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멤버케어는 점점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선교의 실천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선교학과 긴밀하게 만나지 못했으며, 그 성향에는 인간중심적 선교 방식이 다분히 드러난다. 멤버케어라는 실천과제는 선교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방향성이 달라진다. 이것이 멤버케어가 선교학적 고찰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와 잇대어져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멤버케어는 실천과제로 태동하고 발전했다. 때문에 그 정의에 있어서 그신학적 방향성은 불투명하다. 또한 그 필요성은 선교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교사 중도탈락의 방지나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선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가 많다. 멤버케어는 현재 자원을 총력하기 위해 세계화 추세이며, 선교가 부진한 곳을 먼저 지원하여 선교의 과업을 앞당기려 하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의 총력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멤버케어가 인간중심적인 과업주의에 편향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교회주의나 교파중심적 승리주의의 도구가 될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멤버케어를 위한 바른 선교관이 절실하다. 오늘날 멤버케어를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성서적 근거, 복음주의자들, 심리학, 세계화의 관계를 살필 수 있다. 멤버케어의 성서적 근거들은 주로 멤버케어와 관련된 학자들에 의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동시에 해석자의 상황이 주는 해석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멤버케어는 복음주의자들의 관심과 영향 아래 확대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멤버케어의 신학적 색채는 복음주의의 우려인 선교의 이원론적 대립구도와 세대론적 임박한 종말론 사상이 엿보이며, 자주 전략적인 목적에서 이해된다. 멤버케어에 있어 심리학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심리학은 선교학과 상호적으로 긴밀하지 교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것은 멤버케어에 대해 선교학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를 말해준다. 멤버케어는 현재 세계화 추세이다. 멤버케어는 많은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세계적 연합의 형태로 조직되면서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그 의도에는 세계선교의 팽창주의의 동기가 들어있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멤버케어가 어떤 선교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통전적으로 이해되고 추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는 구원사 유형과 약속사 유형 사이의 긴장관계이다. 이 두 사이의 긴장관계는 선택적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병행과 상호작용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적 이해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 안에서 오늘날의 시대와 상황 그리고 선교의 실천과제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이러한 긴장관계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사이의 통전적인 선교를 도모한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공통의 유산을 물려받은 양 진영이 양극화에 치닫게 되었다가 다시 화해하게 되면서 통전적 선교를 등장시켰다. 이를 통해 양 진영이 공동으로 깨달은 것은 ‘인간중심적인 행동주의’의 양극단이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복음주의에 대하여는 ‘복음주의적 행동주의’를, 에큐메니칼에 대하여는 ‘인도주의적 행동주의’를 내려놓도록 요청했다. 선교는 인간의 행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하나님의 선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선교의 통전적인 방향과 선교의 실천과제들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나가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성은 성서, 역사, 세상, 교회와 잇대어 고찰할 때 온전해진다. 또 선교의 실천과제인 멤버케어는 그 연장선상에서 방향성이 고찰되어져야 한다. 첫째, 성서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 중심축이 된다. 오늘날 멤버케어는 그 성서적인 근거를 예수님의 명령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선교의 본질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더 이상 명령이 선교의 기초가 될 수 없다. 멤버케어는 사랑의 흐름을 통해 선교사를 온전하게 세우려고 수고하기 전에 이 세상을 위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교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한다. 예수님은 승리주의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겸손의 선교를 이행하셨다. 예수님은 정복주의가 아니라 한계를 정한 ...
오늘날 멤버케어는 점점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선교의 실천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선교학과 긴밀하게 만나지 못했으며, 그 성향에는 인간중심적 선교 방식이 다분히 드러난다. 멤버케어라는 실천과제는 선교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방향성이 달라진다. 이것이 멤버케어가 선교학적 고찰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와 잇대어져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멤버케어는 실천과제로 태동하고 발전했다. 때문에 그 정의에 있어서 그신학적 방향성은 불투명하다. 또한 그 필요성은 선교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교사 중도탈락의 방지나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선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가 많다. 