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불교철학을 분석철학,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측면에서 탐구하고 그 나름의 의의를 밝혀 보고자 의도되었다. 불교철학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본고에서 다루려는 것은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철학으로서의 불교이다. 즉 본고는 불교의 종교적 실천과 수행의 측면보다는 불교교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주된 관심으로 한다.
동양권의 대승불교, 특히 선불교의 전통에서는 불교 경전에 대한 지적(知的) 탐구보다는 실천적 수행에 수반되는 직관적 체험에의 몰두가 더욱 중시되어 왔다. 불립문자(不立文字)로 표상되는 이러한 전통 때문에 구도적 수행이 결여된 교학적 행위는 종래의 선가(禪家)에서 환영받지 못하였다. 이것은 사유와 존재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나 설명보다는 직관적 깨우침을 강조하는 불교 고유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며 이런 이유로 선불교는 역사적으로 신비주의나 반문자주의로 오해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가에서 지성을 거부한다는 것은 오해이며 그들은 단지 체험적 수행 없이 지성의 작용만으로 진리를 체득함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철학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로써, 혹은 명승지에 대한 안내판의 역할로써, 즉 신앙이나 수행으로써의 불교가 추구하는 것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써 그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교철학을 분석철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분석철학이란 “현대철학에서 무어(G.E. Moore)가 실천한 분석의 방법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아울러 뮤니츠는 “근세 철학이 인식론적인 문제에 대해 지배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현대 분석 철학은 논리-언어적인 성격의 문제로 전환했다”고 하여 분석철학의 본령이 논리-언어적인 측면임을 주장하였다.
현대 영미철학의 분포도를 대략 나열해 본다면 언어철학, 심리철학(그리고 이와 연계되는 ...
본고는 불교철학을 분석철학,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측면에서 탐구하고 그 나름의 의의를 밝혀 보고자 의도되었다. 불교철학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본고에서 다루려는 것은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철학으로서의 불교이다. 즉 본고는 불교의 종교적 실천과 수행의 측면보다는 불교교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주된 관심으로 한다.
동양권의 대승불교, 특히 선불교의 전통에서는 불교 경전에 대한 지적(知的) 탐구보다는 실천적 수행에 수반되는 직관적 체험에의 몰두가 더욱 중시되어 왔다. 불립문자(不立文字)로 표상되는 이러한 전통 때문에 구도적 수행이 결여된 교학적 행위는 종래의 선가(禪家)에서 환영받지 못하였다. 이것은 사유와 존재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나 설명보다는 직관적 깨우침을 강조하는 불교 고유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며 이런 이유로 선불교는 역사적으로 신비주의나 반문자주의로 오해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가에서 지성을 거부한다는 것은 오해이며 그들은 단지 체험적 수행 없이 지성의 작용만으로 진리를 체득함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철학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로써, 혹은 명승지에 대한 안내판의 역할로써, 즉 신앙이나 수행으로써의 불교가 추구하는 것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써 그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교철학을 분석철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분석철학이란 “현대철학에서 무어(G.E. Moore)가 실천한 분석의 방법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아울러 뮤니츠는 “근세 철학이 인식론적인 문제에 대해 지배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현대 분석 철학은 논리-언어적인 성격의 문제로 전환했다”고 하여 분석철학의 본령이 논리-언어적인 측면임을 주장하였다.
현대 영미철학의 분포도를 대략 나열해 본다면 언어철학, 심리철학(그리고 이와 연계되는 인지과학 분야), 과학철학, 논리학, 수리철학, 생물학의 철학 등이 될 것이며 이 중에서도 언어철학과 심리철학, 과학철학이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분야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분석철학이라는 말로 포섭하고 있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닌 언어이다.
심리철학이나 과학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경험과학적, 혹은 사변적 탐구의 결과들을 통해 철학적 가설을 수립하고 합리적 논증을 통한 이론의 제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언어를 통해 벌어지는 ‘최적의 설명들’간의 경합에 다름 아닌데 최적의 설명이란 언어와 사유의 부정확함이나 모호함 등이 사라지고 언어적 명료성이 획득된 상태를 뜻한다.
