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이후 새로운 근대 도시주거지로 주목받은 청량리 일대가 해방, 전쟁, 경제개발로 이어지는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흔적과 주택유형의 원형이 존재하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도시․주택정책의 기조변화에 따른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형성과정을 기록하고 그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를 대상으로 어떠한 사회적 배경에서 어떻게 들어서게 되었고, 누구를 대상으로 하였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청량리 일대 도시주거지의 특성을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청량리 일대가 갖고 있는 주거문화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한국의 주택공급은 주택자금 면에서는 시장경제에 의존하면서도 정부가 강력한 행정권으로 주택시장을 통제하고 시대별 정책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정부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통해 도시주거지 형성을 유도해 왔으며, 이는 주거지 공급주체와 입주대상, 주택유형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 형성과정을 도시․주택정책의 기조변화에 따라 시기별로 분석하였으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인 1910년~1935년, 조선총독부는 한반도로 이주한 일본인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적으로 관사를 건설하도록 권장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청량리 철도관사는 1936년 중앙선 철도가 부설됨에 따라 청량리역 주변 지역을 대규모 필지로 구획하고 철도국 관리의 등급별 표준설계도를 적용하여 주택을 공급한 것으로, 이는 청량리 일대 최초로 등장한 근대 도시주거지이다. 둘째, 일제말기인 1936년~1945년에 ‘조선시가지계획령’ 제정 이후 ...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이후 새로운 근대 도시주거지로 주목받은 청량리 일대가 해방, 전쟁, 경제개발로 이어지는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흔적과 주택유형의 원형이 존재하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도시․주택정책의 기조변화에 따른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형성과정을 기록하고 그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를 대상으로 어떠한 사회적 배경에서 어떻게 들어서게 되었고, 누구를 대상으로 하였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청량리 일대 도시주거지의 특성을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청량리 일대가 갖고 있는 주거문화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한국의 주택공급은 주택자금 면에서는 시장경제에 의존하면서도 정부가 강력한 행정권으로 주택시장을 통제하고 시대별 정책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정부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통해 도시주거지 형성을 유도해 왔으며, 이는 주거지 공급주체와 입주대상, 주택유형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 형성과정을 도시․주택정책의 기조변화에 따라 시기별로 분석하였으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인 1910년~1935년, 조선총독부는 한반도로 이주한 일본인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적으로 관사를 건설하도록 권장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청량리 철도관사는 1936년 중앙선 철도가 부설됨에 따라 청량리역 주변 지역을 대규모 필지로 구획하고 철도국 관리의 등급별 표준설계도를 적용하여 주택을 공급한 것으로, 이는 청량리 일대 최초로 등장한 근대 도시주거지이다. 둘째, 일제말기인 1936년~1945년에 ‘조선시가지계획령’ 제정 이후 인구증가로 인해 도시가 확장되면서 1936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교외주거지를 계획하였고, 청량리지구도 이중 하나이다. 청량리지구는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주거지 조성 후 그 위에 도시한옥 주택유형이 집단적으로 건설되었다. 셋째, 1945년~1962년에는 해방과 전쟁이후 심각한 주택난으로 공공기관 주도로 사회복지차원에서 주택을 건설 ․ 공급하게 된다. 이때 청량리 일대에 서울시가 204호(1955년), 대한주택영단이 283호(1957년)의 부흥주택을 건설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공급하였다. 넷째, 1962년~1990년은 주택유형이 아파트로 일반화되어 주택의 양적 공급을 확대하는 시기이다. 1960~70년대 초 주택난을 해결하고자 공공과 민간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여러 유형의 아파트를 공급하였고, 이들 중에는 시민아파트, 상가아파트, 맨션아파트 등이 있다. 청량리 일대는 이런 다양한 아파트 유형의 대상지가 되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서울시에서 건설한 ‘전농지구, 월곡지구 시민아파트’, 민간건설업체에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호화주택인 ‘홍파맨션아파트’가 건설되었다. 또한 민간주도의 대단위 고층 아파트건설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과 1976년 아파트지구도입 등 주택공급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78년 민간건설업체에 의해 1,089세대에 이르는 대단위 청량리 미주아파트단지가 건설되었다. 다섯째, 1990년대 접어들면서 서울시는 균형발전을 이루고자 하였고, 그와 더불어 재개발, 재건축사업이 활발히 진행하였다. 