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 속 인물 중 하나인 이순신(李舜臣)이 일본 문헌 속에서 어떻게 그려져 왔으며, 그러한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表象)에 영향을 준 원인은 무엇인지에 관해 고찰한 논문이다. 본 논문의 연구 대상은 일본에 이순신의 이름이 처음 전파되어 일본 문헌에 수용되는 17세기부터, 다양한 정치ㆍ경제ㆍ문화적 상황이 반영되어 일본의 이순신 담론이 전개되는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 일본인들에 의해 간행된 문헌 속에서의 이순신 표상이다. 본 논문은 기존 연구에서 다뤄진 바 없는 다양한 종류의 이순신 관련 일본 문헌들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
본 논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 속 인물 중 하나인 이순신(李舜臣)이 일본 문헌 속에서 어떻게 그려져 왔으며, 그러한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表象)에 영향을 준 원인은 무엇인지에 관해 고찰한 논문이다. 본 논문의 연구 대상은 일본에 이순신의 이름이 처음 전파되어 일본 문헌에 수용되는 17세기부터, 다양한 정치ㆍ경제ㆍ문화적 상황이 반영되어 일본의 이순신 담론이 전개되는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 일본인들에 의해 간행된 문헌 속에서의 이순신 표상이다. 본 논문은 기존 연구에서 다뤄진 바 없는 다양한 종류의 이순신 관련 일본 문헌들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임진왜란 및 이순신 인식에 관한 후속 연구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들을 분석함으로써 일본에서 형성되고 전개되어 온 이순신 담론의 전체적인 흐름과 시대별로 변화하는 일본의 임진왜란 인식을 확인하고 있다.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은 항상 시대적 상황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진 채로 형성되어 왔다. 근세 일본의 이순신 담론을 형성한 것은 징비록(懲毖錄)에서의 이순신 표상을 원형으로 두고, 이에 다양한 변용과 과장을 더하여 성립된 것이었으며, 이러한 변용과 과장에는 역사적 진실을 전하기 위한 의도보다, 보다 극적인 서사를 완성하여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근세 상업출판의 특징이 영향을 주고 있었다. 메이지 시대 이순신 담론을 형성한 것은 주로 청일전쟁 혹은 러일전쟁과 같은 일본의 대외전쟁이었으며, 이로 인해 이순신은 명(明)의 장수가 되기도 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야망을 좌절시킨 조선의 넬슨(Nelson)이자, 해군력을 강화해야 하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한일 강제병합 이후 이순신 담론을 형성한 것은 식민사학과 임진왜란 해전에 대한 의의를 재발현한 것이었으며, 이들을 통해 이순신은 일본이 임진왜란 해전에서 실패하게 된 원인제공자이자, 조선 정부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된 인물로서 형상화되었으며, ‘내지(內地)’ 일본인에 의해 포용되는 ‘외지(外地)’의 모범적인 조선인이 되기도 했다. 만주사변(滿洲事變)이 발발한 이후 이순신은 고양되어 가는 일본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일본 우월주의 하에서 불세출(不世出)의 명장(名將)으로 칭송되는 한편, 군인정신이 부족한 자로서, 공격정신이 부족한 자로서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보다 못한 인물로서 평가되기도 했다. 이처럼 근세와 근대 일본 문헌 속에서 형성된 이순신 표상은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다양하게 형성되어 왔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은 징비록이라는 조선의 문헌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었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저자의 성향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전개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일본 문헌이 이순신에 대해 기술한 것은 당연히 이순신 개인이 보여주었던 눈부신 활약과 훌륭한 인품이 그 바탕이 되었지만, 시대적 영향도 함께 