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각매체로서의 사진은 회화와 의존·대립관계 속에서 많은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들은 상충관계 속에 진화해 오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근간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명백하면서도 단순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있다. 본 논문은 사진에 대한 욕망과 열정으로 지난 수년간 작업한 필자의 4개의 사진 작업을 분석함으로써 작가의 입장에서 사진의 존재론적 시간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사진의 존재론적 본질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aura)와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 개념을 작품론 분석의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 ‘일회적 현존재’로서 여기와 지금(here and now)을 뜻하는 벤야민의 아우라와 ‘그것은-존재-했음’이라는 바르트의 푼크툼의 공통분모는 존재와 시간, 즉 삶과 죽음의 시간이다. 이는 ...
새로운 시각매체로서의 사진은 회화와 의존·대립관계 속에서 많은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들은 상충관계 속에 진화해 오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근간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명백하면서도 단순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있다. 본 논문은 사진에 대한 욕망과 열정으로 지난 수년간 작업한 필자의 4개의 사진 작업을 분석함으로써 작가의 입장에서 사진의 존재론적 시간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사진의 존재론적 본질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aura)와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 개념을 작품론 분석의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 ‘일회적 현존재’로서 여기와 지금(here and now)을 뜻하는 벤야민의 아우라와 ‘그것은-존재-했음’이라는 바르트의 푼크툼의 공통분모는 존재와 시간, 즉 삶과 죽음의 시간이다. 이는 관자에 환유적으로 확장된다. 필자의 4개의 작업 <안단테 소스테누토>, <한명이>, <리데 오네 보르테>와 <곤지곤지>는 필자의 자서전적 사진 연작이다. 각 작업에서 필자가 경험한 삶의 속도, 아버지와 이름값, 젊은 날의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를 주제로 다루었다. 필자의 4개 작업의 분석 결과를 본 논문에서 이론적 배경으로 도입한 벤야민과 바르트의 시간성과 비교해 볼 때 사진의 시간은 삶과 죽음이라는 양면으로, 우리에게는 사랑과 죽음의 관계로 귀착됨을 파악하였다. 다만 특기할 점은 첫째 필자의 사진에는 죽음의 시간이 아닌, 살아왔고 살아갈 부정형의 의도된 시간이 있으며, 둘째 필자가 사진 속 대상과 동일한 관계였으며, 필자는 각 작업에 따라 프레임 안 또는 밖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촬영자와 사진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기존의 사진이론이 사진의 지시대상과 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환유적 확장에 의한 접근임에 비해, 필자의 4개의 작업은 환유적 확장 이전의 촬영자와 대상과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전자의 시간은 관자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전미래’인데 대해, 후자의 시간은 작업 의도에 의해 재현된 ‘현재’이다. 역설적으로 필자는 텍스트나 음악 등 다른 외부적인 또 다른 수단이 이용되든 아니든 프레임을 부숴야 보이는 사진을 ‘아웃프레임 사진’이라 하여 그렇지 않는 사진과 구분하여야한다고 제언한다. 결국 사진은 관자의 시간에서 “그것은-존재-하였음”이라는 전미래시제로 소통․해석되지만, 촬영자의 시간에서는 “우리는-존재-하고 있음”이라는 현재진행형의 삶으로 재현되고 있다. 필자의 4개 작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미래의 죽음을 논하기 전에 지금 나의 삶, 당신의 삶, 우리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매체로서의 사진은 회화와 의존·대립관계 속에서 많은 담론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이들은 상충관계 속에 진화해 오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근간은 사진이란 무엇인가라는 명백하면서도 단순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데 있다. 본 논문은 사진에 대한 욕망과 열정으로 지난 수년간 작업한 필자의 4개의 사진 작업을 분석함으로써 작가의 입장에서 사진의 존재론적 시간성을 밝히고자 한 것이다. 사진의 존재론적 본질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발터 벤야민의 아우라(aura)와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 개념을 작품론 분석의 이론적 배경으로 삼았다. ‘일회적 현존재’로서 여기와 지금(here and now)을 뜻하는 벤야민의 아우라와 ‘그것은-존재-했음’이라는 바르트의 푼크툼의 공통분모는 존재와 시간, 즉 삶과 죽음의 시간이다. 이는 관자에 환유적으로 확장된다. 필자의 4개의 작업 <안단테 소스테누토>, <한명이>, <리데 오네 보르테>와 <곤지곤지>는 필자의 자서전적 사진 연작이다. 각 작업에서 필자가 경험한 삶의 속도, 아버지와 이름값, 젊은 날의 그리움, 그리고 어머니를 주제로 다루었다. 필자의 4개 작업의 분석 결과를 본 논문에서 이론적 배경으로 도입한 벤야민과 바르트의 시간성과 비교해 볼 때 사진의 시간은 삶과 죽음이라는 양면으로, 우리에게는 사랑과 죽음의 관계로 귀착됨을 파악하였다. 다만 특기할 점은 첫째 필자의 사진에는 죽음의 시간이 아닌, 살아왔고 살아갈 부정형의 의도된 시간이 있으며, 둘째 필자가 사진 속 대상과 동일한 관계였으며, 필자는 각 작업에 따라 프레임 안 또는 밖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차이는 촬영자와 사진과의 관계에서 발생한다. 기존의 사진이론이 사진의 지시대상과 관자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환유적 확장에 의한 접근임에 비해, 필자의 4개의 작업은 환유적 확장 이전의 촬영자와 대상과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전자의 시간은 관자의 입장에서는 언제나 ‘전미래’인데 대해, 후자의 시간은 작업 의도에 의해 재현된 ‘현재’이다. 역설적으로 필자는 텍스트나 음악 등 다른 외부적인 또 다른 수단이 이용되든 아니든 프레임을 부숴야 보이는 사진을 ‘아웃프레임 사진’이라 하여 그렇지 않는 사진과 구분하여야한다고 제언한다. 결국 사진은 관자의 시간에서 “그것은-존재-하였음”이라는 전미래시제로 소통․해석되지만, 촬영자의 시간에서는 “우리는-존재-하고 있음”이라는 현재진행형의 삶으로 재현되고 있다. 필자의 4개 작업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면, 미래의 죽음을 논하기 전에 지금 나의 삶, 당신의 삶, 우리의 삶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Photography as a new visual media produces various discourses upon the depending and opposing relationships with painting, and they have been evolving out of the contending relationship. The keynote of such debates lies in finding an answer to a simple and clear question, "What is photography?". ...
