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樓亭記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여 분석 방법을 모색하고, 한국 누정기의 역사적 전개 양상 속에서 조선중기 누정기가 지니는 주제의식, 서술방식, 문체의 특성을 구명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한 예비 작업으로 먼저 누정기의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고 누정기에 나타난 공간 인식과 서술 방식을 분석 시 고려할 점으로 제시하였다. 다음으로는 신라 최치원부터 16세기 중반까지 누정기의 시대별 창작 양상을 (1)신라 최치원~고려후기, (2)15~16세기 중반의 두 시기로 나누어 개괄하였다. 조선중기 누정기의 전개 양상은 李山海(1539-1609), 崔岦(1539-1612), 柳夢寅(1559-1623), 許筠(1569-1618), 任叔英(1576-1623), 張維(1587-1638), 李植(1584-1647) 7인을 선정하여, 주제의식과 서술방식 및 문체의 측면에서 작품 양상을 살펴보았다. 7인은 文才가 뛰어난 문장가라는 점,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성을 비교적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점, 조선중기 내에서 선조 연간, 광해군 연간, 인조 연간을 대표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선정한 것이었다. 이산해는 산수 경물을 정치적 좌절에서 오는 우수를 해소하고 극복하는 방편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자연인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표현적 측면에서 이산해 누정기의 특징은 산수유기에서 보는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경물 묘사에 있었다. 최립의 누정기에는 玩物喪志에 대한 경계를 보이면서도, 심미 주체의 자유로운 산수 경물의 감수를 허용하는 일견 모순된 태도가 나타났다. 서술방식에서 최립 누정기의 가장 큰 특징은 누정의 이름과 관련된 의론이 주류를 이루며, 의론의 방식이 문답 구조를 통해 논쟁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었다. 유몽인 누정기는 기문 청탁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풍유를 통한 권면의 방식으로 당대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독특한 주제의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유몽인은 누정기의 창작에 『장자』를 비롯한 諸子書의 사유와 구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압운을 하거나 고사를 다용하며 변려문과 같은 행문을 보여주는 등 형식적으로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였다. 허균의 누정기에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상당히 직접적이고 강개하게 드러나 있었다. 서술방식에서 건물 주인과 허균 자신과의 경험을 삽입하거나 신이한 인물과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소설적 필치로 서술한 점은 주목할 만하였다. 임숙영의 누정기에서는 귀래자를 보내는 안타까운 심정을 증서류 산문과 같이 강개한 구법을 볼 수 있었다.또한 임숙영은 누정기에서 『장자』의 역설적 사유를 가져와 현실을 비판하거나 『포박자』의 문체를 차용하여 독특한 구법을 구사한 것은 특기할 만하였다. 장유는 정치적 동류 집단의 거소에 붙인 누정기에서 동지들을 위로하며 陰陽의 待對原理에 입각하여 『주역』의 순환론적 우주관을 『장자』와 사상적․논리적 충돌 없이 결합시킨 점이 특이하였다. 또한 장유는 우언적 성격을 보여주는 「신명사기」와 「신루기」를 남겼는데, 「신명사기」는 조선전기 일련의 心性 寓言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특히 15세기 南孝溫의 「屋賦」에서 영향 받은 바가 컸다. 「신루기」는 『장자』에 연원을 둔 상대주의적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 議論 위주의 서술을 전개한다는 점, 『장자』 「제물론」의 구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에 지어진 여타 문인들의 「신루기」와 달랐다. 이식은 주자학적 이념의 철저한 실천을 강조한 문인답게 누정기에서도 성리학적 의식을 강하게 보여주었는데, 『노자』나 『장자』 등 諸子書의 구절이나 고사를 가져다 쓰는 조선중기 누정기의 일반적인 경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서술방식과 문체에서 이식 누정기만의 특징은 史傳體 형식을 본뜬 인물 기사와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에 있었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성을 공간․자연 인식, 주제 의식, 서술방식, 문체의 방면에서 정리하였다. 