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론』에서는 정의로운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이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선의 이데아가 제시된다. 변증법(辨證法)은 이 선의 이데아에 따른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 통치자인 ‘철인왕’을 길러내기 위한 최고 수준의 교육과정이다. 해석에 따라서, 플라톤이 변증법을 통해서 드러내는 교육의 목적은 오늘날의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그가 말하는 ‘선의 이데아’는 우리의 삶과 별도로 존재하는 초험적 실체가 아니라 삶 속에 내재된 가치기준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철인왕’은 바로 그 선의 이데아를 향한 변증법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최고 수준의 자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욱이 이때의 ‘철인왕’은, 그것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과는 정반대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의 삶에 감춰진 선의 이데아를 찾아내어 그것에 헌신하고 사람들을 그것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자이자 교사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철인왕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등장하는 변증법의 원리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학습자 중심 교육’과 관련하여 어떤 시사를 제공하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변증법을 통해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지향점을 가리킨다. 이데아는 인간의 노력으로 다가서기 힘든 먼 곳에 존재하며 종교적인 신비의 색을 띄는 초험적 관념과 같이 보인다. 그러나 플라톤의 저서를 통해서 드러나는 선의 이데아는 인간의 삶과 밀착되어 나타난다. 이데아는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통한 이성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으며 삶에 뿌리박고 있을 때 이데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데아는 관념적 추상성을 벗어버리고 구체적인 삶의 내용을 담은 마음이다. 이데아는 개별적인 삶의 현상과 관련되며 그것을 포괄하는 원리이자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다. 이데아는 삶을 살아가며 형성된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데아는 인간의 의도적인 노력과 의지로 획득할 수 있는 지식으로서 교육을 통해 실현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이데아의 인식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통해서 드러난다. 대화를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주제에 대하여 계속적인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대화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닫게 하며, 이에 따라 그 상대방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한 ‘마음’을 얻게 된다. 대화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는 추상적인 관념이었거나 혹은 전체를 포괄할 수 없는 개별적인 덕의 한 사례였음을 깨닫는다. 대화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닫힌 마음은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으며 의견 안에 숨겨진 개념과 같은 완전한 지식의 추구를 위해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무지의 자각은 이전에는 자각하지 못한 모름의 대상을 알게 되는 것이며, 여기서 앎의 대상은 무지를 깨달은 자신의 ‘마음’이며, 이 ‘마음’은 새로운 앎의 방법이 된다. 무지를 자각한 ‘마음’은 동굴 안의 수인을 동굴 밖의 빛을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누군가가 수인의 고개를 돌려주며 진짜 빛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교육의 시작을 드러낸다. 동굴 밖의 진짜 빛의 세계를 알고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에서 이데아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 이데아에 비추어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 안의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니라 외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수인은 이제 동굴 밖의 진짜 세상을 향해 스스로의 의지로 족쇄를 끊어버리고 나아간다. 외부에서 볼 때 누군가의 힘으로 수인을 동굴 밖의 세계로 끌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지로는 수인이 자신의 힘으로 동굴 밖의 진짜 세계가 있다는 것, 자신이 속한 동굴의 안의 세계는 그 세계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그 세계로 나아가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동굴의 안과 밖은 무지의 자각을 경계로 하여 형성되는 두 가지 ‘마음’에 관한 공간적 비유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 점에서 수인이 족쇄를 끊고 동굴 밖의 세계로 나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초험적 세계로 비약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뜻, 나아가서 그렇게 들여다봄으로써 동굴 안의 혼란스럽고 분열된 양상에 질서를 되찾아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변증법을 통해서 수인은 동굴 밖의 세계가 내 삶의 외부가 아니라는 것, 동굴 밖의 참된 빛은 결국 내 마음 속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굴 밖의 세계가 마음의 이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오늘날의 용어로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개념이 마음으로부터 이탈하면 그 성격과 의미가 변질되듯이, 이데아는 그것이 마음과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는 순간 그 성격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동굴 밖의 세계를 안다는 것은 그처럼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를 마음에 형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데아가 이처럼 마음 안에 놓이는 개념이라는 점은 철인왕이 동굴 안으로 되돌아와서 하게 되는 ‘교육’의 성격에 관해서도 재해석의 단서가 된다. 