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논문]북한 핵위기와 북미협상 : 1차위기와 2차위기의 비교분석 Nuclear Crisis of North Korea & U.S.A.-North Korea Negotiation : Comparative Analysis of 1st and 2nd Nuclear Crisis원문보기
북한의 핵문제는 1993년 3월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NPT탈퇴 선언으로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이슈화 되었다. 이후 2002년 10월 켈리 미국 특사의 금창리 핵시설 우라늄 농축 시인 발표로 촉발된 2차 핵위기, 2006년 10월의 1차 핵실험,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 등 1993년 이후 시작된 북한의 핵문제는 이후 수 십 차례의 협상이 이루어 졌지만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북·미 핵협상에서 북한은 상대적 약소국으로서 초강대국 미국과의 협상에서 대등하게, 한편으로는 미국을 주도하는 협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협상결과를 접하며 본 연구는 북한과 미국의 핵관련 협상과정과 결과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핵개발문제를 두고 북한과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한 협상에서 협상전략은 무엇이며 1, 2차 핵위기 시 북미협상에서의 차이는 무엇인지 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본 논문의 기본목적이었다. 연구결과는 국제사회의 문제로 대두되어 아직도 진행 중인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한 협상전략 또는 북한핵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1993년 북한의 NPT 탈퇴선언으로 조성된 1차 북핵위기는 이후 1년여 기간의 북미협상을 통해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 간 제네바합의를 이루었다. 이 합의 결과로 북한은 NPT 완전복귀와 핵 동결, ...
북한의 핵문제는 1993년 3월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NPT탈퇴 선언으로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이슈화 되었다. 이후 2002년 10월 켈리 미국 특사의 금창리 핵시설 우라늄 농축 시인 발표로 촉발된 2차 핵위기, 2006년 10월의 1차 핵실험,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 등 1993년 이후 시작된 북한의 핵문제는 이후 수 십 차례의 협상이 이루어 졌지만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북·미 핵협상에서 북한은 상대적 약소국으로서 초강대국 미국과의 협상에서 대등하게, 한편으로는 미국을 주도하는 협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협상결과를 접하며 본 연구는 북한과 미국의 핵관련 협상과정과 결과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핵개발문제를 두고 북한과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한 협상에서 협상전략은 무엇이며 1, 2차 핵위기 시 북미협상에서의 차이는 무엇인지 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본 논문의 기본목적이었다. 연구결과는 국제사회의 문제로 대두되어 아직도 진행 중인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한 협상전략 또는 북한핵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1993년 북한의 NPT 탈퇴선언으로 조성된 1차 북핵위기는 이후 1년여 기간의 북미협상을 통해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 간 제네바합의를 이루었다. 이 합의 결과로 북한은 NPT 완전복귀와 핵 동결, IAEA 핵안전협정 이행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이행을 약속하였고, 이에 대한 대가로 북·미간 관계개선과 대체 에너지 및 경수로 지원을 약속받았다. 제네바합의의 성과는 북한과 미국의 합의는 비록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지만 북한과 미국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해결방안도 제시했다는 것이다. 제네바합의는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결국 2002년 10월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2차 북한 핵위기가 재연되어 비록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서로 신뢰하지 않았던 북·미 양국이 문제해결을 위해 직접 대화하고 협상하는 등 북·미간 적대관계 개선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는 것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2차 북핵위기는 2002년 미국 켈리 대표의 북한의 핵보유 시인 발표로 시작되었다. 이후 베이징에서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참가한 3자회담이 개최되고 이어서 미국의 다자주의로의 정책전환으로 일본,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 참가한 1, 2, 3차 6자회담이 개최되었다. 2005년 9월 개최된 4차 6자회담에서는 북핵동결의 대가인 경수로 문제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의 문제가 최대의 쟁점이었다. 이후 5, 6차 6자회담이 개최되고 2차 북핵위기 협상은 결국 9·19 공동성명 이후 2·13 합의 및 10·3 합의, 그리고 현재까지도 협상과 합의의 이행이라는 갈등해소의 선순환구조가 아닌 합의와 갈등의 반복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2003년 첫 회의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 개최된 6자회담이 북핵문제 협상에 가장 중요한 외교의 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며, 참석자 모두 그 의의와 중요성에 대체로 공감을 한다. 특히 6자회담은 흔히 전략적 경쟁자로 정의되는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의 가장 첨예한 안보현안을 놓고 긴밀하게 협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1, 2차 핵위기 시 북미협상은 여전히 비대칭협상의 형태를 보이나 1, 2차 모두 협상의 주도권은 북한이 쥐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북한은 협상의 주목적인 핵을 통한 체제유지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1, 2차 북미협상 모두 북한의 핵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북한과 미국은 합의사항을 중간에 이행하지 않아 합의가 파기되었으나 상호간 이렇다 할 제재를 가할 수는 없었다.
