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에로디아드Hérodiade」 혹은 「에로디아드의 결혼Les Noces d'Hérodiade」을 중심으로 ‘일원적 존재-언어’를 지향하는 말라르메의 시 세계를 살펴보았다. 말라르메의 시에서 이원성 극복은 존재와 언어 모두에서 일어난다. 존재의 이원성, 즉 자아와 세계의 분리는 자아의 소멸로, 언어의 이원성, 즉 소리와 뜻의 분리는 지시대상의 소멸로 극복된다.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지금까지 「에로디아드Hérodiade」 혹은 「에로디아드의 결혼Les Noces d'Hérodiade」을 중심으로 ‘일원적 존재-언어’를 지향하는 말라르메의 시 세계를 살펴보았다. 말라르메의 시에서 이원성 극복은 존재와 언어 모두에서 일어난다. 존재의 이원성, 즉 자아와 세계의 분리는 자아의 소멸로, 언어의 이원성, 즉 소리와 뜻의 분리는 지시대상의 소멸로 극복된다.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존재이자 언어로서,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존재와 언어의 일원성이 완수되는 순간이다. ‘결혼’의 성격은 시인의 꿈을 드러낸다.
말라르메의 일원성, 즉 절대 추구는 외부의 초월적 절대가 사라지면서 시작한다. 그때 인간에게 남겨진 절대는 개인적 자아의 소멸을 요구하는, 그 자체가 하나인 어떤 정신적 상태가 된다. 시인은 이러한 상태, 시인의 표현을 따르면 비인칭인impersonnel 순수 개념une Conception Pure에 감성을 통해 도달했고, 그 감성에 대한 믿음이 시인 일생을 지탱한다. 시인의 작품은 순수 개념에 이르는 전개과정이 보여줄 이미지로 구성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비인칭에 도달한 자신, 즉 자신의 감성을 바라보기/인식하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에로디아드의 ‘결혼’이 참수된 머리와의 결혼인 것으로 연결된다. 잘린 머리는 성 요한의 것이다. 그러나 에로디아드와 성 요한은 한 존재의 정신적 추이를 담당한 동일 인물이었다. 잘린 머리와 마주해있는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에로디아드가 결혼에 이른다는 말은 말라르메의 순수 개념에 대한 인식이 완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의 ‘순수 개념에 이른 감성에 대한 인식’ 추구는 ‘비인칭인 순수 자아의 인식’ 혹은 ‘어떤 완전한 단어·언어·기호의 존재’ 추구로 가시화되었다. 이것은 실현불가능이다.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이원성을 극복한 존재의 양태는 자아의 소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순수 개념과 자의식, 비존재와 존재, 침묵과 말하기가 공존해야 하는 난관에 이른다.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죽음과의 결혼이자 말하는 죽음 및 주검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에로디아드가 거울 앞에서 느낀 공포의 정체였다. 시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방법이 있다. 실현·현실화될 수 없다면, 현실이 아닌 데서 하면 된다는 것이 말라르메의 생각이었다. 말라르메는 시가 허구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이해한 사람이다. 시인의 절대 추구는 그 완성이 불가능임을 알면서 본격화된다. 불가능을 가능성을 통해 유예시키는 것이 허구라는 문학 메커니즘, 즉 말라르메의 시인 것이다.
순수 개념에 이르러 이미 소멸된 자의식이 순수 개념에 대한 인식을 위해 회복되어야 했을 때, 이지뛰르Igitur는 무대 위 배우로서 비존재의 난관을 극복하면서 ‘이지뛰르 코기토 Cogito d'Igitur'를 완성한다. 소멸된 자아가 되살아날 수도, 복원된 자아가 다시 소멸될 수도 있는 것이 허구의 무대, 즉 시인 것이다. 「이지뛰르Igitur」는 말라르메의 딜레마를 해결한 무대였다. 다시 말해, 「에로디아드의 결혼Les Noces d'Hérodiade」은 에로디아드의 결혼이 가능한 무대이다.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허구의 결혼이다. 에로디아드는 허구의 참수·죽음·결혼을 통해 자기 꿈의 완성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말라르메의 시는 존재의 무화를 이행하고, 무화를 담당하는 것은 시어들이 된다.
여기서 부각되는 것이 ‘관념idée’이었다. 순수 개념은 개별적 사유의 소멸이다. 분별적 사유는 분리를 낳고 그 분리가 각각의 존재를 형성하며, 분별적 사유를 구성하는 것은 언어이다. 언어의 관념이 분별의 요인인 것이다. 따라서 존재도 언어도 고정관념을 제거할 때, 자기 생각 없는 존재 및 소리와 뜻으로 구분되지 않는 언어에 이를 수 있다. 말라르메의 시는 이 제거과정을 담고 있고, 시는 ‘순수한’ 상태를 향해 나아간다. 시 속에서 독자가 만나는 존재의 무화는 그 자체로 순수 자아뿐 아니라 순수 언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시어가 지시하는 존재가 무아에 이르는 것은 시어의 지시대상이 제거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결혼’이 완성되면, 존재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자아 소멸을 통해 비존재인 순수 자아에 이르고, 그때 언어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텅 빈 이름이 된다. 텅 빈 단어는 소리와 뜻으로 나뉜 자신의 이원성을 극복한다. 이름 에로디아드Hérodiade를 묘비명으로 만드는 존재 에로디아드Hérodiade의 죽음은 나와 세계의 이원성을 극복한 상태이다. 말라르메의 일원성 추구는 일원적 존재 혹은 일원적 언어 추구, 일원적 존재-언어 추구이기도 한 것이다.
