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 중반의 신라는 대외적으로 큰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서쪽에서는 백제가 신라를 압박해 왔던 것이다. 특히 백제의 압박은 신라의 본거지를 위협하는 형세였는데, 642년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이 함락됨에 따라 백제가 낙동강 본류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신라는 ‘외교적 타개책’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이는 삼국통일 전쟁의 서막이 올랐음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삼국통일과 관련한 논의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주체는 백제도,...
7세기 중반의 신라는 대외적으로 큰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서쪽에서는 백제가 신라를 압박해 왔던 것이다. 특히 백제의 압박은 신라의 본거지를 위협하는 형세였는데, 642년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이 함락됨에 따라 백제가 낙동강 본류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신라는 ‘외교적 타개책’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이는 삼국통일 전쟁의 서막이 올랐음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삼국통일과 관련한 논의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주체는 백제도, 고구려도 아닌 ‘신라’였다. 삼국통일 전쟁 이후 백제와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신라는 약 300년의 세월 동안 역사 속에 그 행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거나 저평가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교과서 서술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신라의 삼국통일이 영토적 불완전성과 비자주적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신라가 자주 의식을 보였다거나, 통일 후 민족 융합 정책을 실시하였다는 추가 서술을 통해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의의도 함께 설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교과서 속 서술만으론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신라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과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이는 물론 교수학습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만을 선정해 한정된 지면에 담아내야 한다는 ‘교과서’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 있다. 그럼에도 영토적 불완전성과 비자주성을 강조한 듯 한 교과서 서술과 ‘나당연합의 결성-백제 멸망-고구려 멸망-나당전쟁-삼국통일’로 공식화되어 버린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삼국통일의 모든 과정에 신라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정세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여 적절한 ‘대외 전략’을 수립한 것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나 삼국통일 과정기 신라의 대외 전략은 외교·군사 활동의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7세기 신라의 외교·군사 활동과 삼국통일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7세기 중반의 신라는 대외적으로 큰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북쪽에서는 고구려가, 서쪽에서는 백제가 신라를 압박해 왔던 것이다. 특히 백제의 압박은 신라의 본거지를 위협하는 형세였는데, 642년 대야성을 비롯한 40여 성이 함락됨에 따라 백제가 낙동강 본류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신라는 ‘외교적 타개책’을 모색하기 시작했고, 이는 삼국통일 전쟁의 서막이 올랐음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했다.
지금까지 삼국통일과 관련한 논의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졌다. 그러나 삼국통일의 주체는 백제도, 고구려도 아닌 ‘신라’였다. 삼국통일 전쟁 이후 백제와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신라는 약 300년의 세월 동안 역사 속에 그 행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물론, 여전히 신라의 삼국통일을 부정하거나 저평가하는 주장도 존재한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교과서 서술이 가장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교과서가 신라의 삼국통일이 영토적 불완전성과 비자주적이라는 측면에서 문제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신라가 자주 의식을 보였다거나, 통일 후 민족 융합 정책을 실시하였다는 추가 서술을 통해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한 의의도 함께 설명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교과서 속 서술만으론 삼국통일의 과정에서 신라가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과 역할을 했는지 제대로 알 수 없다. 이는 물론 교수학습에 반드시 필요한 내용만을 선정해 한정된 지면에 담아내야 한다는 ‘교과서’ 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문제일 수 있다. 그럼에도 영토적 불완전성과 비자주성을 강조한 듯 한 교과서 서술과 ‘나당연합의 결성-백제 멸망-고구려 멸망-나당전쟁-삼국통일’로 공식화되어 버린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삼국통일의 모든 과정에 신라가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는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제정세를 기민하게 파악하고, 이를 활용하여 적절한 ‘대외 전략’을 수립한 것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특히나 삼국통일 과정기 신라의 대외 전략은 외교·군사 활동의 측면에서 두각을 나타내었는데, 이 글에서는 이러한 점에 주목하여 7세기 신라의 외교·군사 활동과 삼국통일 과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In the mid-7th century, Silla faced a major external crisis. Goguryeo and Baekje had
pressured Silla from the North side and the West side. Particularly the Baekje's formation of
pressuring Silla had been targeting the main headquarters of the country. It was due to the
take over of Daey...