1, 2차 북미협상을 비교분석해 보면 1994년 제네바 핵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함에 따라 북한과 미국 간의 불신의 벽이 더 높아져 양자 간의 대화와 타협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듯하다. 특히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내세우며 협상목표를 높게 잡고 협상의 대가도 높게 요구하면서 협상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북한은 1, 2차 북미협상에서 일관적으로 벼랑끝전략을 펼치고 있다. 북한은 1, 2차 협상에서 변함없이 양보 없는 벼랑끝전략을 펼치고 있으나 이는 계획적으로 의도된 고도의 협상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단지 북한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약소국인 북한에게는 체제유지를 위한 충분조건인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기 위해 미국과의 핵협상에 임하는 것이며, 북한은 정권의 국가안보 즉 생존이 걸린 문제이므로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북한은 체제의 생존보장과 경제적 안정 등 정권의 국가안보 즉 체제의 생존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의 협상행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북한의 핵개발 관련 한국의 정책방향을 검토해 보았다. 첫째, 대북한 정책을 추구함에 있어 소위 ‘햇볕’과 압박의 유연하고 적절한 조화가 중요하다. 국제정치에서 강압과 회유는 외교의 기본이며, 이것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 지속적인 대북 압박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북한의 위협인식을 증가시켜 북한 스스로 더 큰 위험성을 감수하는 도박을 감행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둘째,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의 하나로 북핵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불가결하다. 셋째, 북한 국내정치의 안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북한의 국내상황이 체제붕괴를 위협할 정도로 악화되어 체제유지 불가능의 상황이 된다면, 북한의 지도부가 모험주의적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문제는 1993년 3월 북한 국방위원장 김정일의 NPT탈퇴 선언으로 국제사회에 본격적으로 이슈화 되었다. 이후 2002년 10월 켈리 미국 특사의 금창리 핵시설 우라늄 농축 시인 발표로 촉발된 2차 핵위기, 2006년 10월의 1차 핵실험, 2009년 5월의 2차 핵실험 등 1993년 이후 시작된 북한의 핵문제는 이후 수 십 차례의 협상이 이루어 졌지만 지금까지도 이렇다 할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북·미 핵협상에서 북한은 상대적 약소국으로서 초강대국 미국과의 협상에서 대등하게, 한편으로는 미국을 주도하는 협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러한 특이한 협상결과를 접하며 본 연구는 북한과 미국의 핵관련 협상과정과 결과를 연구하고자 하였다. 핵개발문제를 두고 북한과 미국의 국가이익을 위한 협상에서 협상전략은 무엇이며 1, 2차 핵위기 시 북미협상에서의 차이는 무엇인지 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본 논문의 기본목적이었다. 연구결과는 국제사회의 문제로 대두되어 아직도 진행 중인 북한의 핵개발문제에 대한 협상전략 또는 북한핵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결과를 요약하면 1993년 북한의 NPT 탈퇴선언으로 조성된 1차 북핵위기는 이후 1년여 기간의 북미협상을 통해 1994년 10월 북한과 미국 간 제네바합의를 이루었다. 이 합의 결과로 북한은 NPT 완전복귀와 핵 동결, IAEA 핵안전협정 이행 그리고 한반도 비핵화선언의 이행을 약속하였고, 이에 대한 대가로 북·미간 관계개선과 대체 에너지 및 경수로 지원을 약속받았다. 제네바합의의 성과는 북한과 미국의 합의는 비록 완전히 이행되지 않았지만 북한과 미국이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해결방안도 제시했다는 것이다. 제네바합의는 신뢰관계를 구축하지 못하고, 결국 2002년 10월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2차 북한 핵위기가 재연되어 비록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부터 서로 신뢰하지 않았던 북·미 양국이 문제해결을 위해 직접 대화하고 협상하는 등 북·미간 적대관계 개선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는 것에서 의미 있는 진전이라 할 수 있다.
