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바울서신에서 사용된 헬라어 υ?οθεσ?α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양자 메타포는 바울 신학의 핵심인 십자가와 복음, 즉 구원을 이해하는 중요한 메타포이다. 양자 메타포는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로 이해하는 신학적 은유 기법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여러 번 등장한다(시 2:6-7; 삼하 7:14; 호 11:1 등). 가부장적 제도를 가진 유대민족은...
A. 요약
본 논문은 바울서신에서 사용된 헬라어 υ?οθεσ?α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양자 메타포는 바울 신학의 핵심인 십자가와 복음, 즉 구원을 이해하는 중요한 메타포이다. 양자 메타포는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로 이해하는 신학적 은유 기법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여러 번 등장한다(시 2:6-7; 삼하 7:14; 호 11:1 등). 가부장적 제도를 가진 유대민족은 장자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졌다(창 25:31-34; 27:36). 장자는 곧 상속자이며 가계의 대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행히 유대민족은 여러 보완책을 두어 남자 상속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양자에 관한 법은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과는 달리 따로 없었다. 그런데 바울 당시의 로마, 그리스는 상황이 좀 다르다. 양자에 관한 법이 잘 발달하였고 남자 상속자가 없는 경우 상속의 문제를 해결했다. 또 로마에서는 노예해방의 한 형태로서 존재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점에서 양자 메타포를 법적 메타포로써 이해한다. 신약성서에서 다섯 번의 양자 메타포의 등장은 바울의 서신서에서만 두드러지게 그 용례가 관찰된다. 특히 이신칭의 교리가 있는 로마서에 세 번,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 각각 한 번 등장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양자 메타포를 이해하는데 같은 맥락의 내용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가 대신 죄를 속량한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양자로서의 새로운 지위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로마서는 1-8장까지의 내용 흐름을 구조적으로 잘 파악할 때 8장에서 쓰인 양자 메타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갈라디아서는 3장 26절-4장 7절의 짧은 본문에서 초등교사와 양자 메타포를 도입해 율법과 믿음의 반명제를 분명히 제시하여 그 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양자 메타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바울이 구원에 담긴 심층적 의미들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제 복음으로 세워져가는 교회들 내부에 생긴 논쟁이나 갈등들을 정리하고 교리적으로 정립할 필요를 느낀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그는 신자들의 구속의 의미, 구원의 의미, 그로 인한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두어야 했다. 양자 메타포는 바로 이러한 그의 신학적 의도들을 포함하고 있다. 본 논문의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양자 메타포의 구속적 의미를 중심으로 고찰된 신학적 의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자가 하나님의 양자됨에는 그리스도의 속량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속량이라는 단어는 원래 전쟁 포로를 패전국에서 몸값을 주어 값을 지불하고 데려오는 데서 유래되었다. 바울은 구속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인간의 상태를 죄의 노예, 종의 신분에 비유한다. 이 설명을 위해 율법을 가져와 믿음과의 반명제로 논증해간다. 죄에 종노릇하는 인간의 상태가 바로 구원받기 전의 모습인데 아담 이래로 모든 인류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개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서 이 고정된 사실을 깨뜨렸다.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량은 죄인의 몸값을 대신 다 갚으신 대속의 의미를 지닌다. 또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인한 죄인의 죄에 대한 진노를 해소하는 의미도 지닌다. 그리스도는 속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는데 이 일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이때 신자는 예수를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한다. 동시에 그는 이전의 죄의 상태로부터 해방된다. 로마에는 노예 해방을 위한 몇 가지 길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입양이었다. 로마에서 입양은 주로 상속을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대상도 시민에게 국한되었다. 그래서 노예의 입양은 사실상 드물었다. 당시 상당수의 전쟁 포로가 있던 점을 감안하면 제법 유능한 노예들도 있었을 것이고 이들이 그 대상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노예 해방에는 몸값을 속량하는 대가가 노예주에게 지불되는 게 거의 상례다. 바울은 노예들이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당시 상황을 보고 구원을 이해시키려 했던 것 같다. 양자 메타포의 구속적 관점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지위로의 변화 직전의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 된다. 종, 노예 신분에서 양자의 신분이 되는 데는 속량, 즉 대가를 치루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는데 구원에서는 신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 속량을 설명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하는 칭의의 선언은 하나님의 양자로의 선언을 내포한다. 양자 메타포는 칭의의 선언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하나님의 양자로 법적인 새로운 신분, 지위가 주어짐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인다. ‘의롭게 하다(justify),’‘의롭게 함(칭의,justification)’은 법정 개념으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죄인이 무죄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때 무죄가 선언되는 것이지 죄인의 실질적 변화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칭의는 하나님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됨으로써 법적인 새로운 지위를 얻는 것인데, 이때 전가된 의는 그리스도의 의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법적 지위를 얻게 된다. 이점에서 바울은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로의 입양됨, 즉 하나님의 양자임을 나타낸다. 