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금(伽倻琴)과 쟁(箏)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발현(撥弦)악기로 악기의 구조, 형태, 제작 재료, 비슷한 연주방법을 가지고 있는 같은 계통의 악기이다. 가야금은 가야국에서 만들어진 현악기로 가얏고라고도 한다. 쟁은 진(秦)나라에서 성행했으며, 예로부터 진쟁(秦箏)이라 불렸다. 본 논문은 문헌 자료와 학자들이 발표한 각종 논문을 통해 가야금과 쟁의 기원을 각각 고찰한 후 고고학 유물을 통해 두 악기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가야금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2세기에 김부식 등이 편찬한『삼국사기(三國史記, 1145)』이다. 『삼국사기』「악지(樂志)」에 의하면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 악부(樂部)의 쟁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삼국유사(三國遺事, 1281)』,『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등의 역사책에도 가야금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쟁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전한(前漢, 기원전 202~8) 때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이다. 그리고 후한(後漢, 25~220) 때의 『설문해자(說文解字)』『석명(釋名)』 등의 역사책에도 쟁에 관한 기록이 있다. 가야금에 관한 최초의 유물 악기는 기원전 1세기의 신창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학자들은 이를 가야금의 원형이 되는 '고(琴)'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 유물악기는 가야금의 가장 특징적 부분인 '양이두(羊耳頭)'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후 경주에서 출토한 4~6세기까지의 ...
가야금(伽倻琴)과 쟁(箏)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발현(撥弦)악기로 악기의 구조, 형태, 제작 재료, 비슷한 연주방법을 가지고 있는 같은 계통의 악기이다. 가야금은 가야국에서 만들어진 현악기로 가얏고라고도 한다. 쟁은 진(秦)나라에서 성행했으며, 예로부터 진쟁(秦箏)이라 불렸다. 본 논문은 문헌 자료와 학자들이 발표한 각종 논문을 통해 가야금과 쟁의 기원을 각각 고찰한 후 고고학 유물을 통해 두 악기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가야금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2세기에 김부식 등이 편찬한『삼국사기(三國史記, 1145)』이다. 『삼국사기』「악지(樂志)」에 의하면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 악부(樂部)의 쟁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삼국유사(三國遺事, 1281)』,『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등의 역사책에도 가야금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쟁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전한(前漢, 기원전 202~8) 때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이다. 그리고 후한(後漢, 25~220) 때의 『설문해자(說文解字)』『석명(釋名)』 등의 역사책에도 쟁에 관한 기록이 있다. 가야금에 관한 최초의 유물 악기는 기원전 1세기의 신창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학자들은 이를 가야금의 원형이 되는 '고(琴)'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 유물악기는 가야금의 가장 특징적 부분인 '양이두(羊耳頭)'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후 경주에서 출토한 4~6세기까지의 토우는 '양이두'를 가진 가야금이다. 이외에도 8세기에 만들어진 양이두를 가진 가야금은 '신라금(新羅琴)'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전해져서 나라(奈良)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다. 쟁에 관한 최초의 유물 악기는 전국(戰國, 기원전 475~기원전 221) 시대이다. 