먼저 조선중기 누정기에는 정치현실과의 대립 구도 속에서, 누정을 세속과 격절된 개인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누정에 대한 공간 인식의 변화는 자연 인식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玩物喪志에 대한 경계가 전대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 특히 장자적 자연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주제의식적 측면에서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징은 불우한 처지에서 오는 우수를 표출하거나 당대 현실을 비판하는 경향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조선중기 누정기에 나타난 불우의식은 주로 붕당의 대립이라는 당대의 정치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조선중기 누정기에 나타난 불우의식이나 불만의 표출 양상을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났다. 중앙 정계인 세속과 자신의 거처 공간을 대립으로 설정하여 전자를 부정한 곳으로 후자를 평안한 곳으로 보며 자위하는 경우, 『주역』의 순환론적 세계관을 통해 현재의 암울한 상황이 극에 달하면 좋은 때가 올 것이라며 위로하는 경우, 중앙 정계나 당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경우, 인생 자체를 무상한 것으로 보아 현실적 우수와 불만을 초극하려는 경우가 그것이었다. 서술방식에서 조선중기 누정기는 전반적으로 의론이 확대되었고 문답법을 활용한 논쟁적 의론이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중기에 들어 누정기 내부에서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었는데, 문답법을 활용한 논쟁적 의론의 확대는 서술방식에서 누정기의 변화를 모색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조선중기에 들어 붕당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적 반대파의 비판에 대한 ...
본 논문은 樓亭記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여 분석 방법을 모색하고, 한국 누정기의 역사적 전개 양상 속에서 조선중기 누정기가 지니는 주제의식, 서술방식, 문체의 특성을 구명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한 예비 작업으로 먼저 누정기의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고 누정기에 나타난 공간 인식과 서술 방식을 분석 시 고려할 점으로 제시하였다. 다음으로는 신라 최치원부터 16세기 중반까지 누정기의 시대별 창작 양상을 (1)신라 최치원~고려후기, (2)15~16세기 중반의 두 시기로 나누어 개괄하였다. 조선중기 누정기의 전개 양상은 李山海(1539-1609), 崔岦(1539-1612), 柳夢寅(1559-1623), 許筠(1569-1618), 任叔英(1576-1623), 張維(1587-1638), 李植(1584-1647) 7인을 선정하여, 주제의식과 서술방식 및 문체의 측면에서 작품 양상을 살펴보았다. 7인은 文才가 뛰어난 문장가라는 점,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성을 비교적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점, 조선중기 내에서 선조 연간, 광해군 연간, 인조 연간을 대표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선정한 것이었다. 이산해는 산수 경물을 정치적 좌절에서 오는 우수를 해소하고 극복하는 방편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자연인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표현적 측면에서 이산해 누정기의 특징은 산수유기에서 보는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경물 묘사에 있었다. 최립의 누정기에는 玩物喪志에 대한 경계를 보이면서도, 심미 주체의 자유로운 산수 경물의 감수를 허용하는 일견 모순된 태도가 나타났다. 서술방식에서 최립 누정기의 가장 큰 특징은 누정의 이름과 관련된 의론이 주류를 이루며, 의론의 방식이 문답 구조를 통해 논쟁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었다. 유몽인 누정기는 기문 청탁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풍유를 통한 권면의 방식으로 당대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독특한 주제의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유몽인은 누정기의 창작에 『장자』를 비롯한 諸子書의 사유와 구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압운을 하거나 고사를 다용하며 변려문과 같은 행문을 보여주는 등 형식적으로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였다. 허균의 누정기에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상당히 직접적이고 강개하게 드러나 있었다. 