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의 목적은 플라톤이 『국가』 2권의 ‘돼지들의 나라’를 구상하며 염두에 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그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이는 데에 있다. ‘돼지들의 나라’는 ‘국가의 정의’를 찾기 위해 ‘소크라테스’와 대화자들이 국가의 기원을 논의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첫 번째 단계의 국가다. 그러나 플라톤의 정의 개념은 정작 ‘돼지들의 나라’가 아니라 ‘호화로운 나라’를 정화한 후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이 논문의 목적은 플라톤이 『국가』 2권의 ‘돼지들의 나라’를 구상하며 염두에 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그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이는 데에 있다. ‘돼지들의 나라’는 ‘국가의 정의’를 찾기 위해 ‘소크라테스’와 대화자들이 국가의 기원을 논의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첫 번째 단계의 국가다. 그러나 플라톤의 정의 개념은 정작 ‘돼지들의 나라’가 아니라 ‘호화로운 나라’를 정화한 후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돼지들의 나라’는 『국가』 전체 논변에서의 그 역할이 의문시되어왔고, 해석상의 문제거리로 남아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플라톤이 ‘돼지들의 나라’를 ‘가장 아름다운 나라’와는 다른 형태의 또 하나의 이상국가로서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전자에는 후자에 있는 철학자왕이나 법의 지배가 없지만, 이 국가의 사람들은 절제있고 소박하며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외적으로 자신의 일을 함’이라는 ‘국가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호화로운 나라’와 비교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오직 생존을 지속하며 주어진 조건 하에서 ‘더 많이 가지는 것’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로 상정되어 있다. 인간을 이러한 존재로 보는 인간관 하에서 플라톤은 자신과는 다른 방식의 정치철학적 결과물로서 ‘돼지들의 나라’를 제시한다. 물론 그 의도는 결국 왜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나라’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정치철학적 결과물이 되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돼지들의 나라’를 좋은 국가로 볼 수 있는 해석의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여기에 실현된 정의가 개인의 사적인 이익 추구 과정에서 생겨나게 된 균형(equilibrium)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플라톤에 따르면 앎과 지혜가 동반된 ‘참된 탁월성’이 아니며, 이러한 정의로운 행동은 결코 최선의 삶으로 정당화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는 ‘정의의 모상’일 뿐 진정한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식의 철학적 대화를 통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정의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돼지들의 나라’에 비하면 차선이며, 철학자의 통치나 외적 강제로서의 법률, 사회적 계급의 구분 등은 필요악, 또한 인간의 불완전성(교육 불가능성)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플라톤은 철학적 대화를 통한 교육이 결코 법을 통한 외적 환경의 통제 없이는 성공할 수 없고, 따라서 정의로운 삶에는 좋은 정체의 수립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플라톤에게 철학적 삶은 ‘돼지들의 나라’의 사적이고 관조적인 삶이 아닐 것이다. 그의 의도는 철학적 삶을 국가 안에서의 정의로운 삶과 연결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돼지들의 나라’를 ‘가장 아름다운 나라’보다 더 선호할 만한 이상국가로 간주하는 것이 플라톤의 진의라고 볼 수 없다.