칭의로 신자는 그리스도와 법적인 동등한 지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선언 받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칭의를 설명하면서 구약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논쟁을 사실상 종료하며 모든 인류의 구원 문제로 이것을 다루어간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은 근거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그가 믿은 대상은 하나님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과 바울 당시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은 같은 하나님임을 논증적으로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죽음과 다름없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으며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생명을 잉태케 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킨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밝힘으로써 구약과의 연속성 문제를 해결한다. 또 바울은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고난 받는 종을 묘사한 구절에 쓰인 동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직접 사용한다. 구약의 약속이 성취된 실재가 된 것과도 같이 우리의 구원도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려는 것이다(롬 4:25).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죽음, 부활)이 확증하는 신자의 칭의는 신자에게 전가되는 의가 그리스도의 의이며 그리스도의 법적 지위가 수여되는 것임을 알려준다(롬 4:25; 5:9). 오직 신자의 칭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서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기까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져오며 칭의는 이전의 믿음을 강화한다. 셋째, 바울은 그의 신학을 설명하는데 구약과의 연속성을 고려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가족 언어로서의 양자 개념을 도입해서 유효하게 설명한 것 같다. 이스라엘은 가족(씨족) 중심에서 확대된 지파 중심으로 옮겨졌지만, 유대민족은 혈통과 가족 관계를 중시했다. 특히 바울은 유대민족이 그들의 조상으로 공경하는 구약의 대표적 인물인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이신칭의를 설명한다(롬 4장). 바울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있는 로마교회 상황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전통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실족하게 만들었음에 틀림없다(롬 2,3,4장).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이 그들의 조상으로 공경하는 아브라함도 믿음에 의해서 칭의를 얻었음을 논증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방인들 역시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서만 칭의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했다. 사실상 이런 이유로 아브라함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조상으로 불린다. 더욱이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은 믿음으로 그의 후손이 된 오늘의 신자들에게까지도 이어진다. 따라서 유대인이 가진 전통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거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가부장적 전통은 아버지의 권위로서의 하나님을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도록 한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약속,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 고난 받는 메시아(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성취, 그리고 종말의 때의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의미를 구약과 유대민족의 전통에 뿌리를 둠으로써 그 논증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특히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은 사람은 하나님과의 가족 관계로 들어가며 하나님의 상속자, 즉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된다(롬 8:17). 이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가족으로서의 언약 관계로 들어가며 아브라함의 유업을 잇는 상속자가 되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이때 바울은 양자 메타포를 사용해 하나님의 상속자로 지명된 신분, 지위를 가르쳐준다. 또 다른 차원에서 양자 메타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를 수여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적 지위를 가리킨다. 이때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사실상 동등한 신분을 말하며 하나님의 자녀, 양자로서의 신분을 의미한다. 양자 메타포는 인간의 종, 노예된 상태로부터의 속량, 속죄라는 구속적 의미를 담는 구원의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메타포로써,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즉 약속의 측면에서는 상속자의 신분, 관계적 측면에서는 양자(자녀)라는 가족의 신분, 법정적 측면에서는 의인이라는 새로운 지위가 선언됨을 설명하는 신학적 메타포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의 구원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양자 메타포는 아주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양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에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자, 즉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선포이다. 이는 매우 포괄적이지만 매우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의미가 함축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하나님과의 변화된 관계를 설명하는데 양자 메타포를 사용한다. 양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주도적 개입으로 일으키는 행동이며 실질적으로는 예수를 믿음으로 인간의 죄의 대속의 과정과 하나님의 법정에서의 칭의를 선언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내적 증거로는 양자의 영이 신자 가운데 임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양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전의 옛 사람과 작별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며, 특히 그리스도의 상속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갖는 지위, 권세와 동등한 것을 약속받는 일이다.