서술방식에서 건물 주인과 허균 자신과의 경험을 삽입하거나 신이한 인물과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소설적 필치로 서술한 점은 주목할 만하였다. 임숙영의 누정기에서는 귀래자를 보내는 안타까운 심정을 증서류 산문과 같이 강개한 구법을 볼 수 있었다.또한 임숙영은 누정기에서 『장자』의 역설적 사유를 가져와 현실을 비판하거나 『포박자』의 문체를 차용하여 독특한 구법을 구사한 것은 특기할 만하였다. 장유는 정치적 동류 집단의 거소에 붙인 누정기에서 동지들을 위로하며 陰陽의 待對原理에 입각하여 『주역』의 순환론적 우주관을 『장자』와 사상적․논리적 충돌 없이 결합시킨 점이 특이하였다. 또한 장유는 우언적 성격을 보여주는 「신명사기」와 「신루기」를 남겼는데, 「신명사기」는 조선전기 일련의 心性 寓言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특히 15세기 南孝溫의 「屋賦」에서 영향 받은 바가 컸다. 「신루기」는 『장자』에 연원을 둔 상대주의적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 議論 위주의 서술을 전개한다는 점, 『장자』 「제물론」의 구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에 지어진 여타 문인들의 「신루기」와 달랐다. 이식은 주자학적 이념의 철저한 실천을 강조한 문인답게 누정기에서도 성리학적 의식을 강하게 보여주었는데, 『노자』나 『장자』 등 諸子書의 구절이나 고사를 가져다 쓰는 조선중기 누정기의 일반적인 경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서술방식과 문체에서 이식 누정기만의 특징은 史傳體 형식을 본뜬 인물 기사와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에 있었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성을 공간․자연 인식, 주제 의식, 서술방식, 문체의 방면에서 정리하였다. 먼저 조선중기 누정기에는 정치현실과의 대립 구도 속에서, 누정을 세속과 격절된 개인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누정에 대한 공간 인식의 변화는 자연 인식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玩物喪志에 대한 경계가 전대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 특히 장자적 자연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주제의식적 측면에서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징은 불우한 처지에서 오는 우수를 표출하거나 당대 현실을 비판하는 경향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조선중기 누정기에 나타난 불우의식은 주로 붕당의 대립이라는 당대의 정치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조선중기 누정기에 나타난 불우의식이나 불만의 표출 양상을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났다. 중앙 정계인 세속과 자신의 거처 공간을 대립으로 설정하여 전자를 부정한 곳으로 후자를 평안한 곳으로 보며 자위하는 경우, 『주역』의 순환론적 세계관을 통해 현재의 암울한 상황이 극에 달하면 좋은 때가 올 것이라며 위로하는 경우, 중앙 정계나 당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경우, 인생 자체를 무상한 것으로 보아 현실적 우수와 불만을 초극하려는 경우가 그것이었다. 서술방식에서 조선중기 누정기는 전반적으로 의론이 확대되었고 문답법을 활용한 논쟁적 의론이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중기에 들어 누정기 내부에서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었는데, 문답법을 활용한 논쟁적 의론의 확대는 서술방식에서 누정기의 변화를 모색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조선중기에 들어 붕당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적 반대파의 비판에 대한 방어기제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누정기에서는 문답법을 활용한 논쟁적 의론이 그 방법의 하나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조선중기 누정기가 보여주는 형식적 변화의 모색과 다양한 기법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첫째는 조선중기 누정기에는 산수유기의 산수 경물 묘사 방식, 낙척자에게 주는 증서류 산문에 쓰이는 강개한 구법, 인사잡기나 소설에 주로 사용되는 사건 중심의 기사, 史傳體 형식의 인물 기사 등, 여타 장르의 문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둘째는 押韻을 하고 四六騈麗文과 비슷한 行文을 보이며, 『포박자』 「行品」편의 구법을 차용하는 등, 구법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경우였다. 셋째는 당송고문 이외에 『논어』, 『맹자』, 『장자』 등 先秦古文 텍스트의 사유와 구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문체에 변화를 준 점이었다. 