시어와 지시대상 간 거리를 효과적으로 연장시키고자 했던 시인의 ‘효과의 시학’은 그 거리가 정점에 이르면서 시인에게 (허)무Néant의 발견을 가져왔다. ‘형이상학적 (허)무’이기도 한 (허)무의 발견은 시인의 정신적 위기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러한 (허)무가 사물의 부재를 담을 수 있는 언어를 통해 창조적 가치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지시대상의 없음Néant이 언어의 본질임을 깨달은 시인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말라르메의 시는 (허)무Néant로 넘쳐나는 거짓 경계인 무Rien인 것이다.
허구의 ‘결혼’을 이행하는 무대, 즉 말라르메의 시는 ‘결혼’의 가능성이다.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무Rien는 성좌CONSTELLATION의 예외적 현현을 통해 ‘가능성’으로 변모한 것이다. 즉 「에로디아드」 혹은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결혼’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그 속에 ‘결혼’을 내포함으로써 말라르메의 시 자체에 값한다 : ‘Héros - Diade’. Héros - Diade는 ‘결혼’을 완수한 Hérodiade, 존재 및 언어의 이원성을 완전히 분리시킴으로써 일원성에 도달한 상태를 나타낸다. Héros - Diade의 ‘s'는 일종의 참수인 것이다. 죽음에 이른 존재(비존재)이기도 한 Héros - Diade는 그 자체가 전체인 어떤 일원적 인식을 담당하는 하나의 텅 빈 언어, 즉 일원적 언어를 구현한다.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시인의 영감이 신세지고 있는 이름이 분명했다. Héros - Diade는 「에로디아드」 혹은 「에로디아드의 결혼」뿐 아니라, 시인 여정 전체의 ‘마지막 단어’일 것이라는 게 우리의 「에로디아드」 연구 결과 중 하나이다. ‘순수 개념에 이른 감성에 대한 인식’은 시인 일생의 서원인 것이다.
작품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완성된 ‘결혼’의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결혼’이 완수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에로디아드의 결혼」이라는 허구 속의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에로디아드의 결혼」 속의 ‘결혼’은 거짓이다.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결혼을 무효화한다. ‘결혼’ 당사자인 ‘참수된 머리’의 실재성이 모호하게 처리되는 것은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 말라르메는 시가 허구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인각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절대의 완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 속에서 ‘무아’를 만난다면, 거기에는 허구의 지표가 있었다. 「한번의 주사위 던지기가 우연을 폐기하지는 못하리라」의 선장Maître이 절대의 행위Acte, 즉 비존재의 완성 앞에서 ‘존재 혹은 비존재être ou ne pas être’의 주저만을 계속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인에게 시는 ‘존재 혹은 비존재’라는 ‘회의’의 ‘놀이’인 것이다 : ‘le doute du Jeu supême'. 비존재, 자아 소멸, 분별적 사유의 소멸은 생각 없음 직전의 ‘존재 혹은 비존재’라는 ‘한 생각’에 의해 그 불가능이 연기되는 것이다. 말라르메의 시는 이 ‘한 생각’의 주저, ‘진동하는 미정 suspens vibratoire’, ‘진동하는 사라짐disparition vibratoire'을 형성했다. 여기서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지만, ‘인간 정신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일원성 추구에 있어서, 내재성으로 일관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은 여기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시가 허구라는 자각은, 불가능을 놀 수 있는 무대가 시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일원성을 추구하는 인간 존재가 존재의 소멸이라는 딜레마를 인식으로 극복하고 한 것이 말라르메의 시적 여정이었던 것이다. 시어들의 상호 반사reflets réciproques가 상호적 (허)무néants réciproques를 형성하며 텅 빈 하나의 언어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일원적 존재 및 일원적 인식, 그 모든 것이 응축된 일원적 언어를 향한 시인의 꿈은 지속되는 것이다.
‘성좌’라는 예외적 현현의 가능성으로서 ‘어떤 장소가 저 세계와 융합될 만큼 먼 […]/ 고도’로 밀려나 있던 특별한 ‘장소’, 즉 말라르메의 시가 보모Nourrice의 접시닦기라는 가사일을 통해 지상으로 편입되어 ‘석양의 드라마’로 변환되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말라르메의 시는 지상에 대한 헌사였다. 날마다 펼쳐지는 황혼 무렵, 에로디아드 - 말라르메는 외부의 초월적 절대 없이 절대를 추구하는 인간 정신으로서, ‘존재 혹은 비존재’의 주저를 통해, 비존재로서 실현되는 일원성을 향해, 가능성의 영역을 펼치는 것이다. 거울 앞 에로디아드는 무의미의 심연에서―의미의 보증인이 사라졌으므로―, 붉은 핏빛을 동반한 자기 전복의 드라마를 통해 자기 자신이면서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일 수 있는 의미의 ‘가능성’에 동참하는 것이다. 존재이자 언어인 Hérodiade는 작품 「Hérodiade」라는 허구의 무대 속에서, Héros - Diade, 그 열림을 향해 나아간다. 시어들은 일원적 언어를 향해 ‘통합적 리듬le rythme total'(전집367)을 구축한다. 일원성 추구의 무대가 ‘시’이므로, 에로디아드의 여정은 시인뿐 아니라 독자 또한 포섭한다. 비인칭이 될 시인·독자가 비인칭이 된 시인·독자를 향하여 펼쳐놓는 끝나지 않을 영광스러운 거짓 공연, 이것이 말라르메의 시, 그 존재증명인 것이다.
