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조선 전기 왕실본이 조선 사회와 불교계에 불교사상과 지식을 전달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왕실본이 사성(寫成) 및 간행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고, 태종~연산군 시대까지의 왕실본 현황을 조사하여 사성 및 간행의 경위와 서지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또한 왕실본을 주제별로 구분하여 조선 후기까지 번각(飜刻) 및 후인(後印)되어 보급된 현황을 조사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 왕실본은 총 56종이 현전하고 있다. 시기별로 성종대가 19종,세조대가 17종, 세종대 11종, 연산군대 4종, 태종대 3종, 문종대와 예종대는 각 1종이다. 주제별로는 경전류가 29종으로 가장 많고, 선종 및 천태종 관계류 10종, 의식의례집 6종, 장소류 6종, 한국찬술류 5종이다. 이 중 한글 편찬본은 3종, 국역본은 11종이다. 시기별 왕실본을 분석하여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태종대에는 태상왕 태조가 간행한 『능엄경』, 『묘법연화경』 2종과 태조의 셋째 아들 익안대군이 태조와 정종, 태종의 수복, 신의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발원한 『감지은니묘법연화경』이 전해진다. 둘째, 세종, 명종대에는 세종 명찬본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사리영응기』, 『묘법연화경』이 모두 초주갑인자로 간행되었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훈민정음으로 편찬되었다. 왕실에서는 효령대군, 안평대군을 비롯하여 세종의 막내아들인 영응대군과 후궁 신빈 김씨에 의한 왕실 구성원의 장수 및 명복을 빌기 위한 사성 및 간행이 이루어졌다. 셋째, 세조대에는 세조 3년(1459) 사망한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간행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 중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의 각 절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증보ㆍ수정한 후 이를 주석으로 하여 간행한 것으로, 훈민정음 초기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능엄경』 언해본은 세조가 ...
본 연구는 조선 전기 왕실본이 조선 사회와 불교계에 불교사상과 지식을 전달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왕실본이 사성(寫成) 및 간행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고, 태종~연산군 시대까지의 왕실본 현황을 조사하여 사성 및 간행의 경위와 서지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또한 왕실본을 주제별로 구분하여 조선 후기까지 번각(飜刻) 및 후인(後印)되어 보급된 현황을 조사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 왕실본은 총 56종이 현전하고 있다. 시기별로 성종대가 19종,세조대가 17종, 세종대 11종, 연산군대 4종, 태종대 3종, 문종대와 예종대는 각 1종이다. 주제별로는 경전류가 29종으로 가장 많고, 선종 및 천태종 관계류 10종, 의식의례집 6종, 장소류 6종, 한국찬술류 5종이다. 이 중 한글 편찬본은 3종, 국역본은 11종이다. 시기별 왕실본을 분석하여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태종대에는 태상왕 태조가 간행한 『능엄경』, 『묘법연화경』 2종과 태조의 셋째 아들 익안대군이 태조와 정종, 태종의 수복, 신의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발원한 『감지은니묘법연화경』이 전해진다. 둘째, 세종, 명종대에는 세종 명찬본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사리영응기』, 『묘법연화경』이 모두 초주갑인자로 간행되었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훈민정음으로 편찬되었다. 왕실에서는 효령대군, 안평대군을 비롯하여 세종의 막내아들인 영응대군과 후궁 신빈 김씨에 의한 왕실 구성원의 장수 및 명복을 빌기 위한 사성 및 간행이 이루어졌다. 셋째, 세조대에는 세조 3년(1459) 사망한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간행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 중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의 각 절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증보ㆍ수정한 후 이를 주석으로 하여 간행한 것으로, 훈민정음 초기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능엄경』 언해본은 세조가 신미, 학열, 학조 등에게 국역과 교정을 명하여 을해자로 간행하였다. 『원각경』은 을해자로 간행한 한문본과 을유자로 간행한 언토본이 있다. 왕실에서는 의경세자 비 한씨와 광평대군의 부인 신씨가 발원한 『묘법연화경』이 각 1종씩 전해진다. 넷째, 예종, 성종, 연산군대 왕실본은 모두 왕실의 대비와 공주에 의한 간행되었다. 성종대에는 정희대왕대비와 인수대비가 선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고 성종과 성종 비의 수복을 빌기 위해 간행하였다. 정희대왕대비는 세조 때 국역하고 교정하지 못한 『금강경삼가해』와 『영가진각대사증도가남명전선사계송』 언해본을 학조에게 교정하게 하여 내수사에서 간행하였다. 인수대비는 학조가 국역한 『불정심다라니경』과 『오대진언』을 간행하였다. 연산군대에는 인수대비와 정현왕후가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각사에서 불교전적을 인출하였다. 왕실본은 조선 후기 전국의 사찰에서 번각 및 후인되어 보급되었다. 이 중 현전하는 것은 경전류는 『묘법연화경』, 『능엄경』, 『원각경』, 『지장보살본원경』의 4종, 선종 및 천태종 관계류는 선종영가집과 을해자본 『천태사교의집해』, 한국찬술류로 『월인석보』가 있다.