특히 조선중기 누정기에 보이는 『장자』 유행의 배경으로 선조가 『장자』를 酷好했다는 점, 『장자』가 科文 창작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 등을 제시하여, 조선중기 산문에서 『장자』의 수용이 반드시 외재적 요인에 의해서만 활성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중기 누정기에 빈번하게 보이는 『주역』과 『장자』 활용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먼저 광해군 연간에 지어진 누정기에서 『주역』을 빈번하게 인용한 것은 정치적으로 좌절된 처지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역』을 통해 위로받는 한편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 의식의 반영으로 이해하였다. 다음으로 조선중기 누정기에서 『장자』가 불우함에서 오는 우수를 해소하거나 사회에 대한 비판에 활용되었다는 것은, 『장자』가 문학 학습을 위한 텍스트로 활용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당대의 문인들이 『장자』가 담지하고 있는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논문은 한문산문의 분석 방법을 정립하고 한국산문사의 구도와 변화를 구명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며, 나아가 문화사 연구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본 논문은 樓亭記의 장르적 특성을 고려하여 분석 방법을 모색하고, 한국 누정기의 역사적 전개 양상 속에서 조선중기 누정기가 지니는 주제의식, 서술방식, 문체의 특성을 구명하는 데에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한 예비 작업으로 먼저 누정기의 장르적 특성을 규정하고 누정기에 나타난 공간 인식과 서술 방식을 분석 시 고려할 점으로 제시하였다. 다음으로는 신라 최치원부터 16세기 중반까지 누정기의 시대별 창작 양상을 (1)신라 최치원~고려후기, (2)15~16세기 중반의 두 시기로 나누어 개괄하였다. 조선중기 누정기의 전개 양상은 李山海(1539-1609), 崔岦(1539-1612), 柳夢寅(1559-1623), 許筠(1569-1618), 任叔英(1576-1623), 張維(1587-1638), 李植(1584-1647) 7인을 선정하여, 주제의식과 서술방식 및 문체의 측면에서 작품 양상을 살펴보았다. 7인은 文才가 뛰어난 문장가라는 점,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성을 비교적 뚜렷하게 보여준다는 점, 조선중기 내에서 선조 연간, 광해군 연간, 인조 연간을 대표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선정한 것이었다. 이산해는 산수 경물을 정치적 좌절에서 오는 우수를 해소하고 극복하는 방편으로 인식하였다는 점에서, 성리학적 자연인식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표현적 측면에서 이산해 누정기의 특징은 산수유기에서 보는 것과 같은 구체적이고 생동감 있는 경물 묘사에 있었다. 최립의 누정기에는 玩物喪志에 대한 경계를 보이면서도, 심미 주체의 자유로운 산수 경물의 감수를 허용하는 일견 모순된 태도가 나타났다. 서술방식에서 최립 누정기의 가장 큰 특징은 누정의 이름과 관련된 의론이 주류를 이루며, 의론의 방식이 문답 구조를 통해 논쟁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이었다. 유몽인 누정기는 기문 청탁자를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풍유를 통한 권면의 방식으로 당대 정치 현실을 비판하는 독특한 주제의식을 보여주었다. 또한 유몽인은 누정기의 창작에 『장자』를 비롯한 諸子書의 사유와 구법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압운을 하거나 고사를 다용하며 변려문과 같은 행문을 보여주는 등 형식적으로 다양한 기법을 시도하였다. 허균의 누정기에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비판을 상당히 직접적이고 강개하게 드러나 있었다. 서술방식에서 건물 주인과 허균 자신과의 경험을 삽입하거나 신이한 인물과 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소설적 필치로 서술한 점은 주목할 만하였다. 임숙영의 누정기에서는 귀래자를 보내는 안타까운 심정을 증서류 산문과 같이 강개한 구법을 볼 수 있었다.또한 임숙영은 누정기에서 『장자』의 역설적 사유를 가져와 현실을 비판하거나 『포박자』의 문체를 차용하여 독특한 구법을 구사한 것은 특기할 만하였다. 장유는 정치적 동류 집단의 거소에 붙인 누정기에서 동지들을 위로하며 陰陽의 待對原理에 입각하여 『주역』의 순환론적 우주관을 『장자』와 사상적․논리적 충돌 없이 결합시킨 점이 특이하였다. 또한 장유는 우언적 성격을 보여주는 「신명사기」와 「신루기」를 남겼는데, 「신명사기」는 조선전기 일련의 心性 寓言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특히 15세기 南孝溫의 「屋賦」에서 영향 받은 바가 컸다. 「신루기」는 『장자』에 연원을 둔 상대주의적 사유를 보여준다는 점, 議論 위주의 서술을 전개한다는 점, 『장자』 「제물론」의 구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에 지어진 여타 문인들의 「신루기」와 달랐다. 