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698-926)는 그들 스스로의 기록을 남기지 못한 까닭에 그 문화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20세기 이후 시작된 발해 시기 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학적 조사는 그들의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모습들을 조금씩 드러내 주었으며 특히, 주요 도성이나 고분군에 대한 조사 및 보고서의 간행은 발해 고고학의 자료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발해 문화의 특징이면서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지적된 발해 구들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미흡한 편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발해 시기 구들의 특징을 검토하였다. 발해 구들은 발해의 영역 내에 있었던 중국 동북 지역,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반도 북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29개 유적에서 86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 형식 분류의 속성으로 선택한 단일 공간에 시설된 구들의 수, 구들의 평면 형태, 고래의 수 등 세 가지 속성이 파악 가능한 것은 22개 유적 56기이며 이를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외에 고래벽의 축조 재료, 아궁이와 고래의 연결 형태, 굴뚝의 위치, 추가 노지의 유무 등의 속성은 형식 분류에는 적용할 수 없지만, 발해 구들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부가적인 속성으로 선택하였다. 상기한 기준을 바탕으로 단일 공간에 한 기의 구들이 시설된 ...
발해(698-926)는 그들 스스로의 기록을 남기지 못한 까닭에 그 문화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20세기 이후 시작된 발해 시기 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학적 조사는 그들의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모습들을 조금씩 드러내 주었으며 특히, 주요 도성이나 고분군에 대한 조사 및 보고서의 간행은 발해 고고학의 자료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발해 문화의 특징이면서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지적된 발해 구들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미흡한 편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발해 시기 구들의 특징을 검토하였다. 발해 구들은 발해의 영역 내에 있었던 중국 동북 지역,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반도 북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29개 유적에서 86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 형식 분류의 속성으로 선택한 단일 공간에 시설된 구들의 수, 구들의 평면 형태, 고래의 수 등 세 가지 속성이 파악 가능한 것은 22개 유적 56기이며 이를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외에 고래벽의 축조 재료, 아궁이와 고래의 연결 형태, 굴뚝의 위치, 추가 노지의 유무 등의 속성은 형식 분류에는 적용할 수 없지만, 발해 구들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부가적인 속성으로 선택하였다. 상기한 기준을 바탕으로 단일 공간에 한 기의 구들이 시설된 Ⅰ 형식과 단일 공간에 두 기의 구들이 시설된 Ⅱ 형식으로 크게 구분하였고, 평면 형태에 따라 A 형식(‘ㅡ’형), B 형식(‘ㄱ’형), C 형식(‘ㄷ’형), D 형식(‘’형), 고래의 수에 따라 a 형식(1줄), b 형식(2줄), c 형식(3줄), d 형식(변형)으로 세분하였다. 형식 분류 결과 대부분의 구들이 Ⅰ 형식에 포함되었고, Ⅱ 형식은 2개 유적에서만 확인되었으며, Ⅰ 형식에 비해 대체로 늦은 시기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평면 형태상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는 것은 B 형식이며, D 형식은 대부분 굴뚝을 주거지 외벽 바깥쪽으로 일정 거리를 두어 시설하였고, 궁전지를 중심으로 다수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나 위계가 높은 건물 내에 주로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래의 수에 따른 분류에서는 b 형식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a 형식의 경우 고래의 구조 및 추가 노지의 존재를 통해 볼 때 발해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발해 시기에는 ⅠBb 형식의 구들이 약 32%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어서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구들 형식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역별로는 ⅠBb 형식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는 대다수의 유적에서 확인된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지역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지역별로 구들의 형식을 구분하여 사용했다기보다는 유적의 시기, 건물의 성격, 해당 지역 토착 문화에 의한 영향 등에 의해 각각에 맞는 구들을 축조하였던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신포 오매리 절골 유적에서 확인된 D 형식의 구들은 해당 지역에서 지속되었던 고구려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발해의 구들은 고구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 시기에는 Ⅰ 형식과 함께 Ⅱ 형식의 구들이 이미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상으로는 B 형식이 50%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데, B 형식 구들은 고구려에 이어 발해 시기까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계승·발전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발해의 위계 높은 일부 건물지에서 보이는 D 형식의 구들이 고구려 시기의 동대자 유적 동실(Ⅰ실), 정릉사지 2구역 1호 건물지, 몽촌토성 건물지 등에서 확인된다는 것 역시 발해 구들의 고구려 계승을 보여주는 근거라 할 수 있다. 