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했고, 세계 2 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지리적 공간 개념으로 본 중국 대륙의 역사는 여러 민족과 국가의 부침으로 그 역사의 주체가 모호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지는 2020년 현재 71년이 되었다. 한 나라가 71년 만에 이룬 경제적 성취에 대한 과정을 되돌아볼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이를 통해 성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입장을 경제변수들의 데이터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 들과 함께 유추해 시장경제로의 과도기 경제가 겪을 가능성이 높은 체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직도 빈곤과 억압에 시달리는 중국 국민들의 입장을 도외시하며, 서구 학자들의 전체주의 체제와 얽힌 먹이사슬 관계, 인지적 이해관계, 의도된 무관심, 데이터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대안은 찾지 않는 게으름, 전체주의 체제 비판에 대한 중국의 검열 및 학자 자신의 PC(Political ...
국 문 초 록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했고, 세계 2 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지리적 공간 개념으로 본 중국 대륙의 역사는 여러 민족과 국가의 부침으로 그 역사의 주체가 모호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지는 2020년 현재 71년이 되었다. 한 나라가 71년 만에 이룬 경제적 성취에 대한 과정을 되돌아볼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이를 통해 성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입장을 경제변수들의 데이터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 들과 함께 유추해 시장경제로의 과도기 경제가 겪을 가능성이 높은 체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직도 빈곤과 억압에 시달리는 중국 국민들의 입장을 도외시하며, 서구 학자들의 전체주의 체제와 얽힌 먹이사슬 관계, 인지적 이해관계, 의도된 무관심, 데이터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대안은 찾지 않는 게으름, 전체주의 체제 비판에 대한 중국의 검열 및 학자 자신의 PC(Political Correctness) 좌파적인 자기 검열 등은 중국을 포함한 세계 학계의 문제로, 중국의 개방 개혁 과정에서 현재 중국 굴기, 중국몽으로 이행하는 데서 오는 제 분야에 드리워진 그림자 중에 일부라고 볼 수 있고, 세간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로부터 군사적, 경제적 봉쇄를 당하는 상태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후, 이 봉쇄는 경제봉쇄, 통상봉쇄 등의 이름으로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전면적이었다. 당시에 절대다수의 서방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봉쇄”정책을 시행했고, 중국을 압박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닉스 독트린 및 핑퐁 외교 이후 서방세계는 소련을 견제하며 중국을 키울 필요가 있었고, 이에 미국,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무역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때, 중국 국내에서는 문화 혁명이 발생했다. 대약진 운동에 실패한 과오를 덮고자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추진된 문화혁명은 당과 국가와 민족에게 심각한 재난을 초래한 내란이었다. 이로 인해 10년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은 5년 동안 4%를 넘지 못하였고, 3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 기간은 국제 정세가 긴장 완화, 즉 데땅뜨 분위기가 형성되고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하는 시기였으나 중국은 증오, 앙심을 이용하는 정치, 이웃 간 상호 신고로 인한 불신, 그리고 극심한 경제 침체로 인해 발전으로 향할 수 있었던 시간을 잃었다. 문화 혁명 이후, 중국 공산당은 집권 위기와 정권에 대한 신뢰 위기가 있었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시장 경제를 일부 도입해 개혁을 시도했다. 이것이 1978년 말 사업의 중점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이관하고, 이른바 개혁개방 시대를 여는 중국 내부 요인이다. 동부해안의 경제 개발 지역의 설립을 승인했고, 육상 접경도시를 개방하고, 내륙 기업의 연변 개방도시에 투자할 것을 독려하였고, 최신 첨단 기술 개발 지구를 건설했으며, 중국 서부 지역에 대한 개방도 확대하였다. 세계화가 강조되던 1990년대가 지나고 2001년이 되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으로 등장했다. 이후에, 중국은 세계 상품 무역이 빠르게 성장해 진정한 의미의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그러나 시장 경제와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사고, 경쟁과 효율성에 의한 경제 성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의 개혁개방은 발전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를 노출시켰다. 1989년 있었던 언론의 자유 등을 요구하던 천안문 사태도 그 중 하나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네 차례의 큰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 높은 총수요와 인플레이션, 총 공급 부문과의 불균형은 정부로 하여금 새로운 투자계획을 긴축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1994년 이후 투자증가가율은 낮은 방향으로 전환했고, GDP 성장률은 하락하였다.
