타락한 신앙생활의 개혁운동을 일으키다가 몰린 자이다. 본래 부르기아 지방의 한 이교 제사장이었으나 기독교에 개종한 후 2세기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조속한 재림 신앙과 성령의 예언의 역사가 쇠퇴하고 신앙생활의 속화, 타락해 감을 분개하여 156년경 요한복음 14장에 의거하여 자기가 성령의 기관이라고 외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고 엄격한 금욕적인 신앙생활을 부르짖었다. 교회는 처음 이 운동에 대하여 어찌 할 바를 몰라 적지 아니한 곤란을 느꼈으나 그 신앙의 독선적인 것과 분파작용을 정죄하여 이단으로 몰아냈다. (5) 3,4 세기 이단과 분파 nobatian 분파: 팝박시의 배교는 최대의 죄로 되어 있었다. 자연히 이들의 교회복귀 문제가 논란이 안 될 수 없었다. 250년 decius 황제 때 슌교한 로마 교회의 감독 Fabian의 후임 선정을 계기로 노바티안 분파가 생긴 것이다. 교회는 관용주의자 Conelius를 선임하였다 이에 반재한 자가 노바티안이다. 그는 당시 로마 교회의 장로요 유명한 신학자로 터툴리안의 감화를 받아 신아의 엄격주의를 고수하였다. 사함 받지 못할 죄 (살인죄와 박해 시는 배교 죄, 평화 시는 간음죄) 지은 자를 교회에 용납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소수의 지지자들을 끌고 나가 그는 감독이 되었다. 비록 사함 받지 못할 죄와 받을 수 있는 죄라는 이름은 그대로 있으나 모든 죄는 다 사함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구별은 실질적으로 중죄와 경죄가 있을 뿐이었다. (6) Donatus 분파 이 파도 노바티안 분파처럼 교회의 도덕생활의 해이와 중죄자의 재 입교 문제에 관련되어 일어난 분파이다.Diocletian 황제 핍박시 4세기 초 북아프리카 Carthage에서 일어났다. 311년 핍박 시 성서를 핍박 시 성서를 핍박 자에 내준 자에 의해 caecilian이 새 감독으로 선임되자 엄격 파들이 그 무효를 부르짖으며 일어났다. 이들은 Majorinus를 감독으로 세웠고, 5세기 Vandal족이 아프리카에 침입해 들어왔을 때도 있었을 뿐 아니라 7세기 모슬렘(Moslem) 침입 시까지도 있었다. (7) Monarchian 이단 유일 신관과 상충되는 또 하나의 기독교 기본 신앙이 그리스도의 신성 신앙이었다. 따라서 교회는 내적으로 이 두 신앙의 대립을 해결해야 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 다신교의 세계에서의 오해와 비난을 풀어야만 했다. 이러한 곤란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나머지 이단으로 정죄된 자가 이 이단이다. 터울리안이 처음으로 이들을 모나키안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두 파로 갈린다. a)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 데오도투스가 이 설을 주창했으나 보다 더 유명한 대표자가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260-270) 사모사타의 바울이다. 자연히 이 운동은 동방에서 성하였다. 이들의 주창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동정녀의 몸에서 난 독특한 존재요 또한 하나님의 능력, 즉 로고스가 내재하여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임도 사실이다. 또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그 의지에 있어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된 것도 사실이나 그래도 본질적으로 그를 하나님과 하나라고 할 수는 없다. 이리하여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고 예배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본질적인 신성은 부정되었고 이렇게 해서 유일신 신앙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b) 형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pnarchanism) 역동적 단일신론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신성에서 출발하여 인성을 부전함으로 범신론적으로 유일신 신앙을 주창한 자가 이 이단이다. 이름난 대변자가 Neotus of Smyrna, Praxeas나 가장 유명한 자가 Sabellius이다. 그는 약 215년 로마에서 가르쳤다. 삼위일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범신론적으로 해석하여 개성을 부정함으로 유일 신관으로 돌아가게 하였다.여기서 우리는 이단의 가장 큰 특징을 3가지 정도로 압축해서 공통점을 찾아보면 첫째로 모두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로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는 것이다. 셋째로 성경이 기준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하나가 더 붙거나 하나가 모자라는 것이다. 첫째 경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깨닫거나 아는 것은 다 잡신이다. 성경 곳곳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올자가 한명도 없다고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며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게 하신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제쳐놓고 각종 세미나 , 각종 교육, 각종 프로그램, 사설 , 주술신앙, 무속신앙 , 음악 등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며 또 그 예배를 통하여 은혜 받았다고 하며 그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았고 예언의 은사를 받았으며 그로인해 그 사역을 감당한다며 종횡무진 다니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으로 자기를 자랑하며 들어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을 하며 바른 진리에서 떠나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미혹케하고 자기 배를 신으로 섬기고 물질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종이며 원망하며 불평하며 무리를 지어 당을 짓고 많은 숫자로 자기들의 사상과 목적을 관철 시키며 화려하게 교계 안에서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에 대한 진리 수호자들이 전무하며 있다 해도 훈련이 부족하여 대응할 수 없다. 혹간 바른 진리의 확장에 뜻을 품고 이에 맞서 싸우는 진리의 용사들이 생겨나지만 이내 자생력을 잃고 그들과 동화 되던가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뜻을 굽혀 비 진리 쪽에 서서 더 사악하게 지내는 자 들도 간혹 있다, 이곳 애틀랜타도 교회의 숫자와 교인들 간의 영적 성숙과는 전혀 별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진리수호를 위한 말씀선포가 언제나 강단을 통해서 쏟아져 나올 때 귀한 진리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및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사람의 마음에 생각과 심령을 감찰하신다. 그러나 말씀의 선포가 비 성경적이거나 희석되거나 목적이 영혼구원에 있지 아니하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에 증거 없이 일반적인 증거로 알 수 있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진리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리스예수를 통하지 않는 하나님의 그 어'떤 이름과 능력이라도 천국백성이 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매일 새벽기도하고 십일조 생활하고 교회에서 각종 방법으로 열심히 봉사하였다 할지라도 그 봉사한 것이 천국에 이르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저도 구원 못하고 남도 구원의 길에 서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오늘날 이민 교회의 병폐로서 교인은 많은데 중생한 영 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적은 현상이다. 하지만 어디엔가는 남은 자 칠천과 삼백용사가 있다고 확신한다. 둘째의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으로 알고 성경 속에서 무엇인가 일을 이루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우리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목적이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성경말씀을 적용하는 그 과정도 우리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시작은 말씀으로 하였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서있기 마련이다. 우리교회, 우리목사님, 우리구역, 우리팀장 등 목적이 피조물인 사람이 되어있고 수단은 다분히 인본주의며 그 방법은 가히 성경적이다. 여기서 성경적이라라는 뜻은 성경을 잘 적용 시킨다는 말이다. 참으로 진리수호의 목적을 가진 성경적이라 함은 성경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것이다. 더불어 죽으라하면 죽고 살리실 때에 그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다. 그런데 피조물인 사람이 영광의 결국에 가 서있고 피조물인 자연이 보호의 대상이 되며 피조물인 짐승들이 사람보다 더 존 귀히 여김을 받는 해괴한 시절을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럴 때 모든 피조물들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말씀에 의해서 죽으셨던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부활하셨다. 