이에 따라 청량리 일대는 재래시장 활성화사업에 의해 현대코아 주상복합이 건설되는가 하면, 시범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되어 대형 주상복합 형태로 변화될 계획이 발표되었고, 청량리역의 동쪽 주거지일대는 답십리‧전농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대단지 아파트들로 변화될 예정이다. 이렇게 도시․주택정책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조성된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는 다음과 같은 건축계획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는 고밀화에 대응하여 수평적, 수직적 확장을 통해 대량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단독주택 유형은 연속화, 연립화, 적층화를 통해 밀도에 대응하였고, 아파트 유형은 단지화, 고층화를 통해 고밀화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둘째, 경제개발이전에는 철도관사, 도시한옥, 공영주택과 같은 단독주택 유형이 주를 이루었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이 주로 공급되었다. 셋째, 대량의 주택을 경제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표준설계도를 적용하여 단위세대계획이 이루어졌고, 입주대상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단위세대로 공급되었다. 이는 최소 26㎡에서 최대 170㎡까지 세대의 규모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단위세대 규모 변화를 통해 청량리 일대 근대 도시주거지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공급이었다면, 현대 도시주거지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는 형성과정과 건축 계획적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확인 할 수 있으며, 이들을 바탕으로 청량리 지역이 가지는 지리적 위상과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는 실험적인 대상이었다. 청량리 철도관사,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내 도시한옥, 6.25 전쟁 이후 부흥주택, 경제개발이후 시민아파트, 맨션아파트, 민간아파트단지에서 현재 재개발까지 근대적 수법에 의한 집합적 도시주택들이 조성되었다. 이런 다양한 수법의 근․현대 도시주거지들은 시기별 도시‧주택정책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실험적 역할의 장으로 등장하였다. 둘째 청량리 일대는 꾸준히 실험 대상지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대표성을 지닌 계층이 정주해 왔던 공간이 아닌 임기응변적인 도시․주택정책에 따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아파트에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청량리 미주아파트단지까지 다양한 경제계층의 주거가 혼재되어 혼성적 성격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청량리 일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변두리로 인식되었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가시적이고 특별한 변화를 추동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난 100년의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도시 조직과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 근․현대 서울 주거사의 독보적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즉, 청량리일대는 서울의 집단주거지 조성에 활용되었던 모든 근대적 계획수법이 존재하고, 주거공간을 유지한 채 변용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역사도시 ‘서울’을 읽을 수 있는 주요한 참조점이 되는 지역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본 논문에서는 도시‧주택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로 모든 도시적, 건축적 실험공간이 되어온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특성과 가치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이 ‘서울’이라는 전체를 읽거나 다른 장소와 비교 대상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본 논문은 일제강점기 이후 새로운 근대 도시주거지로 주목받은 청량리 일대가 해방, 전쟁, 경제개발로 이어지는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도 여전히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흔적과 주택유형의 원형이 존재하고 있는 것에 착안하여, 도시․주택정책의 기조변화에 따른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형성과정을 기록하고 그 가치를 발굴하기 위해 시작하였다. 따라서 본 논문은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를 대상으로 어떠한 사회적 배경에서 어떻게 들어서게 되었고, 누구를 대상으로 하였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청량리 일대 도시주거지의 특성을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청량리 일대가 갖고 있는 주거문화사적 의미를 고찰한다. 한국의 주택공급은 주택자금 면에서는 시장경제에 의존하면서도 정부가 강력한 행정권으로 주택시장을 통제하고 시대별 정책목표를 달성하고자 한다. 정부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통해 도시주거지 형성을 유도해 왔으며, 이는 주거지 공급주체와 입주대상, 주택유형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 형성과정을 도시․주택정책의 기조변화에 따라 시기별로 분석하였으며 이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제강점기인 1910년~1935년, 조선총독부는 한반도로 이주한 일본인의 주택문제 해결을 위해 정책적으로 관사를 건설하도록 권장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청량리 철도관사는 1936년 중앙선 철도가 부설됨에 따라 청량리역 주변 지역을 대규모 필지로 구획하고 철도국 관리의 등급별 표준설계도를 적용하여 주택을 공급한 것으로, 이는 청량리 일대 최초로 등장한 근대 도시주거지이다. 