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로 구성된 냉전기와 공산진영이 붕괴한 탈냉전기 모두에서 그 정체성이 역내 구조로부터 ‘주어진’ 형태로 이식되었다. 냉전기의 미·소간의 대립은 그대로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에 투영되어 남한의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정체성을 키워 갔다. 탈냉전기에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일극체제 하에서 한반도는 다시금 화해와 협력 및 공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탈냉전적 정체성으로의 변환을 요청받았다. 탈냉전기 지역구조의 변동이 한국인의 대북 정체성 변동을 추동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의 무드와 함께...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로 구성된 냉전기와 공산진영이 붕괴한 탈냉전기 모두에서 그 정체성이 역내 구조로부터 ‘주어진’ 형태로 이식되었다. 냉전기의 미·소간의 대립은 그대로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에 투영되어 남한의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정체성을 키워 갔다. 탈냉전기에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일극체제 하에서 한반도는 다시금 화해와 협력 및 공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탈냉전적 정체성으로의 변환을 요청받았다. 탈냉전기 지역구조의 변동이 한국인의 대북 정체성 변동을 추동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의 무드와 함께 형성된 탈냉전적 정체성에 따라 대북 교류 및 협력의 정책을 펴 나아갔으나 여전히 남·북한의 대결적 구도는 유지되었고 김영삼 정부는 초기에는 전 정부의 정책의 틀을 유지하며 교섭 및 대화를 시도했으나 북한의 NPT 탈퇴와 김일성 사후 일련의 대남도발로 강경책으로 선회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탈냉전적 대북 정체성으로의 변동을 요청받은 국민들에 의해 지역구조와 맞는 대북정책을 펼친 김대중 정부의 탄생을 이끌었다. 김대중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대북포용정책을 펼쳐 나아갈 수 있었으며 탈냉전 지역구조와 북한에 대한 탈냉전적 정체성이 일치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2000년 부시정부의 등장은 지역구조를 신냉전적 지역구조로의 변화로 이끌었고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정체성도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함께 점점 대결적 신냉전적 대북 정체성으로 변동을 요청받았다. 대북포용정책을 이어 받은 노무현 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하였고 이 과정에서 부시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마찰을 낳아 한·미 동맹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신냉전적 지역구조 속에서 신냉전적 대북 정체성을 갖기 시작한 남한 국민들에게 일종의 안보불안으로 다가왔으며 따라서 지역구조에 걸맞은 강경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이명박 보수정권의 탄생을 야기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 정책을 필두로 선결적 조건의 해결을 전제로 한 대북 강경책을 펼쳐 나아갔고 부시정부와의 공조를 공고히 하였다. 이는 다시 신냉전적 지역구조와 신냉전적 대북 정체성이 일치하는 안정감을 안겨다 주었으나 오바마 정부 탄생 이후 이러한 신냉전적 정체성은 미국 신정부의 대북정책이 현상유지적 모호성을 보여 그 방향에 대한 내적 혼돈을 다시금 가져오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정체성이 지역구조에 의해 주어진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구조에 빗대어 그 정체성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에서 오는 내적 혼돈을 유발한다. 이는 국력의 증강에 따른 한국의 정체성의 주체적 발현 욕구로 이어져 한국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정체성의 형성과 이를 지역구조에 영향을 미치도록 할 것을 요청하는 단계에도 이르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의 탈냉전적 정체성 변동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구성주의적 현실주의를 차용하였다. 구성주의적 현실주의는 물질적 힘의 배분구조가 오히려 인식적 측면을 구성하고, 제약하는 부분을 강조함에 따라 구조로부터 영향을 받는 정체성 분석에 적합하다. 또한 정치 집단들과 국가가 구성된 자신의 정체성이 장기적으로 고착되더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본질적인 이익이 문제시 되면, 구성된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고찰 할 수 있는 능력인 ‘반구성적 반성력’(counter-constitutive reflective power)을 지닌다는 이론으로 탈냉전기 남한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탈냉전 정체성의 변동을 연구하는 기틀을 마련해준다. 