분석철학의 창시자들이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은 철학의 문제는 곧 언어의 문제이며 언어의 혼란이 사라지면 철학의 문제도 사라진다는 것이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그들이 택한 방법은 언어의 표면적 문법과 심층적 문법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며 이렇게 하면 오도된 구문들이 일으키는 철학적 혼란이 제거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본고는 이런 입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는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불교철학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제한된 입장에서 다룰 불교철학의 문제란 무엇인가.
초기 불교의 성립과 이후 교리적 차이에 따른 교단들의 분열, 대승불교 내에서조차 중관학파나 유식학파 등의 차이에 따른 여러 입장들을 감안하더라도 대체로 불교는 고정된 본질을 지닌 것으로서의 사물의 실체성을 부인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이것은 서양철학의 측면에서 볼 때 형이상학의 핵심적인 문제와 연관된다.
본질이나 실체, 실재 등의 개념들은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사유되었고 철학의 역사를 통해서 다양하게 변주되어왔다. 그리고 현대의 분석철학자들이 깨달은 것은 이런 철학적 개념들을 둘러싼 문제는 결국 언어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선불교가 언어문자를 부정한다고 오해를 받은 것도 바로 이 지점, 즉 언어(의 문제)는 철학적 문제를 일으키는 바, 그럴 때 언어는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언어는 분석철학과 불교철학에 있어 공히 중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분석철학이 언어-논리를 통하여 의미나 개념의 명료성을 추구한다면 불교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사유와 존재에 대한 언어-논리적 분별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의 서문에서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러므로 생각에 한계를 그으려 한다. 또는 차라리, 생각이 아니라 사고의 표현에 한계를 그으려 한다.
또 월칭(月稱; Candrakirti)은 『중론』제18품 제7게송의 주석에서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만약 여기에 무언가 말해져야 할 사물(abhidh?tavya? vastu)이 있다면 그것은 말해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말해져야 할 것이 이미 사라지고, 언어의 대상(v?c?? vi?aya)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때 어떤 것도 사라져 부처님에 의해 설해지지 않는다.
이상에서 비트겐슈타인과 중론을 주석한 월칭은 공히 언어(사유)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분석철학과 불교철학은 언어의 본성을 해명하고 그를 통해 사유의 한계를 탐색하려는 공통의 분모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 정의는 아니다. 불교철학의 궁극적 목적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임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본고는 이런 측면에서 불교철학의 중심 개념들이 무엇이고 분석철학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어떤 철학적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붓다와 비트겐슈타인이 각각 철학이나 형이상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고찰한다. 붓다가 제자나 외도(外道)들에게 취했던 침묵의 태도를 들어 일반적으로 붓다의 태도를 반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그런 생각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혹은 일종의 오해인지를 탐구하는 것은 나름의 의의를 가질 것이다. 즉 붓다는 어느 경우에 침묵으로 일관했는지, 그럼으로써 달성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있는 일이며 이런 붓다의 태도를 비트겐슈타인적 시각으로 볼 때 어떤 의미가 떠오를 것인가의 문제는 향후 전개될 논의 전체를 관통하는 배경이 된다.
3장에서는 전체 논의의 소재인 반야사상의 중심개념, 즉 공, 무상, 무아, 연기 등의 개념을 우선적으로 탐구한다. 이 개념들은 대승불교철학의 존재론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로써 반야경전을 통해 그 핵심적 면모를 탐구한다. 이러한 반야사상을 계승한 중관철학은 체계적인 논증으로 무상과 공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이를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적 시각에서 조망할 때 어떤 의미들이 떠오르는지를 탐구한다. 사유와 언어, 세계의 배후에 도사린 논리라는 선험적 인식장치를 과연 붓다와 그의 계승자인 용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는 본고가 탐구하고자 하는 첫 번째 주제가 된다.
