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조선후기 중앙군영에 수행된 착호(捉虎, 호랑이사냥) 활동에 관하여 다루고자한다. 과거 한반도에서 호랑이·표범에 의한 호환(虎患)은 흔하게 일어나는 재해 중 하나였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이러한 호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은 조선후기에도 지속되었다. 조선후기 착호활동은 「착호절목(捉虎節目)」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지방에서는 관군과 지역민들의 협력 하에 호랑이를 줄여나갔으나 나라의 중심인 도성과 그 주변부에서는 중앙군영에 의하여 호랑이 사냥이 이루어졌다.
중앙군영의 착호활동은 1699년(숙종 2...
본 논문은 조선후기 중앙군영에 수행된 착호(捉虎, 호랑이사냥) 활동에 관하여 다루고자한다. 과거 한반도에서 호랑이·표범에 의한 호환(虎患)은 흔하게 일어나는 재해 중 하나였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이러한 호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은 조선후기에도 지속되었다. 조선후기 착호활동은 「착호절목(捉虎節目)」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지방에서는 관군과 지역민들의 협력 하에 호랑이를 줄여나갔으나 나라의 중심인 도성과 그 주변부에서는 중앙군영에 의하여 호랑이 사냥이 이루어졌다.
중앙군영의 착호활동은 1699년(숙종 25) 제정된 「착호절목」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르면 중앙군영은 경기도 전역에서 발생하는 호환에 대처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삼군문의 주요 활동지역은 사실상 한양 도성과 왕릉의 소재지를 중심으로 제한되었다. 해당 지역에서 중앙군영은 수십명의 포수들을 동원한 조직적 사냥이나 몇몇 우수한 소수의 포수들에 의한 사냥을 통하여 약 2세기 동안 해로운 호랑이(惡虎)들을 줄여왔다.
이러한 중앙군영의 착호활동은 65% 이상이 왕릉에서 행해졌다. 이는 전국적으로 산림이 황폐화되는 가운데, 수목(樹木)이 우거진 왕릉의 소재지는 호랑이들의 서식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들은 왕릉을 거점으로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간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따라서 이곳은 도성과 경기지역에서 발생하는 호환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시기는 왕들의 능행(陵幸)이 잦은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전시기와 비교할 때, 능소의 관리와 능행 시 왕의 수행 업무가 중요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호랑이를 잡는 것은 서울과 경기의 민인(民人)들을 지키고 동시에 능소의 관리와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활동이었다.
본 논문은 조선후기 중앙군영에 수행된 착호(捉虎, 호랑이사냥) 활동에 관하여 다루고자한다. 과거 한반도에서 호랑이·표범에 의한 호환(虎患)은 흔하게 일어나는 재해 중 하나였다. 조선은 개국 초부터 이러한 호환을 줄이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이러한 노력은 조선후기에도 지속되었다. 조선후기 착호활동은 「착호절목(捉虎節目)」에 근거하여 이루어졌다. 지방에서는 관군과 지역민들의 협력 하에 호랑이를 줄여나갔으나 나라의 중심인 도성과 그 주변부에서는 중앙군영에 의하여 호랑이 사냥이 이루어졌다.
중앙군영의 착호활동은 1699년(숙종 25) 제정된 「착호절목」에 의하여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르면 중앙군영은 경기도 전역에서 발생하는 호환에 대처하여야 하였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로 인하여 삼군문의 주요 활동지역은 사실상 한양 도성과 왕릉의 소재지를 중심으로 제한되었다. 해당 지역에서 중앙군영은 수십명의 포수들을 동원한 조직적 사냥이나 몇몇 우수한 소수의 포수들에 의한 사냥을 통하여 약 2세기 동안 해로운 호랑이(惡虎)들을 줄여왔다.