2차 북핵위기는 2002년 미국 켈리 대표의 북한의 핵보유 시인 발표로 시작되었다. 이후 베이징에서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이 참가한 3자회담이 개최되고 이어서 미국의 다자주의로의 정책전환으로 일본,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 참가한 1, 2, 3차 6자회담이 개최되었다. 2005년 9월 개최된 4차 6자회담에서는 북핵동결의 대가인 경수로 문제와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의 문제가 최대의 쟁점이었다. 이후 5, 6차 6자회담이 개최되고 2차 북핵위기 협상은 결국 9·19 공동성명 이후 2·13 합의 및 10·3 합의, 그리고 현재까지도 협상과 합의의 이행이라는 갈등해소의 선순환구조가 아닌 합의와 갈등의 반복구조로 전개되고 있다. 2003년 첫 회의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 개최된 6자회담이 북핵문제 협상에 가장 중요한 외교의 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사실이며, 참석자 모두 그 의의와 중요성에 대체로 공감을 한다. 특히 6자회담은 흔히 전략적 경쟁자로 정의되는 미국과 중국이 아시아의 가장 첨예한 안보현안을 놓고 긴밀하게 협력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은 1, 2차 핵위기 시 북미협상은 여전히 비대칭협상의 형태를 보이나 1, 2차 모두 협상의 주도권은 북한이 쥐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북한은 협상의 주목적인 핵을 통한 체제유지를 달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1, 2차 북미협상 모두 북한의 핵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했다. 또한 북한과 미국은 합의사항을 중간에 이행하지 않아 합의가 파기되었으나 상호간 이렇다 할 제재를 가할 수는 없었다.
1, 2차 북미협상을 비교분석해 보면 1994년 제네바 핵합의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함에 따라 북한과 미국 간의 불신의 벽이 더 높아져 양자 간의 대화와 타협이 더 어려워지고 있는 듯하다. 특히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북한은 핵보유국의 지위를 내세우며 협상목표를 높게 잡고 협상의 대가도 높게 요구하면서 협상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북한은 1, 2차 북미협상에서 일관적으로 벼랑끝전략을 펼치고 있다. 북한은 1, 2차 협상에서 변함없이 양보 없는 벼랑끝전략을 펼치고 있으나 이는 계획적으로 의도된 고도의 협상전략이라고 할 수 없다. 이는 단지 북한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약소국인 북한에게는 체제유지를 위한 충분조건인 핵을 포기하는 대가로 이에 상응하는 보상을 얻기 위해 미국과의 핵협상에 임하는 것이며, 북한은 정권의 국가안보 즉 생존이 걸린 문제이므로 최선을 다해 협상에 임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북한은 체제의 생존보장과 경제적 안정 등 정권의 국가안보 즉 체제의 생존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북한의 협상행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북한의 핵개발 관련 한국의 정책방향을 검토해 보았다. 첫째, 대북한 정책을 추구함에 있어 소위 ‘햇볕’과 압박의 유연하고 적절한 조화가 중요하다. 국제정치에서 강압과 회유는 외교의 기본이며, 이것이 조화를 이룰 때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 지속적인 대북 압박정책을 구사하는 것은 북한의 위협인식을 증가시켜 북한 스스로 더 큰 위험성을 감수하는 도박을 감행할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이다. 둘째, 무엇보다 중요한 사항의 하나로 북핵문제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국제사회와의 긴밀한 공조가 필수불가결하다. 셋째, 북한 국내정치의 안정을 고려하여야 한다. 북한의 국내상황이 체제붕괴를 위협할 정도로 악화되어 체제유지 불가능의 상황이 된다면, 북한의 지도부가 모험주의적 정책을 추구할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The issue on North Korea's Nuclear crisis became public throughout the whole world on March, 1993 when the leader of the National Defence Committee, Jong-Il Kim announced the secession of North Korea from the NPT. Ever since then, there weren't any solutions or answers in order to solve the nuclear ...
The issue on North Korea's Nuclear crisis became public throughout the whole world on March, 1993 when the leader of the National Defence Committee, Jong-Il Kim announced the secession of North Korea from the NPT. Ever since then, there weren't any solutions or answers in order to solve the nuclear crisis even though several negotiations ocurred.
Even during the USA·North Korea's negotiation on Nuclear Proliferation, as a smaller and less powerful nation, North Korea seemed to possess equal or even higher capabilities of negotiation than the US. By looking at this particular situation, this analysis studies the results and the negotiation processes between the two countries. The purpose of this analysis is to study the strategic negotiation between the two nations when it comes to national interest, and the difference or changes that occurred during the 1st and the 2nd nuclear crisis negotiation by both countries. The results of the study provide the solutions for the matter on North Korea's nuclear crisis and the negotiating strategy for the nuclear development that it is still an issue for the world media.