이데아는 마음과 별개의 것으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데아 그 자체는 직접 일러줌으로써 가르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준다.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는 말로써 일러줄 수 없으며, 오직 학습자가 이때까지 살면서 형성한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검사함으로써 학습자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지를 깨달아 지식을 형성하도록 한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제시된 변증법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은 ...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론』에서는 정의로운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이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선의 이데아가 제시된다. 변증법(辨證法)은 이 선의 이데아에 따른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 통치자인 ‘철인왕’을 길러내기 위한 최고 수준의 교육과정이다. 해석에 따라서, 플라톤이 변증법을 통해서 드러내는 교육의 목적은 오늘날의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그가 말하는 ‘선의 이데아’는 우리의 삶과 별도로 존재하는 초험적 실체가 아니라 삶 속에 내재된 가치기준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철인왕’은 바로 그 선의 이데아를 향한 변증법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최고 수준의 자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욱이 이때의 ‘철인왕’은, 그것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과는 정반대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의 삶에 감춰진 선의 이데아를 찾아내어 그것에 헌신하고 사람들을 그것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자이자 교사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철인왕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등장하는 변증법의 원리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학습자 중심 교육’과 관련하여 어떤 시사를 제공하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변증법을 통해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지향점을 가리킨다. 이데아는 인간의 노력으로 다가서기 힘든 먼 곳에 존재하며 종교적인 신비의 색을 띄는 초험적 관념과 같이 보인다. 그러나 플라톤의 저서를 통해서 드러나는 선의 이데아는 인간의 삶과 밀착되어 나타난다. 이데아는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통한 이성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으며 삶에 뿌리박고 있을 때 이데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데아는 관념적 추상성을 벗어버리고 구체적인 삶의 내용을 담은 마음이다. 이데아는 개별적인 삶의 현상과 관련되며 그것을 포괄하는 원리이자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다. 이데아는 삶을 살아가며 형성된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데아는 인간의 의도적인 노력과 의지로 획득할 수 있는 지식으로서 교육을 통해 실현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이데아의 인식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통해서 드러난다. 대화를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주제에 대하여 계속적인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대화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닫게 하며, 이에 따라 그 상대방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한 ‘마음’을 얻게 된다. 대화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는 추상적인 관념이었거나 혹은 전체를 포괄할 수 없는 개별적인 덕의 한 사례였음을 깨닫는다. 대화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닫힌 마음은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으며 의견 안에 숨겨진 개념과 같은 완전한 지식의 추구를 위해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무지의 자각은 이전에는 자각하지 못한 모름의 대상을 알게 되는 것이며, 여기서 앎의 대상은 무지를 깨달은 자신의 ‘마음’이며, 이 ‘마음’은 새로운 앎의 방법이 된다. 무지를 자각한 ‘마음’은 동굴 안의 수인을 동굴 밖의 빛을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누군가가 수인의 고개를 돌려주며 진짜 빛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교육의 시작을 드러낸다. 동굴 밖의 진짜 빛의 세계를 알고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에서 이데아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 이데아에 비추어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 안의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니라 외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수인은 이제 동굴 밖의 진짜 세상을 향해 스스로의 의지로 족쇄를 끊어버리고 나아간다. 