또한 지역구조의 변동과 이에 따른 대북 정체성의 변동 과정에서 파생하는 내적혼돈은 국력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의 주체적 발현 욕구를 자극하여 국제여론 및 국가 이외 단위들의 영향력 증대라는 국제정치 무대의 민주성 증가라는 환경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구성주의의 발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양극체제로 구성된 냉전기와 공산진영이 붕괴한 탈냉전기 모두에서 그 정체성이 역내 구조로부터 ‘주어진’ 형태로 이식되었다. 냉전기의 미·소간의 대립은 그대로 한반도의 남한과 북한에 투영되어 남한의 국민들은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정체성을 키워 갔다. 탈냉전기에는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이 지배하는 일극체제 하에서 한반도는 다시금 화해와 협력 및 공영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탈냉전적 정체성으로의 변환을 요청받았다. 탈냉전기 지역구조의 변동이 한국인의 대북 정체성 변동을 추동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탈냉전의 무드와 함께 형성된 탈냉전적 정체성에 따라 대북 교류 및 협력의 정책을 펴 나아갔으나 여전히 남·북한의 대결적 구도는 유지되었고 김영삼 정부는 초기에는 전 정부의 정책의 틀을 유지하며 교섭 및 대화를 시도했으나 북한의 NPT 탈퇴와 김일성 사후 일련의 대남도발로 강경책으로 선회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탈냉전적 대북 정체성으로의 변동을 요청받은 국민들에 의해 지역구조와 맞는 대북정책을 펼친 김대중 정부의 탄생을 이끌었다. 김대중 정부는 클린턴 정부의 적극적인 지지 속에 대북포용정책을 펼쳐 나아갈 수 있었으며 탈냉전 지역구조와 북한에 대한 탈냉전적 정체성이 일치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그러나 2000년 부시정부의 등장은 지역구조를 신냉전적 지역구조로의 변화로 이끌었고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한 남한 국민들의 정체성도 북한의 지속적인 핵무기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함께 점점 대결적 신냉전적 대북 정체성으로 변동을 요청받았다. 대북포용정책을 이어 받은 노무현 정부는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하였고 이 과정에서 부시정부의 대북 강경책과 마찰을 낳아 한·미 동맹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는 신냉전적 지역구조 속에서 신냉전적 대북 정체성을 갖기 시작한 남한 국민들에게 일종의 안보불안으로 다가왔으며 따라서 지역구조에 걸맞은 강경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 이명박 보수정권의 탄생을 야기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비핵·개방·3000 정책을 필두로 선결적 조건의 해결을 전제로 한 대북 강경책을 펼쳐 나아갔고 부시정부와의 공조를 공고히 하였다. 이는 다시 신냉전적 지역구조와 신냉전적 대북 정체성이 일치하는 안정감을 안겨다 주었으나 오바마 정부 탄생 이후 이러한 신냉전적 정체성은 미국 신정부의 대북정책이 현상유지적 모호성을 보여 그 방향에 대한 내적 혼돈을 다시금 가져오고 있다. 이는 한반도의 정체성이 지역구조에 의해 주어진 태생적 한계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로 구조에 빗대어 그 정체성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에서 오는 내적 혼돈을 유발한다. 이는 국력의 증강에 따른 한국의 정체성의 주체적 발현 욕구로 이어져 한국의 고유하고 독창적인 정체성의 형성과 이를 지역구조에 영향을 미치도록 할 것을 요청하는 단계에도 이르고 있다. 이러한 한반도의 탈냉전적 정체성 변동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서 구성주의적 현실주의를 차용하였다. 구성주의적 현실주의는 물질적 힘의 배분구조가 오히려 인식적 측면을 구성하고, 제약하는 부분을 강조함에 따라 구조로부터 영향을 받는 정체성 분석에 적합하다. 또한 정치 집단들과 국가가 구성된 자신의 정체성이 장기적으로 고착되더라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본질적인 이익이 문제시 되면, 구성된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고찰 할 수 있는 능력인 ‘반구성적 반성력’(counter-constitutive reflective power)을 지닌다는 이론으로 탈냉전기 남한 국민들의 북한에 대한 탈냉전 정체성의 변동을 연구하는 기틀을 마련해준다. 또한 지역구조의 변동과 이에 따른 대북 정체성의 변동 과정에서 파생하는 내적혼돈은 국력을 기반으로 한 정체성의 주체적 발현 욕구를 자극하여 국제여론 및 국가 이외 단위들의 영향력 증대라는 국제정치 무대의 민주성 증가라는 환경과 더불어 한반도에서 구성주의의 발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판단된다.