Photography as a new visual media produces various discourses upon the depending and opposing relationships with painting, and they have been evolving out of the contending relationship. The keynote of such debates lies in finding an answer to a simple and clear question, "What is photography?". This dissertation is set up to clarify the ontological time-variant of photography from the perspective of a photographer by analyzing four photographic works which have been done by the present writer for a few years. As a theoretical background for this analysis served "aura" of Walter Benjamin, the most influential notion over the ontological essence of photography, and "punctum" of Roland Barthes. A common denominator between Benjamin's "aura", implying 'here and now' as a form of ‘disposable existence’, and Barthes' "punctum", signifying 'that-has-been', is existence and time, that is, the time of life and of death. It is extended metonymically to viewers. The four works, , , , and , are a series of autobiographical photography. As a theme each of the four works deals with the pace in the life of the writer, his father and the worthiness of the writer's name, nostalgic memory of the school days, and his beloved mother. When the outcome of the four works is compared to the time-variant of Benjamin and Barthes, the time-variant of a photographer can result in the dichotomic time of life and death which is to be extend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love and death in our lives. There are three points worth mentioning. First, what exists in the photographs of the present writer is not the time passed away but the time indefinitely intended in which the photographer has been living or will have been living. Secondly, the present writer is an equivalent of the object in his own works. Thirdly, his locus can be shifted either inside or outside of the frame depending on the theme he intends to express. This differences in time-variant come out of the relationship of a photographer with a photograph. Previous photography theories were based on the approach from the perspective of a metonymical expansion occurring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s and the viewers, but the four works reflec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 and the photographer which had been made before the metonymical expansion was initiated. In other words, in the former case, the tense which was se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viewer is always 'anterior future', whereas in the latter case, the tense is 'present' from the perspective of a photographer. Paradoxically, the present writer defines the photograph as an 'out-frame photograph' that is able to be seen by destroying the existing frame, regardless of the availability to the use of the text or music or other things. The writer, moreover, suggests that they should be separated from an 'in-frame photograph'. Eventually, from the perspective of a viewer, photographs are generally communicated in anterior future tense which refers to "what-will-have-been"; but from that of a photographer it is reproduced in the present progressive tense which refers to 'we-are-existing'. If we can find out the implication of the four works, it is the cry for love and for respect for the current life, before debating to little effect on the death in future.
Photography as a new visual media produces various discourses upon the depending and opposing relationships with painting, and they have been evolving out of the contending relationship. The keynote of such debates lies in finding an answer to a simple and clear question, "What is photography?". This dissertation is set up to clarify the ontological time-variant of photography from the perspective of a photographer by analyzing four photographic works which have been done by the present writer for a few years. As a theoretical background for this analysis served "aura" of Walter Benjamin, the most influential notion over the ontological essence of photography, and "punctum" of Roland Barthes. A common denominator between Benjamin's "aura", implying 'here and now' as a form of ‘disposable existence’, and Barthes' "punctum", signifying 'that-has-been', is existence and time, that is, the time of life and of death. It is extended metonymically to viewers. The four works, , , , and , are a series of autobiographical photography. As a theme each of the four works deals with the pace in the life of the writer, his father and the worthiness of the writer's name, nostalgic memory of the school days, and his beloved mother. When the outcome of the four works is compared to the time-variant of Benjamin and Barthes, the time-variant of a photographer can result in the dichotomic time of life and death which is to be extended to the relationship between love and death in our lives. There are three points worth mentioning. First, what exists in the photographs of the present writer is not the time passed away but the time indefinitely intended in which the photographer has been living or will have been living. Secondly, the present writer is an equivalent of the object in his own works. Thirdly, his locus can be shifted either inside or outside of the frame depending on the theme he intends to express. This differences in time-variant come out of the relationship of a photographer with a photograph. Previous photography theories were based on the approach from the perspective of a metonymical expansion occurring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s and the viewers, but the four works reflec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object and the photographer which had been made before the metonymical expansion was initiated. In other words, in the former case, the tense which was set from the perspective of the viewer is always 'anterior future', whereas in the latter case, the tense is 'present' from the perspective of a photographer. Paradoxically, the present writer defines the photograph as an 'out-frame photograph' that is able to be seen by destroying the existing frame, regardless of the availability to the use of the text or music or other things. The writer, moreover, suggests that they should be separated from an 'in-frame photograph'. Eventually, from the perspective of a viewer, photographs are generally communicated in anterior future tense which refers to "what-will-have-been"; but from that of a photographer it is reproduced in the present progressive tense which refers to 'we-are-existing'. If we can find out the implication of the four works, it is the cry for love and for respect for the current life, before debating to little effect on the death in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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