‘효과’라는 이름으로 시어의 재현적 기능에 제동을 건 말라르메의 시적 추구는 ‘지시의미론’을 넘어서는 여정으로서, 그의 시는 언어 및 시의 자auto - 율nomie을 마련하는 기틀이다. 그의 시는 ‘단어 사과’와 ‘사물 사과’가 다르지 않다는 유구한 허위를 꿰뚫는 ‘영광스러운 거짓’으로서, 초월적 외부 없이 의미의 가능한 ‘장소’가 되는 ‘거짓의 영광’을 안는다. “의미는 시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허구는 내재적 사유의 원천인 것이다.
‘일원적 존재-언어’ 및 「에로디아드」를 중심으로 했던 우리의 말라르메 독서는 내재성으로 일관한 인간 정신의 자취를 확인하는 과정으로서, 그 결과 언어의 발생시점에 대한 의문에 닿는다. 존재와 언어의 이원성이 ‘관념’을 공통분모로 하고, ‘존재 혹은 비존재’의 주저에서 비존재를 선택함으로써 일원적 존재·인식·언어라는 시인의 꿈이 이뤄진다는 말은, 존재를 선택함으로써 존재 및 언어의 관념이 시작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말라르메의 시도는 완성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언어의 발생시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말라르메에 기초한 언어의 발생지점 연구는 언어의 관념, 언어의 시니피에, 언어의 지시대상, 즉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다시 ‘나선’ 위에 있게 된다.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한 독서는 말라르메의 ‘효과의 시학’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에로디아드Hérodiade」 혹은 「에로디아드의 결혼Les Noces d'Hérodiade」을 중심으로 ‘일원적 존재-언어’를 지향하는 말라르메의 시 세계를 살펴보았다. 말라르메의 시에서 이원성 극복은 존재와 언어 모두에서 일어난다. 존재의 이원성, 즉 자아와 세계의 분리는 자아의 소멸로, 언어의 이원성, 즉 소리와 뜻의 분리는 지시대상의 소멸로 극복된다.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존재이자 언어로서,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존재와 언어의 일원성이 완수되는 순간이다. ‘결혼’의 성격은 시인의 꿈을 드러낸다.
말라르메의 일원성, 즉 절대 추구는 외부의 초월적 절대가 사라지면서 시작한다. 그때 인간에게 남겨진 절대는 개인적 자아의 소멸을 요구하는, 그 자체가 하나인 어떤 정신적 상태가 된다. 시인은 이러한 상태, 시인의 표현을 따르면 비인칭인impersonnel 순수 개념une Conception Pure에 감성을 통해 도달했고, 그 감성에 대한 믿음이 시인 일생을 지탱한다. 시인의 작품은 순수 개념에 이르는 전개과정이 보여줄 이미지로 구성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에게는 비인칭에 도달한 자신, 즉 자신의 감성을 바라보기/인식하기가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에로디아드의 ‘결혼’이 참수된 머리와의 결혼인 것으로 연결된다. 잘린 머리는 성 요한의 것이다. 그러나 에로디아드와 성 요한은 한 존재의 정신적 추이를 담당한 동일 인물이었다. 잘린 머리와 마주해있는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다. 에로디아드가 결혼에 이른다는 말은 말라르메의 순수 개념에 대한 인식이 완수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인의 ‘순수 개념에 이른 감성에 대한 인식’ 추구는 ‘비인칭인 순수 자아의 인식’ 혹은 ‘어떤 완전한 단어·언어·기호의 존재’ 추구로 가시화되었다. 이것은 실현불가능이다.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이원성을 극복한 존재의 양태는 자아의 소멸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시인은 순수 개념과 자의식, 비존재와 존재, 침묵과 말하기가 공존해야 하는 난관에 이른다.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죽음과의 결혼이자 말하는 죽음 및 주검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에로디아드가 거울 앞에서 느낀 공포의 정체였다. 시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없다. 그런데 방법이 있다. 실현·현실화될 수 없다면, 현실이 아닌 데서 하면 된다는 것이 말라르메의 생각이었다. 말라르메는 시가 허구라는 사실을 철저하게 이해한 사람이다. 시인의 절대 추구는 그 완성이 불가능임을 알면서 본격화된다. 불가능을 가능성을 통해 유예시키는 것이 허구라는 문학 메커니즘, 즉 말라르메의 시인 것이다.
순수 개념에 이르러 이미 소멸된 자의식이 순수 개념에 대한 인식을 위해 회복되어야 했을 때, 이지뛰르Igitur는 무대 위 배우로서 비존재의 난관을 극복하면서 ‘이지뛰르 코기토 Cogito d'Igitur'를 완성한다. 소멸된 자아가 되살아날 수도, 복원된 자아가 다시 소멸될 수도 있는 것이 허구의 무대, 즉 시인 것이다. 「이지뛰르Igitur」는 말라르메의 딜레마를 해결한 무대였다. 다시 말해, 「에로디아드의 결혼Les Noces d'Hérodiade」은 에로디아드의 결혼이 가능한 무대이다.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허구의 결혼이다. 에로디아드는 허구의 참수·죽음·결혼을 통해 자기 꿈의 완성에 도달하고자 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말라르메의 시는 존재의 무화를 이행하고, 무화를 담당하는 것은 시어들이 된다.
