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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IS 바로가기한국언론정보학보 = Korean Journal of Communication & Information, v.52, 2010년, pp.135 - 153
김동민 (동아대학교)
Dong-a Ilbo tried to assume leadership of opinion in preceding the movement against the trusteeship as a mouthpiece for the Han-Min Party. Dong-a Ilbo was to try to promote the atmosphere of anti-trusteeship=anti-communism=anti-Soviet Union, distorting the decision of a conference of three foreign a...
핵심어 | 질문 |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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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처음 거론한 때는 언제인가? | 미국이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처음 거론한 때는 1943년 3월24일이었다. 이날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영국의 이든(Anthony Eden) 외상과의 회합에서 한국은 전후 신탁통치가 적절하다고 언급한 것이다(브루스 커밍스, 1986, 149쪽). | |
동아일보가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선동하여 여론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던 이유는? | 동아일보는 해방 직후 시기에 친일파 지주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한국민주당(한민당)의 기관지 역할을 하면서 왜곡보도로써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선동하여 여론전의 주도권을 장악하려 했다. 이는 미 국무성의 방침과 달리 신탁통치를 반대했던 미군정 당국의 견해를 대변하는 동시에 즉시독립을 갈망하는 민중의 정서를 이용하여 친일파 집단의 정체성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을 왜곡하면서 반탁=반공=반소의 분위기를 조장했다. | |
미국이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구상한 표면적인 이유는? | 미국이 조선에 대한 신탁통치를 구상한 표면적인 이유는, 루즈벨트의 판단대로 조선인들은 전쟁이 끝났을 때 즉 해방 독립 이후 스스로 통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반론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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