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호남파 실학자의 풍수인식과 풍수생활 : 황윤석, 위백규, 신경준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PungSu thought and PungSu life of Honam Silhak scholors in the later Joseon Dynasty : Focused on Hwang, Yoon-Seok, Wi, Baek-Kyu, Shin, Kyeong-Joon원문보기
이 논문은 조선후기 호남파 실학자의 풍수사상과 풍수생활을 고찰하기 위해, 황윤석, 위백규, 신경준의 풍수인식과 집안의 풍수생활을 사례로 조사 연구한 것이다. 특히 이론적 담론인 풍수인식과 풍수의 실제 적용현장인 풍수실천 현장의 양면을 함께 조사함으로써 풍수사상의 총체적 실상에 접근하고자 시도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와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호남파 실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풍수사상 연구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연구결과 호남파 실학자들은 풍수학에도 많은 의미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었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둘째, 생활사의 보고로 알려진 『이재난고』가 풍수학에 관해서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를 기초로 하여 조선후기의 풍수생활사를 구성할 수 있었다. 특히 관찬사료 등에서 볼 수 없는 80여명의 풍수학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은 그간 접근하지 못한 귀한 자료들이다. 이 기초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후속연구가 기대된다. 셋째, 호남파 실학자 집안들과 최고 수준 풍수학인들과의 교유관계를 밝혔다. 황윤석가와 ...
이 논문은 조선후기 호남파 실학자의 풍수사상과 풍수생활을 고찰하기 위해, 황윤석, 위백규, 신경준의 풍수인식과 집안의 풍수생활을 사례로 조사 연구한 것이다. 특히 이론적 담론인 풍수인식과 풍수의 실제 적용현장인 풍수실천 현장의 양면을 함께 조사함으로써 풍수사상의 총체적 실상에 접근하고자 시도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와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호남파 실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풍수사상 연구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연구결과 호남파 실학자들은 풍수학에도 많은 의미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었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둘째, 생활사의 보고로 알려진 『이재난고』가 풍수학에 관해서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를 기초로 하여 조선후기의 풍수생활사를 구성할 수 있었다. 특히 관찬사료 등에서 볼 수 없는 80여명의 풍수학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은 그간 접근하지 못한 귀한 자료들이다. 이 기초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후속연구가 기대된다. 셋째, 호남파 실학자 집안들과 최고 수준 풍수학인들과의 교유관계를 밝혔다. 황윤석가와 박상의, 위백규가와 이의신의 교유, 신경준과 홍양호의 교유에도 풍수배경이 있었던 흔적들을 밝혀서 그들의 학문사상 형성배경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넷째, 실학자들의 풍수설 비판논저 중 가장 체계적이며, 자신의 독창적인 ‘影法’이란 점혈법을 제시하면서 실사구시적 풍수관을 밝힌 위백규의 「원풍수」와 묘지제도개혁론을 주목하여 학계에 최초로 보고하였다. 향후 풍수학 연구의 주요한 소재가 되리라 생각한다. 다섯째, 조선시대 지식인이 공유한 풍수적 관점의 자연관이 지식인의 내면세계에 침잠하여 시서화의 예술세계에도 상통하는 사례를 밝혔다. 황윤석의 풍수시가, 위백규의 시창작법에서 영감을 받은 ‘영법’, 신경준의 시창작법에 풍수격언과 풍수물형을 인용한 사례들이 그것이다. 이서구의 시에는 시와 그림과 풍수가 함께 녹아 있었다. 풍수가 기층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논거였다. 여섯째, 기존의 실학자들의 풍수관 연구가 문헌연구가 태반이었던데 비하여, 본 연구는 풍수실천의 현장을 중시하여, 현장 답사와 면접조사 등을 병행함으로써, 빈약한 문헌정보를 보충하면서 유용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다. 일곱째, 북한 학계의 풍수사상 서술을 개관해 보았다. 비록 자료접근의 한계는 있었지만 전반적인 풍수인식의 흐름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 연구는 연구범위에서 밝혔듯이 호남실학자 대부분을 조사하지 않았고, 호남 삼기재라는 대표적인 3인의 사례조사를 기초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사례연구 결과를 호남파 실학자의 풍수인식으로 일반화 할 수 있을 지의 한계가 있다. 