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환경보전에 대한 여러 내용을 기독교 환경윤리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생태계의 개념을 정리하고, 그 생태계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대기오염, 토양오염, 공간오염 등의 지역적 환경문제와 핵 오염,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등의 지구적 환경문제로 나누어 환경오염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인간 생존의 위기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며, 몰트만이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삶의 체계의 위기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오늘날 자연환경의 파괴와 생태계의 위기의 원인을 일반적인 원인과 기독교적인 원인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문명이 인간에게 편리함과 욕구의 충족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무한적인 생산과 대량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사회구조로 인해 과학기술을 제약 없이 남용함으로써 생태계의 파괴와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게 되었다. 즉 소유와 소비와 향락을 최고의 가치고 생각하고 이를 얻기 위하여 힘의 획득과 확장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이를 얻기 위하여 힘의 획득과 확장을 추구하는 현대인과 현대 사회의 가치관이 생태계 파괴와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또 인간이 이기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생태계의 자연용량과 항상성의 조건을 초과함으로써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계의 위기를 가져오는 경제학적 원인도 있다. 이처럼 생태계의 파괴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기인한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생태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상적, 철학적 원인에 있다.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비록 자연에 대해 우호적이나 환경위기나 생태계 위기의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의 원인은 데카르트적인 이원론과 베이컨의 이상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와 위기는 데카르트, 베이컨 등의 근대 철학자들에 의한 이원론적, 주객도식적, 인간중심적 자연관 속에 그 원인이 있다. 기독교적 원인으로는 전통적인 창조신학이 창세기 1장 26∼28절을 해석함에 있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계약”을 인간중심적으로 축소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인간 이외의 다른 피조물을 경시하는 생각과 태도를 형성하였고, 그 사상을 신학적으로 합리화시킴으로써 기독교가 생태계 파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역사적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전제와는 달리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지도 않고, 성서를 전혀 알지 못하던 시대에도 환경 파괴가 자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환경 파괴는 ‘보편적인 인간 현상’일 뿐 ‘특수 기독교적 현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환경 파괴의 원인이 기독교 창조 신앙에 있다고 단순화시켜 말하지만, 환경 파괴의 원인은 어느 한 가지 요소로 환원시킬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죄성과 이기적 욕망이 창조질서를 깨뜨린 결과로 생태계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심각한 위기 앞에 창조질서 회복이라는 시급하고 긴박한 교회적 과제설정을 위하여 창조보전의 신학적, 성서적 근거와 윤리학적 토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창세기 1장은 독립적인 해석이 아니라, 창세기 2장과 연관지어 바른 해석이 요구된다. 즉 창세기 1장의 ‘정복’과 ‘다스림’은 ‘지배’와 ‘통치’의 의미가 아니며, 창세기 2장과 연계하여 해석할 때 ‘돌봄’과 ‘지킴’의 의미로 해석되어 진다. 이러한 창조보전 사상은 구약의 율법서, 성문서, ...
본 논문은 환경보전에 대한 여러 내용을 기독교 환경윤리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생태계의 개념을 정리하고, 그 생태계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대기오염, 토양오염, 공간오염 등의 지역적 환경문제와 핵 오염,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등의 지구적 환경문제로 나누어 환경오염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인간 생존의 위기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며, 몰트만이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삶의 체계의 위기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오늘날 자연환경의 파괴와 생태계의 위기의 원인을 일반적인 원인과 기독교적인 원인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문명이 인간에게 편리함과 욕구의 충족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무한적인 생산과 대량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사회구조로 인해 과학기술을 제약 없이 남용함으로써 생태계의 파괴와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게 되었다. 즉 소유와 소비와 향락을 최고의 가치고 생각하고 이를 얻기 위하여 힘의 획득과 확장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이를 얻기 위하여 힘의 획득과 확장을 추구하는 현대인과 현대 사회의 가치관이 생태계 파괴와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또 인간이 이기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생태계의 자연용량과 항상성의 조건을 초과함으로써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계의 위기를 가져오는 경제학적 원인도 있다. 이처럼 생태계의 파괴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기인한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생태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상적, 철학적 원인에 있다.