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의 중심부는 태화강 하류 양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강북지역은 신라시대부터 성곽이 축조되는 등 지역의 중심으로 발전과 쇠퇴를 거듭해 왔고, 강남지역은 1962년 울산시 승격 이후 개발이 진행되었다. 태화강 북쪽의 완만한 남향 구릉지와 강변 중심으로 전통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면,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강 양안의 넓은 충적지대 전체 범위로 시가지가 점차 확장되어 왔다. 이런 변화의 결과 울산시 도시 중심부의 경관은 크게 변모할 수 밖에 없었는데, 특히 강변을 중심으로 고층 건축군이 형성되면서 강변에서 조망되던 주변의 자연경관은 크게 변모했다. 문화경관요소로는 전통도시 구역에는 과거의 성곽을 비롯한 향교, 동헌과 같은 지정문화재가 산재해 있는데, 최근 들어서 조선시대 울산군 관아 소재지인 울산광역시 중구 원 도심과 ‘경상좌도 울산병영성’이 있는 중구 병영동 일대에 대한 보존 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울산의 역사적 경관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분석이나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태화강 남쪽 삼산에는 벽파정이 있었고, 강북으로는 태화사와 태화루를 비롯한 많은 사찰과 누정건축이 있었다고 전한다. 태화강 상류지역에는 언양읍성과 언양향교, 반구서원, 대곡천 암각화 유적이 있다. 이렇듯 태화강변은 울산문명이 성장하고 발전해 온 울산의 중심공간이자 핵심적인 도시경관자원이다. 그런데 태화강은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울산수리조합사업 추진과 울산교, 울산철교와 같은 근대식 교량이 가설되면서 모습과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1962년부터 시작된 울산공업센터 개발로 인한 수질오염과 강변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1997년을 전후로 많은 예산과 행정력을 쏟은 결과 수질은 개선되었다. 하지만 태화강변 풍경은 아파트단지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개발 사업으로 인해 옛 모습을 잃었고, 강변경관 또한 크게 변모했다. 이런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태화강변 개발 초기부터 아파트단지를 입지시킨 ...
울산광역시의 중심부는 태화강 하류 양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강북지역은 신라시대부터 성곽이 축조되는 등 지역의 중심으로 발전과 쇠퇴를 거듭해 왔고, 강남지역은 1962년 울산시 승격 이후 개발이 진행되었다. 태화강 북쪽의 완만한 남향 구릉지와 강변 중심으로 전통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면,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강 양안의 넓은 충적지대 전체 범위로 시가지가 점차 확장되어 왔다. 이런 변화의 결과 울산시 도시 중심부의 경관은 크게 변모할 수 밖에 없었는데, 특히 강변을 중심으로 고층 건축군이 형성되면서 강변에서 조망되던 주변의 자연경관은 크게 변모했다. 문화경관요소로는 전통도시 구역에는 과거의 성곽을 비롯한 향교, 동헌과 같은 지정문화재가 산재해 있는데, 최근 들어서 조선시대 울산군 관아 소재지인 울산광역시 중구 원 도심과 ‘경상좌도 울산병영성’이 있는 중구 병영동 일대에 대한 보존 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울산의 역사적 경관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분석이나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태화강 남쪽 삼산에는 벽파정이 있었고, 강북으로는 태화사와 태화루를 비롯한 많은 사찰과 누정건축이 있었다고 전한다. 태화강 상류지역에는 언양읍성과 언양향교, 반구서원, 대곡천 암각화 유적이 있다. 이렇듯 태화강변은 울산문명이 성장하고 발전해 온 울산의 중심공간이자 핵심적인 도시경관자원이다. 그런데 태화강은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울산수리조합사업 추진과 울산교, 울산철교와 같은 근대식 교량이 가설되면서 모습과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1962년부터 시작된 울산공업센터 개발로 인한 수질오염과 강변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1997년을 전후로 많은 예산과 행정력을 쏟은 결과 수질은 개선되었다. 하지만 태화강변 풍경은 아파트단지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개발 사업으로 인해 옛 모습을 잃었고, 강변경관 또한 크게 변모했다. 