여기서 부각되는 것이 ‘관념idée’이었다. 순수 개념은 개별적 사유의 소멸이다. 분별적 사유는 분리를 낳고 그 분리가 각각의 존재를 형성하며, 분별적 사유를 구성하는 것은 언어이다. 언어의 관념이 분별의 요인인 것이다. 따라서 존재도 언어도 고정관념을 제거할 때, 자기 생각 없는 존재 및 소리와 뜻으로 구분되지 않는 언어에 이를 수 있다. 말라르메의 시는 이 제거과정을 담고 있고, 시는 ‘순수한’ 상태를 향해 나아간다. 시 속에서 독자가 만나는 존재의 무화는 그 자체로 순수 자아뿐 아니라 순수 언어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시어가 지시하는 존재가 무아에 이르는 것은 시어의 지시대상이 제거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결혼’이 완성되면, 존재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자아 소멸을 통해 비존재인 순수 자아에 이르고, 그때 언어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텅 빈 이름이 된다. 텅 빈 단어는 소리와 뜻으로 나뉜 자신의 이원성을 극복한다. 이름 에로디아드Hérodiade를 묘비명으로 만드는 존재 에로디아드Hérodiade의 죽음은 나와 세계의 이원성을 극복한 상태이다. 말라르메의 일원성 추구는 일원적 존재 혹은 일원적 언어 추구, 일원적 존재-언어 추구이기도 한 것이다.
시어와 지시대상 간 거리를 효과적으로 연장시키고자 했던 시인의 ‘효과의 시학’은 그 거리가 정점에 이르면서 시인에게 (허)무Néant의 발견을 가져왔다. ‘형이상학적 (허)무’이기도 한 (허)무의 발견은 시인의 정신적 위기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러한 (허)무가 사물의 부재를 담을 수 있는 언어를 통해 창조적 가치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지시대상의 없음Néant이 언어의 본질임을 깨달은 시인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말라르메의 시는 (허)무Néant로 넘쳐나는 거짓 경계인 무Rien인 것이다.
허구의 ‘결혼’을 이행하는 무대, 즉 말라르메의 시는 ‘결혼’의 가능성이다.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무Rien는 성좌CONSTELLATION의 예외적 현현을 통해 ‘가능성’으로 변모한 것이다. 즉 「에로디아드」 혹은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결혼’의 가능성이다. 그리고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그 속에 ‘결혼’을 내포함으로써 말라르메의 시 자체에 값한다 : ‘Héros - Diade’. Héros - Diade는 ‘결혼’을 완수한 Hérodiade, 존재 및 언어의 이원성을 완전히 분리시킴으로써 일원성에 도달한 상태를 나타낸다. Héros - Diade의 ‘s'는 일종의 참수인 것이다. 죽음에 이른 존재(비존재)이기도 한 Héros - Diade는 그 자체가 전체인 어떤 일원적 인식을 담당하는 하나의 텅 빈 언어, 즉 일원적 언어를 구현한다. 에로디아드Hérodiade는 시인의 영감이 신세지고 있는 이름이 분명했다. Héros - Diade는 「에로디아드」 혹은 「에로디아드의 결혼」뿐 아니라, 시인 여정 전체의 ‘마지막 단어’일 것이라는 게 우리의 「에로디아드」 연구 결과 중 하나이다. ‘순수 개념에 이른 감성에 대한 인식’은 시인 일생의 서원인 것이다.
작품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완성된 ‘결혼’의 가능성이다. 다시 말해 ‘결혼’이 완수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에로디아드의 결혼」이라는 허구 속의 일일 뿐이다. 그러므로 「에로디아드의 결혼」 속의 ‘결혼’은 거짓이다. 「에로디아드의 결혼」은 결혼을 무효화한다. ‘결혼’ 당사자인 ‘참수된 머리’의 실재성이 모호하게 처리되는 것은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었다. 말라르메는 시가 허구라는 사실을 처절하게 인각한 사람이다. 그의 시는 절대의 완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시 속에서 ‘무아’를 만난다면, 거기에는 허구의 지표가 있었다. 「한번의 주사위 던지기가 우연을 폐기하지는 못하리라」의 선장Maître이 절대의 행위Acte, 즉 비존재의 완성 앞에서 ‘존재 혹은 비존재être ou ne pas être’의 주저만을 계속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인에게 시는 ‘존재 혹은 비존재’라는 ‘회의’의 ‘놀이’인 것이다 : ‘le doute du Jeu supême'. 비존재, 자아 소멸, 분별적 사유의 소멸은 생각 없음 직전의 ‘존재 혹은 비존재’라는 ‘한 생각’에 의해 그 불가능이 연기되는 것이다. 말라르메의 시는 이 ‘한 생각’의 주저, ‘진동하는 미정 suspens vibratoire’, ‘진동하는 사라짐disparition vibratoire'을 형성했다. 여기서 ‘실패’를 이야기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지만, ‘인간 정신에 대한 최고의 찬사’라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일원성 추구에 있어서, 내재성으로 일관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은 여기까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시가 허구라는 자각은, 불가능을 놀 수 있는 무대가 시라는 의미를 넘어선다. 일원성을 추구하는 인간 존재가 존재의 소멸이라는 딜레마를 인식으로 극복하고 한 것이 말라르메의 시적 여정이었던 것이다. 시어들의 상호 반사reflets réciproques가 상호적 (허)무néants réciproques를 형성하며 텅 빈 하나의 언어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일원적 존재 및 일원적 인식, 그 모든 것이 응축된 일원적 언어를 향한 시인의 꿈은 지속되는 것이다.