멤버케어는 현재 자원을 총력하기 위해 세계화 추세이며, 선교가 부진한 곳을 먼저 지원하여 선교의 과업을 앞당기려 하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의 총력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멤버케어가 인간중심적인 과업주의에 편향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교회주의나 교파중심적 승리주의의 도구가 될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멤버케어를 위한 바른 선교관이 절실하다. 오늘날 멤버케어를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성서적 근거, 복음주의자들, 심리학, 세계화의 관계를 살필 수 있다. 멤버케어의 성서적 근거들은 주로 멤버케어와 관련된 학자들에 의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동시에 해석자의 상황이 주는 해석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멤버케어는 복음주의자들의 관심과 영향 아래 확대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멤버케어의 신학적 색채는 복음주의의 우려인 선교의 이원론적 대립구도와 세대론적 임박한 종말론 사상이 엿보이며, 자주 전략적인 목적에서 이해된다. 멤버케어에 있어 심리학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심리학은 선교학과 상호적으로 긴밀하지 교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것은 멤버케어에 대해 선교학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를 말해준다. 멤버케어는 현재 세계화 추세이다. 멤버케어는 많은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세계적 연합의 형태로 조직되면서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그 의도에는 세계선교의 팽창주의의 동기가 들어있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멤버케어가 어떤 선교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통전적으로 이해되고 추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는 구원사 유형과 약속사 유형 사이의 긴장관계이다. 이 두 사이의 긴장관계는 선택적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병행과 상호작용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적 이해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 안에서 오늘날의 시대와 상황 그리고 선교의 실천과제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이러한 긴장관계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사이의 통전적인 선교를 도모한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공통의 유산을 물려받은 양 진영이 양극화에 치닫게 되었다가 다시 화해하게 되면서 통전적 선교를 등장시켰다. 이를 통해 양 진영이 공동으로 깨달은 것은 ‘인간중심적인 행동주의’의 양극단이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복음주의에 대하여는 ‘복음주의적 행동주의’를, 에큐메니칼에 대하여는 ‘인도주의적 행동주의’를 내려놓도록 요청했다. 선교는 인간의 행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하나님의 선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선교의 통전적인 방향과 선교의 실천과제들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나가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성은 성서, 역사, 세상, 교회와 잇대어 고찰할 때 온전해진다. 또 선교의 실천과제인 멤버케어는 그 연장선상에서 방향성이 고찰되어져야 한다. 첫째, 성서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 중심축이 된다. 오늘날 멤버케어는 그 성서적인 근거를 예수님의 명령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선교의 본질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더 이상 명령이 선교의 기초가 될 수 없다. 멤버케어는 사랑의 흐름을 통해 선교사를 온전하게 세우려고 수고하기 전에 이 세상을 위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교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한다. 예수님은 승리주의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겸손의 선교를 이행하셨다. 예수님은 정복주의가 아니라 한계를 정한 관계성 안에서 선교하셨다. 예수님은 단순한 회심만의 차원을 넘어 전인적인 인간회복의 선교를 행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성을 명확히 보여주며, 멤버케어로 하여금 어떻게 선교사를 도와야 하는지를 제시해준다.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예수님의 선교는 성령의 선교로 이어진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이다. 성령은 그 분의 현존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하나님 나라 활동들의 실제적 중심이시다. 성령은 선교의 영으로서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가게 하신다. 멤버케어 사역은 마땅히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의 능력을 의지하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선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멤버케어에 의미를 준다. 과거에 수많은 위대한 선교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들은 위대하기 전에 연약한 인간이었다. 멤버케어가 거의 부재했던 시대에 그들은 고통을 스스로 견뎌내야만 했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으로 시달리거나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멤버케어는 축복된 과제이다. 잘못된 이기와 욕심을 위한 도구로 오용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선교사를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멤버케어가 없었던 과거의 역사에 동료들의 질시나 그와의 반대인 따뜻한 격려와 기도는 그들의 선교에 있어 각각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멤버케어는 상호책임성에 근거한 상호 돌봄의 사역으로 의무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동인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이 되어야 한다. 멤버케어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선교사들의 열정과 성과는 높이 평가되지만, 그들의 가부장적이고 과업적인 열심 때문에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한 사례들이 있다. 