4장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적 관점에서 선불교의 언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선문답으로 대표되는 선불교의 사유들을 언어놀이적 관점과 규칙준수, 그리고 길버트 라일의 범주착오 개념에 비추어 나름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상의 논의는 불교철학, 특히 반야 · 중관 사상을 분석철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시론적(試論的) 성격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또 관련된 선행연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므로 본고의 시도 자체도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연구의 범위를 비트겐슈타인 사상의 핵심적 개념들과 반야 · 중관사상의 범주로 한정했다는 데에 나름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본고는 불교철학을 분석철학, 특히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측면에서 탐구하고 그 나름의 의의를 밝혀 보고자 의도되었다. 불교철학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본고에서 다루려는 것은 종교로서의 불교가 아니라 철학으로서의 불교이다. 즉 본고는 불교의 종교적 실천과 수행의 측면보다는 불교교리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주된 관심으로 한다.
동양권의 대승불교, 특히 선불교의 전통에서는 불교 경전에 대한 지적(知的) 탐구보다는 실천적 수행에 수반되는 직관적 체험에의 몰두가 더욱 중시되어 왔다. 불립문자(不立文字)로 표상되는 이러한 전통 때문에 구도적 수행이 결여된 교학적 행위는 종래의 선가(禪家)에서 환영받지 못하였다. 이것은 사유와 존재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나 설명보다는 직관적 깨우침을 강조하는 불교 고유의 입장에서는 당연하다고 할 것이며 이런 이유로 선불교는 역사적으로 신비주의나 반문자주의로 오해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선가에서 지성을 거부한다는 것은 오해이며 그들은 단지 체험적 수행 없이 지성의 작용만으로 진리를 체득함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할 뿐이다.
그러므로 불교철학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역할로써, 혹은 명승지에 대한 안내판의 역할로써, 즉 신앙이나 수행으로써의 불교가 추구하는 것을 돕기 위한 방편으로써 그 가치를 가질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불교철학을 분석철학적으로 탐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분석철학이란 “현대철학에서 무어(G.E. Moore)가 실천한 분석의 방법을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포함한다.” 아울러 뮤니츠는 “근세 철학이 인식론적인 문제에 대해 지배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현대 분석 철학은 논리-언어적인 성격의 문제로 전환했다”고 하여 분석철학의 본령이 논리-언어적인 측면임을 주장하였다.
현대 영미철학의 분포도를 대략 나열해 본다면 언어철학, 심리철학(그리고 이와 연계되는 인지과학 분야), 과학철학, 논리학, 수리철학, 생물학의 철학 등이 될 것이며 이 중에서도 언어철학과 심리철학, 과학철학이 분석철학을 대표하는 분야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분석철학이라는 말로 포섭하고 있는 키워드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아닌 언어이다.
심리철학이나 과학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경험과학적, 혹은 사변적 탐구의 결과들을 통해 철학적 가설을 수립하고 합리적 논증을 통한 이론의 제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언어를 통해 벌어지는 ‘최적의 설명들’간의 경합에 다름 아닌데 최적의 설명이란 언어와 사유의 부정확함이나 모호함 등이 사라지고 언어적 명료성이 획득된 상태를 뜻한다.
분석철학의 창시자들이 공통적으로 깨달은 것은 철학의 문제는 곧 언어의 문제이며 언어의 혼란이 사라지면 철학의 문제도 사라진다는 것이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의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그들이 택한 방법은 언어의 표면적 문법과 심층적 문법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며 이렇게 하면 오도된 구문들이 일으키는 철학적 혼란이 제거될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본고는 이런 입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는 비트겐슈타인의 전후기 사상을 배경으로 하여 불교철학의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제한된 입장에서 다룰 불교철학의 문제란 무엇인가.
초기 불교의 성립과 이후 교리적 차이에 따른 교단들의 분열, 대승불교 내에서조차 중관학파나 유식학파 등의 차이에 따른 여러 입장들을 감안하더라도 대체로 불교는 고정된 본질을 지닌 것으로서의 사물의 실체성을 부인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이것은 서양철학의 측면에서 볼 때 형이상학의 핵심적인 문제와 연관된다.
본질이나 실체, 실재 등의 개념들은 이미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사유되었고 철학의 역사를 통해서 다양하게 변주되어왔다. 그리고 현대의 분석철학자들이 깨달은 것은 이런 철학적 개념들을 둘러싼 문제는 결국 언어의 문제라는 것이었다. 선불교가 언어문자를 부정한다고 오해를 받은 것도 바로 이 지점, 즉 언어(의 문제)는 철학적 문제를 일으키는 바, 그럴 때 언어는 깨달음에 방해가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언어는 분석철학과 불교철학에 있어 공히 중요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분석철학이 언어-논리를 통하여 의미나 개념의 명료성을 추구한다면 불교철학이 추구하는 것은 사유와 존재에 대한 언어-논리적 분별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의 서문에서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다; 그리고 이야기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러므로 생각에 한계를 그으려 한다. 또는 차라리, 생각이 아니라 사고의 표현에 한계를 그으려 한다.