‘성좌’라는 예외적 현현의 가능성으로서 ‘어떤 장소가 저 세계와 융합될 만큼 먼 […]/ 고도’로 밀려나 있던 특별한 ‘장소’, 즉 말라르메의 시가 보모Nourrice의 접시닦기라는 가사일을 통해 지상으로 편입되어 ‘석양의 드라마’로 변환되어야 했던 이유가 여기 있었다. 말라르메의 시는 지상에 대한 헌사였다. 날마다 펼쳐지는 황혼 무렵, 에로디아드 - 말라르메는 외부의 초월적 절대 없이 절대를 추구하는 인간 정신으로서, ‘존재 혹은 비존재’의 주저를 통해, 비존재로서 실현되는 일원성을 향해, 가능성의 영역을 펼치는 것이다. 거울 앞 에로디아드는 무의미의 심연에서―의미의 보증인이 사라졌으므로―, 붉은 핏빛을 동반한 자기 전복의 드라마를 통해 자기 자신이면서 자기 이외의 모든 것일 수 있는 의미의 ‘가능성’에 동참하는 것이다. 존재이자 언어인 Hérodiade는 작품 「Hérodiade」라는 허구의 무대 속에서, Héros - Diade, 그 열림을 향해 나아간다. 시어들은 일원적 언어를 향해 ‘통합적 리듬le rythme total'(전집367)을 구축한다. 일원성 추구의 무대가 ‘시’이므로, 에로디아드의 여정은 시인뿐 아니라 독자 또한 포섭한다. 비인칭이 될 시인·독자가 비인칭이 된 시인·독자를 향하여 펼쳐놓는 끝나지 않을 영광스러운 거짓 공연, 이것이 말라르메의 시, 그 존재증명인 것이다.
‘효과’라는 이름으로 시어의 재현적 기능에 제동을 건 말라르메의 시적 추구는 ‘지시의미론’을 넘어서는 여정으로서, 그의 시는 언어 및 시의 자auto - 율nomie을 마련하는 기틀이다. 그의 시는 ‘단어 사과’와 ‘사물 사과’가 다르지 않다는 유구한 허위를 꿰뚫는 ‘영광스러운 거짓’으로서, 초월적 외부 없이 의미의 가능한 ‘장소’가 되는 ‘거짓의 영광’을 안는다. “의미는 시 속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말라르메에게 있어서 허구는 내재적 사유의 원천인 것이다.
‘일원적 존재-언어’ 및 「에로디아드」를 중심으로 했던 우리의 말라르메 독서는 내재성으로 일관한 인간 정신의 자취를 확인하는 과정으로서, 그 결과 언어의 발생시점에 대한 의문에 닿는다. 존재와 언어의 이원성이 ‘관념’을 공통분모로 하고, ‘존재 혹은 비존재’의 주저에서 비존재를 선택함으로써 일원적 존재·인식·언어라는 시인의 꿈이 이뤄진다는 말은, 존재를 선택함으로써 존재 및 언어의 관념이 시작된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말라르메의 시도는 완성에 이를 수 없다는 점에서 언어의 발생시점을 강하게 시사한다. 말라르메에 기초한 언어의 발생지점 연구는 언어의 관념, 언어의 시니피에, 언어의 지시대상, 즉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한 연구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다시 ‘나선’ 위에 있게 된다. 언어와 사물의 관계에 대한 독서는 말라르메의 ‘효과의 시학’에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형태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La raison de l'attirance d'Hérodiade pour nous se constitue du Néant, découvert par notre poète Mallarmé qui creusait Ouverture, une partie d'Hérodiade. Cette découverte, issue du néant par rapport aux référents dans son langage p...
La raison de l'attirance d'Hérodiade pour nous se constitue du Néant, découvert par notre poète Mallarmé qui creusait Ouverture, une partie d'Hérodiade. Cette découverte, issue du néant par rapport aux référents dans son langage poétique, fait désespérer Mallarmé, parce que ce Néant signifie l'irréalité de pensées et de rêve. De sorte que les humains se manifestent comme ‘les vaines formes de la matière' : le corps, seul reste irrémédiable après l'irréel de pensées et de rêve.
Hérodiade évoque cependant ‘la beauté humaine de la vie' dans Les Noces d'Hérodiade. Cette évocation est en rapport absolu, d'abord avec la Beauté mallarméenne après le Néant, et ensuite avec la Poésie, ‘expression parfaite' de cette Beauté. De ce fait, nous comprenons qu'une ‘belle révolte de la vie' est invoquée dans Les Noces d'Hérodiade, et que cette révolte est en forte relation avec celle de l'esprit contre la matière - le corps.
Après le Néant, l'oeuvre de Mallarmé doit se composer d'‘image du développement absolument nécessaire pour que l'Univers retrouve, en le poëte, son identité.' L'état spirituel de cet Univers s'identifie, selon Mallarmé, non seulement à une Conception Pure à laquelle il est arrivé par une sensibilité, mais également à la mort personnelle et spirituelle. Nous pouvons alors constater que le voeu mallarméen se cristallise autour de la reconnaissance de sa propre mort et de la sensibilité mortelle : une reconnaissance de la sensibilité qui parvient à une Conception Pure.
