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아산의 순수본성이 삶과 예술을 어떻게 융합하여 한국남종화에 기여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는가를 분석한다. 또한 한국수묵화의 고절함으로 인해 후학들의 접근이 어려운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여 삶과 예술을 통해 각자의 진정한 가능성을 계발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공유하는데 있다. (재)아산미술문화재단에서 펴낸「아산 조방원」(2012, 심미안)에 실린 손정연의 ‘아산 조방원평전’, 문순태의 ‘크고 아름다운 아산, 조방원’, 최하림의 ‘먹산수와 무위의 사상’과 「아산 조방원작품집」(2001,열화당)에 실린 묵산수99점 작품과 ‘아산연보’에 기록된 아산의 어록과 월간이나 신문 등에서 발췌된 그에 대한 논설과 작품평론 등을 기초자료로 삼아 아산의 삶과 예술을 사상으로 통합하고 ‘나’를 찾는 구도의 길로 재해석하여 종합한다. 아산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일제의 침략전쟁과 패망, 그리고 해방을 맞고 혼란한 시기에 그림을 통해 자신의 길만을 추구했다. 4·3제주민주, 여순사건 등 국내외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6·25전쟁이 일어나며 암울하고 참혹함을 맛보았다. 또한 평화시절에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한 그는 그러한 혼란과 참혹한 삶의 과정 속에서도 “‘나’를 찾아 공부하고 두루 살폈다. 자신을 찾는 길을 예술에서 찾게 되고 그 길을 온전히 진실하게 갔다. ‘순수상태에서 기운생동이 나온다.’는 그의 말에서 보여지 듯, 순수상태는 17세 때 공연관람 중 이동백의 소리와 최승희의 춤사위에서 예술 감각으로 폭발하여 자신을 화가로 인도하고 독자적인 남도의 먹산수 세계를 열게 했다. 전통의 문화유산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것을 삶과 예술로 체화시키면서 가치 있는 유산을 보존하고 인재를 육성하는데 힘을 기울였는데, 이것은 바로 ‘나’를 찾는 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삶과 예술을 융합하게 된다. 아산은 ...
국문초록
아산 조방원의 삶과 예술 연구
석사과정 김 정 애
본 연구는 아산의 순수본성이 삶과 예술을 어떻게 융합하여 한국남종화에 기여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는가를 분석한다. 또한 한국수묵화의 고절함으로 인해 후학들의 접근이 어려운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여 삶과 예술을 통해 각자의 진정한 가능성을 계발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공유하는데 있다. (재)아산미술문화재단에서 펴낸「아산 조방원」(2012, 심미안)에 실린 손정연의 ‘아산 조방원평전’, 문순태의 ‘크고 아름다운 아산, 조방원’, 최하림의 ‘먹산수와 무위의 사상’과 「아산 조방원작품집」(2001,열화당)에 실린 묵산수99점 작품과 ‘아산연보’에 기록된 아산의 어록과 월간이나 신문 등에서 발췌된 그에 대한 논설과 작품평론 등을 기초자료로 삼아 아산의 삶과 예술을 사상으로 통합하고 ‘나’를 찾는 구도의 길로 재해석하여 종합한다. 아산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일제의 침략전쟁과 패망, 그리고 해방을 맞고 혼란한 시기에 그림을 통해 자신의 길만을 추구했다. 4·3제주민주, 여순사건 등 국내외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6·25전쟁이 일어나며 암울하고 참혹함을 맛보았다. 또한 평화시절에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한 그는 그러한 혼란과 참혹한 삶의 과정 속에서도 “‘나’를 찾아 공부하고 두루 살폈다. 자신을 찾는 길을 예술에서 찾게 되고 그 길을 온전히 진실하게 갔다. ‘순수상태에서 기운생동이 나온다.’는 그의 말에서 보여지 듯, 순수상태는 17세 때 공연관람 중 이동백의 소리와 최승희의 춤사위에서 예술 감각으로 폭발하여 자신을 화가로 인도하고 독자적인 남도의 먹산수 세계를 열게 했다. 전통의 문화유산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것을 삶과 예술로 체화시키면서 가치 있는 유산을 보존하고 인재를 육성하는데 힘을 기울였는데, 이것은 바로 ‘나’를 찾는 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삶과 예술을 융합하게 된다. 아산은 자기인식이 깊어질수록 예술성도 깊어지고 전통적인 화법이 아산의 독특성에 의해 재창조되면서 독자적인 먹회화의 세계를 열었다. 그가 말하는 순수상태는 종교적인 것으로 노장이나 도가사상의 무위자연, 불교의 선종사상의 깨달음, 기독교의 계시진리 등과 그 맥을 같이한다. 동양화에서 기운생동이 요체인데 여백은 기운생동의 원천이다. 여백을 통해 조화와 창조가 하나로 연결된다. 따라서 여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동양화 구도의 핵심이 된다. 아산의 수묵산수는 음과 양, 원인과 결과의 접점인 여백의 원점에서 들고나면서 창조와 변화를 거듭한다. 