이런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태화강변 개발 초기부터 아파트단지를 입지시킨 토지이용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태화강변은 사유지인 아파트단지를 위한 경관자원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 한 본 연구는 제2장에서는 울산광역시의 중심인 중구와 남구 지역을 대상으로 경관요소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분석하였다. 먼저 고지도 분석을 통해서 고려 및 조선시대 울산고을 치소성의 위치 및 고을 진산을 비롯한 주요 시설의 성격과 위치를 분석하고, 이어서 이들 장소를 다룬 ‘울산 팔영’ 분석을 통해서 당시의 경관 요소를 도출하고 그 성격을 밝혔다. 제3장에서는 2장에서 추출해낸 전통경관 요소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바뀌고 사라져 갔는지를 고찰하였다. 일제강점기의 변화는 태화강변의 제방과 교량, 철도, 도로 등의 기반시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제4장에서는 울산문명이 성장하고 발전해 온 울산의 역사 문화적 중심이자 핵심적인 도시경관 축인 태화강변을 대상으로 현존하는 대표적인 경관요소를 도출하고, 이들에 의해 구성된 경관의 특성과 변화에 대해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조망대상과 조망점의 관계, 가시권 분석, 입면차폐도와 입면차폐율 등을 검토하고, 각종 인프라 도입과 도시계획이 현재의 도시경관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고찰했다. 나아가서 이 장에서는 태화강 수변경관요소의 질적, 양적변화와 그에 따른 태화강변 경관 변화의 특성을 고찰하였다. 이어서 제5장에서는 울산광역시의 또 다른 상징 축인 도심부 주요 간선가로의 경관 특성을 고찰하였다. 주된 분석대상 지역은 울산광역시 도심 간선도로인 삼산로와 번영로, 문수로이며, 연구방법은 각 간선도로에서 바라보이는 건축물의 용도와 높이, 조망 특성을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울산광역시의 중심가로는 대부분 고층아파트 및 아파트단지가 가로경관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시청사를 비롯한 구청사 일대의 가로경관 특성에 대한 고찰도 했다. 이들 청사가 모두 울산시와 각 구의 상징적 시설이기 때문이다.
결론에서는 태화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울산시의 중구와 남구 시가지 경관이 역사적으로는 성곽과 관아와 같은 시설을 중심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이들 중 문화재로 지정된 울산왜성은 지형과 성곽시설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으나 기타 시설은 모두 원형이 바뀌거나 사라졌음을 밝혔다. 이어서 태화강변 경관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제방건설과 교량건설, 그리고 중구 시가지의 강변방향 확장이 원형 훼손을 촉진시켰고, 시가지 가로경관은 일본의 여느 지방 도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1962년 울산시 승격 후에는 강변도로 건설과 도시성장 등으로 강변 일대에서 구획정리 사업에 의한 도시개발이 지속되었으며, 특히 이들 지역이 왕복 4차로의 강변도로 건설 계획에 따라 상업지역 및 준주거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아파트단지를 비롯한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2000년대 이후에는 높이 100m를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연이어 건립되면서 강변 경관이 폐쇄적으로 바뀌었음을 밝혔다.
결론적으로 울산의 도심경관은 태화강변의 조망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도심 간선도로와 강변 모두 고층아파트 단지가 경관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문제임을 밝혔다. 그 원인은 강변의 뛰어난 자연경관자원과 강변 일대의 역사경관자원을 제대로 읽어내는 노력도, 이를 도시계획으로 완성시키는 시도도 없었기 때문임을 밝혔다.
울산광역시의 중심부는 태화강 하류 양안을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강북지역은 신라시대부터 성곽이 축조되는 등 지역의 중심으로 발전과 쇠퇴를 거듭해 왔고, 강남지역은 1962년 울산시 승격 이후 개발이 진행되었다. 태화강 북쪽의 완만한 남향 구릉지와 강변 중심으로 전통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면,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강 양안의 넓은 충적지대 전체 범위로 시가지가 점차 확장되어 왔다. 이런 변화의 결과 울산시 도시 중심부의 경관은 크게 변모할 수 밖에 없었는데, 특히 강변을 중심으로 고층 건축군이 형성되면서 강변에서 조망되던 주변의 자연경관은 크게 변모했다. 문화경관요소로는 전통도시 구역에는 과거의 성곽을 비롯한 향교, 동헌과 같은 지정문화재가 산재해 있는데, 최근 들어서 조선시대 울산군 관아 소재지인 울산광역시 중구 원 도심과 ‘경상좌도 울산병영성’이 있는 중구 병영동 일대에 대한 보존 재생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울산의 역사적 경관요소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 분석이나 고찰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태화강 남쪽 삼산에는 벽파정이 있었고, 강북으로는 태화사와 태화루를 비롯한 많은 사찰과 누정건축이 있었다고 전한다. 