소득과 부의 분포도 개혁개방 이전에는 균등하게 분포된 편이었으나, 개혁개방이후 지방정부는 농촌의 경제 발전을 등한시했고, 도시와 농촌 1인당 가처분 소득 격차가 끊임없이 증가했다. 동부 연해 지역의 도시화 건설을 확대하면서, 전국의 생산력과 경제 활동이 동부 지역으로 집중되었다. 이렇게 동부 지역은 성장 속도가 빠른 반면, 중서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
1986년 중화인민공화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은 일부 지역을 먼저 부유하게 하고 그 이후 공동으로 부유하게 하자는 정책을 제안했다. 이러한 정부의 계획은 자체 자원 배분 능력과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시장 경제와 달리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요인들을 안고 있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과의 관계, 정책과 시장과의 관계에서 누적된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실증 분석에서 중국 총생산 성장률, 중국 자본서비스 성장률, 중국 노동투입 성장률, 중국 인적자본 성장률, 중국으로의 외국인 직접투자 성장률, 중국의 수출 성장률, 중국의 수입 성장률 등 7개 변수에 대해 회귀분석 및 시계열 분석을 진행했다.
변수의 상호 배타성이 적어 성장회계방정식의 구조로 해석할 수는 없으나 단순회귀 방정식의 설명변수에 수출입 성장률과 외국인 직접투자의 성장률을 포함시켰을 때 일단 선형회귀분석에서는 중국의 수출입이 중국의 경제성장에 유의한 기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투입요소로 볼 수 있는, 인적자본과 자본서비스가 중국의 성장률을 유의하게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적 자본 변수를 생산성으로 본다면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나 시계열 불안정성 문제가 있어 이를 2계 차분을 시키면 생산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인적 자본의 성장은 유의하지 않게 나온다.
중국 경제사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던 1978년 개혁개방이라는 변화가 Regime Breaks를 포함하는 회귀분석을 시행했을 때, 중요한 Break 로 잡혔다. 개혁 개방 이전에는 노동의 투입률이 경제성장률은 유의하게 높였다면 개혁 개방 이후에는 자본이 중요한 기여를 하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개혁개방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에 영향을 크게 준 것은 자본서비스이며, 노동 투입은 이를 operate 하기 위한 것으로 시장을 통한 효율적인 인적 자원 배분은 없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인적자본 변수를 제외시키는 등의 specification을 달리 하면 노동투입량의 증가가 자본만큼 유의하지는 않으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결론은 기초 통계량부터 시계열까지 모든 분석을 종합해 정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고용량이 많은 부서에 투자가 적게 들어오고 자본 집약적 부문은 투자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FDI 투자국 차이에 기술 격차가 너무 커서 중국 근로자의 평균적인 학업 능력이 이를 흡수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중국의 세계 무역시장에서 문제가 되고, 미중 전쟁에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첨단 기술에 대한 도용과는 다른 차원의 평균적인 문제이다.