아산의 그림에서 비가시적인 원점은 여백이지만 가시적인 원점은 아산 자신인 점경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음양의 법칙, 에너지 순환, 인과법 등의 절대조화와 절대사랑의 신성한 법칙이 작품 속에 작용하여 끊임없이 생멸을 거듭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탈 세속적인 삶에서 일상의 삶으로 눈을 돌리고, 그림 소재에 남도의 가락과 춤사위의 혼을 불어넣고, 먹사용에서 기존의 파묵, 발묵을 추상화하고, 대벽부준을 변형한 ‘아산준’을 개발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격과 화격을 융합함으로써 창조성과 화의를 하나로 연결했던 것 등이 그것이다. 인격을 도야하고 화격을 갖춤으로써 기운생동을 화의에 의해 조화와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자기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도의 비전은 몸과 마음의 조화창조를 상징하는 3중구도의 「그림29」‘고사’와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의 연결을 표현하는 「그림5」‘산’, 그리고 일상의 삶에 스며들어있는 빛의 표현인 「그림30」‘절필병풍’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 여기가 깨달음의 비전인 것이다. 구도의 장소와 과정은 「그림31」‘심우’에서는 ‘참나’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그림32」‘청천’에서는 자연의 경이함을 느끼면서, 「그림34」‘월귀’에서는 자연(철리)의 안내에 따르면서, 「그림38」‘수도’ 에서는 은둔생활을 통해서, 「그림39」‘관폭도’에서는 득음의 과정을 통해서, 「그림41」‘농가’에서는 일상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그림26」‘매화동’에서는 주변의 생명의 흐름을 타면서 등 다양한 장소와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도의 삶은「그림48」‘급우’, 「그림49」‘조동’, 「그림55」‘하동’, 「그림28」‘씨름’ 등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삶과 놀이를 통해서, 「그림53」‘조연’의 아낙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서, 「그림54」‘노어’의 무위자연의 삶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삶의 실상을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산은 인격과 화격의 융합을 통해 창조성의 영감을 화의(畵意)에 의한 조화와 아름다움으로 창출했고, 남도의 서정성과 향토성, 사상성을 화폭에 담아 서민의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묵선화(墨禪畵)를 이루었고, 삶과 예술을 구도(求道)의 과정으로 통합하였고, 전통의 가치 있는 유산을 수집, 관리, 공유함으로써 전통의 바탕에서 영감을 받는 등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열었다. 이것은 아산이 근대대표의 남화적 수묵화에 대한 독자적 예술세계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묵노회를 통해 30여명의 제자를 육성하면서 남도화의 맥을 잇게 했고, 일평생 수집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서화류, 간찰류, 목판각 등 총6,237점의 문화재와 대지4,263평을 전라남도에 기증하고 도에서는 도립옥과미술관을 건립했으며 지금은 아산조방원미술관으로 변경 운영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아산은 궁극의 선(善)을 지향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인간이 되게 하고, 인격을 도야하고 화격을 갖춤으로써 기운생동을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하면서 삶과 예술의 조화를 창조하게 했다. 또한 이것은 삶의 예술로써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며 구도자로서 독자적인 작가의 길을 갔음을 보여준다.
국문초록
아산 조방원의 삶과 예술 연구
석사과정 김 정 애
본 연구는 아산의 순수본성이 삶과 예술을 어떻게 융합하여 한국남종화에 기여하면서 자신만의 독자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는가를 분석한다. 또한 한국수묵화의 고절함으로 인해 후학들의 접근이 어려운 작금의 현실을 감안하여 삶과 예술을 통해 각자의 진정한 가능성을 계발할 수 있는 삶의 지혜를 공유하는데 있다. (재)아산미술문화재단에서 펴낸「아산 조방원」(2012, 심미안)에 실린 손정연의 ‘아산 조방원평전’, 문순태의 ‘크고 아름다운 아산, 조방원’, 최하림의 ‘먹산수와 무위의 사상’과 「아산 조방원작품집」(2001,열화당)에 실린 묵산수99점 작품과 ‘아산연보’에 기록된 아산의 어록과 월간이나 신문 등에서 발췌된 그에 대한 논설과 작품평론 등을 기초자료로 삼아 아산의 삶과 예술을 사상으로 통합하고 ‘나’를 찾는 구도의 길로 재해석하여 종합한다. 아산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일제의 침략전쟁과 패망, 그리고 해방을 맞고 혼란한 시기에 그림을 통해 자신의 길만을 추구했다. 4·3제주민주, 여순사건 등 국내외 정치 불안이 계속되고 6·25전쟁이 일어나며 암울하고 참혹함을 맛보았다. 