Identity over the Korean Peninsula was implanted by regional structure not only in the Cold War period consisted by the Bi-polar System of the U.S. and Soviet Union but also the Post-Cold War period after the collapse of the Communist camp. As conflicts between the U.S. and Soviet Union were reflect...
Identity over the Korean Peninsula was implanted by regional structure not only in the Cold War period consisted by the Bi-polar System of the U.S. and Soviet Union but also the Post-Cold War period after the collapse of the Communist camp. As conflicts between the U.S. and Soviet Union were reflected into the Korean Peninsula, South Korean people developed their hostile identity against North Korea. In the Post-Cold War period, the peninsula took a request to transform their identity into the Post-Cold War identity consisted by reconciliation, cooperation and mutual prosperity in the Uni-polar System of the only superpower, the U.S. It is transformation of the regional structure motivated Koreans change their identity. Although the Roh Tae-woo Administration pursued a policy of exchanges and cooperation between the two Korea according to the Post-Cold War identity in the Post-Cold War mood, the confrontational structure between the North and South Korea was still maintained. The Kim Young-sam Administration also pushed a policy of exchanges and talks with the North in the beginning of the administration like the former government but swung its policy towards a hard-line policy after North Korea’s withdrawal from the Nonproliferation Treaty (NPT) and its many cases of provocation to South Korea after the death of the Premier Kim Il-sung. However, it led to the birth of Kim Dae-jung Administration pursuing suitable policy for the regional structure by the people who took a demand to change their identity into the Post-Cold War identity. The Kim Dae-jung Administration pushed the engagement policy towards North Korea ahead with the support of the Clinton Administration and it showed accord of the Post-Cold War structure and identity. But the appearance of the Bush Administration in 2000 led to transformation of regional structure to New Cold War structure and South Korean people started to take a request to change the identity for the North Korea to the New Cold War identity in the North Korea's development of nuclear weapon and weapon of mass destruction (WMD). The Roh Moo-hyun Administration which succeeded to the former administration's engagement policy pursued peace and prosperity policy and this led to friction with the policy for the North Korea of Bush Administration causing enfeeblement of alliance between Korea and the United States. This reflects South Korean people had security uncertainties with the New Cold War identity in the New Cold War regional structure and they made the conservative Lee Myung-bak Administration is born pursuing a hard-line policy against the North in accordance with the regional structure. The Lee Administration pushed tough approach toward Pyongyang with the “Denuclearization, Opening and 3000” policy in some preconditions and enhanced cooperation with the Bush Administration. This brought South Korean people feel stable in the concurrence of the New Cold War structure and identity. But after the birth of Obama Administration, its maintenance of the status quo and ambiguity on the policy direction for North Korea brought about inner confusion to Koreans. This was because of the origin limitation of identity in Korean Peninsula that was implanted by regional structure which caused inner confusion from deciding the direction of its identity on the basis of structure. This state led Koreans have desire for expression of subjectivity of identity with increased national power and have a request for forming creative and peculiar Korean identity which can influence on regional structure. In order to research these changes on identity over Korean Peninsula in the Post-Cold War period, introduced a theory of constructivist realism. The constructivist realism is suitable for analyzing identity influenced by structure as it put emphasis on the physical structure of distribution of capabilities' construction and constraint on the recognition. The theory, having ‘counter-constitutive reflective power’ that means a power politicians and a state can thoroughly relook constructed identity when the vital interest has a problem in a changed situation in spite of identity solidifying in the long term, also provides a foundation for researching changed on identity over Korean Peninsula in the Post-Cold War period. The inner confusion caused in changes of structure and identity stimulates desire for subjective expression of identity and enhances a possibility in outbreak of constructivism in the Korean Peninsula with circumstances of an increase in influence of international public opinion and units except for nation which improve a degree of democracy in international relations.