또 월칭(月稱; Candrakirti)은 『중론』제18품 제7게송의 주석에서 다음처럼 말하고 있다.
만약 여기에 무언가 말해져야 할 사물(abhidh?tavya? vastu)이 있다면 그것은 말해 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만약 말해져야 할 것이 이미 사라지고, 언어의 대상(v?c?? vi?aya)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때 어떤 것도 사라져 부처님에 의해 설해지지 않는다.
이상에서 비트겐슈타인과 중론을 주석한 월칭은 공히 언어(사유)의 한계에 대해 말하고 있다. 따라서 분석철학과 불교철학은 언어의 본성을 해명하고 그를 통해 사유의 한계를 탐색하려는 공통의 분모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 정의는 아니다. 불교철학의 궁극적 목적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것임은 다시 말할 필요도 없다. 본고는 이런 측면에서 불교철학의 중심 개념들이 무엇이고 분석철학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어떤 철학적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2장에서는 붓다와 비트겐슈타인이 각각 철학이나 형이상학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었는지를 고찰한다. 붓다가 제자나 외도(外道)들에게 취했던 침묵의 태도를 들어 일반적으로 붓다의 태도를 반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간주하기도 하는데 그런 생각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 혹은 일종의 오해인지를 탐구하는 것은 나름의 의의를 가질 것이다. 즉 붓다는 어느 경우에 침묵으로 일관했는지, 그럼으로써 달성하고자 한 바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있는 일이며 이런 붓다의 태도를 비트겐슈타인적 시각으로 볼 때 어떤 의미가 떠오를 것인가의 문제는 향후 전개될 논의 전체를 관통하는 배경이 된다.
3장에서는 전체 논의의 소재인 반야사상의 중심개념, 즉 공, 무상, 무아, 연기 등의 개념을 우선적으로 탐구한다. 이 개념들은 대승불교철학의 존재론을 전개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개념들로써 반야경전을 통해 그 핵심적 면모를 탐구한다. 이러한 반야사상을 계승한 중관철학은 체계적인 논증으로 무상과 공의 개념을 설명하는데 이를 『논리철학논고』로 대표되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적 시각에서 조망할 때 어떤 의미들이 떠오르는지를 탐구한다. 사유와 언어, 세계의 배후에 도사린 논리라는 선험적 인식장치를 과연 붓다와 그의 계승자인 용수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는 본고가 탐구하고자 하는 첫 번째 주제가 된다.
4장에서는 비트겐슈타인의 후기철학적 관점에서 선불교의 언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선문답으로 대표되는 선불교의 사유들을 언어놀이적 관점과 규칙준수, 그리고 길버트 라일의 범주착오 개념에 비추어 나름의 의미를 탐구한다.
이상의 논의는 불교철학, 특히 반야 · 중관 사상을 분석철학적 관점으로 보았을 때 어떤 의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시론적(試論的) 성격을 벗어나지는 못할 것이다. 또 관련된 선행연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므로 본고의 시도 자체도 그리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연구의 범위를 비트겐슈타인 사상의 핵심적 개념들과 반야 · 중관사상의 범주로 한정했다는 데에 나름의 의의를 찾고자 한다.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pproach Buddhist philosophy from the viewpoint of analytic philosophy. I argue that there is a common denominator between Buddhism and analytic philosophy over an attempt to get a limitation on thinking through the nature of language.
In the second chapter, I wi...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pproach Buddhist philosophy from the viewpoint of analytic philosophy. I argue that there is a common denominator between Buddhism and analytic philosophy over an attempt to get a limitation on thinking through the nature of language.