주님께서는 말씀대로 하늘로 올 리우셨으며 또 말씀대로 하나님의 때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이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오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단사교 또 많은 이민교회의 문제점들이 이런 말씀에 관심과 말씀을 지키려고 진력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체교회를 갖고 11시 1부 예배를 드릴건가에 목을 맨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1부 예배를 11시에 드리는 교회는 자체교회를 갖고 있는 교회며 그것은 즉 재정적으로 자립도가 높거나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라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많은 교인들은 뿌리 없이 이런 안정과 부담 없는 교회생활을 위해 떠돌아 다니고 있으며 이런 속에서 교인들 간의 많은 문제점들이 시비를 일으키는 부작용 또한 매우 크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더욱 부담을 지기 싫어 큰 교회를 찾아간다. 이는 또 다른 교회의 생성을 조장하며 더 큰 교회는 더욱 더 큰 교회로 양적 팽창을 꽤한다. 그러나 그 속은 멤버 쉽이다. 이 멤버쉽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수 없음에도 많은 이들이 평안을 느낀다. 결론을 돕기 위해 좀 더 이런 이단들 또는 이단성향이 농후한 사교들에 대처하는 교회도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처하는 교회들은 3가지 표준을 세우고 그것으로서 이단 시비를 가리는데 기준을 삼았다. 그 3가지는 첫째) 모든 그리스도인의 교설은 12사도와 바울에 조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구원의 필수조건이요, 교회의 본질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느 것이 사도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교훈이냐 하는 문제가 생겨서 사 복음서를 들었다. 영감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사도적인 기원에서였다. 왜냐하면 이단들도 성령의 계시를 주창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단을 막을 수 없었다.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얼마든지 그 뜻을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사도 적 전승 세례 전 (Baptismal Formula) 이레네우스는 다시 사도 적 전승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단들은 사도적 전승을 주창하였기 때문에 그는 옛 로마신조(the Old Roman Symbol)를 들었다. 이 신조는 그 기원을 2세기 초부터 3세기 초로 학자들이 추정하는데 오늘의 사도신경의 전신이다. 그러나 여기도 문제가 있었다. 셋째) 감독의 권위. 일찍이 안디옥 교부 이그나티우스도 감독의 권위를 강조하여 "감독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하였다. 이레네우스는 최후로 감독의 권위에 호소하였다. 사도 적 권위를 안수로 계승한 감독 하에 사도 적 전승인 말씀이 순수하게 전해지는 동시에 사도 적 전승인 교리가 순수하게 지켜지며 성도의 생활에 엄격하여 교회생활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회개하고 돌아서는 자에게는 고해를 조건으로 모두 다 받아주는 어머니로서의 교회였다. 로고스 기독교 론의 승리: 단일신론 자들 특히 형태론적 단일신론 자들의 운동은 교회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왔다. 교회는 로고스 기독론을 들고 나와 이들과 대결하였는데 그 대표자들이 서에는 터툴리안, 동에는 오리겐이다. 기독론에 있어서 그는 로고스 기독론을 주창하여 역동적 단일 신론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 형태론적 단일신론에 대하여는 삼위의 개성의 구별을 명확히 하였다. 따라서 그의 기독론은 두 방향 다른 종속사상(subordinationism)과 영원한 산출을 주창하여 후일 니케아 논쟁(325)의 발판을 제공하였다. 왜냐하면 전자는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종속을, 후자는 절대 동등(co-eyernity co-essence)을 뜻하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로고스 기독론을 가장 열렬하게 대변하여 단일신론 자들을 반대한 자가 히폴리투스(Hippoltus)이다. 감독 제피리누스(Zephyrinus)는 형태론적 단일신론에 기울어졌으나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 후계자인 정력적인 칼리스토스(Kallistos) 자신도 형태론적 단일신론 자였다. 하지만 로고스 기독론과 단일신론 분쟁은 교회를 해치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음을 보고 사벨리우스를 파문하고 (217) 히폴리투스를 두 신 숭배자라 비난하고 타협안을 시도하였다. 선재한 로고스야말로 그리스도 안에 내재한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나눌 수 없는 한 신의 세 다른 이름이라 하였다. 누가 보든지 불만족한 타협안이었으나 분쟁에 지친 교인 대다수가 환영하였고 또 이 타협안이 후일 로고스 기독론의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게 한 길잡이가 되었다. 특히 노스틱 이단은 교회가 그 초기에 만난 최대의 이단이었다. 이들을 막기 위하여 교회는 어떤 때는 도덕생활을 표준으로 세웠다. 그러나 이단들 가운데는 교인들보다 높은 도덕을 유지하는 자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이들과 가장 격렬하게 싸운 이가 이레네우스(Irenaeus)이다. 그는 소아시아에서 생장하여 서마나의 폴리갑의 제자가 되었다. 후에 가울로 가서 화를 면하였고 돌아온 후 순교한 포티누스를 이어 감독이 되었다. 그는 요한과 안디옥의 교부 이그나티우스와 가톨릭 교회의 사상을 연결하여 후세의 로마 가톨릭 교회 신학의 기초를 놓은 자이다. 앞서 말한 과거의 이단 사설들을 지금에 와서는 각종 문화와 인정 또는 관습에 얽매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천주교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것을 가납하여 많은 이로 하여금 유혹의 올무를 못 보게 하며 마지막대에 더욱 득세할 사탄의 본산지가 될 것이다. 그네들은 종교 집단이 아니라 이미 정치 집단으로 변모를 꾀했으며 각 나라의 자체적으로 교황청의 대사를 파견하고 있다. 또한 각종 이권에 개입하거나 민주주의를 표방하여 어려운 개인이나 단체 국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왜곡시켜 결국 마귀의 자식이 되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엄청난 세력에 눌려 감히 항변이나 저항을 하지 못하며 수수방관하는 자리에 서있다. 이런 아니한 정신 상태를 가진 우리 개신교 내부에도 각종 문화와 첨단 유행을 따르려는 한심한 자태가 이곳 애틀란타에도 많이 생겨났다. 애틀란타 기독 남성 합창단이 생겨나 취미 문화 오락의 삶의 질을 높게 선도했다. ( 각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 전문가들로 조직되어 기독교 신문과 기독교 음악인 단체의 협찬을 받아 교회를 빌려 연주회를 함. 광고 뉴스 투데이 2004년 10월 22일자 신문 9면) 리빙 워쉽 미니스트리가 이끄는 2004 애틀란타 리빙 워쉽이 23일 애틀란타 제일 장로교회서 개최된다. 리빙 워쉽은 콘서트와 예배가 일치하는 삶을 살기운한 각성운동으로 이미 노스캐롤라이나와 캐나다, 그리고 지난 2일 시카고 헤리티지 센터에서 집회를 가진바 있다. 이 기사는 온세대가 함께하는 예배 콘서트라는 기사다. 이곳 조지아에서 PCA교단중 가장 큰 제일 장로교회에서 일 년에 몇 차례씩 하는 콘서트의 또 다른 행사계획이다. 이번 집회는 캐나다, 뉴욕, 보스톤, 워싱톤 등지의 전문 음악사역자 20여명과 150명의 지역 합창단이 대거 참가하며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이르는 다양한 음악 장르가 연주될, 특히 지역 자체 행사로는 시스템과 장비 그리고 출연진에서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리빙워쉽 미니스트리는 2년전 뉴욕 뉴져지드의 동부 지역에서 시작, 현재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주와 한국 그리고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를 향해 사역의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선교문화 단체로 전 연합장로교회 박지노 음악 선교사가 총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크리스챤들의 실생활과 예배가 다른 삶을 지내고 있는 것에 착안 이를 일치시키겠다는 뜻에서 결혼 직후 구체화시키게 됐다." 는 박 선교사는 "조직이란 개념보다는 삶과 예배가 일치하는 '삶의 예배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청년 문화 사역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리빙워쉽 미니스트리는 세대 간 언어문화의 갭을 뛰어넘기 위해 1,2세 합동 예배를 가진바 있으며 연 6회 에 달하는 대형집회를 주도하는 한편 지역의 작은 교회를 돕는 사역에도 동참하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교회에서는 콘서트 하는 것이 아니며 콘서트를 통하여 출연진의 최고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더더욱 예배 콘서트라는 신조어를 만들 어 또 다른 사교를 조정하는데 일조 하는 것은 더욱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출연진 모두가 선교사, 교회중진 등 지도자 들이며 그 대상은 주로 청소년들에게 있고 물량주의를 자랑거리로 내세우며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 사업으로 자리를 잡게 하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거짓으로 많은 이들을 미혹케 한다. 