내생성으로 부터 자유로우며, 변수 배열 순서로부터 구애되지 않는 VAR분석에서 Generalized impulse-response를 시도해 보았다. 축적된 충격 반응 분석을 보면, 자본 서비스의 성장률이 실질국내총생산의 성장률 자체의 충격보다 더 크게 실질 국내 총생산의 경제성장률을 자극하고 있었다. 인적자본변수나 노동투입변수는 오히려 성장이 마이너스로 반응하게 하는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는 regime break를 동반한 회귀분석 결과를 VAR 분석에서 지지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계량 분석 전체를 볼 때 개혁 개방 시대 이후에 자본 서비스의 역할이 중국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으며, 인적 자본에 대한 시장의 상대적 부재가 결과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장에서 중국 대외 무역의 역사와 수출입 상품 구조의 변화를 자세히 다루었었는데, 충격 반응 분석에서는 수입성장률이 경제성장에 주는 영향력이 수출성장률이 주는 효과보다 크게 나타났다. 중간재, 원자재, 부품 등의 수입이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학습, 기술확산, 부가가치 창조 등에 실질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세계 시장이 제공되어 국내 총생산으로 계상되는 수출의 역할과 기술과 노하우가 이전될 수 있는 수입의 역할이 보여주는 미묘한 차이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의미 있으며, 유의한 장기균형 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개혁 개방 이후는 이전과 다르며 지금도 지속적으로 체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 경제를 반영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개혁 개방이후 중국은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하고 대외 개방을 통해 세계 2 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냉전 체제 종식을 위한 글로벌 전략의 큰 그림 속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도기에 중국 경제는 그 내밀한 구조에(underlying structure) 시장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기존의 공산당 권력 구조가 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자유 진영에서도 1990년때 유행했던 세계화 추세나 PC 좌파적 사고 체계는 서로 간의 차이가 있다고만 인정하며, 이해관계가 있는 상대방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 이를 함께 보려고 하지 않았다. 본 논문은 중국의 대외 개방 역사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긍정적인 면만을 기대하고 확증편향적으로 결론을 내지 않았다. 비록 대외 무역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세히 다루면서 시작했으나, 예상과 다른 결과들에 대해, 중국 경제 내부의 이질성 (농민공부터 공산당 간부까지, 서부지역에서 동부지역 등), 중국 국내의 정치적 관성과 천안문 사태에서 나타난 자유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어려움 등 중국 내 정치 경제 환경을 고려해 계량 결과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과도기의 빈곤과 혼란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문명화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세계 자유 시민들은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 지적인 노력을 스스로 꾸준히 해 가야 하며, 적나라한 먹이사슬 관계 뿐 아니라, 허울 좋은 명분과 인지적 이해 관계를 식별하고, 이로부터 초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Keywords: 경제성장, 개혁개방, 회귀분석, Regime Breaks, VAR, PC 좌파의 위선.
국 문 초 록
개혁개방 이후 중국은 빠른 경제성장을 경험했고, 세계 2 위의 경제규모를 가진 나라가 되었다. 지리적 공간 개념으로 본 중국 대륙의 역사는 여러 민족과 국가의 부침으로 그 역사의 주체가 모호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된 지는 2020년 현재 71년이 되었다. 한 나라가 71년 만에 이룬 경제적 성취에 대한 과정을 되돌아볼 시점에 이르렀다고 판단된다. 이를 통해 성장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살펴보고, 다양한 경제주체들의 입장을 경제변수들의 데이터 뿐 아니라 역사적 사실 들과 함께 유추해 시장경제로의 과도기 경제가 겪을 가능성이 높은 체제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아직도 빈곤과 억압에 시달리는 중국 국민들의 입장을 도외시하며, 서구 학자들의 전체주의 체제와 얽힌 먹이사슬 관계, 인지적 이해관계, 의도된 무관심, 데이터가 없다는 핑계를 대며 대안은 찾지 않는 게으름, 전체주의 체제 비판에 대한 중국의 검열 및 학자 자신의 PC(Political Correctness) 좌파적인 자기 검열 등은 중국을 포함한 세계 학계의 문제로, 중국의 개방 개혁 과정에서 현재 중국 굴기, 중국몽으로 이행하는 데서 오는 제 분야에 드리워진 그림자 중에 일부라고 볼 수 있고, 세간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1950년대 중국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로부터 군사적, 경제적 봉쇄를 당하는 상태였다. 