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는 김시습이 역사인물을 소재로 창작한 贊을 중심으로 역사인물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먼저 김시습의 찬과 전, 영사시의 전반적인 개황을 살펴보고, 김시습의 영사시를 중심으로 왕조 교체와 충신이 지녀야할 덕목에 대한 김시습의 견해를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김시습의 찬을 중심으로 김시습이 역사인물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김시습의 史贊과 전, 영사시의 개황은 다음과 같다. 사찬과 전의 소재가 된 인물은 모두 중국인이다. 김시습 사찬의 대상 인물이 활동한 시기는 중국 상고시대부터 송나라까지 고...
본고에서는 김시습이 역사인물을 소재로 창작한 贊을 중심으로 역사인물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먼저 김시습의 찬과 전, 영사시의 전반적인 개황을 살펴보고, 김시습의 영사시를 중심으로 왕조 교체와 충신이 지녀야할 덕목에 대한 김시습의 견해를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김시습의 찬을 중심으로 김시습이 역사인물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김시습의 史贊과 전, 영사시의 개황은 다음과 같다. 사찬과 전의 소재가 된 인물은 모두 중국인이다. 김시습 사찬의 대상 인물이 활동한 시기는 중국 상고시대부터 송나라까지 고르게 분포하며, 김시습 전의 입전인물이 활동한 시기는 송나라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김시습의 영사시의 소재가 된 인물은 대부분 중국인이지만, 후백제의 견훤이나 고려의 인물과 같이 우리나라의 역사인물도 포함되어 있다. 김시습의 영사시 중에는 중국고대사에서부터 김시습 당대의 우리나라의 역사까지 통사적인 서술을 한 작품도 있다. 諸葛亮, 岳飛, 文天祥은 김시습의 사찬과 전, 영사시에 모두 소재로 사용된 인물이고, 比干, 伯夷와 叔齊, 屈原, 張良, 蘇武는 사찬과 영사시의 소재로 사용된 인물이며, 周敦頤는 사찬과 전의 소재로 사용된 인물이다. 김시습은 역성혁명에 의한 왕조의 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명분을 갖춘 무왕과 탕왕의 역성혁명에도 이러한 견해는 그대로 적용된다. 또 김시습이 생각하는 충신의 덕목은 忠과 義라 할 수 있다. 김시습의 사찬은 廢朝의 실정과 역성혁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표현된 작품, 역사인물을 통한 비분강개가 표현된 작품, 역사인물의 忠功에 대한 찬미가 직접적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廢朝의 실정이나 역성혁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표현된 史贊은 김시습의 역사인식이 드러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은 부정적인 인물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데, 桀과 紂의 실정을 비교적 자세히 서술한 것이 이에 속한다. 김시습의 사찬에는 인물의 말을 직접 인용하거나 인물간의 대화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대상 인물의 면모를 형상화하고 있다. 인물의 말이나 인물 간의 대화는 대부분 기존의 역사서의 인물의 말이나 인물 간의 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시습은 사찬의 대상이 된 역사인물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역사인물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여 하기도 한다. 김시습의 사찬에서는 인물의 전반적인 면모를 드러낸 후 작가의 감개나 평가를 표현한 반면 영사시에서는 인물의 특정한 면모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하고 있다. 또 김시습은 사찬에서 완전히 드러내지 못했던 인물 행적의 의미를 영사시를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김시습은 역사인물을 소재로 한 사찬에서 역사인식을 드러내기도 하고, 비분강개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하며,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사찬의 창작을 통해 김시습은 바람직한 신하의 상을 제시하고 과거 역사를 감계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김시습이 역사인물을 소재로 창작한 贊을 중심으로 역사인물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먼저 김시습의 찬과 전, 영사시의 전반적인 개황을 살펴보고, 김시습의 영사시를 중심으로 왕조 교체와 충신이 지녀야할 덕목에 대한 김시습의 견해를 고찰하였다. 다음으로 김시습의 찬을 중심으로 김시습이 역사인물을 어떻게 형상화하고 있는지 고찰하였다. 김시습의 史贊과 전, 영사시의 개황은 다음과 같다. 사찬과 전의 소재가 된 인물은 모두 중국인이다. 김시습 사찬의 대상 인물이 활동한 시기는 중국 상고시대부터 송나라까지 고르게 분포하며, 김시습 전의 입전인물이 활동한 시기는 송나라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김시습의 영사시의 소재가 된 인물은 대부분 중국인이지만, 후백제의 견훤이나 고려의 인물과 같이 우리나라의 역사인물도 포함되어 있다. 김시습의 영사시 중에는 중국고대사에서부터 김시습 당대의 우리나라의 역사까지 통사적인 서술을 한 작품도 있다. 諸葛亮, 岳飛, 文天祥은 김시습의 사찬과 전, 영사시에 모두 소재로 사용된 인물이고, 比干, 伯夷와 叔齊, 屈原, 張良, 蘇武는 사찬과 영사시의 소재로 사용된 인물이며, 周敦頤는 사찬과 전의 소재로 사용된 인물이다. 김시습은 역성혁명에 의한 왕조의 교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명분을 갖춘 무왕과 탕왕의 역성혁명에도 이러한 견해는 그대로 적용된다. 또 김시습이 생각하는 충신의 덕목은 忠과 義라 할 수 있다. 김시습의 사찬은 廢朝의 실정과 역성혁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표현된 작품, 역사인물을 통한 비분강개가 표현된 작품, 역사인물의 忠功에 대한 찬미가 직접적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나눌 수 있다. 廢朝의 실정이나 역성혁명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표현된 史贊은 김시습의 역사인식이 드러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면은 부정적인 인물을 비난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데, 桀과 紂의 실정을 비교적 자세히 서술한 것이 이에 속한다. 김시습의 사찬에는 인물의 말을 직접 인용하거나 인물간의 대화를 인용하는 방식으로 대상 인물의 면모를 형상화하고 있다. 인물의 말이나 인물 간의 대화는 대부분 기존의 역사서의 인물의 말이나 인물 간의 대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김시습은 사찬의 대상이 된 역사인물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타인의 말이나 행동을 통해 역사인물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여 하기도 한다. 김시습의 사찬에서는 인물의 전반적인 면모를 드러낸 후 작가의 감개나 평가를 표현한 반면 영사시에서는 인물의 특정한 면모에 초점을 맞추어 표현하고 있다. 또 김시습은 사찬에서 완전히 드러내지 못했던 인물 행적의 의미를 영사시를 통해 표현하기도 한다. 김시습은 역사인물을 소재로 한 사찬에서 역사인식을 드러내기도 하고, 비분강개한 심경을 표현하기도 하며, 역사인물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러한 사찬의 창작을 통해 김시습은 바람직한 신하의 상을 제시하고 과거 역사를 감계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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