As a brief summary for this analysis' result, North Korea's 1st Nuclear crisis negotiation, which ocurred right after their secession from the NPT, was held at the Geneva negotiation on October 1994. The results were that North Korea returned to the NPT, shut down all nuclear facilities, fulfilled IAEA's Nuclear Safety Agreement and promised to keep a non-nuclear Korean peninsula. As an exchange North Korea would improve their relationship with the US and receive substitute energy and light water reactor support from the US. However, both the US and North Korea did not completely agree to the issues that were presented during the negotiation, but it seemed that a possibility existed for both the US and North Korea to come to a conclusion through communication, and those solutions were presented during the negotiation. However, a vision of trust did not exist during the Geneva negotiation and North Korea eventually didn't keep its promises since they presented a new nuclear test by using enriched uranium and later presenting it in public in October 2002.
The 2nd Nuclear Crisis was presented by the US representative, Kelly, when he announced a sanction to North Korea's possession of Nuclear Power. Later, US, China, and North Korea attended the 3 Parties Conference in Beijing and then the 1st, 2nd, and 3rd 6 Parties Conference, in which South Korea, Japan, and Russia participated as well, was held. During the 4th 6 Parties Conference in September 2005 the damage of the light-water reactor due to shutting down the nuclear facilities, and the issue of North Korea's utility of nuclear power for peacuful reason were the main issues. After this, the 5th and 6th 6 Parties Conference were held and the 2nd Nuclear Crisis Negotiation's was incorporated thru mutual signing which occurred on September 19th, the negotiation on February 13th the year after, and the negotiation on October 3rd which ocurred at the same year. Additionally, it has been developed even at present date thru constant process of negotiations and disagreements, not by a process of mutual understanding and collaboration. Ever since the first meeting which was held in 2003, the 6 Parties Conference seemed to be the most effective conference in terms of diplomacy, and all the participants for this conference agreed to this statement. It was especially a crucial conference for both the US and China, which are top rivals in terms of global strategies, to discuss about Asia's most radical issue regards to security.
For North Korea, the 1st and 2nd Nuclear Crisis USA·North Korea negotiation seemed to be very asymmetrical and the leading nation of these two negotiations was North Korea. Therefore, as a result, North Korea accomplished to maintain their political power thru their main goal which is to possess nuclear power. However, US believes that the 1st and the 2nd negotiation did not conclude with a solution and it did not solve the problem, and since the negotiation by both the US and North Korea didn't continue during the negotiating process, the agreement was eventually cancelled. However both nations could not inflict sanction.
By comparing the 1st and the 2nd Nuclear Crisis negotiation, ever since the disagreement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during the 1994 Geneva Nuclear Negotiation, their wall of mistrust has been getting bigger and their opportunity to communicate and negotiate seems to be vulnerable. Especially right after North Korea's nuclear testing in 2006, North Korea declare themselves as a rightful nation that can possess nuclear power and they have set a high goal in terms of negotiating and have demanded for a high incentive which makes negotiation hard. North Korea has set a high standard of strategy during the 1st and 2nd Nuclear Crisis Negotiation. They have set this type of strategy during both negotiations, but it cannot be assumed that they intended this to happen. This strategy was only set due to survival. As a smaller and less powerful nation North Korea agreed to negotiate with the US since it would allow them to keep nuclear power which is the only source for North Korea to keep and practice their political idea and it also dealt with the issue of the nation's safety. In other words, North Korea will never change their status for negotiating as long as their government's national safety, which includes the protection of their political ideas and the safety of the economy, is not solved.
Lastly due to North Korea's nuclear power there were some revisions that determined South Korea's Political direction. Firstly, it is important to mix the "sunshine policy" and a reasonable amount of pressure in order to excute North Korea policy. For international politics, pressure and appeasement are key points for diplomacy, and this mix creates a huge impact. The reason why this statement is true, is because North Korea will forecast a bigger threat therefore creating a provocation every time South Korea and the US continuously force them to follow a pressured policy. Secondly, it is essential to have a close collaboration with the US and the international society which leads for Nuclear crisis relations. Finally, North Korea's national policy should be stabilized. If North Korea's national status gets to unstabilize, They will no longer be able to maintain their regime. Therefore it is evident that North Korea's leadership will practice a more adventure policy.
The issue on North Korea's Nuclear crisis became public throughout the whole world on March, 1993 when the leader of the National Defence Committee, Jong-Il Kim announced the secession of North Korea from the NPT. Ever since then, there weren't any solutions or answers in order to solve the nuclear crisis even though several negotiations ocurred.
