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확[김확:$1572{\\sim}1633$묘 유물을 통해 본 17세기 남자 포에 관한 연구 A Study on Men's coats in Early $17^{th}$ Century based on the Excavated Costume of Kim, Hwak($1572{\\sim}1633$) Tomb원문보기
This study examines the men's coats in the early $17^{th}$ century through the excavated costumes of Kim, Hwak($1572{\sim}1633$)'s tomb. Kim, Hwak was a literary man with a high government position.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the early $17^{th}$...
This study examines the men's coats in the early $17^{th}$ century through the excavated costumes of Kim, Hwak($1572{\sim}1633$)'s tomb. Kim, Hwak was a literary man with a high government position.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the early $17^{th}$ century, there were many changes with the kinds and form of men's coats. From Kim, Hwak's tomb, there excavated 8 kinds of coats; Sim-ui, Dan-ryung, Jik-ryung, Cheol-rik, Do-po, Chang-ui, Joong-chi-mack, So-chang-ui, and they are 27 items. The characteristics of $17^{th}$ century costumes are well seen from these coats. Up to that period, Cheol-rik was worn as ordinary clothes, but from Kim, Hwak's tomb, there are 5 pieces of Do-po, and 15 pieces of Joong-chi-mack. This tells us that these items were widely worn after the $mid-17^{th}$ century.
This study examines the men's coats in the early $17^{th}$ century through the excavated costumes of Kim, Hwak($1572{\sim}1633$)'s tomb. Kim, Hwak was a literary man with a high government position. After the 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in the early $17^{th}$ century, there were many changes with the kinds and form of men's coats. From Kim, Hwak's tomb, there excavated 8 kinds of coats; Sim-ui, Dan-ryung, Jik-ryung, Cheol-rik, Do-po, Chang-ui, Joong-chi-mack, So-chang-ui, and they are 27 items. The characteristics of $17^{th}$ century costumes are well seen from these coats. Up to that period, Cheol-rik was worn as ordinary clothes, but from Kim, Hwak's tomb, there are 5 pieces of Do-po, and 15 pieces of Joong-chi-mack. This tells us that these items were widely worn after the $mid-17^{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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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김확 합장묘 출토복식 가운데 남자 포류 8건 37점이 이 연구의 대상이다. 이 연구를 통하여 첫째, 17세기 전기에 착용되었을 남자 포류의 종류를 살펴보고 둘째, 포류는 16세기 말기와 비교하여 어떤 변화가 있으며 셋째, 김확 묘에서 출토된 포류의 조형적 특징을 알아보는 것에 연구의 목적이다.
3. 깃은 단령과 직령 2가지로 구별이 된다. 깃나비는<표 2>에서 보듯이 소창의는 10.
8. 포류의 옷 길이는 125~ 138cm이다.
제안 방법
솜옷이나 겹옷은 안감이나 솜을 고정하기 위하여 도련이나 가장자리를 3~4땀 상침하여 장식의 역할도 겸하였다. 도포(No. 6512 . 6513 . 6514)와 중치막(No. 6530)의 양쪽 무는 마름질하지 않고 연결된 상태에서 시접을 넉넉히 둔 후 골로 접어 그 위를 3~4땀상침하여, 다음 바느질 때 창의로 변형이 가능할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은 바느질은 겉에서 볼 때 마치 주름[tuck]을 잡은 느낌을 주어 현대 복식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첫째, 심의는 습(襲)의 상복(上服)으로 착용 되었으며, 상의 4폭 하상 12폭으로 구성되었고, 하상의 양옆 솔기는 겉으로 드러나 있는 '속임구변(續袍鉤 邊)'을 표현하였다.
대상 데이터
체격이 우람하고 기개가 뛰어났다고 한다. 18세 되던 선조 22년(1589) 진사시에 합격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세자를 모시고 남쪽으로 피난했으며, 이후 1629년 상의원 정(尙 衣院 正)을 거쳐, 철원부지사(鐵原府知使)를 지냈고, 1633년 7월에 졸했다.
6522 . 6523은 습의로 사용된 것으로 추측하며, 나머지 철릭은 보공용이며, 특히 No. 6558 철릭은 상의와 하상으로 분리하여 횡으로 접어 보공으로 사용하였다.
경기도박물관 소장품인 17세기 전기의 인물인 김확(1572~1633)묘의 출토 복식 가운데 남자 포류인심의 1점 . 단령 2점 .
김확 묘 출토 복식으로 구분하였지만 수례지의(襁禮之衣)로 넣었을 여성복식이 포함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김확 합장묘 출토복식 가운데 남자 포류 8건 37점이 이 연구의 대상이다. 이 연구를 통하여 첫째, 17세기 전기에 착용되었을 남자 포류의 종류를 살펴보고 둘째, 포류는 16세기 말기와 비교하여 어떤 변화가 있으며 셋째, 김확 묘에서 출토된 포류의 조형적 특징을 알아보는 것에 연구의 목적이다.
6. 옷고름은 겉고름은 길과 같은 감으로 만들거나, 자색으로 만들어 달았으며, 속고름은 거친 주 (紬)로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령은 매듭단추와 고리를 이용하여 깃을 고정하고 섶에는 단령 길과 같은 옷감으로 고름을 달았다.
넷째, 도포는 5점으로, 홑도포와 겹도포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자락을 뒷자락에 고정하는 다향한 방법이 사용되어 도포의 바느질방법이 정착되어 가는 과정임을 알 수 있다.
둘째, 단령은 2점이 수습되었는데, 금사백한 흉배가 부착된 흑단령은 겹단령으로, 끝이 뽀쪽한 사각형 무가 달려 있다. 겹단령은 겉옷인 단령과 속옷인직령이 독립된 상태로 만들어져 깃과 무의 상단을꿰어 고정하여 1벌로 구성되었으며, 직령의 깃은 깎은 당코깃이다.
후속연구
이상에서 살펴본 결과 김확(1572~1633)묘 출토포류는 17세기 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며, 이와 같이 구체적인 치수와 형태의 연구를 통하여 무연고분묘의 복식이 출토되었을 때 연대를 추정하는 대조 자료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6530)의 양쪽 무는 마름질하지 않고 연결된 상태에서 시접을 넉넉히 둔 후 골로 접어 그 위를 3~4땀상침하여, 다음 바느질 때 창의로 변형이 가능할 수 있게 했다. 이와 같은 바느질은 겉에서 볼 때 마치 주름[tuck]을 잡은 느낌을 주어 현대 복식 디자인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고름의 고정은 먼저 솔기를 박음질로 고정한 후 꺾어서 그 위에상침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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