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비록 자연에 대해 우호적이나 환경위기나 생태계 위기의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의 원인은 데카르트적인 이원론과 베이컨의 이상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와 위기는 데카르트, 베이컨 등의 근대 철학자들에 의한 이원론적, 주객도식적, 인간중심적 자연관 속에 그 원인이 있다. 기독교적 원인으로는 전통적인 창조신학이 창세기 1장 26∼28절을 해석함에 있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계약”을 인간중심적으로 축소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인간 이외의 다른 피조물을 경시하는 생각과 태도를 형성하였고, 그 사상을 신학적으로 합리화시킴으로써 기독교가 생태계 파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역사적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전제와는 달리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지도 않고, 성서를 전혀 알지 못하던 시대에도 환경 파괴가 자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환경 파괴는 ‘보편적인 인간 현상’일 뿐 ‘특수 기독교적 현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환경 파괴의 원인이 기독교 창조 신앙에 있다고 단순화시켜 말하지만, 환경 파괴의 원인은 어느 한 가지 요소로 환원시킬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죄성과 이기적 욕망이 창조질서를 깨뜨린 결과로 생태계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심각한 위기 앞에 창조질서 회복이라는 시급하고 긴박한 교회적 과제설정을 위하여 창조보전의 신학적, 성서적 근거와 윤리학적 토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창세기 1장은 독립적인 해석이 아니라, 창세기 2장과 연관지어 바른 해석이 요구된다. 즉 창세기 1장의 ‘정복’과 ‘다스림’은 ‘지배’와 ‘통치’의 의미가 아니며, 창세기 2장과 연계하여 해석할 때 ‘돌봄’과 ‘지킴’의 의미로 해석되어 진다. 이러한 창조보전 사상은 구약의 율법서, 성문서, 예언서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신약에서는 바울서신과 요한문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에서 일관되게 견지되고 있다. 전통적 구원론은 구원을 인간 개인의 영혼 구원으로 제한하며 자연의 세계를 소외시켰으나 성경은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는 우주적 구원론을 향하여 열려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은 희망하는 인간과 모든 창조 세계의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실 것이라는 구원의 우주적 보편성을 말하고 있다. 창조에 대한 성령론적 이해에 있어서 성령은 창조사역에 참여하여 삼위일체적 창조를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피조물 안에 내주하고 계시다. 또한 새 창조의 사역을 통해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키시며 동시에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신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파괴와 착취는 성령을 통하여 자연에 현존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괴롭히는 일이며 ‘성령의 전’을 파괴하는 악행인 것이다. 생태계 위기의 문제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의 문제임을 고려할 때 기독교 윤리적인 문제가 된다.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고 창조보전을 위해 제시하고 있는 윤리는 청지기 윤리와 생태학적 윤리 그리고 생명공동체 윤리이다. 청지기 윤리를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역할을 지배자에서 돌보는 자로 전환하고, 생태학적 윤리를 통해 자연에 대한 책임의식을 주지시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은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도출했다. 마지막으로 창조보전을 위한 기독교 환경윤리의 실천과제를 통해 지금까지 ‘왜 하느냐?’의 동기에 대한 확실인 인식을 바탕으로 나아가 ‘어떻게 하느냐?’의 구체적 행동을 개인과 교회의 차원에서 제시해 보았다. 환경오염 문제는 가정생활과 개인의 행동에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든 기독교인은 창조보전에 대한 의미와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경건과 절제의 생활자세를 통해 창조보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즉 창조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올바른 창조신앙을 통해 정신적으로는 환경의식화를 견지하고, 육체적으로는 창조보전을 위한 생태학적 신앙의 생활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환경보전 실천은 무엇보다도 교회적 과제이므로 한국교회는 교단간의 사소한 차이와 이해관계를 떠나 연합함으로 정부의 환경정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교인들에게는 지속적인 환경교육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주지시킴으로 환경보전에 적극 참여하는 태도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환경에 대한 목회자의 인식전환과 관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에 대한 목회자의 관심과 이해도에 따라 교회와 전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세상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과 생태계가 서로 하나 되고, 서로 교제하며 살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그런 코이노니아의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서로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과 자연의 바른 관계가 하나님과 인간의 궁극적인 관계임을 생명 중심적 환경의식의 변화와 기독교 환경윤리로서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자연을 인간의 지배 개념이 아닌, 가꾸고 보존하여 상생하는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어가기 위해 개인과 가정, 교회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본 논문은 환경보전에 대한 여러 내용을 기독교 환경윤리적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먼저 생태계의 개념을 정리하고, 그 생태계가 어떤 위기에 처해 있는지 대기오염, 토양오염, 공간오염 등의 지역적 환경문제와 핵 오염, 오존층 파괴, 지구 온난화 등의 지구적 환경문제로 나누어 환경오염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생태계의 파괴로 인한 인간 생존의 위기는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며, 몰트만이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삶의 체계의 위기임을 알 수 있었다. 