분별력 없는 초 신자들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런 대형 콘서트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며 나름대로 은혜를 받았다고 자위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교이며 마귀의 또 다른 부드러운 술책에 불과하다. 핍박과 탄압이 있으면 그리스도인들은 강해진다. 그러나 회유와 부드러운 문화에는 약한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이다. 특히 교회지도자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며 스스로 분별력이 없어 많은 교인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뉴욕 밀알 선교합창단 찬양 대축제"를 애틀랜타 제일 장로교회 창립 28주년 초청으로 공연을 하며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찬양을 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로했다. 이 공연을 통하여 최고의 수혜자는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한다. 말은 최고의 하나님께 라고 하지만 그 저의는 사람에게 있고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뉴욕 카네기홀 공연실황을 큰 사진으로 박아 광고를 하지만 결국 최고 수혜자는 하나님도 아니고 장애인은 더더욱 아니며 관람객이나 출연진이나 거기에 이름을 내건 사람들만 즐거울 뿐이다. (한국 주간 2004년 10월 25일자 광고 17면) 목회자 세미나 개최 잠재능력 개발에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를 강조함. 2004 년 애틀랜타 복음화대회 3일째인 지난 16일 오전 10시 30분 영락장로교회에서는 150여명의 목회자 교역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LA동양 선교교회 강준민 담임 목사를 초빙하여 "목회자의 자기개발"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강준민 목사는 이날 세미나를 통해 목회자의 기본 일곱 가지 실력 준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1.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통하는 능력. 2. 어느 환경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상황 적응 능력. 3. 꾸준한 자기개발 능력. 4. 존재해 있는 것에 대한 창조적 능력. 5. 사람과의 교섭능력. 6. 쉽게 사람을 얻을 수 있는 표현 능력. 7. 학습능력 등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잠재 되어있는 자기 개발에 필요한 지식과 지능의 지성 능력, 감선능력,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 유지, 성령의 능력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는 영성 준비, 넒은 대인 관계기술 능력, 큰 목표설정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는 행동 후원 미치 격려차 양성관계 정립 난관 속에서도 지켜가는 목표의식 작은 목표달성시의 자기 격려 의지력 강화 통달의 원리 등 의 노력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긍정적인 자기 개발을 위한 자아상 확립 13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자신의 축복을 헤아릴 것 2) 좋은 이미지 구축. 3) 성공담이 담긴 양서 독서. 4) 훌륭한 교사, 목회자 지도자들의 강의 경청. 5) 건전한 자기 이미지 확립6) 웃음과 칭찬의 명수 7)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 실천 8) 건전한 사람들과의 교제. 9) 자신의 장점 확인. 10) 자신의 성공사례 목록 만들기. 11)자신의 부정적 영향을 주는 모든 것 제거. 12) 실패 속에서 교훈 얻기. 13) 뚜렷한 목표자 등을 강조했다. 또한 강준민 목사는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점들은 영적인 문제보다는 교회 목회자 사역의 리더쉽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민 사회의 고난 속에서 형성된 부정적인 모든 자아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가운데 자신감에 찬 목회자 사역을 통해 교회와 목회자 및 모든 성도들이 함께 살아 생동하는 현실을 가져 달라."고 강조했다. (한국주간 2004년 10월25일27면기사 ) 위의 기사 내용처럼 영적 지도자들이 세미나를 가졌다. 그 내용은 축복과 좋은 것 실패에 대한 경험 현실적인 것 땅에 것들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천상에 것 주님의 것 신령한 것들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목회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고 그룹으로 몇 십 명이 모여 주님의 보혈을 계승 발전하기 보다는 배를 채우는데 온 노력을 다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의 모임이니까 그들의 모임이 크리스챤들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현실이다. 물론 이민 사회라는 특수성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나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 인생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말씀으로만 자랄 수 있으며 오직 성신님의 깊으시고 선하신 뜻 가운데 영에 양식인 말씀을 또한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먹을 때에만 자란다. 특히나 이 행사의 부흥강사를 자랑하는 대목에 있어서는 4평짜리 천막교회와 30년 만에 1만 명의 성도를 자랑하는데 있다. 결국 피조물들의 자랑 뿐이다.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보혈은 자랑되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 기념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흑암세력의 궤계를 깨닫지 못한다. 최첨단 문화가 그리스도를 아는 길목에 서서 우리를 호리고 있음에도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은 크리스챤들은 영적 전쟁에서 질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 세상 속으로 "'JESUS Celebration 2004' 개최 조지아주 한인 침례교회협의회가 주최하는 'JESUS Celebration 2004'가 10월 8일~10월 10일 오후 7시 30분 애틀랜타 한인 침례교회에서 개최됐다. 지난 2000년도부터 개최해 온 '예수축제' 는 올해 김두화 목사를 강사로 초빙 '우리 모두 세상 속으로' 라는 주제로 3일간 풍성한 말씀과 찬양 잔치를 가졌다. 조지아주 한인 침례교회협의회 원 천호 회장은 지난 10일 환영사에서 "이번 예수 축제를 기회로 조지아주 모든 침례교회가 다시 한 번 복음의 열정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며 "예수잔치에 참여한 모든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특히 협회는 지난 10일 2004예수 축제 마지막 날 정 인수 애틀랜타 한인교회협의회장과 김 성엽 애틀랜타 총영사, 김도현 애틀랜타 한인회장 등의 조지아지역 한인 지도자를 초청했다. 이날 김 성엽 총영사는 "한인들은 모범적인 가정을 기초로 미국 시민으로서 미 주류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 며 "교회는 한인 사회 속으로 한인 사회는 미 주류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같은 날 예수 축제 초청 강사 김 두화 목사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명' 이란 제목으로 "침례교회를 비롯한 각 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갖고 있다" 며 "우리들은 먼저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선교의 사명을 완수해야한다" 고 설교했다. 협회는 10월9일 오전 10시~12시에 김 목사가 '선교와 지역교회'라는 주제로 강의 했으며 매 집회 시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자녀들을 위한 특별 '어린이 부흥회' 를 개최, 어린이들이 부모와 동시에 말씀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조지아주에는 현재 38개 침례교회가 있으며 애틀랜타에만 30개 침례교회가 위치해있다.( 주간 동남부 2004년 10월 15일자 B10면 기사) 위의 기사 내용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많은 침례 교도들이 행사를 했다. 이 행사는 예수 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행해지고 있지만 그 축제 이후의 결과의 대해서는 어디에도 언급이 없다. 또 다른 기사에는 미주 다일 공동체가 일명 '밥퍼' 사역으로 사랑을 나누어 온 다일공동체의 미주본부 '밥퍼' 행사에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참여, 따뜻한 정을 나눴다. 지난 9일(토)오후 3시 30분부터 애틀랜타 유니온 미션 센터에서는 예닮 교회와 한인 천주교회 청년부 한인교회 연합장로교회 신도 등이 참여 홈리스 여성가장들을 위해 치킨 윙과 콜 슬로우 에그 롤 음료수와 오렌지의 저녁식사 150여 인분을 마련 따뜻한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다일공동체 미주본부는 지난봄부터 한 달에 2회씩 남성홈리스들과 여성홈리스들을 위해 '밥퍼' 행사를 가졌으며 이 날 행사는 혼터힐 침례교회의 대니윌슨 목사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메트로 애틀랜타에 3개 구제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애틀랜타 유니온 미션이 주최한 제25주년 '자원봉사자 감사의 날' 행사가 당일 오후 12시 카펜터스 직업훈련소에서 개최돼 그동안 '밥퍼' 사역을 진행해온 다일공동체 미주본부 박 종원 목사와 이 홍범 협동총무, 한인 교회 신도들인 송 관호 김 한주 집사가 감사패를 증정 받았다. 7년째 다일 공동체에 몸담아온 박 종원 목사는 "앞으로 한인과 히스패닉, 베트남인들까지 봉사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 며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알고 계속 봉사하겠다." 