외부에서 볼 때 누군가의 힘으로 수인을 동굴 밖의 세계로 끌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지로는 수인이 자신의 힘으로 동굴 밖의 진짜 세계가 있다는 것, 자신이 속한 동굴의 안의 세계는 그 세계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그 세계로 나아가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동굴의 안과 밖은 무지의 자각을 경계로 하여 형성되는 두 가지 ‘마음’에 관한 공간적 비유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 점에서 수인이 족쇄를 끊고 동굴 밖의 세계로 나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초험적 세계로 비약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뜻, 나아가서 그렇게 들여다봄으로써 동굴 안의 혼란스럽고 분열된 양상에 질서를 되찾아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변증법을 통해서 수인은 동굴 밖의 세계가 내 삶의 외부가 아니라는 것, 동굴 밖의 참된 빛은 결국 내 마음 속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굴 밖의 세계가 마음의 이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오늘날의 용어로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개념이 마음으로부터 이탈하면 그 성격과 의미가 변질되듯이, 이데아는 그것이 마음과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는 순간 그 성격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동굴 밖의 세계를 안다는 것은 그처럼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를 마음에 형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데아가 이처럼 마음 안에 놓이는 개념이라는 점은 철인왕이 동굴 안으로 되돌아와서 하게 되는 ‘교육’의 성격에 관해서도 재해석의 단서가 된다. 이데아는 마음과 별개의 것으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데아 그 자체는 직접 일러줌으로써 가르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준다.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는 말로써 일러줄 수 없으며, 오직 학습자가 이때까지 살면서 형성한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검사함으로써 학습자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지를 깨달아 지식을 형성하도록 한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제시된 변증법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은 언어습득 이전의 무시케 교육, 언어를 통한 개별 교과교육, 그리고 이를 통합하고 세계만물에 대한 조망의 능력을 획득하는 변증법 교육으로 제시된다. 에토스의 형성을 바탕으로 하는 무시케 교육, 개별 교과의 형식을 통해 외부 세계의 질서를 배우는 교과교육, 그리고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계승한 변증법 교육의 단계는 인간의 삶 그 평생을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 모든 교육의 단계가 곧 변증법 교육에 포함된다. 무시케는 삶을 살아가는 에토스적 본능을 이데아와 밀접하게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교과교육을 통해서는 외부 세계의 질서와 원리를 배우게 된다. 변증법은 좋은 것을 향한 근원적 힘과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질서를 내면화하여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변증법 교육을 통해 학습자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마음, 즉 이데아를 획득한 마음을 얻게 된다. 이 점은 수업의 주도권이 학습자에게 있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교사와 교육내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설명해 준다. 교사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학습자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 안에서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한다. 학습자가 획득되어야 할 지식의 핵심에 개념이 있다고 보는 한, 그것은 학습자 개인이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별도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속에서 학습자가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며, 이 점에서 플라톤의 교육론은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플라톤의 변증법은 오랜 시간의 삶을 통해서 철학자가 스스로 구현하는 것인 만큼,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지식은 학습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 속에서 산파로서의 교사는 학습자에게 지식을 직접 전달할 수 없다. 직접 전달되는 것은 개념의 사례이지 개념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습자는 스스로 지식을 형성하지만 그 곁에는 언제나 안내하고 인내하는 교사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육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기존의 교사 중심 또는 교과 중심과 대비되는 성격으로서의 한정적인 관점에서의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학습자가 스스로 내부에 형성하는 것이 지식이라는 점을 밝히는 인식론적 탐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식의 형성에 관여하는 흥미와 배경, 동기와 같은 학습자의 심리적 요소가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흥미와 동기가 아닌 사적 본성을 넘어선 공적 차원의 에토스적 성격을 가지는 것임을 드러내는 탐색이 필요하다. 학습자 중심 교육이 공교육을 중심으로 한 학교 현장 위주로 적용되는 실천적 주장의 한계를 벗어나, 학습자의 전체 삶을 포괄하는 자기주도적인 평생 교육적 성격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학습자의 지식의 형성을 돕는 교사의 역할은 단순히 학습자의 외부에서 도움을 주는 소극적인 활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학습에서 교사의 역할이 조력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에게 에토스를 형성하게 하고 지식을 낳게 하는 산파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며 교사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이고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플라톤의 변증법을 통해서 추구하는 이데아로서의 마음은 인식의 대상(내용)이자 방법이다.