Identity over the Korean Peninsula was implanted by regional structure not only in the Cold War period consisted by the Bi-polar System of the U.S. and Soviet Union but also the Post-Cold War period after the collapse of the Communist camp. As conflicts between the U.S. and Soviet Union were reflected into the Korean Peninsula, South Korean people developed their hostile identity against North Korea. In the Post-Cold War period, the peninsula took a request to transform their identity into the Post-Cold War identity consisted by reconciliation, cooperation and mutual prosperity in the Uni-polar System of the only superpower, the U.S. It is transformation of the regional structure motivated Koreans change their identity. Although the Roh Tae-woo Administration pursued a policy of exchanges and cooperation between the two Korea according to the Post-Cold War identity in the Post-Cold War mood, the confrontational structure between the North and South Korea was still maintained. The Kim Young-sam Administration also pushed a policy of exchanges and talks with the North in the beginning of the administration like the former government but swung its policy towards a hard-line policy after North Korea’s withdrawal from the Nonproliferation Treaty (NPT) and its many cases of provocation to South Korea after the death of the Premier Kim Il-sung. However, it led to the birth of Kim Dae-jung Administration pursuing suitable policy for the regional structure by the people who took a demand to change their identity into the Post-Cold War identity. The Kim Dae-jung Administration pushed the engagement policy towards North Korea ahead with the support of the Clinton Administration and it showed accord of the Post-Cold War structure and identity. But the appearance of the Bush Administration in 2000 led to transformation of regional structure to New Cold War structure and South Korean people started to take a request to change the identity for the North Korea to the New Cold War identity in the North Korea's development of nuclear weapon and weapon of mass destruction (WMD). The Roh Moo-hyun Administration which succeeded to the former administration's engagement policy pursued peace and prosperity policy and this led to friction with the policy for the North Korea of Bush Administration causing enfeeblement of alliance between Korea and the United States. This reflects South Korean people had security uncertainties with the New Cold War identity in the New Cold War regional structure and they made the conservative Lee Myung-bak Administration is born pursuing a hard-line policy against the North in accordance with the regional structure. The Lee Administration pushed tough approach toward Pyongyang with the “Denuclearization, Opening and 3000” policy in some preconditions and enhanced cooperation with the Bush Administration. This brought South Korean people feel stable in the concurrence of the New Cold War structure and identity. But after the birth of Obama Administration, its maintenance of the status quo and ambiguity on the policy direction for North Korea brought about inner confusion to Koreans. This was because of the origin limitation of identity in Korean Peninsula that was implanted by regional structure which caused inner confusion from deciding the direction of its identity on the basis of structure. This state led Koreans have desire for expression of subjectivity of identity with increased national power and have a request for forming creative and peculiar Korean identity which can influence on regional structure. In order to research these changes on identity over Korean Peninsula in the Post-Cold War period, introduced a theory of constructivist realism. The constructivist realism is suitable for analyzing identity influenced by structure as it put emphasis on the physical structure of distribution of capabilities' construction and constraint on the recognition. The theory, having ‘counter-constitutive reflective power’ that means a power politicians and a state can thoroughly relook constructed identity when the vital interest has a problem in a changed situation in spite of identity solidifying in the long term, also provides a foundation for researching changed on identity over Korean Peninsula in the Post-Cold War period. The inner confusion caused in changes of structure and identity stimulates desire for subjective expression of identity and enhances a possibility in outbreak of constructivism in the Korean Peninsula with circumstances of an increase in influence of international public opinion and units except for nation which improve a degree of democracy in international re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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