오늘날 선교사들 가운데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사역과 삶이 괴리되거나 균형을 잃은 선교사들이 있다. 선교는 사역과 삶의 통전성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므로 멤버케어는 단순히 선교의 과업(task)만을 지원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선교사의 삶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세상을 잘 살필 때 멤버케어의 방향을 바르게 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라는 서로 다른 거대한 두 체계의 흐름이 작용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보다 선교사와 그 자녀가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멤버케어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선교사들에 의해 더욱 요청되고 있다. 이에 멤버케어는 무엇보다 그들의 관계적 동력을 잘 활용해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멤버케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적인 요소들인 소박한 쾌락주의(hedonism), 물질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멤버케어는 자국의 교회 및 신학 공동체와의 상호 교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선교사가 균형 잡힌 신학과 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멤버케어는 팽창주의적 거대담론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멤버케어가 자칫 선교사를 돕는다는 그 본래의 중요한 목적을 상실하고, 선교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만 여겨지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멤버케어는 멤버케어만의 연합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세계선교의 연합과 교회의 일치의 노력들과 긴밀한 채널을 확보해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교회의 선교구조는 멤버케어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가 가지는 긴장관계 안에서 운동성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참여적 주체가 될 수 있다. 한국교회의 교파주의나 개교회주의의 교회중심적 선교구조는 선교사에게 과업적인 성과를 기대하게 한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 접목된 멤버케어는 그 이상의 목적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교회의 멤버케어에 있어서 시급한 문제는 갈라진 한국 선교들의 공동의 연합과 일치의 노력이다. 이러한 연합은 선교학적인 공동의 연구와 각 교회들과 연합과 일치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멤버케어의 연합과 일치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일치의 문제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멤버케어는 점점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선교의 실천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선교학과 긴밀하게 만나지 못했으며, 그 성향에는 인간중심적 선교 방식이 다분히 드러난다. 멤버케어라는 실천과제는 선교가 무엇인가에 따라 그 방향성이 달라진다. 이것이 멤버케어가 선교학적 고찰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와 잇대어져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멤버케어는 실천과제로 태동하고 발전했다. 때문에 그 정의에 있어서 그신학적 방향성은 불투명하다. 또한 그 필요성은 선교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교사 중도탈락의 방지나 효과적이고 전략적인 선교에 초점이 맞추어진 경우가 많다. 멤버케어는 현재 자원을 총력하기 위해 세계화 추세이며, 선교가 부진한 곳을 먼저 지원하여 선교의 과업을 앞당기려 하는 의도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의 총력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또한 멤버케어가 인간중심적인 과업주의에 편향된다면, 그것은 오히려 개교회주의나 교파중심적 승리주의의 도구가 될 우려가 있다. 이런 점에서 멤버케어를 위한 바른 선교관이 절실하다. 오늘날 멤버케어를 선교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기 위해 성서적 근거, 복음주의자들, 심리학, 세계화의 관계를 살필 수 있다. 멤버케어의 성서적 근거들은 주로 멤버케어와 관련된 학자들에 의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는 동시에 해석자의 상황이 주는 해석학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한 멤버케어는 복음주의자들의 관심과 영향 아래 확대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멤버케어의 신학적 색채는 복음주의의 우려인 선교의 이원론적 대립구도와 세대론적 임박한 종말론 사상이 엿보이며, 자주 전략적인 목적에서 이해된다. 멤버케어에 있어 심리학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반면 심리학은 선교학과 상호적으로 긴밀하지 교류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것은 멤버케어에 대해 선교학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필요를 말해준다. 멤버케어는 현재 세계화 추세이다. 멤버케어는 많은 헌신된 사람들을 통해 세계적 연합의 형태로 조직되면서 발전을 해왔다. 그러나 그 의도에는 세계선교의 팽창주의의 동기가 들어있다는 사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멤버케어가 어떤 선교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떠한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통전적으로 이해되고 추구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교를 통전적으로 이해하는 열쇠는 구원사 유형과 약속사 유형 사이의 긴장관계이다. 이 두 사이의 긴장관계는 선택적 해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 병행과 상호작용을 통한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적 이해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그 안에서 오늘날의 시대와 상황 그리고 선교의 실천과제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게 된다. 더불어 이러한 긴장관계는 복음주의와 에큐메니칼 사이의 통전적인 선교를 도모한다. 하나님의 선교라는 공통의 유산을 물려받은 양 진영이 양극화에 치닫게 되었다가 다시 화해하게 되면서 통전적 선교를 등장시켰다. 