Even during the USA·North Korea's negotiation on Nuclear Proliferation, as a smaller and less powerful nation, North Korea seemed to possess equal or even higher capabilities of negotiation than the US. By looking at this particular situation, this analysis studies the results and the negotiation processes between the two countries. The purpose of this analysis is to study the strategic negotiation between the two nations when it comes to national interest, and the difference or changes that occurred during the 1st and the 2nd nuclear crisis negotiation by both countries. The results of the study provide the solutions for the matter on North Korea's nuclear crisis and the negotiating strategy for the nuclear development that it is still an issue for the world media.
As a brief summary for this analysis' result, North Korea's 1st Nuclear crisis negotiation, which ocurred right after their secession from the NPT, was held at the Geneva negotiation on October 1994. The results were that North Korea returned to the NPT, shut down all nuclear facilities, fulfilled IAEA's Nuclear Safety Agreement and promised to keep a non-nuclear Korean peninsula. As an exchange North Korea would improve their relationship with the US and receive substitute energy and light water reactor support from the US. However, both the US and North Korea did not completely agree to the issues that were presented during the negotiation, but it seemed that a possibility existed for both the US and North Korea to come to a conclusion through communication, and those solutions were presented during the negotiation. However, a vision of trust did not exist during the Geneva negotiation and North Korea eventually didn't keep its promises since they presented a new nuclear test by using enriched uranium and later presenting it in public in October 2002.
The 2nd Nuclear Crisis was presented by the US representative, Kelly, when he announced a sanction to North Korea's possession of Nuclear Power. Later, US, China, and North Korea attended the 3 Parties Conference in Beijing and then the 1st, 2nd, and 3rd 6 Parties Conference, in which South Korea, Japan, and Russia participated as well, was held. During the 4th 6 Parties Conference in September 2005 the damage of the light-water reactor due to shutting down the nuclear facilities, and the issue of North Korea's utility of nuclear power for peacuful reason were the main issues. After this, the 5th and 6th 6 Parties Conference were held and the 2nd Nuclear Crisis Negotiation's was incorporated thru mutual signing which occurred on September 19th, the negotiation on February 13th the year after, and the negotiation on October 3rd which ocurred at the same year. Additionally, it has been developed even at present date thru constant process of negotiations and disagreements, not by a process of mutual understanding and collaboration. Ever since the first meeting which was held in 2003, the 6 Parties Conference seemed to be the most effective conference in terms of diplomacy, and all the participants for this conference agreed to this statement. It was especially a crucial conference for both the US and China, which are top rivals in terms of global strategies, to discuss about Asia's most radical issue regards to security.
For North Korea, the 1st and 2nd Nuclear Crisis USA·North Korea negotiation seemed to be very asymmetrical and the leading nation of these two negotiations was North Korea. Therefore, as a result, North Korea accomplished to maintain their political power thru their main goal which is to possess nuclear power. However, US believes that the 1st and the 2nd negotiation did not conclude with a solution and it did not solve the problem, and since the negotiation by both the US and North Korea didn't continue during the negotiating process, the agreement was eventually cancelled. However both nations could not inflict sanction.
By comparing the 1st and the 2nd Nuclear Crisis negotiation, ever since the disagreement between the US and North Korea during the 1994 Geneva Nuclear Negotiation, their wall of mistrust has been getting bigger and their opportunity to communicate and negotiate seems to be vulnerable. Especially right after North Korea's nuclear testing in 2006, North Korea declare themselves as a rightful nation that can possess nuclear power and they have set a high goal in terms of negotiating and have demanded for a high incentive which makes negotiation hard. North Korea has set a high standard of strategy during the 1st and 2nd Nuclear Crisis Negotiation. They have set this type of strategy during both negotiations, but it cannot be assumed that they intended this to happen. This strategy was only set due to survival. As a smaller and less powerful nation North Korea agreed to negotiate with the US since it would allow them to keep nuclear power which is the only source for North Korea to keep and practice their political idea and it also dealt with the issue of the nation's safety. In other words, North Korea will never change their status for negotiating as long as their government's national safety, which includes the protection of their political ideas and the safety of the economy, is not solved.
Lastly due to North Korea's nuclear power there were some revisions that determined South Korea's Political direction. Firstly, it is important to mix the "sunshine policy" and a reasonable amount of pressure in order to excute North Korea policy. For international politics, pressure and appeasement are key points for diplomacy, and this mix creates a huge impact. The reason why this statement is true, is because North Korea will forecast a bigger threat therefore creating a provocation every time South Korea and the US continuously force them to follow a pressured policy. Secondly, it is essential to have a close collaboration with the US and the international society which leads for Nuclear crisis relations. Finally, North Korea's national policy should be stabilized. If North Korea's national status gets to unstabilize, They will no longer be able to maintain their regime. Therefore it is evident that North Korea's leadership will practice a more adventure poli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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