A. 요약
본 논문은 바울서신에서 사용된 헬라어 υ?οθεσ?α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양자 메타포는 바울 신학의 핵심인 십자가와 복음, 즉 구원을 이해하는 중요한 메타포이다. 양자 메타포는 하나님과 신자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녀로 이해하는 신학적 은유 기법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의 언약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여러 번 등장한다(시 2:6-7; 삼하 7:14; 호 11:1 등). 가부장적 제도를 가진 유대민족은 장자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졌다(창 25:31-34; 27:36). 장자는 곧 상속자이며 가계의 대를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행히 유대민족은 여러 보완책을 두어 남자 상속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따라서 양자에 관한 법은 팔레스타인 주변 지역과는 달리 따로 없었다. 그런데 바울 당시의 로마, 그리스는 상황이 좀 다르다. 양자에 관한 법이 잘 발달하였고 남자 상속자가 없는 경우 상속의 문제를 해결했다. 또 로마에서는 노예해방의 한 형태로서 존재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점에서 양자 메타포를 법적 메타포로써 이해한다. 신약성서에서 다섯 번의 양자 메타포의 등장은 바울의 서신서에서만 두드러지게 그 용례가 관찰된다. 특히 이신칭의 교리가 있는 로마서에 세 번,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에 각각 한 번 등장한다.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는 양자 메타포를 이해하는데 같은 맥락의 내용을 제공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리스도가 대신 죄를 속량한 사실을 믿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자녀, 양자로서의 새로운 지위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로마서는 1-8장까지의 내용 흐름을 구조적으로 잘 파악할 때 8장에서 쓰인 양자 메타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그에 반해 갈라디아서는 3장 26절-4장 7절의 짧은 본문에서 초등교사와 양자 메타포를 도입해 율법과 믿음의 반명제를 분명히 제시하여 그 의도를 알 수 있게 한다. 양자 메타포를 면밀히 들여다보면 바울이 구원에 담긴 심층적 의미들을 설명하기 위해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제 복음으로 세워져가는 교회들 내부에 생긴 논쟁이나 갈등들을 정리하고 교리적으로 정립할 필요를 느낀 것이 분명하다. 그러기에 그는 신자들의 구속의 의미, 구원의 의미, 그로 인한 정체성을 분명히 밝혀두어야 했다. 양자 메타포는 바로 이러한 그의 신학적 의도들을 포함하고 있다. 본 논문의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양자 메타포의 구속적 의미를 중심으로 고찰된 신학적 의미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신자가 하나님의 양자됨에는 그리스도의 속량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속량이라는 단어는 원래 전쟁 포로를 패전국에서 몸값을 주어 값을 지불하고 데려오는 데서 유래되었다. 바울은 구속의 의미를 전하기 위해 인간의 상태를 죄의 노예, 종의 신분에 비유한다. 이 설명을 위해 율법을 가져와 믿음과의 반명제로 논증해간다. 죄에 종노릇하는 인간의 상태가 바로 구원받기 전의 모습인데 아담 이래로 모든 인류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개입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면서 이 고정된 사실을 깨뜨렸다. 죄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스도의 속량은 죄인의 몸값을 대신 다 갚으신 대속의 의미를 지닌다. 또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인한 죄인의 죄에 대한 진노를 해소하는 의미도 지닌다. 그리스도는 속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는데 이 일을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 이때 신자는 예수를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그리스도에게 전가한다. 동시에 그는 이전의 죄의 상태로부터 해방된다. 로마에는 노예 해방을 위한 몇 가지 길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입양이었다. 로마에서 입양은 주로 상속을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졌고 그 대상도 시민에게 국한되었다. 그래서 노예의 입양은 사실상 드물었다. 당시 상당수의 전쟁 포로가 있던 점을 감안하면 제법 유능한 노예들도 있었을 것이고 이들이 그 대상이 되었으리라 짐작된다. 그런데 노예 해방에는 몸값을 속량하는 대가가 노예주에게 지불되는 게 거의 상례다. 바울은 노예들이 속박으로부터 해방을 꿈꾸는 당시 상황을 보고 구원을 이해시키려 했던 것 같다. 양자 메타포의 구속적 관점은 하나님의 가족이라는 새로운 지위로의 변화 직전의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 된다. 종, 노예 신분에서 양자의 신분이 되는 데는 속량, 즉 대가를 치루는 과정이 반드시 포함되는데 구원에서는 신자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 속량을 설명할 수 있다. 둘째,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하는 칭의의 선언은 하나님의 양자로의 선언을 내포한다. 양자 메타포는 칭의의 선언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하나님의 양자로 법적인 새로운 신분, 지위가 주어짐을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인다. ‘의롭게 하다(justify),’‘의롭게 함(칭의,justification)’은 법정 개념으로 하나님의 법정에서 죄인이 무죄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이때 무죄가 선언되는 것이지 죄인의 실질적 변화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칭의는 하나님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됨으로써 법적인 새로운 지위를 얻는 것인데, 이때 전가된 의는 그리스도의 의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법적 지위를 얻게 된다. 이점에서 바울은 신자가 하나님의 아들로의 입양됨, 즉 하나님의 양자임을 나타낸다. 칭의로 신자는 그리스도와 법적인 동등한 지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선언 받는 것이다.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의 칭의를 설명하면서 구약과의 연속성을 강조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의 논쟁을 사실상 종료하며 모든 인류의 구원 문제로 이것을 다루어간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칭의를 얻은 근거는 오직 믿음에 의해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그가 믿은 대상은 하나님이다.