한국 전쟁이 발발한 후, 이 봉쇄는 경제봉쇄, 통상봉쇄 등의 이름으로 중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전면적이었다. 당시에 절대다수의 서방 국가들은 미국과 함께“봉쇄”정책을 시행했고, 중국을 압박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닉스 독트린 및 핑퐁 외교 이후 서방세계는 소련을 견제하며 중국을 키울 필요가 있었고, 이에 미국,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무역량이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때, 중국 국내에서는 문화 혁명이 발생했다. 대약진 운동에 실패한 과오를 덮고자 마오쩌둥(毛澤東)에 의해 추진된 문화혁명은 당과 국가와 민족에게 심각한 재난을 초래한 내란이었다. 이로 인해 10년 동안 중국의 경제성장률(국내총생산)은 5년 동안 4%를 넘지 못하였고, 3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이 기간은 국제 정세가 긴장 완화, 즉 데땅뜨 분위기가 형성되고 많은 나라들이 경제적으로 도약하기 시작하는 시기였으나 중국은 증오, 앙심을 이용하는 정치, 이웃 간 상호 신고로 인한 불신, 그리고 극심한 경제 침체로 인해 발전으로 향할 수 있었던 시간을 잃었다. 문화 혁명 이후, 중국 공산당은 집권 위기와 정권에 대한 신뢰 위기가 있었고,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시장 경제를 일부 도입해 개혁을 시도했다. 이것이 1978년 말 사업의 중점을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로 이관하고, 이른바 개혁개방 시대를 여는 중국 내부 요인이다. 동부해안의 경제 개발 지역의 설립을 승인했고, 육상 접경도시를 개방하고, 내륙 기업의 연변 개방도시에 투자할 것을 독려하였고, 최신 첨단 기술 개발 지구를 건설했으며, 중국 서부 지역에 대한 개방도 확대하였다. 세계화가 강조되던 1990년대가 지나고 2001년이 되면 중국은 세계무역기구의 회원국으로 등장했다. 이후에, 중국은 세계 상품 무역이 빠르게 성장해 진정한 의미의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그러나 시장 경제와 법치주의를 기반으로 한 자유로운 사고, 경쟁과 효율성에 의한 경제 성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중국의 개혁개방은 발전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를 노출시켰다. 1989년 있었던 언론의 자유 등을 요구하던 천안문 사태도 그 중 하나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네 차례의 큰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 높은 총수요와 인플레이션, 총 공급 부문과의 불균형은 정부로 하여금 새로운 투자계획을 긴축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했다. 1994년 이후 투자증가가율은 낮은 방향으로 전환했고, GDP 성장률은 하락하였다.
소득과 부의 분포도 개혁개방 이전에는 균등하게 분포된 편이었으나, 개혁개방이후 지방정부는 농촌의 경제 발전을 등한시했고, 도시와 농촌 1인당 가처분 소득 격차가 끊임없이 증가했다. 동부 연해 지역의 도시화 건설을 확대하면서, 전국의 생산력과 경제 활동이 동부 지역으로 집중되었다. 이렇게 동부 지역은 성장 속도가 빠른 반면, 중서부 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되었다.
1986년 중화인민공화국의 덩샤오핑(鄧小平) 주석은 일부 지역을 먼저 부유하게 하고 그 이후 공동으로 부유하게 하자는 정책을 제안했다. 이러한 정부의 계획은 자체 자원 배분 능력과 진입과 퇴출이 자유로운 시장 경제와 달리 부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요인들을 안고 있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계, 공공부문과 민간부문과의 관계, 정책과 시장과의 관계에서 누적된 모순이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실증 분석에서 중국 총생산 성장률, 중국 자본서비스 성장률, 중국 노동투입 성장률, 중국 인적자본 성장률, 중국으로의 외국인 직접투자 성장률, 중국의 수출 성장률, 중국의 수입 성장률 등 7개 변수에 대해 회귀분석 및 시계열 분석을 진행했다.
변수의 상호 배타성이 적어 성장회계방정식의 구조로 해석할 수는 없으나 단순회귀 방정식의 설명변수에 수출입 성장률과 외국인 직접투자의 성장률을 포함시켰을 때 일단 선형회귀분석에서는 중국의 수출입이 중국의 경제성장에 유의한 기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투입요소로 볼 수 있는, 인적자본과 자본서비스가 중국의 성장률을 유의하게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인적 자본 변수를 생산성으로 본다면 자연스러운 결과이기도 하나 시계열 불안정성 문제가 있어 이를 2계 차분을 시키면 생산성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 인적 자본의 성장은 유의하지 않게 나온다.