이 논문의 목적은 플라톤이 『국가』 2권의 ‘돼지들의 나라’를 구상하며 염두에 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그가 의도한 것이 무엇인지를 보이는 데에 있다. ‘돼지들의 나라’는 ‘국가의 정의’를 찾기 위해 ‘소크라테스’와 대화자들이 국가의 기원을 논의하는 가운데 등장하는 첫 번째 단계의 국가다. 그러나 플라톤의 정의 개념은 정작 ‘돼지들의 나라’가 아니라 ‘호화로운 나라’를 정화한 후에 등장하는 ‘가장 아름다운 나라’에서 발견되기 때문에, ‘돼지들의 나라’는 『국가』 전체 논변에서의 그 역할이 의문시되어왔고, 해석상의 문제거리로 남아있었다. 이 논문에서는 플라톤이 ‘돼지들의 나라’를 ‘가장 아름다운 나라’와는 다른 형태의 또 하나의 이상국가로서 제시하고 있다고 본다. 전자에는 후자에 있는 철학자왕이나 법의 지배가 없지만, 이 국가의 사람들은 절제있고 소박하며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고, ‘외적으로 자신의 일을 함’이라는 ‘국가의 정의’를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호화로운 나라’와 비교했을 때 진정한 의미에서 이성적이지도 못하고, 오직 생존을 지속하며 주어진 조건 하에서 ‘더 많이 가지는 것’을 합리적으로 추구하는 존재로 상정되어 있다. 인간을 이러한 존재로 보는 인간관 하에서 플라톤은 자신과는 다른 방식의 정치철학적 결과물로서 ‘돼지들의 나라’를 제시한다. 물론 그 의도는 결국 왜 자신의 ‘가장 아름다운 나라’만이 유일하게 올바른 정치철학적 결과물이 되어야만 하는지 그 이유를 돋보이게 하기 위함이다. ‘돼지들의 나라’를 좋은 국가로 볼 수 있는 해석의 가능성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여기에 실현된 정의가 개인의 사적인 이익 추구 과정에서 생겨나게 된 균형(equilibrium)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플라톤에 따르면 앎과 지혜가 동반된 ‘참된 탁월성’이 아니며, 이러한 정의로운 행동은 결코 최선의 삶으로 정당화될 수도 없을 것이다. 이는 ‘정의의 모상’일 뿐 진정한 정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이 사람들이 소크라테스식의 철학적 대화를 통한 교육을 받음으로써 정의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돼지들의 나라’에 비하면 차선이며, 철학자의 통치나 외적 강제로서의 법률, 사회적 계급의 구분 등은 필요악, 또한 인간의 불완전성(교육 불가능성)의 산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플라톤은 철학적 대화를 통한 교육이 결코 법을 통한 외적 환경의 통제 없이는 성공할 수 없고, 따라서 정의로운 삶에는 좋은 정체의 수립도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플라톤에게 철학적 삶은 ‘돼지들의 나라’의 사적이고 관조적인 삶이 아닐 것이다. 그의 의도는 철학적 삶을 국가 안에서의 정의로운 삶과 연결짓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돼지들의 나라’를 ‘가장 아름다운 나라’보다 더 선호할 만한 이상국가로 간주하는 것이 플라톤의 진의라고 볼 수 없다.
This thesis aims to show what Plato has in mind when he speaks of the 'City of Pigs' in the Republic. Here I argue that Plato presents the 'City of Pigs' as another ideal state, which can be compared with his own ideal state 'Kallipolis'. Without the rule by philosopher-kings and by laws, members of...
This thesis aims to show what Plato has in mind when he speaks of the 'City of Pigs' in the Republic. Here I argue that Plato presents the 'City of Pigs' as another ideal state, which can be compared with his own ideal state 'Kallipolis'. Without the rule by philosopher-kings and by laws, members of the 'City of Pigs' keep their way of life temperate and peaceful, and each of them realizes justice in this city by ‘doing one’s work'. However, it is characteristic of this ‘City of Pigs’ that its members are motivated to act only to sustain their lives and to fulfill their desire for having more (pleonexia) with rational calculation. In this regard, the 'City of Pigs' could be accepted as an 'ideal' state only for those who defend a certain kind of psychology and political philosophy, which is entirely different from that of Plato himself. My argument is that Plato’s 'City of Pigs' is intended to give a reason why his own ideal state, 'Kallipolis', should be presented as the only solution to the problem of defining what a good state is. In order to justify this argument, I examine two possible ways of interpreting the 'City of Pigs'. The first one is to understand it as a state in which justice is realized by equilibrium among rational, self-interested and private agents. I argue that the justice understood in this way is not, according to Plato, the 'true virtue', which is accompanied by knowledge, and that the ‘just’ life of this state would never be regarded as the ‘best’ life, for it is merely 'an image (eidōlon) of justice', not justice itself. The other way to interpret the 'City of Pigs' is to conceive it as a state whose members can be educated to live a just life through Socratic philosophical dialogues. According to this sort of interpretation, the 'Kallipolis' of Plato is only the second-best ideal city at best, inasmuch as it is characterized by the rule of philosopher-kings, laws as compulsion, a strict division of social classes and so on; namely by such characteristics that appear to be negative and the result of an imperfection of human beings (an impossibility of education). In my view, however, Plato thought that for a good life we need not only education but also the establishment of a good constitution. In addition, it is his firm conviction that a philosophical life is neither private nor contemplative, as some interpreters have imagined that it could be possible in the 'City of Pigs'. For Plato, the philosophical life is rather identical to a just life in the state, namely, a life of doing its own. For these reasons, I argue that Plato prefers the ‘Kallipolis' to the 'City of Pigs' and regards the former as the ideal state which actualizes not the image of justice but justice itself.