고 수상소감을 밝혔다.(주간동남부 2004년10월15일자 B36면) 위의 기사 내용처럼 사랑을 나눈다는 단체는 부지기수다. 특히, 크리스챤들이 도모하는 단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론 사랑의 한 방법의 무숙자들에게 한 끼니 밥을 제공 하는 것도 유익하다. 또 한 끼니 밥을 제공하지 못하는 많은 크리스챤들도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밥 한 끼에 있지 않다. 그런저런 행사를 통한 또 다른 수혜자가 생길 우도 있다. 특히나 이런 단체들의 속성은 끊임없이 그 세력을 확장 지속하는데 있으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대 내외적인 홍보를 조직적이며 과학적으로 잘하고 있다. 결국 모든 기관 단체의 행사 속에 다른 수혜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밀알 선교단 4회 일일찻집 개최 "밀알 일일 찻집은 훈훈한 사랑이 흐르는 공간입니다." 애틀랜타 밀알 선교 단 기금마련을 위한 제 4회 '밀알 일일 찻집' 이 지난 9일 애틀랜타 한인들의 큰 호응아래 열렸다. 이날 일일 찻집에는 장애우 가족과 자원봉사자 많은 한인 고객들이 방움 차와 다과 등 풍성한 먹 거리를 즐기며 정담을 나눴다. 일일 찻집 네는 커피 등의 각종 차와 떡이 제공 됐으며 밀알 어머니회가 직접 요리한 부침개 떡볶이 오뎅 만두 등이 고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선교 단은 매주 열리는 '사랑의 교실' 장애우 학생 글이 직접 제작한 '핑걸 프린트' '그림' '커피 잔' 등을 전시 했으며 고객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일일찻집 공간에는 안 나래 황 혜인 이 혜준 이 희현 등의 장애우 학생들이 제작한 가족 그림이 벽에 전시 찻집을 찾은 고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사랑의 어머니회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밀알 어머니회를 도와 음식을 만들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날 주방에서 다과를 준비한 김 은선 자원봉사자는 "일년 넘게 밀알 센터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다" 며 "일일 찻집을 방문한 장애우 가족과 많은 친구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선교 단은 오는 12월1~2일 애틀랜타 한인교회에서 본국 이제서 박사 초청 장애우 복음 전파를 위한 제 5회 밀알의 밤을 개최할 계획이다.(주간 동남부 2004년 10월 15자B34면 기사) 밀알 선교단은 유명한 단체다. 장애인들을 위하여 수고하는 좋은 기독교 단체다. 그러나 온 지구가 요란하게 다 알게 떠든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한, 흑 갈등 해소에 공헌 W. C. C, 고 지 형석 목사에 특별 평화상 추서 되었다. 아시안 아메리칸 센터 창립자인 고 지형석 목사가 한 흑 갈등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교회 협의회가 선정한 스페셜 피스메이커 상에 추서됐다. 세계교외협의회2004년도 연례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오후 8시 다운타운에 위치한 시프토릭 에반에셀 침례교회에서 "평화의 힘과 약속"이라는 주제로 거행된 워쉽 서비스와 시상식에는 전 애틀랜타시장과 UN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앤드류 대사가 기조연설을 했으며 W. C. C. 회장인 버니스 파월잭슨 박사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온 W. C. C. 교계지도자들이 참여했다. 1937 년 교계지도자들의 합의하에 창설돼 인종과 국경을 초월 세계1백여 개국에 걸쳐 3백4십여 교회와 종파들이 4억 기독교인들을 대변해 온 세계교회협의회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의 10년간을 폭력 극복의 기간으로 규정하고 교회가 화해와 평화에 앞장 설 것을 촉구했다. 니알 스페셜 피스메이커로 선정된 10인의 수상자들은 Adopt a Minefiled와 위기 가정의 어머니와 자녀들을 지원해온 Hagar House Guns For Safety프로그램 등으로 21년간을 헌신해온 Concerned Black Clergy Of Great Atlanta난민들과 이민자들을 위해 일해 온 호담 오즈만등 대부분 애틀랜타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 단체들이며 고지형석 목사만이 유일한 개인 수상자로 추서됐다. 인종을 초월, 애틀랜타에서 헌신했던 고 지 목사는 지난 96년에는 흑인 성직자들로부터 지난 97년에는 메트로폴리탄 기독인 협회로부터 탁월한 커뮤니티 관계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노크로스 소재 아시안 아메리카센터의 창립자와 코디 렉터로 커뮤니티를 위해 헌신했었다. 시상식에는 고 지 형석 목사의 부인이기도한 아시아아메리칸 센터의 지수예총무가 수상식에 참석했다.(주간 동남부 2004년 10월 15일 B18면) 좋은 일을 살아생전에 한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고마움의 표시를 받는다. 물론 삶의 모범이 되고 기준이 되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해결해주는 좋은 일이지만 그 모든 선행의 실체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이어야 한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그리스도만 기념하라고 했으며 또 다른 외식 자들에게는 저가 이미 자기상을 받았느리라 라고 질책하고 계신다. 우리는 믿음의 용서로서 주님의 사랑만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상급을 바라보며 선한 양심을 잘 세워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항상 성령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명령에 예민하게 반응 하고 또 이미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으로 조명하시는 그대로 성도로서 삶을 살려고 애써야 하겠다. 좁은 문으로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 말씀 밖에 넘어 가지 말고 언제나 깨어있는 신앙을 잘 준비 하여야 하겠다. 복음이 변질된 이 마지막 때는 인본주의와 세속주의가 믿음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이때 혼합주의와 기복주의가 거침없이 넘쳐나며 신비주의가 강하게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건 죽도록 충성하여 주님께 향한 마음이 갈리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며 곧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겠다.
현실적으로 이민 목회는 기반이 없다. 특히 애틀랜타 같은 급격한 인구 증가가 이어지는 지역은 더욱 그렇다. 어려서부터 그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가정을 이루어 그 2세들이 계속 그 교회를 섬기는 풍토가 교회를 건강하고 곧게 자라게 하는데 필요한 것이다. 대를 이어서 한 교회를 섬기는 것이야 말로 성경말씀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다. 각종 이단 사상과 허탄한 신화들은 뿌리 없이 신앙 생활하는 유약한 성도들을 먹이 감으로 삼고 오늘날은 그런 것들이 신앙의 기준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과거 기독교의 발생과 이단의 분파를 찾아보면 "예수의 십자가 사후, 오순절에 예수살렘에서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사도들의 전도로 시작한 교회는 유대 본국 내에 사는 유대인들로 이룩한 교회였다. 그들은 성전을 중심으로 율법을 준수하였고 따라서 그들의 신앙은 일반적으로 유대 적이었다. 그러므로 당시 유대인들은 기독교를 유대교의 한 종파로 보아 나사렛파라고 불렀다. 그래도 이 나사렛파는 다른 유대 교파 화 본질적으로 다른 점들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배척과 십자가의 죽으심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메시아로 믿었고 그는 주검에서 부활하여 승천하셔서 지금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시고 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할 것이요, 세상은 말세가 가깝다는 신앙에 서 있다. 교회의 발생과 이교의 세계로의 진출을 밝혀 주는 기본 사료는 아무래도 사도행전이다. 그러나 사도행전은 원래 이름은 없다. 오순절 예루살렘에서의 교회의 발생에서 시작하여 사도 바울이 선교를 통한 로마 제국 수도 로마에서까지의 진출로 끝맺음을 염두에 둔다면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행전의 가장 알맞은 이름은 -로마로 가는 길-이라 해야 옳을 것 같다. 또 사도들만의 행전도 아니다. 전체의 2/6는 베드로의 선교, 3/6은 바울의 선교, 나머지 1/6은 평신도 지도자들, 또 이름 없는 평신도들의 선교 기록이다. 야고보와 요한의 이름이 나오나 야고보는 첫 순교자로, 요한은 베드로의 선교동역자로 나오고 그 외에 다른 사도들의 이름은 없다. 다른 사도들은 선교하지 않았다는 말은 물론 아닐 것이고 누가의 의도가 선교는 베드로 바울 같은 사도들만의 사명이 아니라 구원 얻은 모든 사람들이 다 책임져야 할 문제임을 시사하는 것 같다. 교회의 이방 진출의 교량 역할을 한 자들이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 신자들이다. 이들은 해외에서 나서 살며 세계를 호흡하여 그 시야가 넓을 뿐만 아니라 고국에 돌아와서 조상 전래의 신앙에 살던 자들이다. 