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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영암사의 창건은 최소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이루어졌다는 판단이다. 그 이유는 첫째, 영암사에 대한 남아있는 최초의 기록인 홍각선사비문 중 827년에서 840년 사이에 홍각선사가 영암사에서 여러 달 동안 선정을 닦았다는 내용과 둘째, 영암사지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구의 상한선이 8세기 중반을 넘지 않는 점 셋째, 영암사지의 석축기법 때문이다. 바른층쌓기에 쐐기형 돌을 못처럼 박아넣어 석축을 단단히 고정시키고 있는데 이런 기법이 쓰인 남아있는 석축유구는 감은사지(681), 불국사(751~774), 월정교·일정교(760)이다. 한 시대에 성행했던 석축안정화기법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영암사지의 금당기단의 경우 다양한 조식이 되어있어 그 예가 흔치않다. 또 금당 주변이 협소한대도 사방으로 계단을 내어놓고 있다. 이는 영암사지 금당을 목탑양식의 중층으로 건립하고 기단부를 탑의 기단처럼 장엄조식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 시기 대부분의 비로자나불좌상의 장엄조식에 사자가 쓰인 것으로 보아 영암사지 금당에는 거대한 비로자나불상이 모셔졌을 것이다. 금당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50m 지점에 조사당으로 추정되는 건물지 좌우로 ...
저자 | 이승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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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수여기관 | 전북대학교 대학원 |
학위구분 | 국내석사 |
학과 | 조경학과 |
발행연도 | 2012 |
총페이지 | 69 p. |
언어 | kor |
원문 URL | http://www.riss.kr/link?id=T12786468&outLink=K |
정보원 | 한국교육학술정보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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