Hérodiade, se réfléchissant devant le miroir, se représente comme quelqu'une qui doit anéantir son impureté. Cette poursuite s'achève avec sa mort, disparition de l'ombre dans le miroir. Hérodiade devient alors un personnage qui doit accomplir ‘l'Absolu-Néant' de Mallarmé pour qui ‘le néant' devient ‘un concept ontologique'.
De ce fait, nous constatons que son aventure autour d'‘une Conception Pure’ ‘impersonnel’ a réclamé l'abolition de toutes ses pensées : il s'est confronté au dilemme d'abord entre être et ne pas être au plan ontologique, puis entre une conscience de soi et une Conception pure au plan épistémologique, et enfin entre une parole et une silence au plan poétique. Ce dilemme, devise fatale qui se déguise en La Folie d'Elbehnon.
Igitur de Mallarmé se présente comme ‘un conte’ homéopathique contre la folie, par lequel Mallarmé doit reconstituer son ‘moi’ qu'il ‘a voulu abjurer’. Ainsi commence le drame d'Igitur - Mallarmé - Hérodiade. À ce drame fondé sur la question ‘être ou ne pas être’ répond Igitur en foulant ‘un lieu’ spécial. Là où dure sans fin sa question․hésitation․doute, parce que sa fuite de la tombe aboutit à son propre retour. De ce fait, le choix entre ‘être’ et ‘ne pas être’ s'y révèle hors de question.
Ce ‘lieu’ tient à ‘une vision de la chûte interrompue de panneaux’ auquel arrive ‘une idée’․Igitur à travers modifications des images : pendule, tombeau et spirale. Et ces modifications, étant parties de la perception d'Igiur․‘une idée’, permettent à cette ‘idée’ de constituer sa conscience. C'est ainsi que se prépare ‘un lieu’, lieu de ‘la conscience de soi’ d’Igitur.
Etant donné que la mission d'Igitur est de connaî̂tre le Minuit․‘une Conception Pure’, ce ‘lieu’ se montre comme une limite de la co-présence absurde du Minuit avec Igitur. Et sa cognition du ‘lieu’ apporte d’abord sa conscience de soi à Igitur. Celle-là, en disparaissant, peut faire [re]connaître ensuite le Minuit à Igitur : le dilemme mallarméen. C'est dans cette hésitation inévitable, dans cette inutilité de choix que peut, à reprises infinies, subsister une conscience de soi. Ce ‘lieu’ captivant Igitur devient une incarnation fictive de [re]connaître le Minuit, de co-subsistance d’‘être' avec ‘ne pas être'.
C'est ainsi que se dissout le dilemme mallarméen dans le ‘lieu’ de ‘la conscience de soi’ : le dilemme de l'‘être et ne pas être’, dans l’‘être ou ne pas être’. Le ‘lieu’ du doute infini―être ou ne pas être―, parvient enfin à celui du ‘doute du Jeu suprême’, où se caractérise la poésie mallarméenne. Il en résulte qu’Igitur se métamorphose en un comédien dans une scène fictive. Et cela permet à Igitur de se consacrer au ‘Cogito d'Igitur.' Et le doute― être ou ne pas être― se révèle ‘Un Coup', c'est-à-dire ‘Une Pensée' dans 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
Ce ‘lieu' est une architecture de l'esprit. C'est la ‘réflexion du Minuit’ qui inaugure le parcours d'Igitur et sa présence même. Pour ces raisons, le ‘lieu’ se manifeste comme une scène, créée par ‘la fiction’․‘le procédé même de l'esprit humain’, ‘la fiction’․‘le mécanisme littéraire’. En conséquence, la poésie mallarméenne devient ‘un contre-monde', où se présente ‘le langage se réfléchissant', et une fausse limite où ‘les mots se reflètent les uns sur les autres jusqu'à paraître ne plus avoir leur couleur propre, mais n'être que les transitions d'une gamme'. Par là, le langage poétique chez Mallarmé s'identifie à une pièce vide qui peut concevoir l'absence des objets. Pour ces raisons, ‘Rien qui est la vérité’ est complète de Néant sonore.
Rien, un autre titre de lieu poétique, se métamorphose en univers virtuel où est provoqué ‘une double opération complémentaire qui, par le moyen du langage, virtualise en l'esprit ce qui est, et crée en l'esprit ce qui n'était pas'. La poésie, un monde potentiel, laisse continuer la poursuite mallarméenne, ontologique, épistémologique et poétique, comme une possibilité contre l'impossibilité de reconnaître la mort[e], une reconnaissance de la sensibilité qui parvient à une Conception Pure. Il en résulte que Hérodiade, comme un être comme un langage, peut encore se réfléter.
Les Noces d'Hérodiade pratiquent ce voeu mallarméen, une reconnaissance de la sensibilité qui parvient à une Conception Pure. Ces Noces, bien entendu fictives, se présentent au plan superficiel d'un côté comme celles d'Hérodiade avec la tête tranchée de saint Jean. Mais d'un autre côté, plus en profondeur, elles impliquent celles d'Hérodiade avec sa propre mort et/ou sa propre morte. Les Noces d'Hérodiade se caractérise comme celles avec la mort.