그 중의 한 사람인 스데반이 유대교도들과의 충돌로 인하여 순교하게 되고, 사도들 외의 다른 교인들은 각기 다른 곳으로 피하여 가서 거기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이런 이들 중 어떤 이들이 국경을 넘어 시리아의 안디옥에 와서 유대인과 이방인들로 구성된 교회를 세웠고 또 여기서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것은 제 1세기 교회의 최대의 의를 가진 사건이었다. 두 형태의 기독교, 유대인 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가 발생하여 발전하는 것을 의미 하는 것이다. 이방인 기독교의 발전과 확장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난 디아스포라의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의 활동과 역사와 많은 관계가 있다. 그는 위대한 선교자로 로마 제국 내에 광범위하게 교회를 세워 뿐만 아니라 그가 세운 교회를 위하여 율법에서 해방된 순복음주의 기독교를 최초의 예루살렘 총회에서 승인하도록 하게 한 위대한 신학자이기도 하였다. 만약 이 예루살렘 총회에서 복음주의 기독교가 승인되지 못하였더라면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종파임을 면치 못했을 것이요 따라서 세계적 종교로 발전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바울의 승리로 기독교는 유대교와 완전히 갈라지게 되었다. A.D. 70년대 예루살렘은 로마의 디도(Titus)에 의하여 함락되고 동시에 국가로서의 유대 나라는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또한 유대주의 기독교는 급격히 쇠퇴하여 요단강 동편 시리아 지역에 국한되고 말 뿐만 아니라, 이방인 기독교의 눈에는 한 이단적 종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미래는 이방인 기독교에 있었던 것이다. 이즈음 기독교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구라파 각지로 발전하였고 사도 바울 이전에 로마에까지 발전하였다. 물론 바울이 로마에 와서 최소한 2년간 비록 옥중에 갇히기는 하였지만 가이사의 집에 복음을 전 할 뿐더러 별로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로이 전도 할 수 있었다. 그는 결국 로마에서 순교했다. 모름지기 베드로도 로마에서 순교했을 것이나 그 연대에 관해서는 정확히 아는 바 없다. A. D. 60년 초기에 주의 동생 의인 야고보가 유대인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그는 예수의 생시에는 믿지 않았으나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 믿게 되었고, 베드로가 예수살렘을 떠난 후 예루살렘 교회 감독이 되었고 제 1차 예루살렘 교회의 총회를 사회하였다. 유대인들이 로마를 반하여 전란을 일으켰을 떄(A.D. 66-70) 예루살렘 교회는 전란을 피하여 요단강 동편 펠라(Pella)로 옮겼다. 예수의 사랑하는 제자 요한은 일찍이 그 형제 야고보와 함께 순교했다고 하는 자도 있다. 그러나 행전에 이런 중대한 사건에 대하여 누가 아무 취급도 안 한 것을 보아 신빙성이 적고 노년까지 에베소를 중심으로 한 소아시아 교회의 지도자로 있다가 트라야누스 황제 치세 시 고령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전통적인 견해가 더 믿을만하다. 이단의 분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 유대주의 기독교 사도행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시 기독교 시대에 이미 율법을 고수하는 유대주의 기독교가 있어서 바울을 배척하며 복음주의 기독교와 대립하였다. 후에 3파로 나뉘어 극단적인 에비온파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고 그는 단순히 사람이나 요단강에서 세례 받으실 때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는 예언자와 교사로서 구약성서의 율법을 더 엄격 화했으며 확대하였고 이적을 행하신 자라 한다, 보다 더 온건한 나사렛파는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동정녀 탄생과 십자가에서 수난하시고 부활하셨다고 한다. 율법은 유대인에게만 의무 일 뿐이다. 카톨릭 신앙과 일치하고 바울을 인정하나 히브리 복음서만 사용하였다. 유대주의 기독교는 5세기에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2) 노스틱 이단 펄시아의 물질적 이원론과 플라톤적 정신적 이원론의 영향을 받은 이원론에 입각한 일종의 혼합 주의로 사변적 요소를 다분히 가지고 있으나 구원을 목표로 한 종교를 자처하는 이단이다. 기독교 이전에 발생하였으나 기독교에 접근하여 교회 안에 들어와서 어지럽게 한 이단으로 예루살렘 첫 총회에서 율법과 복음주의의 충돌이 있은 후 교회가 당면한 최대의 이단이었다. 사톤니루스, 바실리데스, 발렌티누스 등이 그 대표적인 자들로서 이 우주는 신적 세계의 최하의 에온인 창조의 신이 신약성서의 최고의 선한 하나님을 대항할 목적으로 지었다. 그리스도는 최고 선한 하나님을 계시하는 에온 중 최선한 자나 죄악 된 육신을 입고 사람 된 자가 아니요, 사람인 것처럼 보였으나 십자가 지시기 직전 하늘의 그리스도는 올라가고 인간 예수만이 죽었다고 한다. (3) 말키온 이단 이 이단이 노스틱 이단에 속하느냐의 기부는 논쟁이 되었다. 많은 공통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점도 있어서 독자적인 자로 취급함이 옳다. 소아시아 시노페에서 생장한 부유한 선주의 아들이었다. 139년경 로마에 와서 교회에 가입하였으나 후에 교회가 순복음주위에서 떠났다 생각하고 바울의 순복음주의 신앙개혁운동을 일으켜 144년경 이단으로 정죄되고 교회를 갈라 나간 후 이들을 위하여 목회서신을 제한, 바울의 10서신과 율법적인 부분을 삭제한 누가복음으로 구성된 최초의 신약성서 캐논을 편찬하였다. 노스틱 이단처럼 이원론에 입각하여 구약성서와 구약의 하나님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나 구원을 지식으로가 아니라 신앙으로 얻는다 하며 진리의 원천은 그가 편찬한 신약성서 캐논이다. (4) 몬타누스 분파 비록 이단으로 몰리기는 했으나 분파로 봄이 옳다. 말키온 이단이 교회 안에서 신학적인 개혁운동을 하던 자임에 비하여 몬타누스는 교회 안에서 신학적인 개혁운동을 하던 자임에 비하여 몬타누스는 교회 안에서 타락한 신앙생활의 개혁운동을 일으키다가 몰린 자이다. 본래 부르기아 지방의 한 이교 제사장이었으나 기독교에 개종한 후 2세기의 교회가 그리스도의 조속한 재림 신앙과 성령의 예언의 역사가 쇠퇴하고 신앙생활의 속화, 타락해 감을 분개하여 156년경 요한복음 14장에 의거하여 자기가 성령의 기관이라고 외치면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고 엄격한 금욕적인 신앙생활을 부르짖었다. 교회는 처음 이 운동에 대하여 어찌 할 바를 몰라 적지 아니한 곤란을 느꼈으나 그 신앙의 독선적인 것과 분파작용을 정죄하여 이단으로 몰아냈다. (5) 3,4 세기 이단과 분파 nobatian 분파: 팝박시의 배교는 최대의 죄로 되어 있었다. 자연히 이들의 교회복귀 문제가 논란이 안 될 수 없었다. 250년 decius 황제 때 슌교한 로마 교회의 감독 Fabian의 후임 선정을 계기로 노바티안 분파가 생긴 것이다. 교회는 관용주의자 Conelius를 선임하였다 이에 반재한 자가 노바티안이다. 그는 당시 로마 교회의 장로요 유명한 신학자로 터툴리안의 감화를 받아 신아의 엄격주의를 고수하였다. 사함 받지 못할 죄 (살인죄와 박해 시는 배교 죄, 평화 시는 간음죄) 지은 자를 교회에 용납하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소수의 지지자들을 끌고 나가 그는 감독이 되었다. 비록 사함 받지 못할 죄와 받을 수 있는 죄라는 이름은 그대로 있으나 모든 죄는 다 사함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구별은 실질적으로 중죄와 경죄가 있을 뿐이었다. (6) Donatus 분파 이 파도 노바티안 분파처럼 교회의 도덕생활의 해이와 중죄자의 재 입교 문제에 관련되어 일어난 분파이다.Diocletian 황제 핍박시 4세기 초 북아프리카 Carthage에서 일어났다. 311년 핍박 시 성서를 핍박 시 성서를 핍박 자에 내준 자에 의해 caecilian이 새 감독으로 선임되자 엄격 파들이 그 무효를 부르짖으며 일어났다. 이들은 Majorinus를 감독으로 세웠고, 5세기 Vandal족이 아프리카에 침입해 들어왔을 때도 있었을 뿐 아니라 7세기 모슬렘(Moslem) 침입 시까지도 있었다. (7) Monarchian 이단 유일 신관과 상충되는 또 하나의 기독교 기본 신앙이 그리스도의 신성 신앙이었다. 따라서 교회는 내적으로 이 두 신앙의 대립을 해결해야 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 다신교의 세계에서의 오해와 비난을 풀어야만 했다. 이러한 곤란한 문제의 해결을 시도한 나머지 이단으로 정죄된 자가 이 이단이다. 터울리안이 처음으로 이들을 모나키안이라고 불렀다. 이들은 두 파로 갈린다. a) 역동적 단일신론(Dynamic Monarchianism) 데오도투스가 이 설을 주창했으나 보다 더 유명한 대표자가 안디옥 교회의 감독이었던 (260-270) 사모사타의 바울이다. 자연히 이 운동은 동방에서 성하였다. 이들의 주창에 의하면 그리스도는 동정녀의 몸에서 난 독특한 존재요 또한 하나님의 능력, 즉 로고스가 내재하여 도덕적으로 완전한 자임도 사실이다. 또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그 의지에 있어서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가 된 것도 사실이나 그래도 본질적으로 그를 하나님과 하나라고 할 수는 없다. 이리하여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할 수 있고 예배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본질적인 신성은 부정되었고 이렇게 해서 유일신 신앙을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b) 형태론적 단일신론(Modalistic Mpnarchanism) 역동적 단일신론과는 반대로 그리스도의 신성에서 출발하여 인성을 부전함으로 범신론적으로 유일신 신앙을 주창한 자가 이 이단이다. 이름난 대변자가 Neotus of Smyrna, Praxeas나 가장 유명한 자가 Sabellius이다. 그는 약 215년 로마에서 가르쳤다. 삼위일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범신론적으로 해석하여 개성을 부정함으로 유일 신관으로 돌아가게 하였다.여기서 우리는 이단의 가장 큰 특징을 3가지 정도로 압축해서 공통점을 찾아보면 첫째로 모두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이다. 