이러한 중앙군영의 착호활동은 65% 이상이 왕릉에서 행해졌다. 이는 전국적으로 산림이 황폐화되는 가운데, 수목(樹木)이 우거진 왕릉의 소재지는 호랑이들의 서식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호랑이들은 왕릉을 거점으로 광범위한 영역에서 인간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했다. 따라서 이곳은 도성과 경기지역에서 발생하는 호환의 근원지라고 할 수 있었다. 또한 이 시기는 왕들의 능행(陵幸)이 잦은 시점이었다. 이 때문에 전시기와 비교할 때, 능소의 관리와 능행 시 왕의 수행 업무가 중요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에서 호랑이를 잡는 것은 서울과 경기의 민인(民人)들을 지키고 동시에 능소의 관리와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활동이었다.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tiger hunting activities by the central military camp during the latter part of Joseon. In the past, disasters by tigers and leopards happened often in the Korean Peninsula. In Joseon, the government put in efforts to reduce such disasters upon the found...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tiger hunting activities by the central military camp during the latter part of Joseon. In the past, disasters by tigers and leopards happened often in the Korean Peninsula. In Joseon, the government put in efforts to reduce such disasters upon the foundation of the state and continued these efforts into the latter part of Joseon, when tiger hunting activities were based on Chakhojeolmok. The number of tigers was reduced by the joint operation of the royal forces and local residents in local areas. In the capital city and its surrounding areas, the central military camp had the job of hunting tigers.
The central military camp started its full-blown tiger hunting activities based on Chakhojeolmok, published in 1699 (25th year of King Sukjong's reign). According to the book, the central military camp had to deal with disasters around the Gyeonggi Province, but real issues restricted the principal scope of Samgunmun's activities to the capital city of Hanyang and the sites of royal tombs. In these areas, the central military camp reduced the number of harmful tigers through organized hunting by mobilizing dozens of hunters and by a few outstanding hunters over two centuries or so.
Over 65% of the tiger hunting activities of the central military camp took place at royal tombs because the densely wooded sites of royal tombs became tiger habitats amid nationwide deforestation. With royal tombs as their base, tigers threatened human life and property across vast areas. Royal tombs became the origin of disasters by tigers in the capital city and Gyeonggi Province. During this period, kings made visits to the royal tombs frequently, which made it more important to accompany the kings during the management of royal mausoleums and their visits to royal tombs than in the previous period.
Catching a tiger in these areas was an important activity to protect the people in Seoul and Gyeonggi, manage the royal mausoleums, and safeguard the kings.
This paper presents an investigation into the tiger hunting activities by the central military camp during the latter part of Joseon. In the past, disasters by tigers and leopards happened often in the Korean Peninsula. In Joseon, the government put in efforts to reduce such disasters upon the foundation of the state and continued these efforts into the latter part of Joseon, when tiger hunting activities were based on Chakhojeolmok. The number of tigers was reduced by the joint operation of the royal forces and local residents in local areas. In the capital city and its surrounding areas, the central military camp had the job of hunting tigers.
The central military camp started its full-blown tiger hunting activities based on Chakhojeolmok, published in 1699 (25th year of King Sukjong's reign). According to the book, the central military camp had to deal with disasters around the Gyeonggi Province, but real issues restricted the principal scope of Samgunmun's activities to the capital city of Hanyang and the sites of royal tombs. In these areas, the central military camp reduced the number of harmful tigers through organized hunting by mobilizing dozens of hunters and by a few outstanding hunters over two centuries or so.
Over 65% of the tiger hunting activities of the central military camp took place at royal tombs because the densely wooded sites of royal tombs became tiger habitats amid nationwide deforestation. With royal tombs as their base, tigers threatened human life and property across vast areas. Royal tombs became the origin of disasters by tigers in the capital city and Gyeonggi Province. During this period, kings made visits to the royal tombs frequently, which made it more important to accompany the kings during the management of royal mausoleums and their visits to royal tombs than in the previous period.
Catching a tiger in these areas was an important activity to protect the people in Seoul and Gyeonggi, manage the royal mausoleums, and safeguard the kings.
Keyword
#삼군문 오군영 장용영 호랑이 표범 호환 착호
※ AI-Helper는 부적절한 답변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