둘째, 일제말기인 1936년~1945년에 ‘조선시가지계획령’ 제정 이후 인구증가로 인해 도시가 확장되면서 1936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교외주거지를 계획하였고, 청량리지구도 이중 하나이다. 청량리지구는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주거지 조성 후 그 위에 도시한옥 주택유형이 집단적으로 건설되었다. 셋째, 1945년~1962년에는 해방과 전쟁이후 심각한 주택난으로 공공기관 주도로 사회복지차원에서 주택을 건설 ․ 공급하게 된다. 이때 청량리 일대에 서울시가 204호(1955년), 대한주택영단이 283호(1957년)의 부흥주택을 건설하여 불특정 다수에게 공급하였다. 넷째, 1962년~1990년은 주택유형이 아파트로 일반화되어 주택의 양적 공급을 확대하는 시기이다. 1960~70년대 초 주택난을 해결하고자 공공과 민간에서 다양한 계층을 대상으로 여러 유형의 아파트를 공급하였고, 이들 중에는 시민아파트, 상가아파트, 맨션아파트 등이 있다. 청량리 일대는 이런 다양한 아파트 유형의 대상지가 되어,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서울시에서 건설한 ‘전농지구, 월곡지구 시민아파트’, 민간건설업체에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한 호화주택인 ‘홍파맨션아파트’가 건설되었다. 또한 민간주도의 대단위 고층 아파트건설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1972년 주택건설촉진법과 1976년 아파트지구도입 등 주택공급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1978년 민간건설업체에 의해 1,089세대에 이르는 대단위 청량리 미주아파트단지가 건설되었다. 다섯째, 1990년대 접어들면서 서울시는 균형발전을 이루고자 하였고, 그와 더불어 재개발, 재건축사업이 활발히 진행하였다. 이에 따라 청량리 일대는 재래시장 활성화사업에 의해 현대코아 주상복합이 건설되는가 하면, 시범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되어 대형 주상복합 형태로 변화될 계획이 발표되었고, 청량리역의 동쪽 주거지일대는 답십리‧전농 뉴타운으로 지정되어 대단지 아파트들로 변화될 예정이다. 이렇게 도시․주택정책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조성된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는 다음과 같은 건축계획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째,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는 고밀화에 대응하여 수평적, 수직적 확장을 통해 대량의 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조성되었다. 단독주택 유형은 연속화, 연립화, 적층화를 통해 밀도에 대응하였고, 아파트 유형은 단지화, 고층화를 통해 고밀화를 해결하려고 하였다. 둘째, 경제개발이전에는 철도관사, 도시한옥, 공영주택과 같은 단독주택 유형이 주를 이루었으나, 1960년대 이후에는 아파트로 대표되는 공동주택이 주로 공급되었다. 셋째, 대량의 주택을 경제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표준설계도를 적용하여 단위세대계획이 이루어졌고, 입주대상에 따라 다양한 규모의 단위세대로 공급되었다. 이는 최소 26㎡에서 최대 170㎡까지 세대의 규모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단위세대 규모 변화를 통해 청량리 일대 근대 도시주거지는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공급이었다면, 현대 도시주거지는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는 형성과정과 건축 계획적 측면에서 다양한 변화를 확인 할 수 있으며, 이들을 바탕으로 청량리 지역이 가지는 지리적 위상과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는 실험적인 대상이었다. 청량리 철도관사,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 내 도시한옥, 6.25 전쟁 이후 부흥주택, 경제개발이후 시민아파트, 맨션아파트, 민간아파트단지에서 현재 재개발까지 근대적 수법에 의한 집합적 도시주택들이 조성되었다. 이런 다양한 수법의 근․현대 도시주거지들은 시기별 도시‧주택정책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실험적 역할의 장으로 등장하였다. 둘째 청량리 일대는 꾸준히 실험 대상지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대표성을 지닌 계층이 정주해 왔던 공간이 아닌 임기응변적인 도시․주택정책에 따라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시민아파트에서 중산층을 대상으로 하는 청량리 미주아파트단지까지 다양한 경제계층의 주거가 혼재되어 혼성적 성격을 지닌다. 마지막으로 청량리 일대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변두리로 인식되었고, 상대적인 관점에서 가시적이고 특별한 변화를 추동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난 100년의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도시 조직과 흔적을 발견할 수 있어, 근․현대 서울 주거사의 독보적 자료로서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즉, 청량리일대는 서울의 집단주거지 조성에 활용되었던 모든 근대적 계획수법이 존재하고, 주거공간을 유지한 채 변용의 과정을 겪었기 때문에 역사도시 ‘서울’을 읽을 수 있는 주요한 참조점이 되는 지역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본 논문에서는 도시‧주택정책 패러다임의 변화로 모든 도시적, 건축적 실험공간이 되어온 청량리 일대 근․현대 도시주거지의 특성과 가치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이 ‘서울’이라는 전체를 읽거나 다른 장소와 비교 대상으로 자리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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