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는 오직 마음과 마음의 교섭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마음에 형성된 개념은 오직 마음과 마음의 교섭을 통해서만 전달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변증법의 실체가 내용의 측면과 방법의 측면이 함께 포함된 지식을 형성하는 ‘살아있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을 소유한 교사는 곧 교육의 내용과 방법으로서의 변증법 자체이다. 동굴 안의 수인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지만 그 시작에 고개를 돌려준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듯이, 마음과 마음 밖의 세계가 만나는 곳에 개념으로 안내하는 교사가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실현하고 세상을 조망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철인왕은 다름 아닌 오늘날의 교사이다.
플라톤의 대화편 『국가론』에서는 정의로운 국가를 운영하는 원리이자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으로서 선의 이데아가 제시된다. 변증법(辨證法)은 이 선의 이데아에 따른 이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그 통치자인 ‘철인왕’을 길러내기 위한 최고 수준의 교육과정이다. 해석에 따라서, 플라톤이 변증법을 통해서 드러내는 교육의 목적은 오늘날의 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의 시각에서 볼 때 그가 말하는 ‘선의 이데아’는 우리의 삶과 별도로 존재하는 초험적 실체가 아니라 삶 속에 내재된 가치기준을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으며, ‘철인왕’은 바로 그 선의 이데아를 향한 변증법적 교육과정을 통하여 완성되는 최고 수준의 자아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더욱이 이때의 ‘철인왕’은, 그것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과는 정반대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봄으로써 자신의 삶에 감춰진 선의 이데아를 찾아내어 그것에 헌신하고 사람들을 그것에 헌신하도록 이끄는 자기주도적인 학습자이자 교사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본 논문의 목적은, 플라톤의 『국가론』에 철인왕을 기르기 위한 교육과정으로 등장하는 변증법의 원리를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학습자 중심 교육’과 관련하여 어떤 시사를 제공하는가를 밝히는 데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는 변증법을 통해서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를 지닌 것으로 인간이 도달해야 하는 가장 이상적인 지향점을 가리킨다. 이데아는 인간의 노력으로 다가서기 힘든 먼 곳에 존재하며 종교적인 신비의 색을 띄는 초험적 관념과 같이 보인다. 그러나 플라톤의 저서를 통해서 드러나는 선의 이데아는 인간의 삶과 밀착되어 나타난다. 이데아는 인간의 감각과 경험을 통한 이성의 사유로 도달할 수 있으며 삶에 뿌리박고 있을 때 이데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데아는 관념적 추상성을 벗어버리고 구체적인 삶의 내용을 담은 마음이다. 이데아는 개별적인 삶의 현상과 관련되며 그것을 포괄하는 원리이자 전체를 조망하는 능력이다. 이데아는 삶을 살아가며 형성된 인간의 마음을 통해서 획득된다. 이데아는 인간의 의도적인 노력과 의지로 획득할 수 있는 지식으로서 교육을 통해 실현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이데아의 인식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통해서 드러난다. 대화를 통해서 소크라테스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믿는 주제에 대하여 계속적인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대화의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닫게 하며, 이에 따라 그 상대방은 자신의 무지를 자각한 ‘마음’을 얻게 된다. 대화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는 추상적인 관념이었거나 혹은 전체를 포괄할 수 없는 개별적인 덕의 한 사례였음을 깨닫는다. 대화 상대방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닫힌 마음은 하나의 의견에 지나지 않으며 의견 안에 숨겨진 개념과 같은 완전한 지식의 추구를 위해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갖게 된다. 무지의 자각은 이전에는 자각하지 못한 모름의 대상을 알게 되는 것이며, 여기서 앎의 대상은 무지를 깨달은 자신의 ‘마음’이며, 이 ‘마음’은 새로운 앎의 방법이 된다. 무지를 자각한 ‘마음’은 동굴 안의 수인을 동굴 밖의 빛을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누군가가 수인의 고개를 돌려주며 진짜 빛의 세계가 있음을 알려주는 것으로 교육의 시작을 드러낸다. 동굴 밖의 진짜 빛의 세계를 알고 있는 누군가는 자신의 마음에서 이데아를 찾아낸다. 그리고 이 이데아에 비추어 자신이 살고 있는 동굴 안의 모든 것이 실재가 아니라 외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수인은 이제 동굴 밖의 진짜 세상을 향해 스스로의 의지로 족쇄를 끊어버리고 나아간다. 외부에서 볼 때 누군가의 힘으로 수인을 동굴 밖의 세계로 끌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지로는 수인이 자신의 힘으로 동굴 밖의 진짜 세계가 있다는 것, 자신이 속한 동굴의 안의 세계는 그 세계의 그림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그 세계로 나아가려는 열린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동굴의 안과 밖은 무지의 자각을 경계로 하여 형성되는 두 가지 ‘마음’에 관한 공간적 비유에 해당하는 것이며, 이 점에서 수인이 족쇄를 끊고 동굴 밖의 세계로 나간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떤 초험적 세계로 비약한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는 뜻, 나아가서 그렇게 들여다봄으로써 동굴 안의 혼란스럽고 분열된 양상에 질서를 되찾아준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변증법을 통해서 수인은 동굴 밖의 세계가 내 삶의 외부가 아니라는 것, 동굴 밖의 참된 빛은 결국 내 마음 속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찾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동굴 밖의 세계가 마음의 이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는 오늘날의 용어로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개념이 마음으로부터 이탈하면 그 성격과 의미가 변질되듯이, 이데아는 그것이 마음과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는 순간 그 성격과 의미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동굴 밖의 세계를 안다는 것은 그처럼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를 마음에 형성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이데아가 이처럼 마음 안에 놓이는 개념이라는 점은 철인왕이 동굴 안으로 되돌아와서 하게 되는 ‘교육’의 성격에 관해서도 재해석의 단서가 된다. 