Etant donné que saint Jean incarne le sentiment religieux en face de la mort, ce sentiment met sur une même scène saint Jean et Nourrice, parce que Nourrice permet le bonheur d'enfance issu de l'azur séraphique. La tête devant Hérodiade présente en conséquence la mort ex-religieuse, spirituelle et intrinsèque. Les deux personnages s'interprètent alors comme chaque étape qu'Hérodiade - Mallarmé doit surpasser pour compléter son propre rêve : la reconnaissance de la mort par elle-mê̂me, une reconnaissance de la sensibilité qui parvient à une Conception Pure. Nourrice se manifeste fortement alors comme un symbole du ‘seuil' de ‘solitaires noces' : sans sentiment, pas de reconnaissance au sentiment. Le besoin de reconnaissance, en se comblant, demande impérativement de couper la tête. La tête tranchée symbolise le moment de rendez-vous avec la mort. Ce rendez-vous permet de reconnaître sa propre mort et la sensation mortelle. C'est ainsi que Hérodiade incarne la beauté consciente d'elle-même, la beauté moderne. Ses Noces se situent sur un lieu fictif, répétitif, et immanent.
Étude sur Hérodiade de Mallarmé permet de lire son parcour concentré à un Oeuvre ou au Livre. Le mot final d'Hérodiade se révèle comme la fin du chemin mallarméen : ‘Héros - Diade' manifesté comme un état unitaire à l'horizon de l'être et/ou du langage. Achevant un être unitaire d'Hérodiade dans l'anéantissement, le nom Hérodiade devient ‘un cénotaphe', le mot Hérodiade parvient alors à un état unitaire. ‘S' de ‘Héros - Diade' se présente comme un glaive. Héros - Diade, seul état fictif s'avère comme un unique univers possible pour espèces humains condamnés à compléter une reconnaissance totalitaire.
Héros - Diade ouvre une nouvelle horizon de lecture : l'état unitaire․ impersonnel est réclamé non seulement au poète mais au lecteur. A travers poèmes mallarméens, poète et lecteur, écrire et lire s'unifient comme un ‘complice'. De telle tentative se complètera ‘le devoir du poète, explication orphique de la Terre'.
La raison de l'attirance d'Hérodiade pour nous se constitue du Néant, découvert par notre poète Mallarmé qui creusait Ouverture, une partie d'Hérodiade. Cette découverte, issue du néant par rapport aux référents dans son langage poétique, fait désespérer Mallarmé, parce que ce Néant signifie l'irréalité de pensées et de rêve. De sorte que les humains se manifestent comme ‘les vaines formes de la matière' : le corps, seul reste irrémédiable après l'irréel de pensées et de rêve.
Hérodiade évoque cependant ‘la beauté humaine de la vie' dans Les Noces d'Hérodiade. Cette évocation est en rapport absolu, d'abord avec la Beauté mallarméenne après le Néant, et ensuite avec la Poésie, ‘expression parfaite' de cette Beauté. De ce fait, nous comprenons qu'une ‘belle révolte de la vie' est invoquée dans Les Noces d'Hérodiade, et que cette révolte est en forte relation avec celle de l'esprit contre la matière - le corps.
Après le Néant, l'oeuvre de Mallarmé doit se composer d'‘image du développement absolument nécessaire pour que l'Univers retrouve, en le poëte, son identité.' L'état spirituel de cet Univers s'identifie, selon Mallarmé, non seulement à une Conception Pure à laquelle il est arrivé par une sensibilité, mais également à la mort personnelle et spirituelle. Nous pouvons alors constater que le voeu mallarméen se cristallise autour de la reconnaissance de sa propre mort et de la sensibilité mortelle : une reconnaissance de la sensibilité qui parvient à une Conception Pure.
Hérodiade, se réfléchissant devant le miroir, se représente comme quelqu'une qui doit anéantir son impureté. Cette poursuite s'achève avec sa mort, disparition de l'ombre dans le miroir. Hérodiade devient alors un personnage qui doit accomplir ‘l'Absolu-Néant' de Mallarmé pour qui ‘le néant' devient ‘un concept ontologique'.
De ce fait, nous constatons que son aventure autour d'‘une Conception Pure’ ‘impersonnel’ a réclamé l'abolition de toutes ses pensées : il s'est confronté au dilemme d'abord entre être et ne pas être au plan ontologique, puis entre une conscience de soi et une Conception pure au plan épistémologique, et enfin entre une parole et une silence au plan poétique. Ce dilemme, devise fatale qui se déguise en La Folie d'Elbehnon.
Igitur de Mallarmé se présente comme ‘un conte’ homéopathique contre la folie, par lequel Mallarmé doit reconstituer son ‘moi’ qu'il ‘a voulu abjurer’. Ainsi commence le drame d'Igitur - Mallarmé - Hérodiade. À ce drame fondé sur la question ‘être ou ne pas être’ répond Igitur en foulant ‘un lieu’ spécial. Là où dure sans fin sa question․hésitation․doute, parce que sa fuite de la tombe aboutit à son propre retour. De ce fait, le choix entre ‘être’ et ‘ne pas être’ s'y révèle hors de question.
Ce ‘lieu’ tient à ‘une vision de la chûte interrompue de panneaux’ auquel arrive ‘une idée’․Igitur à travers modifications des images : pendule, tombeau et spirale. Et ces modifications, étant parties de la perception d'Igiur․‘une idée’, permettent à cette ‘idée’ de constituer sa conscience. C'est ainsi que se prépare ‘un lieu’, lieu de ‘la conscience de soi’ d’Igitur.