In the mid-7th century, Silla faced a major external crisis. Goguryeo and Baekje had
pressured Silla from the North side and the West side. Particularly the Baekje's formation of
pressuring Silla had been targeting the main headquarters of the country. It was due to the
take over of Daeya Castle (A.D. 642) and other 40 castles by Baekje. In this crisis, Silla began
to seek a ‘diplomatic breakthrough’ which also meant the beginning of the Three Kingdoms
Unification War.
So far, discussions on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have been made in many
ways. However, the main body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was Silla, not Baekje
or Goguryeo. After the Three Kingdoms War, Baekje and Goguryeo disappeared into history,
but Silla remained in history for about 300 years.
Of course, there are still arguments that deny or underestimate the S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is figure can be easily found around us, and the textbook is the most
representative example. Most textbooks point out that S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was problematic in terms of territorial imperfection and non-maintenance. Further mentioning
that Silla had shown the sense of self-reliance and the fact that after the unification Silla had
proceeded the policy for the union of races, it shows the explanation of the significance of the
unification.
However, it is not clear what efforts and roles Silla played in the process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is, of course, may be due to the limitation of the ‘textbook’ itself,
which requires selecting only what is essential for teaching and putting it on a limited page.
Since being conscious of how much Silla had put its effort into every single procedure of the
unification. it is quite a shame that the text book had in-directly intended to emphasize the
territorial incompletion of unification and the lack of self-reliance spirit of Silla. Also analyzing
from the same perspective above, the fact that the process of unification is formalized into the
form of ‘Alliance between Silla and Dang - Collapse of Baekje - Collapse of Goguryeo - War
between Silla and Dang - Completion of Unification’ needs to be looked over.
Silla's effort of understanding international relations promptly and applying it into diplomatic
strategy gave a crucial strength for the unification. In particular, Silla's foreign strategy during
the process of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stood out in terms of diplomatic and military
activities. This paper aims to examine Silla's diplomatic and military activities and the process
of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in the 7th century.
In the mid-7th century, Silla faced a major external crisis. Goguryeo and Baekje had
pressured Silla from the North side and the West side. Particularly the Baekje's formation of
pressuring Silla had been targeting the main headquarters of the country. It was due to the
take over of Daeya Castle (A.D. 642) and other 40 castles by Baekje. In this crisis, Silla began
to seek a ‘diplomatic breakthrough’ which also meant the beginning of the Three Kingdoms
Unification War.
So far, discussions on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have been made in many
ways. However, the main body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was Silla, not Baekje
or Goguryeo. After the Three Kingdoms War, Baekje and Goguryeo disappeared into history,
but Silla remained in history for about 300 years.
Of course, there are still arguments that deny or underestimate the S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is figure can be easily found around us, and the textbook is the most
representative example. Most textbooks point out that Silla's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was problematic in terms of territorial imperfection and non-maintenance. Further mentioning
that Silla had shown the sense of self-reliance and the fact that after the unification Silla had
proceeded the policy for the union of races, it shows the explanation of the significance of the
unification.
However, it is not clear what efforts and roles Silla played in the process of the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This, of course, may be due to the limitation of the ‘textbook’ itself,
which requires selecting only what is essential for teaching and putting it on a limited page.
Since being conscious of how much Silla had put its effort into every single procedure of the
unification. it is quite a shame that the text book had in-directly intended to emphasize the
territorial incompletion of unification and the lack of self-reliance spirit of Silla. Also analyzing
from the same perspective above, the fact that the process of unification is formalized into the
form of ‘Alliance between Silla and Dang - Collapse of Baekje - Collapse of Goguryeo - War
between Silla and Dang - Completion of Unification’ needs to be looked over.
Silla's effort of understanding international relations promptly and applying it into diplomatic
strategy gave a crucial strength for the unification. In particular, Silla's foreign strategy during
the process of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stood out in terms of diplomatic and military
activities. This paper aims to examine Silla's diplomatic and military activities and the process
of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in the 7th century.
주제어
#삼국통일 7세기 신라의 외교 활동 취리산 회맹 백제 멸망 고구려 멸망 나당 전쟁 unification of the Three Kingdoms Diplomatic activities of Silla in the 7th century a league of Mt. Churi Collapse of Baekje Collapse of Goguryeo War between Silla and D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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