본 연구는 조선 전기 왕실본이 조선 사회와 불교계에 불교사상과 지식을 전달하는 데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였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왕실본이 사성(寫成) 및 간행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고찰하고, 태종~연산군 시대까지의 왕실본 현황을 조사하여 사성 및 간행의 경위와 서지적 특징을 분석하였다. 또한 왕실본을 주제별로 구분하여 조선 후기까지 번각(飜刻) 및 후인(後印)되어 보급된 현황을 조사하였다. 연구의 결과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 전기 왕실본은 총 56종이 현전하고 있다. 시기별로 성종대가 19종,세조대가 17종, 세종대 11종, 연산군대 4종, 태종대 3종, 문종대와 예종대는 각 1종이다. 주제별로는 경전류가 29종으로 가장 많고, 선종 및 천태종 관계류 10종, 의식의례집 6종, 장소류 6종, 한국찬술류 5종이다. 이 중 한글 편찬본은 3종, 국역본은 11종이다. 시기별 왕실본을 분석하여 종합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태종대에는 태상왕 태조가 간행한 『능엄경』, 『묘법연화경』 2종과 태조의 셋째 아들 익안대군이 태조와 정종, 태종의 수복, 신의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발원한 『감지은니묘법연화경』이 전해진다. 둘째, 세종, 명종대에는 세종 명찬본은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사리영응기』, 『묘법연화경』이 모두 초주갑인자로 간행되었다.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은 훈민정음으로 편찬되었다. 왕실에서는 효령대군, 안평대군을 비롯하여 세종의 막내아들인 영응대군과 후궁 신빈 김씨에 의한 왕실 구성원의 장수 및 명복을 빌기 위한 사성 및 간행이 이루어졌다. 셋째, 세조대에는 세조 3년(1459) 사망한 의경세자의 명복을 빌기 위한 간행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 중 『월인석보』는 『월인천강지곡』의 각 절을 본문으로 하고 『석보상절』을 증보ㆍ수정한 후 이를 주석으로 하여 간행한 것으로, 훈민정음 초기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능엄경』 언해본은 세조가 신미, 학열, 학조 등에게 국역과 교정을 명하여 을해자로 간행하였다. 『원각경』은 을해자로 간행한 한문본과 을유자로 간행한 언토본이 있다. 왕실에서는 의경세자 비 한씨와 광평대군의 부인 신씨가 발원한 『묘법연화경』이 각 1종씩 전해진다. 넷째, 예종, 성종, 연산군대 왕실본은 모두 왕실의 대비와 공주에 의한 간행되었다. 성종대에는 정희대왕대비와 인수대비가 선왕과 왕비의 명복을 빌고 성종과 성종 비의 수복을 빌기 위해 간행하였다. 정희대왕대비는 세조 때 국역하고 교정하지 못한 『금강경삼가해』와 『영가진각대사증도가남명전선사계송』 언해본을 학조에게 교정하게 하여 내수사에서 간행하였다. 인수대비는 학조가 국역한 『불정심다라니경』과 『오대진언』을 간행하였다. 연산군대에는 인수대비와 정현왕후가 성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각사에서 불교전적을 인출하였다. 왕실본은 조선 후기 전국의 사찰에서 번각 및 후인되어 보급되었다. 이 중 현전하는 것은 경전류는 『묘법연화경』, 『능엄경』, 『원각경』, 『지장보살본원경』의 4종, 선종 및 천태종 관계류는 선종영가집과 을해자본 『천태사교의집해』, 한국찬술류로 『월인석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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