Etant donné que la mission d'Igitur est de connaî̂tre le Minuit․‘une Conception Pure’, ce ‘lieu’ se montre comme une limite de la co-présence absurde du Minuit avec Igitur. Et sa cognition du ‘lieu’ apporte d’abord sa conscience de soi à Igitur. Celle-là, en disparaissant, peut faire [re]connaître ensuite le Minuit à Igitur : le dilemme mallarméen. C'est dans cette hésitation inévitable, dans cette inutilité de choix que peut, à reprises infinies, subsister une conscience de soi. Ce ‘lieu’ captivant Igitur devient une incarnation fictive de [re]connaître le Minuit, de co-subsistance d’‘être' avec ‘ne pas être'.
C'est ainsi que se dissout le dilemme mallarméen dans le ‘lieu’ de ‘la conscience de soi’ : le dilemme de l'‘être et ne pas être’, dans l’‘être ou ne pas être’. Le ‘lieu’ du doute infini―être ou ne pas être―, parvient enfin à celui du ‘doute du Jeu suprême’, où se caractérise la poésie mallarméenne. Il en résulte qu’Igitur se métamorphose en un comédien dans une scène fictive. Et cela permet à Igitur de se consacrer au ‘Cogito d'Igitur.' Et le doute― être ou ne pas être― se révèle ‘Un Coup', c'est-à-dire ‘Une Pensée' dans 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
Ce ‘lieu' est une architecture de l'esprit. C'est la ‘réflexion du Minuit’ qui inaugure le parcours d'Igitur et sa présence même. Pour ces raisons, le ‘lieu’ se manifeste comme une scène, créée par ‘la fiction’․‘le procédé même de l'esprit humain’, ‘la fiction’․‘le mécanisme littéraire’. En conséquence, la poésie mallarméenne devient ‘un contre-monde', où se présente ‘le langage se réfléchissant', et une fausse limite où ‘les mots se reflètent les uns sur les autres jusqu'à paraître ne plus avoir leur couleur propre, mais n'être que les transitions d'une gamme'. Par là, le langage poétique chez Mallarmé s'identifie à une pièce vide qui peut concevoir l'absence des objets. Pour ces raisons, ‘Rien qui est la vérité’ est complète de Néant sonore.
Rien, un autre titre de lieu poétique, se métamorphose en univers virtuel où est provoqué ‘une double opération complémentaire qui, par le moyen du langage, virtualise en l'esprit ce qui est, et crée en l'esprit ce qui n'était pas'. La poésie, un monde potentiel, laisse continuer la poursuite mallarméenne, ontologique, épistémologique et poétique, comme une possibilité contre l'impossibilité de reconnaître la mort[e], une reconnaissance de la sensibilité qui parvient à une Conception Pure. Il en résulte que Hérodiade, comme un être comme un langage, peut encore se réfléter.
Les Noces d'Hérodiade pratiquent ce voeu mallarméen, une reconnaissance de la sensibilité qui parvient à une Conception Pure. Ces Noces, bien entendu fictives, se présentent au plan superficiel d'un côté comme celles d'Hérodiade avec la tête tranchée de saint Jean. Mais d'un autre côté, plus en profondeur, elles impliquent celles d'Hérodiade avec sa propre mort et/ou sa propre morte. Les Noces d'Hérodiade se caractérise comme celles avec la mort.
Etant donné que saint Jean incarne le sentiment religieux en face de la mort, ce sentiment met sur une même scène saint Jean et Nourrice, parce que Nourrice permet le bonheur d'enfance issu de l'azur séraphique. La tête devant Hérodiade présente en conséquence la mort ex-religieuse, spirituelle et intrinsèque. Les deux personnages s'interprètent alors comme chaque étape qu'Hérodiade - Mallarmé doit surpasser pour compléter son propre rêve : la reconnaissance de la mort par elle-mê̂me, une reconnaissance de la sensibilité qui parvient à une Conception Pure. Nourrice se manifeste fortement alors comme un symbole du ‘seuil' de ‘solitaires noces' : sans sentiment, pas de reconnaissance au sentiment. Le besoin de reconnaissance, en se comblant, demande impérativement de couper la tête. La tête tranchée symbolise le moment de rendez-vous avec la mort. Ce rendez-vous permet de reconnaître sa propre mort et la sensation mortelle. C'est ainsi que Hérodiade incarne la beauté consciente d'elle-même, la beauté moderne. Ses Noces se situent sur un lieu fictif, répétitif, et immanent.
Étude sur Hérodiade de Mallarmé permet de lire son parcour concentré à un Oeuvre ou au Livre. Le mot final d'Hérodiade se révèle comme la fin du chemin mallarméen : ‘Héros - Diade' manifesté comme un état unitaire à l'horizon de l'être et/ou du langage. Achevant un être unitaire d'Hérodiade dans l'anéantissement, le nom Hérodiade devient ‘un cénotaphe', le mot Hérodiade parvient alors à un état unitaire. ‘S' de ‘Héros - Diade' se présente comme un glaive. Héros - Diade, seul état fictif s'avère comme un unique univers possible pour espèces humains condamnés à compléter une reconnaissance totalitaire.
Héros - Diade ouvre une nouvelle horizon de lecture : l'état unitaire․ impersonnel est réclamé non seulement au poète mais au lecteur. A travers poèmes mallarméens, poète et lecteur, écrire et lire s'unifient comme un ‘complice'. De telle tentative se complètera ‘le devoir du poète, explication orphique de la Ter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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