This thesis aims to show what Plato has in mind when he speaks of the 'City of Pigs' in the Republic. Here I argue that Plato presents the 'City of Pigs' as another ideal state, which can be compared with his own ideal state 'Kallipolis'. Without the rule by philosopher-kings and by laws, members of the 'City of Pigs' keep their way of life temperate and peaceful, and each of them realizes justice in this city by ‘doing one’s work'. However, it is characteristic of this ‘City of Pigs’ that its members are motivated to act only to sustain their lives and to fulfill their desire for having more (pleonexia) with rational calculation. In this regard, the 'City of Pigs' could be accepted as an 'ideal' state only for those who defend a certain kind of psychology and political philosophy, which is entirely different from that of Plato himself. My argument is that Plato’s 'City of Pigs' is intended to give a reason why his own ideal state, 'Kallipolis', should be presented as the only solution to the problem of defining what a good state is. In order to justify this argument, I examine two possible ways of interpreting the 'City of Pigs'. The first one is to understand it as a state in which justice is realized by equilibrium among rational, self-interested and private agents. I argue that the justice understood in this way is not, according to Plato, the 'true virtue', which is accompanied by knowledge, and that the ‘just’ life of this state would never be regarded as the ‘best’ life, for it is merely 'an image (eidōlon) of justice', not justice itself. The other way to interpret the 'City of Pigs' is to conceive it as a state whose members can be educated to live a just life through Socratic philosophical dialogues. According to this sort of interpretation, the 'Kallipolis' of Plato is only the second-best ideal city at best, inasmuch as it is characterized by the rule of philosopher-kings, laws as compulsion, a strict division of social classes and so on; namely by such characteristics that appear to be negative and the result of an imperfection of human beings (an impossibility of education). In my view, however, Plato thought that for a good life we need not only education but also the establishment of a good constitution. In addition, it is his firm conviction that a philosophical life is neither private nor contemplative, as some interpreters have imagined that it could be possible in the 'City of Pigs'. For Plato, the philosophical life is rather identical to a just life in the state, namely, a life of doing its own. For these reasons, I argue that Plato prefers the ‘Kallipolis' to the 'City of Pigs' and regards the former as the ideal state which actualizes not the image of justice but justice itself.
주제어
#Plato 플라톤 정의 정의론 정치철학 '돼지들의 나라' '호화로운 나라' '가장 아름다운 나라' '더 많이 가짐' 영혼삼분설 '이성의 지배' '정의의 모상' Plato justice theory of justice political philosophy 'city of pigs' 'luxurious city' kallipolis pleonexia tripartite of soul 'rule of reason' 'image of justice'
학위논문 정보
저자
노경호
학위수여기관
연세대학교 대학원
학위구분
국내석사
학과
철학과
지도교수
조대호
발행연도
2017
총페이지
v, 85 p.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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