이데아는 마음과 별개의 것으로 떼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이데아 그 자체는 직접 일러줌으로써 가르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 준다.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는 말로써 일러줄 수 없으며, 오직 학습자가 이때까지 살면서 형성한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검사함으로써 학습자가 자신의 마음 안에서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대화 상대방으로 하여금 스스로 무지를 깨달아 지식을 형성하도록 한 것은 바로 그 점 때문이다. 플라톤의 『국가론』에 제시된 변증법을 실현하기 위한 교육은 언어습득 이전의 무시케 교육, 언어를 통한 개별 교과교육, 그리고 이를 통합하고 세계만물에 대한 조망의 능력을 획득하는 변증법 교육으로 제시된다. 에토스의 형성을 바탕으로 하는 무시케 교육, 개별 교과의 형식을 통해 외부 세계의 질서를 배우는 교과교육, 그리고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계승한 변증법 교육의 단계는 인간의 삶 그 평생을 걸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이 모든 교육의 단계가 곧 변증법 교육에 포함된다. 무시케는 삶을 살아가는 에토스적 본능을 이데아와 밀접하게 연결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교과교육을 통해서는 외부 세계의 질서와 원리를 배우게 된다. 변증법은 좋은 것을 향한 근원적 힘과 외부세계에 존재하는 질서를 내면화하여 자신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이다. 변증법 교육을 통해 학습자는 순수하고 자유로운 마음, 즉 이데아를 획득한 마음을 얻게 된다. 이 점은 수업의 주도권이 학습자에게 있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교사와 교육내용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설명해 준다. 교사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학습자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 안에서 지식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한다. 학습자가 획득되어야 할 지식의 핵심에 개념이 있다고 보는 한, 그것은 학습자 개인이 이제까지 살아온 삶과 별도로 전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삶 속에서 학습자가 찾아내어야 하는 것이며, 이 점에서 플라톤의 교육론은 학습자 중심 교육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 플라톤의 변증법은 오랜 시간의 삶을 통해서 철학자가 스스로 구현하는 것인 만큼,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지식은 학습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 속에 구현해야 하는 것이다. 대화 속에서 산파로서의 교사는 학습자에게 지식을 직접 전달할 수 없다. 직접 전달되는 것은 개념의 사례이지 개념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학습자는 스스로 지식을 형성하지만 그 곁에는 언제나 안내하고 인내하는 교사가 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육에서 현실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학습자 중심 교육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기존의 교사 중심 또는 교과 중심과 대비되는 성격으로서의 한정적인 관점에서의 학습자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학습자가 스스로 내부에 형성하는 것이 지식이라는 점을 밝히는 인식론적 탐색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식의 형성에 관여하는 흥미와 배경, 동기와 같은 학습자의 심리적 요소가 일시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의 흥미와 동기가 아닌 사적 본성을 넘어선 공적 차원의 에토스적 성격을 가지는 것임을 드러내는 탐색이 필요하다. 학습자 중심 교육이 공교육을 중심으로 한 학교 현장 위주로 적용되는 실천적 주장의 한계를 벗어나, 학습자의 전체 삶을 포괄하는 자기주도적인 평생 교육적 성격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 학습자의 지식의 형성을 돕는 교사의 역할은 단순히 학습자의 외부에서 도움을 주는 소극적인 활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학습에서 교사의 역할이 조력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학습자에게 에토스를 형성하게 하고 지식을 낳게 하는 산파로서의 중요성이 강조되어야 하며 교사의 역할에 대한 적극적이고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플라톤의 변증법을 통해서 추구하는 이데아로서의 마음은 인식의 대상(내용)이자 방법이다. 개념으로서의 이데아는 오직 마음과 마음의 교섭을 통해서만 전달될 수 있다. 마음에 형성된 개념은 오직 마음과 마음의 교섭을 통해서만 전달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변증법의 실체가 내용의 측면과 방법의 측면이 함께 포함된 지식을 형성하는 ‘살아있는 마음’이라면, 그 마음을 소유한 교사는 곧 교육의 내용과 방법으로서의 변증법 자체이다. 동굴 안의 수인은 자기 스스로의 의지와 노력으로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가지만 그 시작에 고개를 돌려준 누군가의 손길이 있었듯이, 마음과 마음 밖의 세계가 만나는 곳에 개념으로 안내하는 교사가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를 실현하고 세상을 조망하는 마음을 일깨우는 철인왕은 다름 아닌 오늘날의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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