중국 강서 애묘(江西崖墓)와 강소 오현(江蘇吳縣)에서 발굴된 12현, 13현의 현악기는 전국시대의 쟁으로 여겨진다. 또한 전국시대 증후을묘(曾候乙墓)에서 출토된 축(筑)과 슬(瑟)도 있는데 학자들은 쟁이 이 악기들에서 기원되었다고 여긴다. 이외에도 전진(前秦, 350~394) 시기부터 청나라(淸, 1616~1912) 시기에 만들어진 돈황석굴(敦煌石窟) 벽화에서 쟁이 발견되었다. 이들 자료를 통해 쟁은 기원전 5세기 무렵에 만들어졌고, 이후 점점 다양한 현수의 쟁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가야금과 중국의 쟁의 최초 기원은 아시아 남부에 존재하는 관형 대나무 지터류 악기인 죽통금(竹筒琴)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한국의 고대 현악기는 광주 신창동 유물악기에서 알 수 있듯이 1세기 무렵부터 8현 이상의 다양한 현수로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각종 유물 악기나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동이전(東夷傳)」등의 기록을 통해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는 다양한 현수를 갖는 악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쟁도 죽통금 시대인 5현 쟁에서 한나라 이후 12, 13현 쟁으로 발전했다. 5세기 무렵에는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 12현 쟁의 현제(絃制)를 따라 12현의 가야금을 만든 것이 『삼국사기』「악지」에 가야금 창제설로 기록된 것이다. 그럼에도 가야금은 양이두를 갖고 한 통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중국의 쟁과는 다른 가야국의 고유한 악기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伽倻琴和箏作爲韓國和中國代表性的撥絃樂器,有着相似的構造、形態、制作材料、演奏方法,屬於同一種體系的樂器。伽倻琴作爲伽倻國制造的絃樂器,也被稱爲‘伽倻고(琴)’。箏盛行於秦國,以前也稱爲‘秦箏’。 本論文首先通過文獻記錄和學者們發表的各種論文分別考察了伽倻琴和箏的起源,然後通過文物對兩種樂器的起源進行了硏究。關於伽倻琴記載最早的歷史書是12世紀由金富植等人編撰的《三國史記》。據《三國史記》記載,伽倻琴是伽倻國的嘉實王仿照中國樂部的箏而造的。之後,又有《三國遺事,1281》,《樂學軌範,1493》等許多歷史書籍都記載了關於伽倻琴的內容。關於箏最早的記載是西漢(公元前202~8)時期司馬遷寫的《史記》。此後,又有東漢(25~220)時期的《說文解字》,《釋名》等歷史書籍都記載了關於箏的內容。 關於伽倻琴出土的最早文物是在新倉洞發掘的公元前1世紀的絃樂器‘琴’。學者們推斷那絃樂器是伽倻琴的原型。但是,根據發掘出的琴來看,很難確定那絃樂器到底有沒有伽倻琴最具特点的‘羊耳頭’部分。之後慶州出土的4世紀到6世紀之間的土偶中確定有伽倻琴,因爲這些文物中具有‘羊耳頭’構造。除此之外,8世紀時期具有‘羊耳頭’特点的伽倻琴流傳到日本, 日本人稱之爲‘新羅琴’, 現收藏於奈良的正倉院中。 關於箏出土的最早的文物是戰國(公元前475~公元前221年)時期。在中國江西崖墓和江蘇吳縣發掘的12絃、13絃的絃樂器,學者們認爲那是戰國箏。還有戰國時期曾侯乙墓出土的筑和瑟,學者們認爲箏起源於這些樂器。另外,從前秦時期(350~394)至淸朝時期(1616~1912)建成的敦煌石窟中也发發現了大量箏的壁畵。通過這些資料,我們知道箏是起源于5世紀的時候,幷且到唐朝的時候已經發展成了12,13絃。 韓國的伽倻琴和中國的箏最初起源是存在於亞洲南部的竹制管形樂器竹筒琴。通過這個樂器,韓國發展成像我們知道的新倉洞文物,從1世紀發展成了8弦以上的多種絃制的古代樂器。除此之外,根据各種樂器文物或《三國志》記載,我們知道存在于韓半島的古代樂器琴是具有多種絃數的樂器。中國的箏也是從竹筒琴時代的五絃箏發展到漢朝以後的十二、十三絃箏。5世紀時,伽倻國的嘉實王仿照中國12絃箏的絃數制造了12絃伽倻琴,記錄在《三國史記》<樂記>的伽倻琴創制中。除此之外,伽倻琴具有‘羊耳頭’構造幷且用一整個木頭制造的特点與中國的箏不同,是作爲伽倻國固有的樂器傳承到現在。
가야금(伽倻琴)과 쟁(箏)은 한국과 중국을 대표하는 발현(撥弦)악기로 악기의 구조, 형태, 제작 재료, 비슷한 연주방법을 가지고 있는 같은 계통의 악기이다. 가야금은 가야국에서 만들어진 현악기로 가얏고라고도 한다. 쟁은 진(秦)나라에서 성행했으며, 예로부터 진쟁(秦箏)이라 불렸다. 본 논문은 문헌 자료와 학자들이 발표한 각종 논문을 통해 가야금과 쟁의 기원을 각각 고찰한 후 고고학 유물을 통해 두 악기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가야금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12세기에 김부식 등이 편찬한『삼국사기(三國史記, 1145)』이다. 『삼국사기』「악지(樂志)」에 의하면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 악부(樂部)의 쟁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삼국유사(三國遺事, 1281)』,『악학궤범(樂學軌範, 1493)』 등의 역사책에도 가야금에 관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쟁에 관한 최초의 문헌 기록은 전한(前漢, 기원전 202~8) 때 사마천(司馬遷)이 쓴 『사기(史記)』이다. 