또한 평화시절에도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직접 목격한 그는 그러한 혼란과 참혹한 삶의 과정 속에서도 “‘나’를 찾아 공부하고 두루 살폈다. 자신을 찾는 길을 예술에서 찾게 되고 그 길을 온전히 진실하게 갔다. ‘순수상태에서 기운생동이 나온다.’는 그의 말에서 보여지 듯, 순수상태는 17세 때 공연관람 중 이동백의 소리와 최승희의 춤사위에서 예술 감각으로 폭발하여 자신을 화가로 인도하고 독자적인 남도의 먹산수 세계를 열게 했다. 전통의 문화유산으로부터 영감을 받고 그것을 삶과 예술로 체화시키면서 가치 있는 유산을 보존하고 인재를 육성하는데 힘을 기울였는데, 이것은 바로 ‘나’를 찾는 길과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삶과 예술을 융합하게 된다. 아산은 자기인식이 깊어질수록 예술성도 깊어지고 전통적인 화법이 아산의 독특성에 의해 재창조되면서 독자적인 먹회화의 세계를 열었다. 그가 말하는 순수상태는 종교적인 것으로 노장이나 도가사상의 무위자연, 불교의 선종사상의 깨달음, 기독교의 계시진리 등과 그 맥을 같이한다. 동양화에서 기운생동이 요체인데 여백은 기운생동의 원천이다. 여백을 통해 조화와 창조가 하나로 연결된다. 따라서 여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동양화 구도의 핵심이 된다. 아산의 수묵산수는 음과 양, 원인과 결과의 접점인 여백의 원점에서 들고나면서 창조와 변화를 거듭한다. 아산의 그림에서 비가시적인 원점은 여백이지만 가시적인 원점은 아산 자신인 점경인물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음양의 법칙, 에너지 순환, 인과법 등의 절대조화와 절대사랑의 신성한 법칙이 작품 속에 작용하여 끊임없이 생멸을 거듭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탈 세속적인 삶에서 일상의 삶으로 눈을 돌리고, 그림 소재에 남도의 가락과 춤사위의 혼을 불어넣고, 먹사용에서 기존의 파묵, 발묵을 추상화하고, 대벽부준을 변형한 ‘아산준’을 개발한 것, 그리고 무엇보다 인격과 화격을 융합함으로써 창조성과 화의를 하나로 연결했던 것 등이 그것이다. 인격을 도야하고 화격을 갖춤으로써 기운생동을 화의에 의해 조화와 아름다움을 창조할 수 있는 자기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도의 비전은 몸과 마음의 조화창조를 상징하는 3중구도의 「그림29」‘고사’와 가시적인 세계와 비가시적인 세계의 연결을 표현하는 「그림5」‘산’, 그리고 일상의 삶에 스며들어있는 빛의 표현인 「그림30」‘절필병풍’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지금 여기가 깨달음의 비전인 것이다. 구도의 장소와 과정은 「그림31」‘심우’에서는 ‘참나’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그림32」‘청천’에서는 자연의 경이함을 느끼면서, 「그림34」‘월귀’에서는 자연(철리)의 안내에 따르면서, 「그림38」‘수도’ 에서는 은둔생활을 통해서, 「그림39」‘관폭도’에서는 득음의 과정을 통해서, 「그림41」‘농가’에서는 일상에 몰입하는 과정에서, 「그림26」‘매화동’에서는 주변의 생명의 흐름을 타면서 등 다양한 장소와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도의 삶은「그림48」‘급우’, 「그림49」‘조동’, 「그림55」‘하동’, 「그림28」‘씨름’ 등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삶과 놀이를 통해서, 「그림53」‘조연’의 아낙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서, 「그림54」‘노어’의 무위자연의 삶을 통해서 있는 그대로의 삶의 실상을 사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산은 인격과 화격의 융합을 통해 창조성의 영감을 화의(畵意)에 의한 조화와 아름다움으로 창출했고, 남도의 서정성과 향토성, 사상성을 화폭에 담아 서민의 일상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묵선화(墨禪畵)를 이루었고, 삶과 예술을 구도(求道)의 과정으로 통합하였고, 전통의 가치 있는 유산을 수집, 관리, 공유함으로써 전통의 바탕에서 영감을 받는 등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열었다. 이것은 아산이 근대대표의 남화적 수묵화에 대한 독자적 예술세계를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또한 묵노회를 통해 30여명의 제자를 육성하면서 남도화의 맥을 잇게 했고, 일평생 수집한 사료적 가치가 있는 서화류, 간찰류, 목판각 등 총6,237점의 문화재와 대지4,263평을 전라남도에 기증하고 도에서는 도립옥과미술관을 건립했으며 지금은 아산조방원미술관으로 변경 운영되고 있다. 결론적으로 아산은 궁극의 선(善)을 지향했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기 전에 인간이 되게 하고, 인격을 도야하고 화격을 갖춤으로써 기운생동을 자신만의 독특한 화법으로 표현하면서 삶과 예술의 조화를 창조하게 했다. 또한 이것은 삶의 예술로써 우리의 것을 소중히 여기며 구도자로서 독자적인 작가의 길을 갔음을 보여준다.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