둘째로 성경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하는 것이다. 셋째로 성경이 기준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무언가 하나가 더 붙거나 하나가 모자라는 것이다. 첫째 경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될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 깨닫거나 아는 것은 다 잡신이다. 성경 곳곳에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올자가 한명도 없다고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시며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17장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여주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라도 잊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게 하신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성경을 제쳐놓고 각종 세미나 , 각종 교육, 각종 프로그램, 사설 , 주술신앙, 무속신앙 , 음악 등을 통해 하나님께 예배한다고 하며 또 그 예배를 통하여 은혜 받았다고 하며 그 은혜를 통하여 하나님의 직통계시를 받았고 예언의 은사를 받았으며 그로인해 그 사역을 감당한다며 종횡무진 다니는 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그들은 자기들의 입으로 자기를 자랑하며 들어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을 하며 바른 진리에서 떠나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미혹케하고 자기 배를 신으로 섬기고 물질을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독종이며 원망하며 불평하며 무리를 지어 당을 짓고 많은 숫자로 자기들의 사상과 목적을 관철 시키며 화려하게 교계 안에서 버젓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이 보다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이런 것들에 대한 진리 수호자들이 전무하며 있다 해도 훈련이 부족하여 대응할 수 없다. 혹간 바른 진리의 확장에 뜻을 품고 이에 맞서 싸우는 진리의 용사들이 생겨나지만 이내 자생력을 잃고 그들과 동화 되던가 포기해 버리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뜻을 굽혀 비 진리 쪽에 서서 더 사악하게 지내는 자 들도 간혹 있다, 이곳 애틀랜타도 교회의 숫자와 교인들 간의 영적 성숙과는 전혀 별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진리수호를 위한 말씀선포가 언제나 강단을 통해서 쏟아져 나올 때 귀한 진리의 말씀이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 혼과 영과 관절과 및 골수를 찔러 쪼개기 까지 하며 사람의 마음에 생각과 심령을 감찰하신다. 그러나 말씀의 선포가 비 성경적이거나 희석되거나 목적이 영혼구원에 있지 아니하다면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 예수에 증거 없이 일반적인 증거로 알 수 있는 일반적인 하나님의 진리이다. 그러나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그리스예수를 통하지 않는 하나님의 그 어'떤 이름과 능력이라도 천국백성이 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매일 새벽기도하고 십일조 생활하고 교회에서 각종 방법으로 열심히 봉사하였다 할지라도 그 봉사한 것이 천국에 이르게 하는 이유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저도 구원 못하고 남도 구원의 길에 서지 못하게 한다. 이것이 오늘날 이민 교회의 병폐로서 교인은 많은데 중생한 영 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적은 현상이다. 하지만 어디엔가는 남은 자 칠천과 삼백용사가 있다고 확신한다. 둘째의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으로 알고 성경 속에서 무엇인가 일을 이루려고 애를 쓴다. 이것은 우리네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목적이 분명히 다르다. 따라서 성경말씀을 적용하는 그 과정도 우리가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시작은 말씀으로 하였지만 그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서있기 마련이다. 우리교회, 우리목사님, 우리구역, 우리팀장 등 목적이 피조물인 사람이 되어있고 수단은 다분히 인본주의며 그 방법은 가히 성경적이다. 여기서 성경적이라라는 뜻은 성경을 잘 적용 시킨다는 말이다. 참으로 진리수호의 목적을 가진 성경적이라 함은 성경말씀이 가라하면 가고 서라하면 서는 것이다. 더불어 죽으라하면 죽고 살리실 때에 그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사는 것이다. 그런데 피조물인 사람이 영광의 결국에 가 서있고 피조물인 자연이 보호의 대상이 되며 피조물인 짐승들이 사람보다 더 존 귀히 여김을 받는 해괴한 시절을 우리가 살고 있다. 이럴 때 모든 피조물들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뿐이다. 말씀에 의해서 죽으셨던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부활하셨다. 주님께서는 말씀대로 하늘로 올 리우셨으며 또 말씀대로 하나님의 때에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이 땅에 다시 오실 것이다. 우리는 이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오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단사교 또 많은 이민교회의 문제점들이 이런 말씀에 관심과 말씀을 지키려고 진력하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자체교회를 갖고 11시 1부 예배를 드릴건가에 목을 맨다. 그 이유는 너무나 단순하다. 1부 예배를 11시에 드리는 교회는 자체교회를 갖고 있는 교회며 그것은 즉 재정적으로 자립도가 높거나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다 라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많은 교인들은 뿌리 없이 이런 안정과 부담 없는 교회생활을 위해 떠돌아 다니고 있으며 이런 속에서 교인들 간의 많은 문제점들이 시비를 일으키는 부작용 또한 매우 크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중에서도 더욱 부담을 지기 싫어 큰 교회를 찾아간다. 이는 또 다른 교회의 생성을 조장하며 더 큰 교회는 더욱 더 큰 교회로 양적 팽창을 꽤한다. 그러나 그 속은 멤버 쉽이다. 이 멤버쉽으로는 결코 천국에 갈수 없음에도 많은 이들이 평안을 느낀다. 결론을 돕기 위해 좀 더 이런 이단들 또는 이단성향이 농후한 사교들에 대처하는 교회도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처하는 교회들은 3가지 표준을 세우고 그것으로서 이단 시비를 가리는데 기준을 삼았다. 그 3가지는 첫째) 모든 그리스도인의 교설은 12사도와 바울에 조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구원의 필수조건이요, 교회의 본질에 속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어느 것이 사도들로부터 전해 내려온 교훈이냐 하는 문제가 생겨서 사 복음서를 들었다. 영감의 견지에서가 아니라 사도적인 기원에서였다. 왜냐하면 이단들도 성령의 계시를 주창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이단을 막을 수 없었다. 비유적으로 해석하여 얼마든지 그 뜻을 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사도 적 전승 세례 전 (Baptismal Formula) 이레네우스는 다시 사도 적 전승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단들은 사도적 전승을 주창하였기 때문에 그는 옛 로마신조(the Old Roman Symbol)를 들었다. 이 신조는 그 기원을 2세기 초부터 3세기 초로 학자들이 추정하는데 오늘의 사도신경의 전신이다. 그러나 여기도 문제가 있었다. 셋째) 감독의 권위. 일찍이 안디옥 교부 이그나티우스도 감독의 권위를 강조하여 "감독 있는 곳에 교회가 있다."고 하였다. 이레네우스는 최후로 감독의 권위에 호소하였다. 사도 적 권위를 안수로 계승한 감독 하에 사도 적 전승인 말씀이 순수하게 전해지는 동시에 사도 적 전승인 교리가 순수하게 지켜지며 성도의 생활에 엄격하여 교회생활의 순수성을 유지하면서도 회개하고 돌아서는 자에게는 고해를 조건으로 모두 다 받아주는 어머니로서의 교회였다. 로고스 기독교 론의 승리: 단일신론 자들 특히 형태론적 단일신론 자들의 운동은 교회에 심각한 혼란을 가져왔다. 교회는 로고스 기독론을 들고 나와 이들과 대결하였는데 그 대표자들이 서에는 터툴리안, 동에는 오리겐이다. 기독론에 있어서 그는 로고스 기독론을 주창하여 역동적 단일 신론에 대하여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 형태론적 단일신론에 대하여는 삼위의 개성의 구별을 명확히 하였다. 따라서 그의 기독론은 두 방향 다른 종속사상(subordinationism)과 영원한 산출을 주창하여 후일 니케아 논쟁(325)의 발판을 제공하였다. 왜냐하면 전자는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종속을, 후자는 절대 동등(co-eyernity co-essence)을 뜻하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로고스 기독론을 가장 열렬하게 대변하여 단일신론 자들을 반대한 자가 히폴리투스(Hippoltus)이다. 감독 제피리누스(Zephyrinus)는 형태론적 단일신론에 기울어졌으나 어찌할 바를 몰랐고 그 후계자인 정력적인 칼리스토스(Kallistos) 자신도 형태론적 단일신론 자였다. 하지만 로고스 기독론과 단일신론 분쟁은 교회를 해치는 결과밖에 가져오지 않음을 보고 사벨리우스를 파문하고 (217) 히폴리투스를 두 신 숭배자라 비난하고 타협안을 시도하였다. 