다음으로 오늘날 자연환경의 파괴와 생태계의 위기의 원인을 일반적인 원인과 기독교적인 원인으로 나누어 분석해 보았다. 그것은 과학기술의 문명이 인간에게 편리함과 욕구의 충족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지만 무한적인 생산과 대량 소비에 의존하는 경제·사회구조로 인해 과학기술을 제약 없이 남용함으로써 생태계의 파괴와 생명의 존엄성이 위협받게 되었다. 즉 소유와 소비와 향락을 최고의 가치고 생각하고 이를 얻기 위하여 힘의 획득과 확장을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고 이를 얻기 위하여 힘의 획득과 확장을 추구하는 현대인과 현대 사회의 가치관이 생태계 파괴와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또 인간이 이기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생태계의 자연용량과 항상성의 조건을 초과함으로써 환경이 파괴되고 생태계의 위기를 가져오는 경제학적 원인도 있다. 이처럼 생태계의 파괴는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기인한다. 하지만 환경오염과 생태계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사상적, 철학적 원인에 있다.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비록 자연에 대해 우호적이나 환경위기나 생태계 위기의 대안을 제시하기에는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는다. 오늘날 생태계의 위기의 원인은 데카르트적인 이원론과 베이컨의 이상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 생태계의 파괴와 위기는 데카르트, 베이컨 등의 근대 철학자들에 의한 이원론적, 주객도식적, 인간중심적 자연관 속에 그 원인이 있다. 기독교적 원인으로는 전통적인 창조신학이 창세기 1장 26∼28절을 해석함에 있어 하나님과 모든 피조물 사이의 “계약”을 인간중심적으로 축소시켰으며, 이로 인하여 인간 이외의 다른 피조물을 경시하는 생각과 태도를 형성하였고, 그 사상을 신학적으로 합리화시킴으로써 기독교가 생태계 파괴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역사적 연구에 따르면 이러한 전제와는 달리 기독교가 널리 전파되지도 않고, 성서를 전혀 알지 못하던 시대에도 환경 파괴가 자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환경 파괴는 ‘보편적인 인간 현상’일 뿐 ‘특수 기독교적 현상’이 아니라는 말이다. 게다가 환경 파괴의 원인이 기독교 창조 신앙에 있다고 단순화시켜 말하지만, 환경 파괴의 원인은 어느 한 가지 요소로 환원시킬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하다. 가장 중요한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 없는 인간의 죄성과 이기적 욕망이 창조질서를 깨뜨린 결과로 생태계의 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이런 심각한 위기 앞에 창조질서 회복이라는 시급하고 긴박한 교회적 과제설정을 위하여 창조보전의 신학적, 성서적 근거와 윤리학적 토대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창세기 1장은 독립적인 해석이 아니라, 창세기 2장과 연관지어 바른 해석이 요구된다. 즉 창세기 1장의 ‘정복’과 ‘다스림’은 ‘지배’와 ‘통치’의 의미가 아니며, 창세기 2장과 연계하여 해석할 때 ‘돌봄’과 ‘지킴’의 의미로 해석되어 진다. 이러한 창조보전 사상은 구약의 율법서, 성문서, 예언서에서 발견할 수 있으며, 신약에서는 바울서신과 요한문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말씀에서 일관되게 견지되고 있다. 전통적 구원론은 구원을 인간 개인의 영혼 구원으로 제한하며 자연의 세계를 소외시켰으나 성경은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는 우주적 구원론을 향하여 열려 있으며, 하나님의 구원은 희망하는 인간과 모든 창조 세계의 어느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구원하실 것이라는 구원의 우주적 보편성을 말하고 있다. 창조에 대한 성령론적 이해에 있어서 성령은 창조사역에 참여하여 삼위일체적 창조를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피조물 안에 내주하고 계시다. 또한 새 창조의 사역을 통해 인간을 새롭게 변화시키시며 동시에 창조세계를 새롭게 하신다. 따라서 자연에 대한 파괴와 착취는 성령을 통하여 자연에 현존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괴롭히는 일이며 ‘성령의 전’을 파괴하는 악행인 것이다. 생태계 위기의 문제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의 문제임을 고려할 때 기독교 윤리적인 문제가 된다. 생태계의 위기를 극복하고 창조보전을 위해 제시하고 있는 윤리는 청지기 윤리와 생태학적 윤리 그리고 생명공동체 윤리이다. 청지기 윤리를 통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역할을 지배자에서 돌보는 자로 전환하고, 생태학적 윤리를 통해 자연에 대한 책임의식을 주지시킴을 통해 자연과 인간은 운명공동체라는 의식을 도출했다. 마지막으로 창조보전을 위한 기독교 환경윤리의 실천과제를 통해 지금까지 ‘왜 하느냐?’의 동기에 대한 확실인 인식을 바탕으로 나아가 ‘어떻게 하느냐?’의 구체적 행동을 개인과 교회의 차원에서 제시해 보았다. 환경오염 문제는 가정생활과 개인의 행동에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모든 기독교인은 창조보전에 대한 의미와 사명을 새롭게 인식하고 경건과 절제의 생활자세를 통해 창조보전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즉 창조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올바른 창조신앙을 통해 정신적으로는 환경의식화를 견지하고, 육체적으로는 창조보전을 위한 생태학적 신앙의 생활화를 이루어야 한다. 또한 환경보전 실천은 무엇보다도 교회적 과제이므로 한국교회는 교단간의 사소한 차이와 이해관계를 떠나 연합함으로 정부의 환경정책 등에 영향력을 행사하며, 교인들에게는 지속적인 환경교육을 통해 환경에 대한 인간의 책임과 역할을 주지시킴으로 환경보전에 적극 참여하는 태도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도 환경에 대한 목회자의 인식전환과 관심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환경에 대한 목회자의 관심과 이해도에 따라 교회와 전체 기독교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세상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사람과 생태계가 서로 하나 되고, 서로 교제하며 살 것을 기대하고 계신다. 그런 코이노니아의 구체적인 실천이 바로 ‘서로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과 자연의 바른 관계가 하나님과 인간의 궁극적인 관계임을 생명 중심적 환경의식의 변화와 기독교 환경윤리로서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자연을 인간의 지배 개념이 아닌, 가꾸고 보존하여 상생하는 조화로운 관계를 이루어가기 위해 개인과 가정, 교회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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