중국 경제사에 매우 큰 영향을 주었던 1978년 개혁개방이라는 변화가 Regime Breaks를 포함하는 회귀분석을 시행했을 때, 중요한 Break 로 잡혔다. 개혁 개방 이전에는 노동의 투입률이 경제성장률은 유의하게 높였다면 개혁 개방 이후에는 자본이 중요한 기여를 하기 시작했음을 볼 수 있다. 개혁개방이후 중국의 경제성장에 영향을 크게 준 것은 자본서비스이며, 노동 투입은 이를 operate 하기 위한 것으로 시장을 통한 효율적인 인적 자원 배분은 없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인적자본 변수를 제외시키는 등의 specification을 달리 하면 노동투입량의 증가가 자본만큼 유의하지는 않으나 성장에 기여한 것으로 나오기도 한다. 따라서 결론은 기초 통계량부터 시계열까지 모든 분석을 종합해 정성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고용량이 많은 부서에 투자가 적게 들어오고 자본 집약적 부문은 투자가 많이 들어오는 편이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 FDI 투자국 차이에 기술 격차가 너무 커서 중국 근로자의 평균적인 학업 능력이 이를 흡수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물론 중국의 세계 무역시장에서 문제가 되고, 미중 전쟁에 주요 이슈 중 하나인 첨단 기술에 대한 도용과는 다른 차원의 평균적인 문제이다.
내생성으로 부터 자유로우며, 변수 배열 순서로부터 구애되지 않는 VAR분석에서 Generalized impulse-response를 시도해 보았다. 축적된 충격 반응 분석을 보면, 자본 서비스의 성장률이 실질국내총생산의 성장률 자체의 충격보다 더 크게 실질 국내 총생산의 경제성장률을 자극하고 있었다. 인적자본변수나 노동투입변수는 오히려 성장이 마이너스로 반응하게 하는 요인으로 나타나고 있어 이는 regime break를 동반한 회귀분석 결과를 VAR 분석에서 지지하는 결과로 볼 수 있다. 계량 분석 전체를 볼 때 개혁 개방 시대 이후에 자본 서비스의 역할이 중국의 성장에 큰 역할을 했으며, 인적 자본에 대한 시장의 상대적 부재가 결과 전반에 반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3장에서 중국 대외 무역의 역사와 수출입 상품 구조의 변화를 자세히 다루었었는데, 충격 반응 분석에서는 수입성장률이 경제성장에 주는 영향력이 수출성장률이 주는 효과보다 크게 나타났다. 중간재, 원자재, 부품 등의 수입이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학습, 기술확산, 부가가치 창조 등에 실질적인 역할을 했을 것으로 예상해볼 수 있다. 세계 시장이 제공되어 국내 총생산으로 계상되는 수출의 역할과 기술과 노하우가 이전될 수 있는 수입의 역할이 보여주는 미묘한 차이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의미 있으며, 유의한 장기균형 관계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개혁 개방 이후는 이전과 다르며 지금도 지속적으로 체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 경제를 반영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개혁 개방이후 중국은 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하고 대외 개방을 통해 세계 2 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냉전 체제 종식을 위한 글로벌 전략의 큰 그림 속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과도기에 중국 경제는 그 내밀한 구조에(underlying structure) 시장경제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았다. 이것은 기존의 공산당 권력 구조가 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때,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또한, 자유 진영에서도 1990년때 유행했던 세계화 추세나 PC 좌파적 사고 체계는 서로 간의 차이가 있다고만 인정하며, 이해관계가 있는 상대방을 거슬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 이를 함께 보려고 하지 않았다. 본 논문은 중국의 대외 개방 역사와 경제성장의 관계를 긍정적인 면만을 기대하고 확증편향적으로 결론을 내지 않았다. 비록 대외 무역이 큰 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자세히 다루면서 시작했으나, 예상과 다른 결과들에 대해, 중국 경제 내부의 이질성 (농민공부터 공산당 간부까지, 서부지역에서 동부지역 등), 중국 국내의 정치적 관성과 천안문 사태에서 나타난 자유 민주주의로의 이행에 대한 어려움 등 중국 내 정치 경제 환경을 고려해 계량 결과를 해석하려고 노력했다. 과도기의 빈곤과 혼란을 겪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문명화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세계 자유 시민들은 언론에 휘둘리지 않는 지적인 노력을 스스로 꾸준히 해 가야 하며, 적나라한 먹이사슬 관계 뿐 아니라, 허울 좋은 명분과 인지적 이해 관계를 식별하고, 이로부터 초연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Keywords: 경제성장, 개혁개방, 회귀분석, Regime Breaks, VAR, PC 좌파의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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