또한 신경준의 사례와 같이 직접적인 풍수저술이나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행적과 다른 기록을 유추하여 풍수인식을 추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 점은 후속연구와 지속적인 사료발굴을 통하여 비보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에서 한국풍수는 겨레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밝혔다. 풍수의 가치는 결국 땅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미래풍수의 체와 용은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지구촌시대의 한국 풍수는 천지인합일의 우주관과 하늘그물망 속의 공생공진의 천명사상, 생명사상을 체로 삼고,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내발적 개발을 통한 活地의 풍수, 생명복원의 풍수, 천인조화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비보풍수를 용으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논문은 조선후기 호남파 실학자의 풍수사상과 풍수생활을 고찰하기 위해, 황윤석, 위백규, 신경준의 풍수인식과 집안의 풍수생활을 사례로 조사 연구한 것이다. 특히 이론적 담론인 풍수인식과 풍수의 실제 적용현장인 풍수실천 현장의 양면을 함께 조사함으로써 풍수사상의 총체적 실상에 접근하고자 시도하였다. 본 연구의 의의와 성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호남파 실학자들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풍수사상 연구라는 점에 의의가 있다. 연구결과 호남파 실학자들은 풍수학에도 많은 의미있는 시사점을 주고 있었고, 다양한 자료를 제공해 주었다. 둘째, 생활사의 보고로 알려진 『이재난고』가 풍수학에 관해서도 많은 정보를 담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이를 기초로 하여 조선후기의 풍수생활사를 구성할 수 있었다. 특히 관찬사료 등에서 볼 수 없는 80여명의 풍수학인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들은 그간 접근하지 못한 귀한 자료들이다. 이 기초사료를 바탕으로 다양한 후속연구가 기대된다. 셋째, 호남파 실학자 집안들과 최고 수준 풍수학인들과의 교유관계를 밝혔다. 황윤석가와 박상의, 위백규가와 이의신의 교유, 신경준과 홍양호의 교유에도 풍수배경이 있었던 흔적들을 밝혀서 그들의 학문사상 형성배경을 보다 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넷째, 실학자들의 풍수설 비판논저 중 가장 체계적이며, 자신의 독창적인 ‘影法’이란 점혈법을 제시하면서 실사구시적 풍수관을 밝힌 위백규의 「원풍수」와 묘지제도개혁론을 주목하여 학계에 최초로 보고하였다. 향후 풍수학 연구의 주요한 소재가 되리라 생각한다. 다섯째, 조선시대 지식인이 공유한 풍수적 관점의 자연관이 지식인의 내면세계에 침잠하여 시서화의 예술세계에도 상통하는 사례를 밝혔다. 황윤석의 풍수시가, 위백규의 시창작법에서 영감을 받은 ‘영법’, 신경준의 시창작법에 풍수격언과 풍수물형을 인용한 사례들이 그것이다. 이서구의 시에는 시와 그림과 풍수가 함께 녹아 있었다. 풍수가 기층사상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논거였다. 여섯째, 기존의 실학자들의 풍수관 연구가 문헌연구가 태반이었던데 비하여, 본 연구는 풍수실천의 현장을 중시하여, 현장 답사와 면접조사 등을 병행함으로써, 빈약한 문헌정보를 보충하면서 유용한 자료를 활용할 수 있었다. 일곱째, 북한 학계의 풍수사상 서술을 개관해 보았다. 비록 자료접근의 한계는 있었지만 전반적인 풍수인식의 흐름을 담아내고자 하였다. 이 연구는 연구범위에서 밝혔듯이 호남실학자 대부분을 조사하지 않았고, 호남 삼기재라는 대표적인 3인의 사례조사를 기초로 한 것이다. 따라서 이 사례연구 결과를 호남파 실학자의 풍수인식으로 일반화 할 수 있을 지의 한계가 있다. 또한 신경준의 사례와 같이 직접적인 풍수저술이나 언급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행적과 다른 기록을 유추하여 풍수인식을 추적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이 점은 후속연구와 지속적인 사료발굴을 통하여 비보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에서 한국풍수는 겨레의 소중한 문화유산임을 밝혔다. 풍수의 가치는 결국 땅에 있지 않고 사람에게 있다는 것도 확인하였다. 미래풍수의 체와 용은 무엇으로 삼을 것인가? 지구촌시대의 한국 풍수는 천지인합일의 우주관과 하늘그물망 속의 공생공진의 천명사상, 생명사상을 체로 삼고,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내발적 개발을 통한 活地의 풍수, 생명복원의 풍수, 천인조화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비보풍수를 용으로 삼아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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