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초록> 신라의 삼국통일에 관해서는 그 동안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신라의 통일이 우리 역사 발전과정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본 논문은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 김법민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그는 왕이 되기 전 부친 김춘추가 나·당 동맹을 결성시킨 후 진덕왕이 직접지은 '태평송'이라는 당 황제를 찬양하는 오언시를 당 고종에게 바침으로써 나·당 동맹을 강화하고, 당군의 지원을 이끌어내어 나·당연합군이...
<국문초록> 신라의 삼국통일에 관해서는 그 동안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신라의 통일이 우리 역사 발전과정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본 논문은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 김법민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그는 왕이 되기 전 부친 김춘추가 나·당 동맹을 결성시킨 후 진덕왕이 직접지은 '태평송'이라는 당 황제를 찬양하는 오언시를 당 고종에게 바침으로써 나·당 동맹을 강화하고, 당군의 지원을 이끌어내어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게 하는데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의 부친 김춘추가 무열왕으로 즉위한 후 병부령으로서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신라군을 대표하여 당의 장군 소정방과 백제 정벌에 대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김유신 등과 함께 황산벌에 나가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과 합류하였다. 백제 수도 사비성이 함락된 후 백제 왕자 융으로부터 나·당연합군을 대표하여 항복을 받았으며, 이례성과 사비성 남령 전투에서 승리하여 백제부흥군 진압에도 공을 세웠다. 신라 30대 문무왕으로 즉위하여 백제부흥군을 진압하고 당의 한반도 지배야욕을 견제하면서 굴욕적인 취리산 회맹을 감수하면서도 무력으로 백제의 옛땅을 신라에 편입하고 당에 사신을 보내 외교적으로는 사죄하고 실리를 추구하였다. 문무왕 원년(661)에는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 원정에 나섰으며, 이듬해에는 당의 요청에 의해 많은 군량을 지원하면서 나·당동맹을 지속해 갔다.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 지배층에 내분이 일어나자 이때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 당에 숙위하던 김한림과 김삼광을 통해 당에 청병하고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고구려 원정에 나서 나·당연합군으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나·당이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나, 당이 나·당 동맹을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 하자 문무왕은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한다. 먼저 백제의 고토를 공략하고 고구려 부흥운동을 지원하면서 고구려 유민과 함께 당과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당의 수륙병진작전을 좌절시키면서 매소성전투와 기벌포해전 등에서 승리하여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구축하고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국문초록> 신라의 삼국통일에 관해서는 그 동안 다양한 측면에서 연구가 이루어져 왔다. 그것은 신라의 통일이 우리 역사 발전과정에서 중대한 의미를 갖기 때문일 것이다. 본 논문은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 김법민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그는 왕이 되기 전 부친 김춘추가 나·당 동맹을 결성시킨 후 진덕왕이 직접지은 '태평송'이라는 당 황제를 찬양하는 오언시를 당 고종에게 바침으로써 나·당 동맹을 강화하고, 당군의 지원을 이끌어내어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하게 하는데 외교적 역량을 발휘하였다. 그의 부친 김춘추가 무열왕으로 즉위한 후 병부령으로서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신라군을 대표하여 당의 장군 소정방과 백제 정벌에 대한 작전계획을 세우고 김유신 등과 함께 황산벌에 나가 백제군을 격파하고 당군과 합류하였다. 백제 수도 사비성이 함락된 후 백제 왕자 융으로부터 나·당연합군을 대표하여 항복을 받았으며, 이례성과 사비성 남령 전투에서 승리하여 백제부흥군 진압에도 공을 세웠다. 신라 30대 문무왕으로 즉위하여 백제부흥군을 진압하고 당의 한반도 지배야욕을 견제하면서 굴욕적인 취리산 회맹을 감수하면서도 무력으로 백제의 옛땅을 신라에 편입하고 당에 사신을 보내 외교적으로는 사죄하고 실리를 추구하였다. 문무왕 원년(661)에는 상중임에도 불구하고 당과 연합하여 고구려 원정에 나섰으며, 이듬해에는 당의 요청에 의해 많은 군량을 지원하면서 나·당동맹을 지속해 갔다. 연개소문 사후 고구려 지배층에 내분이 일어나자 이때를 기회로 삼아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자 당에 숙위하던 김한림과 김삼광을 통해 당에 청병하고 직접 군대를 지휘하여 고구려 원정에 나서 나·당연합군으로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나·당이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으나, 당이 나·당 동맹을 어기고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 하자 문무왕은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축출한다. 먼저 백제의 고토를 공략하고 고구려 부흥운동을 지원하면서 고구려 유민과 함께 당과 정면으로 충돌하였다. 당의 수륙병진작전을 좌절시키면서 매소성전투와 기벌포해전 등에서 승리하여 당의 세력을 한반도에서 구축하고 삼국통일을 이루었다.
The present study investigated the unification process of the ancient Korean three kingdoms including Koguryo, Paekche, and Shilla. Sh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has had an important implication throughout the Korean history. Shilla, isolated on the Korean peninsula, formed an alliance...
The present study investigated the unification process of the ancient Korean three kingdoms including Koguryo, Paekche, and Shilla. Sh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has had an important implication throughout the Korean history. Shilla, isolated on the Korean peninsula, formed an alliance with the Tang Dynasty against Koguryo and Paekche. Shilla drew help from the Tang army and attacked Paekche first. The death bands of Kyebaek fought against the Shilla army under the command of Kim Yu-sin with much courage, but they were defeated by the overwhelming numbers of Shilla troops. Finally Sabi-song fell to the allied troops of Shilla and Tang, and Paekche fell in 660. In Koguryo, after the death of Yongaesomun, internal dissension rose among the leading generals. Taking advantage of this opportunity, Shilla and Tang attacked Koguryo. After resisting the attack for a year, Pyoungyang-song fell and the Kingdom was destroyed in 668. Shilla smashed the Tang army in the battle of Maeso-song and destroyed the Tang navy at the mouth of the Kum River. Shilla finally drove out the Tang armed forces and succeeded in unifying the Three Kingdoms in 676. Sh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was not a complete one, limited only to the south of the Taedong River and the Bay of Wonsan. But it did form the basis for an independent national government and a national culture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The present study investigated the unification process of the ancient Korean three kingdoms including Koguryo, Paekche, and Shilla. Sh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has had an important implication throughout the Korean history. Shilla, isolated on the Korean peninsula, formed an alliance with the Tang Dynasty against Koguryo and Paekche. Shilla drew help from the Tang army and attacked Paekche first. The death bands of Kyebaek fought against the Shilla army under the command of Kim Yu-sin with much courage, but they were defeated by the overwhelming numbers of Shilla troops. Finally Sabi-song fell to the allied troops of Shilla and Tang, and Paekche fell in 660. In Koguryo, after the death of Yongaesomun, internal dissension rose among the leading generals. Taking advantage of this opportunity, Shilla and Tang attacked Koguryo. After resisting the attack for a year, Pyoungyang-song fell and the Kingdom was destroyed in 668. Shilla smashed the Tang army in the battle of Maeso-song and destroyed the Tang navy at the mouth of the Kum River. Shilla finally drove out the Tang armed forces and succeeded in unifying the Three Kingdoms in 676. Sh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was not a complete one, limited only to the south of the Taedong River and the Bay of Wonsan. But it did form the basis for an independent national government and a national culture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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