선재한 로고스야말로 그리스도 안에 내재한 아버지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나눌 수 없는 한 신의 세 다른 이름이라 하였다. 누가 보든지 불만족한 타협안이었으나 분쟁에 지친 교인 대다수가 환영하였고 또 이 타협안이 후일 로고스 기독론의 완전한 승리를 가져오게 한 길잡이가 되었다. 특히 노스틱 이단은 교회가 그 초기에 만난 최대의 이단이었다. 이들을 막기 위하여 교회는 어떤 때는 도덕생활을 표준으로 세웠다. 그러나 이단들 가운데는 교인들보다 높은 도덕을 유지하는 자가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으로 막을 수는 없었다. 이들과 가장 격렬하게 싸운 이가 이레네우스(Irenaeus)이다. 그는 소아시아에서 생장하여 서마나의 폴리갑의 제자가 되었다. 후에 가울로 가서 화를 면하였고 돌아온 후 순교한 포티누스를 이어 감독이 되었다. 그는 요한과 안디옥의 교부 이그나티우스와 가톨릭 교회의 사상을 연결하여 후세의 로마 가톨릭 교회 신학의 기초를 놓은 자이다. 앞서 말한 과거의 이단 사설들을 지금에 와서는 각종 문화와 인정 또는 관습에 얽매여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게 된 지경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 천주교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는 것을 가납하여 많은 이로 하여금 유혹의 올무를 못 보게 하며 마지막대에 더욱 득세할 사탄의 본산지가 될 것이다. 그네들은 종교 집단이 아니라 이미 정치 집단으로 변모를 꾀했으며 각 나라의 자체적으로 교황청의 대사를 파견하고 있다. 또한 각종 이권에 개입하거나 민주주의를 표방하여 어려운 개인이나 단체 국가를 돕는다는 명목으로 그들의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왜곡시켜 결국 마귀의 자식이 되게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엄청난 세력에 눌려 감히 항변이나 저항을 하지 못하며 수수방관하는 자리에 서있다. 이런 아니한 정신 상태를 가진 우리 개신교 내부에도 각종 문화와 첨단 유행을 따르려는 한심한 자태가 이곳 애틀란타에도 많이 생겨났다. 애틀란타 기독 남성 합창단이 생겨나 취미 문화 오락의 삶의 질을 높게 선도했다. ( 각 교회의 성가대 지휘자 전문가들로 조직되어 기독교 신문과 기독교 음악인 단체의 협찬을 받아 교회를 빌려 연주회를 함. 광고 뉴스 투데이 2004년 10월 22일자 신문 9면) 리빙 워쉽 미니스트리가 이끄는 2004 애틀란타 리빙 워쉽이 23일 애틀란타 제일 장로교회서 개최된다. 리빙 워쉽은 콘서트와 예배가 일치하는 삶을 살기운한 각성운동으로 이미 노스캐롤라이나와 캐나다, 그리고 지난 2일 시카고 헤리티지 센터에서 집회를 가진바 있다. 이 기사는 온세대가 함께하는 예배 콘서트라는 기사다. 이곳 조지아에서 PCA교단중 가장 큰 제일 장로교회에서 일 년에 몇 차례씩 하는 콘서트의 또 다른 행사계획이다. 이번 집회는 캐나다, 뉴욕, 보스톤, 워싱톤 등지의 전문 음악사역자 20여명과 150명의 지역 합창단이 대거 참가하며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이르는 다양한 음악 장르가 연주될, 특히 지역 자체 행사로는 시스템과 장비 그리고 출연진에서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리빙워쉽 미니스트리는 2년전 뉴욕 뉴져지드의 동부 지역에서 시작, 현재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주와 한국 그리고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를 향해 사역의 반경을 넓혀가고 있는 선교문화 단체로 전 연합장로교회 박지노 음악 선교사가 총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많은 크리스챤들의 실생활과 예배가 다른 삶을 지내고 있는 것에 착안 이를 일치시키겠다는 뜻에서 결혼 직후 구체화시키게 됐다." 는 박 선교사는 "조직이란 개념보다는 삶과 예배가 일치하는 '삶의 예배운동'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청소년 청년 문화 사역에도 큰 비중을 두고 있는 리빙워쉽 미니스트리는 세대 간 언어문화의 갭을 뛰어넘기 위해 1,2세 합동 예배를 가진바 있으며 연 6회 에 달하는 대형집회를 주도하는 한편 지역의 작은 교회를 돕는 사역에도 동참하고 있다. 위에서 보듯이 교회에서는 콘서트 하는 것이 아니며 콘서트를 통하여 출연진의 최고를 자랑하는 것은 아니다. 더더욱 예배 콘서트라는 신조어를 만들 어 또 다른 사교를 조정하는데 일조 하는 것은 더욱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출연진 모두가 선교사, 교회중진 등 지도자 들이며 그 대상은 주로 청소년들에게 있고 물량주의를 자랑거리로 내세우며 한두 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문화 사업으로 자리를 잡게 하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 경배한다고 거짓으로 많은 이들을 미혹케 한다. 분별력 없는 초 신자들은 사람이 많이 몰리는 이런 대형 콘서트에서 묘한 쾌감을 느끼며 나름대로 은혜를 받았다고 자위한다. 그러나 이것은 사교이며 마귀의 또 다른 부드러운 술책에 불과하다. 핍박과 탄압이 있으면 그리스도인들은 강해진다. 그러나 회유와 부드러운 문화에는 약한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현실이다. 특히 교회지도자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 깨어있지 못하며 스스로 분별력이 없어 많은 교인들이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뉴욕 밀알 선교합창단 찬양 대축제"를 애틀랜타 제일 장로교회 창립 28주년 초청으로 공연을 하며 최고의 하나님께 최고의 찬양을 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로했다. 이 공연을 통하여 최고의 수혜자는 누구인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한다. 말은 최고의 하나님께 라고 하지만 그 저의는 사람에게 있고 사람이 사람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뉴욕 카네기홀 공연실황을 큰 사진으로 박아 광고를 하지만 결국 최고 수혜자는 하나님도 아니고 장애인은 더더욱 아니며 관람객이나 출연진이나 거기에 이름을 내건 사람들만 즐거울 뿐이다. (한국 주간 2004년 10월 25일자 광고 17면) 목회자 세미나 개최 잠재능력 개발에 최선을 다하는 목회자를 강조함. 2004 년 애틀랜타 복음화대회 3일째인 지난 16일 오전 10시 30분 영락장로교회에서는 150여명의 목회자 교역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LA동양 선교교회 강준민 담임 목사를 초빙하여 "목회자의 자기개발"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강준민 목사는 이날 세미나를 통해 목회자의 기본 일곱 가지 실력 준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1.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통하는 능력. 2. 어느 환경에서 어떤 사람을 만나도 상황 적응 능력. 3. 꾸준한 자기개발 능력. 4. 존재해 있는 것에 대한 창조적 능력. 5. 사람과의 교섭능력. 6. 쉽게 사람을 얻을 수 있는 표현 능력. 7. 학습능력 등을 가져야한다고 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잠재 되어있는 자기 개발에 필요한 지식과 지능의 지성 능력, 감선능력,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체력 유지, 성령의 능력 가운데 예수님을 닮아가는 영성 준비, 넒은 대인 관계기술 능력, 큰 목표설정 작은 것부터 실천에 옮기는 행동 후원 미치 격려차 양성관계 정립 난관 속에서도 지켜가는 목표의식 작은 목표달성시의 자기 격려 의지력 강화 통달의 원리 등 의 노력 개발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긍정적인 자기 개발을 위한 자아상 확립 13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 자신의 축복을 헤아릴 것 2) 좋은 이미지 구축. 3) 성공담이 담긴 양서 독서. 4) 훌륭한 교사, 목회자 지도자들의 강의 경청. 5) 건전한 자기 이미지 확립6) 웃음과 칭찬의 명수 7)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 실천 8) 건전한 사람들과의 교제. 9) 자신의 장점 확인. 10) 자신의 성공사례 목록 만들기. 11)자신의 부정적 영향을 주는 모든 것 제거. 12) 실패 속에서 교훈 얻기. 13) 뚜렷한 목표자 등을 강조했다. 또한 강준민 목사는 오늘날의 교회의 문제점들은 영적인 문제보다는 교회 목회자 사역의 리더쉽 문제라고 지적하면서 "이민 사회의 고난 속에서 형성된 부정적인 모든 자아상들을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가운데 자신감에 찬 목회자 사역을 통해 교회와 목회자 및 모든 성도들이 함께 살아 생동하는 현실을 가져 달라."고 강조했다. (한국주간 2004년 10월25일27면기사 ) 위의 기사 내용처럼 영적 지도자들이 세미나를 가졌다. 그 내용은 축복과 좋은 것 실패에 대한 경험 현실적인 것 땅에 것들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천상에 것 주님의 것 신령한 것들하고는 거리가 상당히 멀다. 목회자들이 한두 명이 아니고 그룹으로 몇 십 명이 모여 주님의 보혈을 계승 발전하기 보다는 배를 채우는데 온 노력을 다하는 내용에 불과하다. 특히, 영적 지도자들의 모임이니까 그들의 모임이 크리스챤들의 기준이 되어버리는 현실이다. 물론 이민 사회라는 특수성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지만 크리스챤이라면 누구나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는 나그네 인생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은 말씀으로만 자랄 수 있으며 오직 성신님의 깊으시고 선하신 뜻 가운데 영에 양식인 말씀을 또한 말씀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먹을 때에만 자란다. 특히나 이 행사의 부흥강사를 자랑하는 대목에 있어서는 4평짜리 천막교회와 30년 만에 1만 명의 성도를 자랑하는데 있다. 결국 피조물들의 자랑 뿐이다. 어디에도 그리스도의 보혈은 자랑되어지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그리스도만 기념해야만 함에도 불구하고 흑암세력의 궤계를 깨닫지 못한다. 