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에게 있어 교회는 지체의 다수성이나 다양성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몸’으로서 그 본질을 가지고 있다.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울타리와 한계들, 즉 유대인이나 헬라인, 노예와 자유인, 남자와 여자 사이의 한계들은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의미에서의 유기체가 아니라 예수의 주권을 세우고 예수의 영을 통해 현실이 되게 하는 한 기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비로소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힘입어, 예수에 의해 해방되고 선사되어 이미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조건이나 제한은 교회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회는 예수의 영을 통해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몸으로 존재해야 할 교회가 안타깝게도 지금 이 시대에는 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교회 내의 분열됨, 부정직함, 음란함, 세속적인 모습들은 계속해서 세상 가운데 온전해 보이지 못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게 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온갖 개혁과 변화에 처한 격동하는 현실이 모든 그리스도교의 교회들에게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이 질문을 절실하게 한다. 바야흐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서 과연 무엇이 근본적으로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교회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각 시대의 교회형태에 의존한다. 시대마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교회상이 있다. 역사상 특정한 교회의 생활과 형식이 있고, 역사상 특정한 신학자들이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교회관이 있다. 그러나 또한 변화무쌍한 교회사의 온갖 정신사적, 교회사적, 신학사적 조류와 역조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도 확실히 있다. 이것은 교회 자체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자기 이해의 역사에는 불변의 요소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하는 것 속에서만 나타난다. 그것은 다양한 변모속의 동일성이요 갖가지 사건속의 연속성이며 현장속의 일관성이다. 요컨대 교회의 본질이 존재하되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역사적 형태로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변하는 역사적 양상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교회를 파악할 수 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은유로 묘사하고 있는데, 특별히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은유로 쓰고 있다. 그것은 바울의 교회론에서 주도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이미지이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몸’(sw'...
바울에게 있어 교회는 지체의 다수성이나 다양성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몸’으로서 그 본질을 가지고 있다.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울타리와 한계들, 즉 유대인이나 헬라인, 노예와 자유인, 남자와 여자 사이의 한계들은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의미에서의 유기체가 아니라 예수의 주권을 세우고 예수의 영을 통해 현실이 되게 하는 한 기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비로소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힘입어, 예수에 의해 해방되고 선사되어 이미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조건이나 제한은 교회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회는 예수의 영을 통해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몸으로 존재해야 할 교회가 안타깝게도 지금 이 시대에는 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교회 내의 분열됨, 부정직함, 음란함, 세속적인 모습들은 계속해서 세상 가운데 온전해 보이지 못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게 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온갖 개혁과 변화에 처한 격동하는 현실이 모든 그리스도교의 교회들에게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이 질문을 절실하게 한다. 바야흐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서 과연 무엇이 근본적으로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교회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각 시대의 교회형태에 의존한다. 시대마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교회상이 있다. 역사상 특정한 교회의 생활과 형식이 있고, 역사상 특정한 신학자들이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교회관이 있다. 그러나 또한 변화무쌍한 교회사의 온갖 정신사적, 교회사적, 신학사적 조류와 역조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도 확실히 있다. 이것은 교회 자체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자기 이해의 역사에는 불변의 요소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하는 것 속에서만 나타난다. 그것은 다양한 변모속의 동일성이요 갖가지 사건속의 연속성이며 현장속의 일관성이다. 요컨대 교회의 본질이 존재하되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역사적 형태로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변하는 역사적 양상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교회를 파악할 수 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은유로 묘사하고 있는데, 특별히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은유로 쓰고 있다. 그것은 바울의 교회론에서 주도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이미지이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몸’(sw'ma)이라는 단어는 146회가 등장하는데, 바울서신에 91회가 등장하고, 이중에 47회가 고린도전서에 나온다. 즉 바울은 성도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 각자는 몸의 지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교회가 다시 회복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이해하는 것은 근원적인 물음을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 물음은 지금 이 시대의 교회가 어느 위치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있는지 거울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바울에게 있어 교회는 지체의 다수성이나 다양성이 아니라 한 사람 안에 ‘몸’으로서 그 본질을 가지고 있다. 지상적이고 인간적인 울타리와 한계들, 즉 유대인이나 헬라인, 노예와 자유인, 남자와 여자 사이의 한계들은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자연적이고 인간적인 의미에서의 유기체가 아니라 예수의 주권을 세우고 예수의 영을 통해 현실이 되게 하는 한 기관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비로소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힘입어, 예수에 의해 해방되고 선사되어 이미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적인 조건이나 제한은 교회에서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교회는 예수의 영을 통해서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한 몸으로 존재해야 할 교회가 안타깝게도 지금 이 시대에는 그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교회 내의 분열됨, 부정직함, 음란함, 세속적인 모습들은 계속해서 세상 가운데 온전해 보이지 못하는 모습으로 존재하게 한다. 교회란 무엇인가? 온갖 개혁과 변화에 처한 격동하는 현실이 모든 그리스도교의 교회들에게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이 질문을 절실하게 한다. 바야흐로 그리스도의 교회에 있어서 과연 무엇이 근본적으로 중요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가? 교회라는 개념은 근본적으로 각 시대의 교회형태에 의존한다. 시대마다 특정한 역사적 상황에서 나온 교회상이 있다. 역사상 특정한 교회의 생활과 형식이 있고, 역사상 특정한 신학자들이 되돌아보거나 내다보는 교회관이 있다. 그러나 또한 변화무쌍한 교회사의 온갖 정신사적, 교회사적, 신학사적 조류와 역조에도 불구하고 변하지 않는 것도 확실히 있다. 이것은 교회 자체내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교회의 자기 이해의 역사에는 불변의 요소가 있지만,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변하는 것 속에서만 나타난다. 그것은 다양한 변모속의 동일성이요 갖가지 사건속의 연속성이며 현장속의 일관성이다. 요컨대 교회의 본질이 존재하되 그것은 형이상학적으로 움직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가능한 역사적 형태로만 나타난다. 그러므로 변하는 역사적 양상 속에서 교회의 본질을 볼 때 비로소 우리는 교회를 파악할 수 있다. 바울은 교회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은유로 묘사하고 있는데, 특별히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은유로 쓰고 있다. 그것은 바울의 교회론에서 주도적인 그리고 신학적인 이미지이다. 또한 신약성경에서 ‘몸’(sw'ma)이라는 단어는 146회가 등장하는데, 바울서신에 91회가 등장하고, 이중에 47회가 고린도전서에 나온다. 즉 바울은 성도 공동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도 각자는 몸의 지체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 그리고 교회가 다시 회복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이해하는 것은 근원적인 물음을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이 물음은 지금 이 시대의 교회가 어느 위치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있는지 거울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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