In the second chapter, I will investigate the philosophy of Buddha and Ludwig Wittgenstein. Buddha had questions about all concepts of metaphysical being and non-being but he gave an answer by not answering those questions. Wittgenstein regarded philosophy as an act of seeking "clarification of concepts," an act of fighting against some sort of disease, which would disappear if language and thoughts were clarified. Thus, so I argue, it is reasonable to see Buddha and Ludwig commonly pursuing a state free from the confusion of language and thoughts. They called it nirvana, or peace.
In the third chapter, I will examine the logic of the Buddha’s Sutra called ‘Paraja-para-mita-sutra(般若經典)’ and the thoughts of Nagarjuna(龍樹), one of the most influential Buddhist philosophers from the perspective of a book, the Tractatus Logico-Pilosophicus, published by Wittgenstein. The Sutras and Nargarjuna had an intention to make the secular logic impotent by using rhetoric such as a paradox and the principle of excluded middle and denied the existence of absolute language and thoughts. They believed that everything in the world is sunyata(emptiness;空), mutable and interdependent and it is impossible to define it with limited langue and thoughts.
In the fourth chapter, I will study the langue of Zen, a school of Mahayana Buddhism from Wittgenstein idea "language-play", which Wittgenstein suggested in his later years.
Although language was used to grasp the facts of a case, zen masters refused to admit the concept of language expressing substance. They proved their beliefs by breaking the grammar and giving examples of confusing concepts. Their pupils realized the limitation of language and the fact that they could not achieve their aim with language.
Buddha told us that not only the world but also everything within the world is in a tangle, thus each being cannot posses a distinctive quality and saw the substance of patityasamutpada(緣起) sunyata, mutable and interdependent.
Buddha tried to attain Enlightenment under a tree called the "Bodhi-tree" or the "tree of wisdom" and Nagarijuna made efforts to demonstrate the logic in order to reveal the root of inevitable suffering. Both concluded that the pain results from the ignorance of patityasamutpada and that all sufferings would disappear at the moment when people realize the principle that everything in the whole universe works independently.
The main purpose of this study is to approach Buddhist philosophy from the viewpoint of analytic philosophy. I argue that there is a common denominator between Buddhism and analytic philosophy over an attempt to get a limitation on thinking through the nature of language.
In the second chapter, I will investigate the philosophy of Buddha and Ludwig Wittgenstein. Buddha had questions about all concepts of metaphysical being and non-being but he gave an answer by not answering those questions. Wittgenstein regarded philosophy as an act of seeking "clarification of concepts," an act of fighting against some sort of disease, which would disappear if language and thoughts were clarified. Thus, so I argue, it is reasonable to see Buddha and Ludwig commonly pursuing a state free from the confusion of language and thoughts. They called it nirvana, or peace.
In the third chapter, I will examine the logic of the Buddha’s Sutra called ‘Paraja-para-mita-sutra(般若經典)’ and the thoughts of Nagarjuna(龍樹), one of the most influential Buddhist philosophers from the perspective of a book, the Tractatus Logico-Pilosophicus, published by Wittgenstein. The Sutras and Nargarjuna had an intention to make the secular logic impotent by using rhetoric such as a paradox and the principle of excluded middle and denied the existence of absolute language and thoughts. They believed that everything in the world is sunyata(emptiness;空), mutable and interdependent and it is impossible to define it with limited langue and thoughts.
In the fourth chapter, I will study the langue of Zen, a school of Mahayana Buddhism from Wittgenstein idea "language-play", which Wittgenstein suggested in his later years.
Although language was used to grasp the facts of a case, zen masters refused to admit the concept of language expressing substance. They proved their beliefs by breaking the grammar and giving examples of confusing concepts. Their pupils realized the limitation of language and the fact that they could not achieve their aim with language.
Buddha told us that not only the world but also everything within the world is in a tangle, thus each being cannot posses a distinctive quality and saw the substance of patityasamutpada(緣起) sunyata, mutable and interdependent.
Buddha tried to attain Enlightenment under a tree called the "Bodhi-tree" or the "tree of wisdom" and Nagarijuna made efforts to demonstrate the logic in order to reveal the root of inevitable suffering. Both concluded that the pain results from the ignorance of patityasamutpada and that all sufferings would disappear at the moment when people realize the principle that everything in the whole universe works independent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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