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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옷의 역사와 조형성 연구
A Study on the History and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Hwalot' 원문보기


권혜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국내박사)

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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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전통 혼례복이자 자수 복식인 활옷을 연구 대상으로 하여 그 역사성과 조형성을 고찰한 것이다. 『가례도감의궤』,『국혼정례』,『상방정례』,『궁중 발기』등의 궁중 혼례관련 문헌 기록을 통해 궁중 예복 중 활옷의 기원으로 여겨지는 장삼과 노의를 비교 고찰하였다. 궁중 혼례에 착용되었던 두 복식 모두 대홍색이며 비슷한 격의 옷감을 사용했기 때문에 장식기법에서 격의 차이를 나타내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노의는 금원문으로 장식되었음을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으나, 장삼은 특별한 장식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조선 말기 『궁중 발기』의 기록에 ‘직금 홍장삼’ , ‘다홍별문갑사수천만세부금홍장삼’ 등의 명칭이 있어 조선말기 궁중홍장삼이 직금이나 금박으로 장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궁박물관 소장 활옷 수본 중 1837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되는 ‘홍장삼 수초 저동궁’이라는 묵서가 적힌 수본이 있어 궁중홍장삼을 자수로 장식하였던 것을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유학자들이 쓴 예서와 편지글 등에서는 궁중의 홍장삼을 섭성(攝盛)하여 민간 혼례복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 명칭 또한 홍장삼으로 기록하고 있다. 특히 민간의 홍장삼에는 연꽃과 동자 무늬 등을 수놓았다는 기록이 있어 홍장삼이 자수 혼례복인 활옷임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자수로 장식된 민간홍장삼의 기록이 18세기 이후에 나타나며 궁중홍장삼 수본 또한 19세기 초에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홍장삼이 자수로 장식되기 시작했던 시기를 기록이 나타난 18세기 이후로 볼 수 있으나, 고대 복식에서부터 조선시대 활옷에 까지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자수복식의 역사와 전통 자수 공예의 역량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자수로 장식된 혼례복은 기록 보다 훨씬 이전부터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다음으로 문헌 기록에 나타난 활옷의 어원을 살펴보았다. 활옷과 가장 비슷한 한자어 복식 명칭인 ‘豁衣’와 ‘割衣’는 궁중 혼례복으로 착용되었던 복식이 아니었으며 색상 또한 아청색이기 때문에 활옷의 기원으로 볼 수 없는 복식으로 판단되었다. ‘할옷’·‘슈할옷’ ‘활옷’이라는 명칭은 근대 한글 소설이나 한글 잡지 기사 등 한글로 표기된 기록에 찾아볼 수 있었다. 비록 활옷이라는 명칭이 홍장삼의 기록보다 시기적으로 늦게 나타나지만 기록이 나타난 시기에 이미 활옷이 ‘화려한 복식’ 혹은 ‘혼례복’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아, 민간에서는 활옷이라는 명칭을 근대 이전부터 사용했었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즉 조선시대 왕실과 양반 계층에서는 한자어 명칭인 홍장삼이란 명칭을 사용하였고 민간에서는 ‘큰옷’이라는 의미의 활옷이라는 순우리말 명칭을 주로 사용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조선 왕실의 몰락과 신분계층의 혼란 이후로 홍장삼이란 한자어 명칭은 사라지고 활옷이라는 순 우리말 명칭이 현재 전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 이후 혼례사진에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큰머리 장식에 활옷차림의 신부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민간에서도 이러한 왕실혼례복 차림이 가능했던 것은 조선시대 세물전(貰物廛)과 수모(手母)를 중심으로 혼례복 일습(一襲)을 빌려주었던 대의(貸衣)풍속과 궁중 혼례복을 민간에서도 입을 수 있는 섭성의 풍속 때문이었다. 이상의 조선시대 궁중 혼례복과 민간 혼례복의 고찰을 통해 전통 혼례복인 활옷이 궁중홍장삼에서 기원한 복식임을 밝힐 수 있다. 활옷의 유형은 크게 궁중 활옷과 민간 활옷으로 구분할 수 있다. 궁중 활옷은 장식적 특성에 따라 다시 금박과 자수 장식이 혼합된 형태인 복온공주 활옷 유형과 길상무늬를 가득 수놓은 창덕궁 활옷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활옷 수본에 나타난 무늬 변화 과정을 통해 복온공주 활옷 유형에서 창덕궁 활옷 유형으로 변화 해가는 궁중 활옷의 변천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그 밖의 국내 소장 활옷 유물들은 출처가 확실치 않아 궁중과 민간 유물의 확실한 구분이 어렵다. 현재 활옷의 전형으로 생각되는 궁중 활옷인 창덕궁 활옷을 기준으로 민간 활옷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첫 번째 유형은 궁중 활옷의 조형성을 그대로 모방하여 민간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활옷 유물이다. 비교적 궁중 활옷의 전형을 따르면서도 민간의 정서에 맞는 길상 무늬가 삽입되어 나타나며, 궁중 활옷에서 보이는 세련된 도안과 충전구도에서 오는 경직감이 사라지고 자연스러운 구성을 보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 민간 활옷의 유형은 시기가 많이 올라가지 않는 근대 이후의 활옷으로 전형적인 활옷 양식에서 벗어난 소박한 민간 활옷 형태로 ...

학위논문 정보

저자 권혜진
학위수여기관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의류직물학과
지도교수 홍나영
발행연도 2009
총페이지 xvii, 186 p.
언어 kor
원문 URL http://www.riss.kr/link?id=T11551601&outLink=K
정보원 한국교육학술정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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