태화강 상류지역에는 언양읍성과 언양향교, 반구서원, 대곡천 암각화 유적이 있다. 이렇듯 태화강변은 울산문명이 성장하고 발전해 온 울산의 중심공간이자 핵심적인 도시경관자원이다. 그런데 태화강은 일제강점기 때 있었던 울산수리조합사업 추진과 울산교, 울산철교와 같은 근대식 교량이 가설되면서 모습과 성격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1962년부터 시작된 울산공업센터 개발로 인한 수질오염과 강변개발로 인해 옛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된 1997년을 전후로 많은 예산과 행정력을 쏟은 결과 수질은 개선되었다. 하지만 태화강변 풍경은 아파트단지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도시개발 사업으로 인해 옛 모습을 잃었고, 강변경관 또한 크게 변모했다. 이런 변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태화강변 개발 초기부터 아파트단지를 입지시킨 토지이용계획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결과 태화강변은 사유지인 아파트단지를 위한 경관자원으로 변질되고 말았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 한 본 연구는 제2장에서는 울산광역시의 중심인 중구와 남구 지역을 대상으로 경관요소의 역사적 변천과정에 주안점을 두고 분석하였다. 먼저 고지도 분석을 통해서 고려 및 조선시대 울산고을 치소성의 위치 및 고을 진산을 비롯한 주요 시설의 성격과 위치를 분석하고, 이어서 이들 장소를 다룬 ‘울산 팔영’ 분석을 통해서 당시의 경관 요소를 도출하고 그 성격을 밝혔다. 제3장에서는 2장에서 추출해낸 전통경관 요소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어떻게 바뀌고 사라져 갔는지를 고찰하였다. 일제강점기의 변화는 태화강변의 제방과 교량, 철도, 도로 등의 기반시설을 중심으로 다루었다. 제4장에서는 울산문명이 성장하고 발전해 온 울산의 역사 문화적 중심이자 핵심적인 도시경관 축인 태화강변을 대상으로 현존하는 대표적인 경관요소를 도출하고, 이들에 의해 구성된 경관의 특성과 변화에 대해 분석하였다. 구체적으로는 조망대상과 조망점의 관계, 가시권 분석, 입면차폐도와 입면차폐율 등을 검토하고, 각종 인프라 도입과 도시계획이 현재의 도시경관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고찰했다. 나아가서 이 장에서는 태화강 수변경관요소의 질적, 양적변화와 그에 따른 태화강변 경관 변화의 특성을 고찰하였다. 이어서 제5장에서는 울산광역시의 또 다른 상징 축인 도심부 주요 간선가로의 경관 특성을 고찰하였다. 주된 분석대상 지역은 울산광역시 도심 간선도로인 삼산로와 번영로, 문수로이며, 연구방법은 각 간선도로에서 바라보이는 건축물의 용도와 높이, 조망 특성을 분석하였다. 연구결과 울산광역시의 중심가로는 대부분 고층아파트 및 아파트단지가 가로경관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와 함께 시청사를 비롯한 구청사 일대의 가로경관 특성에 대한 고찰도 했다. 이들 청사가 모두 울산시와 각 구의 상징적 시설이기 때문이다.
결론에서는 태화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울산시의 중구와 남구 시가지 경관이 역사적으로는 성곽과 관아와 같은 시설을 중심으로 인식되어 왔으며, 이들 중 문화재로 지정된 울산왜성은 지형과 성곽시설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으나 기타 시설은 모두 원형이 바뀌거나 사라졌음을 밝혔다. 이어서 태화강변 경관은 일제강점기 이후의 제방건설과 교량건설, 그리고 중구 시가지의 강변방향 확장이 원형 훼손을 촉진시켰고, 시가지 가로경관은 일본의 여느 지방 도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1962년 울산시 승격 후에는 강변도로 건설과 도시성장 등으로 강변 일대에서 구획정리 사업에 의한 도시개발이 지속되었으며, 특히 이들 지역이 왕복 4차로의 강변도로 건설 계획에 따라 상업지역 및 준주거지역으로 결정되면서 아파트단지를 비롯한 고층건물이 들어서고 2000년대 이후에는 높이 100m를 넘는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가 연이어 건립되면서 강변 경관이 폐쇄적으로 바뀌었음을 밝혔다.
결론적으로 울산의 도심경관은 태화강변의 조망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도심 간선도로와 강변 모두 고층아파트 단지가 경관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문제임을 밝혔다. 그 원인은 강변의 뛰어난 자연경관자원과 강변 일대의 역사경관자원을 제대로 읽어내는 노력도, 이를 도시계획으로 완성시키는 시도도 없었기 때문임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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