작용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본 논문에서 다양한 문헌을 확인함으로써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에 대한 경향성을 고찰하고 있으나,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이순신과 관련한 다양한 일본 문헌이 존재할 것이기에, 이러한 자료들을 차차 발굴해 가는 것이 차후의 과제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역사 속 인물 중 하나인 이순신(李舜臣)이 일본 문헌 속에서 어떻게 그려져 왔으며, 그러한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表象)에 영향을 준 원인은 무엇인지에 관해 고찰한 논문이다. 본 논문의 연구 대상은 일본에 이순신의 이름이 처음 전파되어 일본 문헌에 수용되는 17세기부터, 다양한 정치ㆍ경제ㆍ문화적 상황이 반영되어 일본의 이순신 담론이 전개되는 1945년 일본의 패전까지 일본인들에 의해 간행된 문헌 속에서의 이순신 표상이다. 본 논문은 기존 연구에서 다뤄진 바 없는 다양한 종류의 이순신 관련 일본 문헌들을 제시함으로써 향후 임진왜란 및 이순신 인식에 관한 후속 연구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이들을 분석함으로써 일본에서 형성되고 전개되어 온 이순신 담론의 전체적인 흐름과 시대별로 변화하는 일본의 임진왜란 인식을 확인하고 있다.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은 항상 시대적 상황과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진 채로 형성되어 왔다. 근세 일본의 이순신 담론을 형성한 것은 징비록(懲毖錄)에서의 이순신 표상을 원형으로 두고, 이에 다양한 변용과 과장을 더하여 성립된 것이었으며, 이러한 변용과 과장에는 역사적 진실을 전하기 위한 의도보다, 보다 극적인 서사를 완성하여 이야기의 재미를 배가시키기 위한 근세 상업출판의 특징이 영향을 주고 있었다. 메이지 시대 이순신 담론을 형성한 것은 주로 청일전쟁 혹은 러일전쟁과 같은 일본의 대외전쟁이었으며, 이로 인해 이순신은 명(明)의 장수가 되기도 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의 야망을 좌절시킨 조선의 넬슨(Nelson)이자, 해군력을 강화해야 하는 주장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한일 강제병합 이후 이순신 담론을 형성한 것은 식민사학과 임진왜란 해전에 대한 의의를 재발현한 것이었으며, 이들을 통해 이순신은 일본이 임진왜란 해전에서 실패하게 된 원인제공자이자, 조선 정부에 의해 자신의 자리를 잃게 된 인물로서 형상화되었으며, ‘내지(內地)’ 일본인에 의해 포용되는 ‘외지(外地)’의 모범적인 조선인이 되기도 했다. 만주사변(滿洲事變)이 발발한 이후 이순신은 고양되어 가는 일본의 배타적 민족주의와 일본 우월주의 하에서 불세출(不世出)의 명장(名將)으로 칭송되는 한편, 군인정신이 부족한 자로서, 공격정신이 부족한 자로서 도고 헤이하치로(東郷平八郎)보다 못한 인물로서 평가되기도 했다. 이처럼 근세와 근대 일본 문헌 속에서 형성된 이순신 표상은 시대적 상황에 영향을 받아 다양하게 형성되어 왔다. 본 논문은 이와 같은 연구를 진행하면서,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은 징비록이라는 조선의 문헌을 기초로 하여 형성되었으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저자의 성향의 영향을 크게 받으며 전개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일본 문헌이 이순신에 대해 기술한 것은 당연히 이순신 개인이 보여주었던 눈부신 활약과 훌륭한 인품이 그 바탕이 되었지만, 시대적 영향도 함께 작용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본 논문에서 다양한 문헌을 확인함으로써 일본 문헌 속의 이순신 표상에 대한 경향성을 고찰하고 있으나, 아직 확인되지 않은 이순신과 관련한 다양한 일본 문헌이 존재할 것이기에, 이러한 자료들을 차차 발굴해 가는 것이 차후의 과제라 할 수 있다.
주제어
#이순신 이순신 표상(李舜臣表象) 임진왜란(壬辰倭亂) 일본 문헌(日本文獻) 일본의 이순신 인식(日本の李舜臣認識) 이순신(李舜臣)
학위논문 정보
저자
김준배
학위수여기관
고려대학교 대학원
학위구분
국내박사
학과
중일어문학과
지도교수
김충영
발행연도
2020
총페이지
iv, 545 p.
키워드
이순신 이순신 표상(李舜臣表象) 임진왜란(壬辰倭亂) 일본 문헌(日本文獻) 일본의 이순신 인식(日本の李舜臣認識) 이순신(李舜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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