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탈냉전·민주화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적대적 갈등을 누가 어떻게 재생산하는지 살펴봄으로써, 갈등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논문은 정치갈등을 사회경제적 차원과 정치양극화 차원으로 구분한다. 논문의 분석 대상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둘러싼 정치갈등이다. 대공산권 및 대북관계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북방정책은 탈냉전·민주화에 대한 집권세력의 능동적 대응이자, 냉전반공적 질서에서 ‘민주·통일’이라는 이슈를 두고 대립하던 국내정치의 적대적 갈등을 전환시키는 새로운 갈등전략이었다. 갈등의 전환으로서 북방정책은 정치사회 내부의 상호 적대를 공존과 협력의 관계로 변화시켰고, 민주화 세력인 김영삼을 견인함으로써 새로운 연합인 3당합당을 형성시켰다. 반면, 북방정책은 냉전반공적인 기존 지배세력 내부에 대북관을 둘러싼 갈등과 균열을 강화시켜, 정치경쟁이 보다 다양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북방정책은 3당합당과 내각제개헌이라는 전략적 방향 하에서 많은 성과를 낳고, 집권세력의 ...
본 논문은 탈냉전·민주화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적대적 갈등을 누가 어떻게 재생산하는지 살펴봄으로써, 갈등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논문은 정치갈등을 사회경제적 차원과 정치양극화 차원으로 구분한다. 논문의 분석 대상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둘러싼 정치갈등이다. 대공산권 및 대북관계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북방정책은 탈냉전·민주화에 대한 집권세력의 능동적 대응이자, 냉전반공적 질서에서 ‘민주·통일’이라는 이슈를 두고 대립하던 국내정치의 적대적 갈등을 전환시키는 새로운 갈등전략이었다. 갈등의 전환으로서 북방정책은 정치사회 내부의 상호 적대를 공존과 협력의 관계로 변화시켰고, 민주화 세력인 김영삼을 견인함으로써 새로운 연합인 3당합당을 형성시켰다. 반면, 북방정책은 냉전반공적인 기존 지배세력 내부에 대북관을 둘러싼 갈등과 균열을 강화시켜, 정치경쟁이 보다 다양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북방정책은 3당합당과 내각제개헌이라는 전략적 방향 하에서 많은 성과를 낳고, 집권세력의 권력기반을 가시적으로 강화했지만, 적대적 갈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북방정책으로 일시 완화되었던 적대적 갈등이 다시 강화되는 과정은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야당에 의해서이다. 3당합당으로 고립된 김대중의 평민당은 민자당을 ‘반민주·반통일 야합’으로 규정하고, 반정부 세력인 재야 통일운동 세력과의 정치연합인 신민주연합을 통해 갈등을 적대화한다. 다른 하나는 14대 총선에서 예상 밖의 참패를 기록한 민자당이 전통적 지지세력의 복원과 통합을 위해 김대중의 민주당을 반북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공격함으로써 갈등을 적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북방정책의 성과는 축소·부정됐으며, 정책 주도세력은 배제·축출됐다. 북방정책은 국내 정치갈등 변화의 계기였지만, 여야가 전략적 필요에 따라 적대적 갈등을 상호 동원하는 과정에서 무력화되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 대립은 다시 격화되었다. 본 논문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갈등이 적대적으로 재생산되는 핵심 원인을 한국 정당체제가 포괄하는 정치적 대표성의 협소함에 있다고 본다. 즉 한국 민주화의 보수적 한계는 민주화 이후 정치경쟁을 사회경제적 이념의 차이가 협소한 두 보수정당 사이의 경쟁으로 제한했다. 이로 인해 민주화 이후 정치경쟁은 필연적으로 갈등의 다른 차원인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양극화에 구조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압축된 사회경제적 갈등에 따른 정치갈등의 적대화 경향은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중요한 특징이 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적대적 갈등 구조의 완화를 위해 사회경제정책 중심의 정치 다원화를 통한 갈등 범위 및 정치경쟁의 대표 범위 확대와, 통일이라는 유토피아적 비전이 아닌 분단국가라는 현실 인식을 토대로 평화적 구조를 강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및 국내정치의 적대적 갈등을 대체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본 논문은 탈냉전·민주화 이후 대북정책을 둘러싼 적대적 갈등을 누가 어떻게 재생산하는지 살펴봄으로써, 갈등의 구조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논문은 정치갈등을 사회경제적 차원과 정치양극화 차원으로 구분한다. 논문의 분석 대상은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을 둘러싼 정치갈등이다. 대공산권 및 대북관계 개선을 핵심으로 하는 북방정책은 탈냉전·민주화에 대한 집권세력의 능동적 대응이자, 냉전반공적 질서에서 ‘민주·통일’이라는 이슈를 두고 대립하던 국내정치의 적대적 갈등을 전환시키는 새로운 갈등전략이었다. 갈등의 전환으로서 북방정책은 정치사회 내부의 상호 적대를 공존과 협력의 관계로 변화시켰고, 민주화 세력인 김영삼을 견인함으로써 새로운 연합인 3당합당을 형성시켰다. 반면, 북방정책은 냉전반공적인 기존 지배세력 내부에 대북관을 둘러싼 갈등과 균열을 강화시켜, 정치경쟁이 보다 다양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북방정책은 3당합당과 내각제개헌이라는 전략적 방향 하에서 많은 성과를 낳고, 집권세력의 권력기반을 가시적으로 강화했지만, 적대적 갈등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는 못했다. 북방정책으로 일시 완화되었던 적대적 갈등이 다시 강화되는 과정은 두 방향에서 이루어졌다. 먼저 야당에 의해서이다. 3당합당으로 고립된 김대중의 평민당은 민자당을 ‘반민주·반통일 야합’으로 규정하고, 반정부 세력인 재야 통일운동 세력과의 정치연합인 신민주연합을 통해 갈등을 적대화한다. 다른 하나는 14대 총선에서 예상 밖의 참패를 기록한 민자당이 전통적 지지세력의 복원과 통합을 위해 김대중의 민주당을 반북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공격함으로써 갈등을 적대화한다. 이 과정에서 북방정책의 성과는 축소·부정됐으며, 정책 주도세력은 배제·축출됐다. 북방정책은 국내 정치갈등 변화의 계기였지만, 여야가 전략적 필요에 따라 적대적 갈등을 상호 동원하는 과정에서 무력화되고,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 대립은 다시 격화되었다. 본 논문은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갈등이 적대적으로 재생산되는 핵심 원인을 한국 정당체제가 포괄하는 정치적 대표성의 협소함에 있다고 본다. 즉 한국 민주화의 보수적 한계는 민주화 이후 정치경쟁을 사회경제적 이념의 차이가 협소한 두 보수정당 사이의 경쟁으로 제한했다. 