이를 통해 양 진영이 공동으로 깨달은 것은 ‘인간중심적인 행동주의’의 양극단이었다. 하나님의 선교는 복음주의에 대하여는 ‘복음주의적 행동주의’를, 에큐메니칼에 대하여는 ‘인도주의적 행동주의’를 내려놓도록 요청했다. 선교는 인간의 행위에 속한 것이 아니라 엄연히 하나님의 선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선교의 통전적인 방향과 선교의 실천과제들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 나가야 마땅하다.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성은 성서, 역사, 세상, 교회와 잇대어 고찰할 때 온전해진다. 또 선교의 실천과제인 멤버케어는 그 연장선상에서 방향성이 고찰되어져야 한다. 첫째, 성서에 나타나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의 선교를 수행하는 중심축이 된다. 오늘날 멤버케어는 그 성서적인 근거를 예수님의 명령에 두고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깊은 선교의 본질은 아버지의 사랑이다. 더 이상 명령이 선교의 기초가 될 수 없다. 멤버케어는 사랑의 흐름을 통해 선교사를 온전하게 세우려고 수고하기 전에 이 세상을 위해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기저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선교는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 기초한다. 예수님은 승리주의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는 겸손의 선교를 이행하셨다. 예수님은 정복주의가 아니라 한계를 정한 관계성 안에서 선교하셨다. 예수님은 단순한 회심만의 차원을 넘어 전인적인 인간회복의 선교를 행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의 선교의 통전성을 명확히 보여주며, 멤버케어로 하여금 어떻게 선교사를 도와야 하는지를 제시해준다. 하나님의 선교 안에서 예수님의 선교는 성령의 선교로 이어진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하면 성령은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이다. 성령은 그 분의 현존을 강화하는 동시에 다양한 하나님 나라 활동들의 실제적 중심이시다. 성령은 선교의 영으로서 끊임없이 경계를 넘어가게 하신다. 멤버케어 사역은 마땅히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의 능력을 의지하는 중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선교의 역사는 하나님의 선교의 관점에서 멤버케어에 의미를 준다. 과거에 수많은 위대한 선교사들의 희생이 있었다. 그들은 위대하기 전에 연약한 인간이었다. 멤버케어가 거의 부재했던 시대에 그들은 고통을 스스로 견뎌내야만 했다. 많은 이들이 우울증으로 시달리거나 외로움과 싸워야 했다. 이런 면에서 오늘날 멤버케어는 축복된 과제이다. 잘못된 이기와 욕심을 위한 도구로 오용하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한 인간으로서 선교사를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멤버케어가 없었던 과거의 역사에 동료들의 질시나 그와의 반대인 따뜻한 격려와 기도는 그들의 선교에 있어 각각 상반된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멤버케어는 상호책임성에 근거한 상호 돌봄의 사역으로 의무로서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에 동인한 우리의 마땅한 반응이 되어야 한다. 멤버케어는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과거의 선교사들의 열정과 성과는 높이 평가되지만, 그들의 가부장적이고 과업적인 열심 때문에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한 사례들이 있다. 오늘날 선교사들 가운데도 이와 비슷한 이유로 사역과 삶이 괴리되거나 균형을 잃은 선교사들이 있다. 선교는 사역과 삶의 통전성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므로 멤버케어는 단순히 선교의 과업(task)만을 지원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선교사의 삶과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한다. 셋째, 세상을 잘 살필 때 멤버케어의 방향을 바르게 할 수 있다. 오늘날 세상은 포스트모더니즘과 세계화라는 서로 다른 거대한 두 체계의 흐름이 작용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무엇보다 선교사와 그 자녀가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멤버케어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선교사들에 의해 더욱 요청되고 있다. 이에 멤버케어는 무엇보다 그들의 관계적 동력을 잘 활용해 어떻게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할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 또한 멤버케어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정적인 요소들인 소박한 쾌락주의(hedonism), 물질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멤버케어는 자국의 교회 및 신학 공동체와의 상호 교류의 기회를 제공함으로 선교사가 균형 잡힌 신학과 영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또한 세계화 시대에 멤버케어는 팽창주의적 거대담론에 동조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멤버케어가 자칫 선교사를 돕는다는 그 본래의 중요한 목적을 상실하고, 선교를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만 여겨지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멤버케어는 멤버케어만의 연합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세계선교의 연합과 교회의 일치의 노력들과 긴밀한 채널을 확보해나가야 할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교회의 선교구조는 멤버케어와 긴밀한 관계를 가진다.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가 가지는 긴장관계 안에서 운동성을 가질 때에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참여적 주체가 될 수 있다. 한국교회의 교파주의나 개교회주의의 교회중심적 선교구조는 선교사에게 과업적인 성과를 기대하게 한다. 때문에 이런 상황에 접목된 멤버케어는 그 이상의 목적을 넘어서지 못한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교회의 멤버케어에 있어서 시급한 문제는 갈라진 한국 선교들의 공동의 연합과 일치의 노력이다. 이러한 연합은 선교학적인 공동의 연구와 각 교회들과 연합과 일치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이루어져야 한다. 멤버케어의 연합과 일치는 한국교회의 개혁과 일치의 문제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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