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과 바울 당시와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사실은 같은 하나님임을 논증적으로 설명한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죽음과 다름없는 상태에서도 하나님을 믿었으며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생명을 잉태케 했다. 그 하나님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부활시킨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밝힘으로써 구약과의 연속성 문제를 해결한다. 또 바울은 이사야 53장에 나타난 고난 받는 종을 묘사한 구절에 쓰인 동사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에 직접 사용한다. 구약의 약속이 성취된 실재가 된 것과도 같이 우리의 구원도 예수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선언하려는 것이다(롬 4:25).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죽음, 부활)이 확증하는 신자의 칭의는 신자에게 전가되는 의가 그리스도의 의이며 그리스도의 법적 지위가 수여되는 것임을 알려준다(롬 4:25; 5:9). 오직 신자의 칭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에서이다. 그런데 그 믿음은 전가되는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기까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져오며 칭의는 이전의 믿음을 강화한다. 셋째, 바울은 그의 신학을 설명하는데 구약과의 연속성을 고려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가족 언어로서의 양자 개념을 도입해서 유효하게 설명한 것 같다. 이스라엘은 가족(씨족) 중심에서 확대된 지파 중심으로 옮겨졌지만, 유대민족은 혈통과 가족 관계를 중시했다. 특히 바울은 유대민족이 그들의 조상으로 공경하는 구약의 대표적 인물인 아브라함을 예로 들어 이신칭의를 설명한다(롬 4장). 바울 당시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있는 로마교회 상황은 유대인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전통으로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실족하게 만들었음에 틀림없다(롬 2,3,4장). 그래서 바울은 유대인이 그들의 조상으로 공경하는 아브라함도 믿음에 의해서 칭의를 얻었음을 논증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이방인들 역시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것처럼 오직 믿음으로서만 칭의를 얻을 수 있음을 알아야 했다. 사실상 이런 이유로 아브라함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믿음의 조상으로 불린다. 더욱이 아브라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유업은 믿음으로 그의 후손이 된 오늘의 신자들에게까지도 이어진다. 따라서 유대인이 가진 전통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근거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가부장적 전통은 아버지의 권위로서의 하나님을 매일의 일상에서 만나도록 한다. 바울은 아브라함의 약속,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의 언약 관계, 고난 받는 메시아(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한 성취, 그리고 종말의 때의 구원의 완성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의미를 구약과 유대민족의 전통에 뿌리를 둠으로써 그 논증의 정당성을 확보한다. 특히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은 사람은 하나님과의 가족 관계로 들어가며 하나님의 상속자, 즉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가 된다(롬 8:17). 이것은 엄청난 특권이다. 믿음으로 하나님과의 가족으로서의 언약 관계로 들어가며 아브라함의 유업을 잇는 상속자가 되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이때 바울은 양자 메타포를 사용해 하나님의 상속자로 지명된 신분, 지위를 가르쳐준다. 또 다른 차원에서 양자 메타포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를 수여받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법적 지위를 가리킨다. 이때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사실상 동등한 신분을 말하며 하나님의 자녀, 양자로서의 신분을 의미한다. 양자 메타포는 인간의 종, 노예된 상태로부터의 속량, 속죄라는 구속적 의미를 담는 구원의 과정을 가장 잘 설명하는 메타포로써,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즉 약속의 측면에서는 상속자의 신분, 관계적 측면에서는 양자(자녀)라는 가족의 신분, 법정적 측면에서는 의인이라는 새로운 지위가 선언됨을 설명하는 신학적 메타포라고 요약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울의 구원론을 이해하는데 있어 양자 메타포는 아주 중요하고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준다. 양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요한복음 1장 12절에도 나와 있듯이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자, 즉 예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선포이다. 이는 매우 포괄적이지만 매우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그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의미가 함축된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하나님과의 변화된 관계를 설명하는데 양자 메타포를 사용한다. 양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주도적 개입으로 일으키는 행동이며 실질적으로는 예수를 믿음으로 인간의 죄의 대속의 과정과 하나님의 법정에서의 칭의를 선언받는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내적 증거로는 양자의 영이 신자 가운데 임함으로써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양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전의 옛 사람과 작별하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하는 새로운 가족의 일원이 되며, 특히 그리스도의 상속자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갖는 지위, 권세와 동등한 것을 약속받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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