고구려로부터 시작된 발해의 구들은 뒤를 이어 건국되었던 요, 금 및 동하국에서도 계속되었다. 요의 주체였던 거란족, 금 및 동하국의 주체였던 여진족의 문화에는 구들이 없었다는 것이 역사·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고, 따라서 이들 영역에서 확인되는 구들은 발해 유민들이 남긴 발해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발해(698-926)는 그들 스스로의 기록을 남기지 못한 까닭에 그 문화상이 제대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 20세기 이후 시작된 발해 시기 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고고학적 조사는 그들의 정치·경제·문화 등 사회 전반적인 모습들을 조금씩 드러내 주었으며 특히, 주요 도성이나 고분군에 대한 조사 및 보고서의 간행은 발해 고고학의 자료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발해 문화의 특징이면서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을 뒷받침하는 주요 근거로 지적된 발해 구들에 관한 연구는 대체로 미흡한 편이었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발해 시기 구들의 특징을 검토하였다. 발해 구들은 발해의 영역 내에 있었던 중국 동북 지역, 러시아 연해주 지역, 한반도 북한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29개 유적에서 86기가 확인되었다. 그 중 형식 분류의 속성으로 선택한 단일 공간에 시설된 구들의 수, 구들의 평면 형태, 고래의 수 등 세 가지 속성이 파악 가능한 것은 22개 유적 56기이며 이를 연구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이외에 고래벽의 축조 재료, 아궁이와 고래의 연결 형태, 굴뚝의 위치, 추가 노지의 유무 등의 속성은 형식 분류에는 적용할 수 없지만, 발해 구들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부가적인 속성으로 선택하였다. 상기한 기준을 바탕으로 단일 공간에 한 기의 구들이 시설된 Ⅰ 형식과 단일 공간에 두 기의 구들이 시설된 Ⅱ 형식으로 크게 구분하였고, 평면 형태에 따라 A 형식(‘ㅡ’형), B 형식(‘ㄱ’형), C 형식(‘ㄷ’형), D 형식(‘’형), 고래의 수에 따라 a 형식(1줄), b 형식(2줄), c 형식(3줄), d 형식(변형)으로 세분하였다. 형식 분류 결과 대부분의 구들이 Ⅰ 형식에 포함되었고, Ⅱ 형식은 2개 유적에서만 확인되었으며, Ⅰ 형식에 비해 대체로 늦은 시기에 해당할 것으로 추정된다. 평면 형태상으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는 것은 B 형식이며, D 형식은 대부분 굴뚝을 주거지 외벽 바깥쪽으로 일정 거리를 두어 시설하였고, 궁전지를 중심으로 다수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나 위계가 높은 건물 내에 주로 설치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고래의 수에 따른 분류에서는 b 형식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a 형식의 경우 고래의 구조 및 추가 노지의 존재를 통해 볼 때 발해 이른 시기에 축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발해 시기에는 ⅠBb 형식의 구들이 약 32%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어서 당시 보편적으로 사용되었던 구들 형식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지역별로는 ⅠBb 형식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는 대다수의 유적에서 확인된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지역성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는 지역별로 구들의 형식을 구분하여 사용했다기보다는 유적의 시기, 건물의 성격, 해당 지역 토착 문화에 의한 영향 등에 의해 각각에 맞는 구들을 축조하였던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만, 신포 오매리 절골 유적에서 확인된 D 형식의 구들은 해당 지역에서 지속되었던 고구려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발해의 구들은 고구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고구려 시기에는 Ⅰ 형식과 함께 Ⅱ 형식의 구들이 이미 사용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평면 형태상으로는 B 형식이 50%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는데, B 형식 구들은 고구려에 이어 발해 시기까지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계승·발전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발해의 위계 높은 일부 건물지에서 보이는 D 형식의 구들이 고구려 시기의 동대자 유적 동실(Ⅰ실), 정릉사지 2구역 1호 건물지, 몽촌토성 건물지 등에서 확인된다는 것 역시 발해 구들의 고구려 계승을 보여주는 근거라 할 수 있다. 고구려로부터 시작된 발해의 구들은 뒤를 이어 건국되었던 요, 금 및 동하국에서도 계속되었다. 요의 주체였던 거란족, 금 및 동하국의 주체였던 여진족의 문화에는 구들이 없었다는 것이 역사·고고학적으로 확인되었고, 따라서 이들 영역에서 확인되는 구들은 발해 유민들이 남긴 발해의 문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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