이로 인해 민주화 이후 정치경쟁은 필연적으로 갈등의 다른 차원인 대북정책을 둘러싼 정치양극화에 구조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압축된 사회경제적 갈등에 따른 정치갈등의 적대화 경향은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의 중요한 특징이 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적대적 갈등 구조의 완화를 위해 사회경제정책 중심의 정치 다원화를 통한 갈등 범위 및 정치경쟁의 대표 범위 확대와, 통일이라는 유토피아적 비전이 아닌 분단국가라는 현실 인식을 토대로 평화적 구조를 강화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남북관계 및 국내정치의 적대적 갈등을 대체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This paper analyzes the political conflict over the Nordpolitik of Roh Tae-woo government. The Nordpolitik that pursues to the improvement in relations with communist countries weakened the ideological hostility in the domestic politics. Nordpolitik changed political conflict in the domestic. Nordpo...
This paper analyzes the political conflict over the Nordpolitik of Roh Tae-woo government. The Nordpolitik that pursues to the improvement in relations with communist countries weakened the ideological hostility in the domestic politics. Nordpolitik changed political conflict in the domestic. Nordpolitik changed the mutual hostility in the domestic politics into the relationship of coexistence and cooperation, and made it possible to merge parties with Kim Young-sam who was a democratization force. On the other hand, Nordpolitik formed a new conflict over the North Korea factor in the interior of the Ruling Coalition. However, Nordpolitik did not change the hostile confrontation structure fundamentally. As the Nordpolitik was neutered in the latter half of Roh Tae-woo government, the reason was because the political forces mutually mobilized the hostile conflicts again following the political needs. This paper, for the main reason that the political conflicts over Nordpolitik were reproduced in hostile, regard it is originated from the narrowness of political representativeness that South Korea party system embraces. Democratization of South Korea allowed only the political competition between the conservative parties with similar ideological standpoint. As a result, the political competition after the democratization was inevitably forced to depend on the hostile political conflict over the North Korean factor. The hostility of political conflict over the North Korean factor followed by the compression of social cleavage became an important feature of Korea politics after the democratization.
This paper analyzes the political conflict over the Nordpolitik of Roh Tae-woo government. The Nordpolitik that pursues to the improvement in relations with communist countries weakened the ideological hostility in the domestic politics. Nordpolitik changed political conflict in the domestic. Nordpolitik changed the mutual hostility in the domestic politics into the relationship of coexistence and cooperation, and made it possible to merge parties with Kim Young-sam who was a democratization force. On the other hand, Nordpolitik formed a new conflict over the North Korea factor in the interior of the Ruling Coalition. However, Nordpolitik did not change the hostile confrontation structure fundamentally. As the Nordpolitik was neutered in the latter half of Roh Tae-woo government, the reason was because the political forces mutually mobilized the hostile conflicts again following the political needs. This paper, for the main reason that the political conflicts over Nordpolitik were reproduced in hostile, regard it is originated from the narrowness of political representativeness that South Korea party system embraces. Democratization of South Korea allowed only the political competition between the conservative parties with similar ideological standpoint. As a result, the political competition after the democratization was inevitably forced to depend on the hostile political conflict over the North Korean factor. The hostility of political conflict over the North Korean factor followed by the compression of social cleavage became an important feature of Korea politics after the democrat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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