그리고 후한(後漢, 25~220) 때의 『설문해자(說文解字)』『석명(釋名)』 등의 역사책에도 쟁에 관한 기록이 있다. 가야금에 관한 최초의 유물 악기는 기원전 1세기의 신창동에서 발견된 것으로, 학자들은 이를 가야금의 원형이 되는 '고(琴)'로 추정한다. 그러나 이 유물악기는 가야금의 가장 특징적 부분인 '양이두(羊耳頭)'가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후 경주에서 출토한 4~6세기까지의 토우는 '양이두'를 가진 가야금이다. 이외에도 8세기에 만들어진 양이두를 가진 가야금은 '신라금(新羅琴)'이라는 이름으로 일본에 전해져서 나라(奈良)의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다. 쟁에 관한 최초의 유물 악기는 전국(戰國, 기원전 475~기원전 221) 시대이다. 중국 강서 애묘(江西崖墓)와 강소 오현(江蘇吳縣)에서 발굴된 12현, 13현의 현악기는 전국시대의 쟁으로 여겨진다. 또한 전국시대 증후을묘(曾候乙墓)에서 출토된 축(筑)과 슬(瑟)도 있는데 학자들은 쟁이 이 악기들에서 기원되었다고 여긴다. 이외에도 전진(前秦, 350~394) 시기부터 청나라(淸, 1616~1912) 시기에 만들어진 돈황석굴(敦煌石窟) 벽화에서 쟁이 발견되었다. 이들 자료를 통해 쟁은 기원전 5세기 무렵에 만들어졌고, 이후 점점 다양한 현수의 쟁으로 발전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가야금과 중국의 쟁의 최초 기원은 아시아 남부에 존재하는 관형 대나무 지터류 악기인 죽통금(竹筒琴)이다. 이것이 발전하여 한국의 고대 현악기는 광주 신창동 유물악기에서 알 수 있듯이 1세기 무렵부터 8현 이상의 다양한 현수로 만들어졌다. 이외에도 각종 유물 악기나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동이전(東夷傳)」등의 기록을 통해 한반도에 존재했던 '고'는 다양한 현수를 갖는 악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쟁도 죽통금 시대인 5현 쟁에서 한나라 이후 12, 13현 쟁으로 발전했다. 5세기 무렵에는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 12현 쟁의 현제(絃制)를 따라 12현의 가야금을 만든 것이 『삼국사기』「악지」에 가야금 창제설로 기록된 것이다. 그럼에도 가야금은 양이두를 갖고 한 통으로 만든다는 점에서 중국의 쟁과는 다른 가야국의 고유한 악기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伽倻琴和箏作爲韓國和中國代表性的撥絃樂器,有着相似的構造、形態、制作材料、演奏方法,屬於同一種體系的樂器。伽倻琴作爲伽倻國制造的絃樂器,也被稱爲‘伽倻고(琴)’。箏盛行於秦國,以前也稱爲‘秦箏’。 本論文首先通過文獻記錄和學者們發表的各種論文分別考察了伽倻琴和箏的起源,然後通過文物對兩種樂器的起源進行了硏究。關於伽倻琴記載最早的歷史書是12世紀由金富植等人編撰的《三國史記》。據《三國史記》記載,伽倻琴是伽倻國的嘉實王仿照中國樂部的箏而造的。之後,又有《三國遺事,1281》,《樂學軌範,1493》等許多歷史書籍都記載了關於伽倻琴的內容。關於箏最早的記載是西漢(公元前202~8)時期司馬遷寫的《史記》。此後,又有東漢(25~220)時期的《說文解字》,《釋名》等歷史書籍都記載了關於箏的內容。 關於伽倻琴出土的最早文物是在新倉洞發掘的公元前1世紀的絃樂器‘琴’。學者們推斷那絃樂器是伽倻琴的原型。但是,根據發掘出的琴來看,很難確定那絃樂器到底有沒有伽倻琴最具特点的‘羊耳頭’部分。之後慶州出土的4世紀到6世紀之間的土偶中確定有伽倻琴,因爲這些文物中具有‘羊耳頭’構造。除此之外,8世紀時期具有‘羊耳頭’特点的伽倻琴流傳到日本, 日本人稱之爲‘新羅琴’, 現收藏於奈良的正倉院中。 關於箏出土的最早的文物是戰國(公元前475~公元前221年)時期。在中國江西崖墓和江蘇吳縣發掘的12絃、13絃的絃樂器,學者們認爲那是戰國箏。還有戰國時期曾侯乙墓出土的筑和瑟,學者們認爲箏起源於這些樂器。另外,從前秦時期(350~394)至淸朝時期(1616~1912)建成的敦煌石窟中也发發現了大量箏的壁畵。通過這些資料,我們知道箏是起源于5世紀的時候,幷且到唐朝的時候已經發展成了12,13絃。 韓國的伽倻琴和中國的箏最初起源是存在於亞洲南部的竹制管形樂器竹筒琴。通過這個樂器,韓國發展成像我們知道的新倉洞文物,從1世紀發展成了8弦以上的多種絃制的古代樂器。除此之外,根据各種樂器文物或《三國志》記載,我們知道存在于韓半島的古代樂器琴是具有多種絃數的樂器。中國的箏也是從竹筒琴時代的五絃箏發展到漢朝以後的十二、十三絃箏。5世紀時,伽倻國的嘉實王仿照中國12絃箏的絃數制造了12絃伽倻琴,記錄在《三國史記》<樂記>的伽倻琴創制中。除此之外,伽倻琴具有‘羊耳頭’構造幷且用一整個木頭制造的特点與中國的箏不同,是作爲伽倻國固有的樂器傳承到現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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