최첨단 문화가 그리스도를 아는 길목에 서서 우리를 호리고 있음에도 말씀으로 무장하지 않은 크리스챤들은 영적 전쟁에서 질수 밖에 없다. "우리 모두 세상 속으로 "'JESUS Celebration 2004' 개최 조지아주 한인 침례교회협의회가 주최하는 'JESUS Celebration 2004'가 10월 8일~10월 10일 오후 7시 30분 애틀랜타 한인 침례교회에서 개최됐다. 지난 2000년도부터 개최해 온 '예수축제' 는 올해 김두화 목사를 강사로 초빙 '우리 모두 세상 속으로' 라는 주제로 3일간 풍성한 말씀과 찬양 잔치를 가졌다. 조지아주 한인 침례교회협의회 원 천호 회장은 지난 10일 환영사에서 "이번 예수 축제를 기회로 조지아주 모든 침례교회가 다시 한 번 복음의 열정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며 "예수잔치에 참여한 모든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기도한다."고 말했다. 특히 협회는 지난 10일 2004예수 축제 마지막 날 정 인수 애틀랜타 한인교회협의회장과 김 성엽 애틀랜타 총영사, 김도현 애틀랜타 한인회장 등의 조지아지역 한인 지도자를 초청했다. 이날 김 성엽 총영사는 "한인들은 모범적인 가정을 기초로 미국 시민으로서 미 주류 사회로 진출해야 한다." 며 "교회는 한인 사회 속으로 한인 사회는 미 주류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고 인사말을 대신했다. 같은 날 예수 축제 초청 강사 김 두화 목사는 '세상으로 보냄 받은 사명' 이란 제목으로 "침례교회를 비롯한 각 교회는 선교의 사명을 갖고 있다" 며 "우리들은 먼저 세상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선교의 사명을 완수해야한다" 고 설교했다. 협회는 10월9일 오전 10시~12시에 김 목사가 '선교와 지역교회'라는 주제로 강의 했으며 매 집회 시 부모와 함께 온 어린 자녀들을 위한 특별 '어린이 부흥회' 를 개최, 어린이들이 부모와 동시에 말씀 듣는 시간을 마련했다. 조지아주에는 현재 38개 침례교회가 있으며 애틀랜타에만 30개 침례교회가 위치해있다.( 주간 동남부 2004년 10월 15일자 B10면 기사) 위의 기사 내용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많은 침례 교도들이 행사를 했다. 이 행사는 예수 축제라는 이름으로 매년 행해지고 있지만 그 축제 이후의 결과의 대해서는 어디에도 언급이 없다. 또 다른 기사에는 미주 다일 공동체가 일명 '밥퍼' 사역으로 사랑을 나누어 온 다일공동체의 미주본부 '밥퍼' 행사에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참여, 따뜻한 정을 나눴다. 지난 9일(토)오후 3시 30분부터 애틀랜타 유니온 미션 센터에서는 예닮 교회와 한인 천주교회 청년부 한인교회 연합장로교회 신도 등이 참여 홈리스 여성가장들을 위해 치킨 윙과 콜 슬로우 에그 롤 음료수와 오렌지의 저녁식사 150여 인분을 마련 따뜻한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다일공동체 미주본부는 지난봄부터 한 달에 2회씩 남성홈리스들과 여성홈리스들을 위해 '밥퍼' 행사를 가졌으며 이 날 행사는 혼터힐 침례교회의 대니윌슨 목사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메트로 애틀랜타에 3개 구제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애틀랜타 유니온 미션이 주최한 제25주년 '자원봉사자 감사의 날' 행사가 당일 오후 12시 카펜터스 직업훈련소에서 개최돼 그동안 '밥퍼' 사역을 진행해온 다일공동체 미주본부 박 종원 목사와 이 홍범 협동총무, 한인 교회 신도들인 송 관호 김 한주 집사가 감사패를 증정 받았다. 7년째 다일 공동체에 몸담아온 박 종원 목사는 "앞으로 한인과 히스패닉, 베트남인들까지 봉사의 영역을 넓히고 싶다" 며 "더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알고 계속 봉사하겠다." 고 수상소감을 밝혔다.(주간동남부 2004년10월15일자 B36면) 위의 기사 내용처럼 사랑을 나눈다는 단체는 부지기수다. 특히, 크리스챤들이 도모하는 단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론 사랑의 한 방법의 무숙자들에게 한 끼니 밥을 제공 하는 것도 유익하다. 또 한 끼니 밥을 제공하지 못하는 많은 크리스챤들도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밥 한 끼에 있지 않다. 그런저런 행사를 통한 또 다른 수혜자가 생길 우도 있다. 특히나 이런 단체들의 속성은 끊임없이 그 세력을 확장 지속하는데 있으며 자신들의 행위에 대해 대 내외적인 홍보를 조직적이며 과학적으로 잘하고 있다. 결국 모든 기관 단체의 행사 속에 다른 수혜자가 생겨나는 것이다. 밀알 선교단 4회 일일찻집 개최 "밀알 일일 찻집은 훈훈한 사랑이 흐르는 공간입니다." 애틀랜타 밀알 선교 단 기금마련을 위한 제 4회 '밀알 일일 찻집' 이 지난 9일 애틀랜타 한인들의 큰 호응아래 열렸다. 이날 일일 찻집에는 장애우 가족과 자원봉사자 많은 한인 고객들이 방움 차와 다과 등 풍성한 먹 거리를 즐기며 정담을 나눴다. 일일 찻집 네는 커피 등의 각종 차와 떡이 제공 됐으며 밀알 어머니회가 직접 요리한 부침개 떡볶이 오뎅 만두 등이 고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특히 선교 단은 매주 열리는 '사랑의 교실' 장애우 학생 글이 직접 제작한 '핑걸 프린트' '그림' '커피 잔' 등을 전시 했으며 고객들에게 판매하기도 했다. 일일찻집 공간에는 안 나래 황 혜인 이 혜준 이 희현 등의 장애우 학생들이 제작한 가족 그림이 벽에 전시 찻집을 찾은 고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이날 사랑의 어머니회 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밀알 어머니회를 도와 음식을 만들며 구슬땀을 흘렸다. 이날 주방에서 다과를 준비한 김 은선 자원봉사자는 "일년 넘게 밀알 센터에서 자원봉사하고 있다" 며 "일일 찻집을 방문한 장애우 가족과 많은 친구들의 즐거운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선교 단은 오는 12월1~2일 애틀랜타 한인교회에서 본국 이제서 박사 초청 장애우 복음 전파를 위한 제 5회 밀알의 밤을 개최할 계획이다.(주간 동남부 2004년 10월 15자B34면 기사) 밀알 선교단은 유명한 단체다. 장애인들을 위하여 수고하는 좋은 기독교 단체다. 그러나 온 지구가 요란하게 다 알게 떠든다.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네 오른손이 하는 것을 네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한, 흑 갈등 해소에 공헌 W. C. C, 고 지 형석 목사에 특별 평화상 추서 되었다. 아시안 아메리칸 센터 창립자인 고 지형석 목사가 한 흑 갈등해소에 기여한 공로로 세계교회 협의회가 선정한 스페셜 피스메이커 상에 추서됐다. 세계교외협의회2004년도 연례회의 마지막 날인 지난 6일 오후 8시 다운타운에 위치한 시프토릭 에반에셀 침례교회에서 "평화의 힘과 약속"이라는 주제로 거행된 워쉽 서비스와 시상식에는 전 애틀랜타시장과 UN대사를 역임하기도 했던 앤드류 대사가 기조연설을 했으며 W. C. C. 회장인 버니스 파월잭슨 박사를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서 온 W. C. C. 교계지도자들이 참여했다. 1937 년 교계지도자들의 합의하에 창설돼 인종과 국경을 초월 세계1백여 개국에 걸쳐 3백4십여 교회와 종파들이 4억 기독교인들을 대변해 온 세계교회협의회는 2001년부터 2010년까지의 10년간을 폭력 극복의 기간으로 규정하고 교회가 화해와 평화에 앞장 설 것을 촉구했다. 니알 스페셜 피스메이커로 선정된 10인의 수상자들은 Adopt a Minefiled와 위기 가정의 어머니와 자녀들을 지원해온 Hagar House Guns For Safety프로그램 등으로 21년간을 헌신해온 Concerned Black Clergy Of Great Atlanta난민들과 이민자들을 위해 일해 온 호담 오즈만등 대부분 애틀랜타에서 활동 중인 비영리 단체들이며 고지형석 목사만이 유일한 개인 수상자로 추서됐다. 인종을 초월, 애틀랜타에서 헌신했던 고 지 목사는 지난 96년에는 흑인 성직자들로부터 지난 97년에는 메트로폴리탄 기독인 협회로부터 탁월한 커뮤니티 관계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노크로스 소재 아시안 아메리카센터의 창립자와 코디 렉터로 커뮤니티를 위해 헌신했었다. 시상식에는 고 지 형석 목사의 부인이기도한 아시아아메리칸 센터의 지수예총무가 수상식에 참석했다.(주간 동남부 2004년 10월 15일 B18면) 좋은 일을 살아생전에 한 사람들은 죽은 후에도 살아있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고마움의 표시를 받는다. 물론 삶의 모범이 되고 기준이 되며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해결해주는 좋은 일이지만 그 모든 선행의 실체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이어야 한다. 또한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그리스도만 기념하라고 했으며 또 다른 외식 자들에게는 저가 이미 자기상을 받았느리라 라고 질책하고 계신다. 우리는 믿음의 용서로서 주님의 사랑만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상급을 바라보며 선한 양심을 잘 세워 믿음 생활을 해야 한다. 항상 성령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그분의 명령에 예민하게 반응 하고 또 이미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으로 조명하시는 그대로 성도로서 삶을 살려고 애써야 하겠다. 좁은 문으로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신 말씀 밖에 넘어 가지 말고 언제나 깨어있는 신앙을 잘 준비 하여야 하겠다. 복음이 변질된 이 마지막 때는 인본주의와 세속주의가 믿음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이때 혼합주의와 기복주의가 거침없이 넘쳐나며 신비주의가 강하게 사람들을 유혹하는 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 나그네의 삶을 사는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건 죽도록 충성하여 주님께 향한 마음이 갈리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며 곧 오실 주님을 고대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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