이식은 주자학적 이념의 철저한 실천을 강조한 문인답게 누정기에서도 성리학적 의식을 강하게 보여주었는데, 『노자』나 『장자』 등 諸子書의 구절이나 고사를 가져다 쓰는 조선중기 누정기의 일반적인 경향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서술방식과 문체에서 이식 누정기만의 특징은 史傳體 형식을 본뜬 인물 기사와 간결하면서도 치밀한 구성에 있었다. 이상의 논의를 토대로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성을 공간․자연 인식, 주제 의식, 서술방식, 문체의 방면에서 정리하였다. 먼저 조선중기 누정기에는 정치현실과의 대립 구도 속에서, 누정을 세속과 격절된 개인적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누정에 대한 공간 인식의 변화는 자연 인식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玩物喪志에 대한 경계가 전대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으며, 특히 장자적 자연관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주제의식적 측면에서 조선중기 누정기의 특징은 불우한 처지에서 오는 우수를 표출하거나 당대 현실을 비판하는 경향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조선중기 누정기에 나타난 불우의식은 주로 붕당의 대립이라는 당대의 정치 구조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조선중기 누정기에 나타난 불우의식이나 불만의 표출 양상을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났다. 중앙 정계인 세속과 자신의 거처 공간을 대립으로 설정하여 전자를 부정한 곳으로 후자를 평안한 곳으로 보며 자위하는 경우, 『주역』의 순환론적 세계관을 통해 현재의 암울한 상황이 극에 달하면 좋은 때가 올 것이라며 위로하는 경우, 중앙 정계나 당대 현실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며 강한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경우, 인생 자체를 무상한 것으로 보아 현실적 우수와 불만을 초극하려는 경우가 그것이었다. 서술방식에서 조선중기 누정기는 전반적으로 의론이 확대되었고 문답법을 활용한 논쟁적 의론이 확산되는 양상을 보였다. 조선중기에 들어 누정기 내부에서 다양한 변화가 시도되었는데, 문답법을 활용한 논쟁적 의론의 확대는 서술방식에서 누정기의 변화를 모색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조선중기에 들어 붕당의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정치적 반대파의 비판에 대한 방어기제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누정기에서는 문답법을 활용한 논쟁적 의론이 그 방법의 하나로 활용되었던 것이다. 조선중기 누정기가 보여주는 형식적 변화의 모색과 다양한 기법을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첫째는 조선중기 누정기에는 산수유기의 산수 경물 묘사 방식, 낙척자에게 주는 증서류 산문에 쓰이는 강개한 구법, 인사잡기나 소설에 주로 사용되는 사건 중심의 기사, 史傳體 형식의 인물 기사 등, 여타 장르의 문체를 적극적으로 수용한 것이었다. 둘째는 押韻을 하고 四六騈麗文과 비슷한 行文을 보이며, 『포박자』 「行品」편의 구법을 차용하는 등, 구법의 다양한 변화를 시도한 경우였다. 셋째는 당송고문 이외에 『논어』, 『맹자』, 『장자』 등 先秦古文 텍스트의 사유와 구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문체에 변화를 준 점이었다. 특히 조선중기 누정기에 보이는 『장자』 유행의 배경으로 선조가 『장자』를 酷好했다는 점, 『장자』가 科文 창작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 등을 제시하여, 조선중기 산문에서 『장자』의 수용이 반드시 외재적 요인에 의해서만 활성화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중기 누정기에 빈번하게 보이는 『주역』과 『장자』 활용의 양상을 살펴보았다. 먼저 광해군 연간에 지어진 누정기에서 『주역』을 빈번하게 인용한 것은 정치적으로 좌절된 처지에서 오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주역』을 통해 위로받는 한편 삶의 방향성을 모색하고자 한 의식의 반영으로 이해하였다. 다음으로 조선중기 누정기에서 『장자』가 불우함에서 오는 우수를 해소하거나 사회에 대한 비판에 활용되었다는 것은, 『장자』가 문학 학습을 위한 텍스트로 활용되었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당대의 문인들이 『장자』가 담지하고 있는 사유를 적극적으로 수용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논문은 한문산문의 분석 방법을 정립하고 한국산문사의 구도와 변화를 구명하는 데에 기여할 것이며, 나아가 문화사 연구로 확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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