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focuses on Yusam, a military raincoat that was worn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iew the types and management system of Yusam. Documentary records, paintings and relics were used as research materials. Yusam was recorded as either Yusam(油衫) or Yu-ui(油衣) in...
This study focuses on Yusam, a military raincoat that was worn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iew the types and management system of Yusam. Documentary records, paintings and relics were used as research materials. Yusam was recorded as either Yusam(油衫) or Yu-ui(油衣) in writing. It usually looked like a skirt and was worn like a cape, but there were differences in length. Some of them took the form of a short coat with half-sleeves and side slits. Research analysis results of Silrok, Ilseongrok and the archives of the military camp in the later Joseon are as follows: First, Mokyusam and Jiyusam coexisted as military raincoats. Mokyusam was made with cotton and perilla oil, while Jiyusam was made with traditional Korean paper, a cotton edging and perilla oil. Second, the differences between general Yusam and military Yusam include the material of the clothing, the materials for waterproofing, the color, and the manufacturer. Third, each military camp supplied soldiers with hundreds to thousands of Yusam. Military officers and King's guards wore Mokyusam because Mokyusam was higher than Jiyusam. Fourth, soldiers Yusam together with Yujeongeon, Chorip, Galmo, or Hwihang as a hat. Fifth, the higher the rank, the higher the price of Yusam and the longer the term of usage. On the other hand, as the rank got higher, the cost of the supplementary oil rose, while the duration of usage got shorter.
This study focuses on Yusam, a military raincoat that was worn during the Joseon Dynas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view the types and management system of Yusam. Documentary records, paintings and relics were used as research materials. Yusam was recorded as either Yusam(油衫) or Yu-ui(油衣) in writing. It usually looked like a skirt and was worn like a cape, but there were differences in length. Some of them took the form of a short coat with half-sleeves and side slits. Research analysis results of Silrok, Ilseongrok and the archives of the military camp in the later Joseon are as follows: First, Mokyusam and Jiyusam coexisted as military raincoats. Mokyusam was made with cotton and perilla oil, while Jiyusam was made with traditional Korean paper, a cotton edging and perilla oil. Second, the differences between general Yusam and military Yusam include the material of the clothing, the materials for waterproofing, the color, and the manufacturer. Third, each military camp supplied soldiers with hundreds to thousands of Yusam. Military officers and King's guards wore Mokyusam because Mokyusam was higher than Jiyusam. Fourth, soldiers Yusam together with Yujeongeon, Chorip, Galmo, or Hwihang as a hat. Fifth, the higher the rank, the higher the price of Yusam and the longer the term of usage. On the other hand, as the rank got higher, the cost of the supplementary oil rose, while the duration of usage got shor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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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의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군사들이 착용한 우비용 의류인 유삼을 대상으로 군사들의 의생활문화를 고찰함으로써 조선시대 군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복식의 명칭과 종류별 제작방식을 밝힐 뿐 아니라 지급, 관리 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군사복식의 실질적 운용 체계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군사들이 우비용 의류로 착용한 유삼을 대상으로 고서와 고문서의 문헌자료를 심도있게 살펴봄으로써 명칭·종류·제작 등 복식 자체에 대한 연구는 물론 지급․보관․관리 등생활문화를 고찰하고자 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군사들이 착용한 우비용 의류인 유삼을 대상으로 군사들의 의생활문화를 고찰함으로써 조선시대 군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자 한다. 복식의 명칭과 종류별 제작방식을 밝힐 뿐 아니라 지급, 관리 등에 대해 살펴봄으로써 군사복식의 실질적 운용 체계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제안 방법
연구방법은 아직까지 군사용 유삼 유물이나 회화는 발견된 예가 드물어서 문헌기록을 중심으로 연구를 전개하였다. 『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의궤』 등 관찬사료와 개인문집, 장서각과 규장각에 소장된 군정 관련 고서(古書)와 군영에 관한 각종 고문서(古文書)를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즉 『만기요람(萬機要覽)』군정(軍政)편과 함께 유삼이 기록된 훈련도감․금위영․장용영․무위영의 고문서를 연구 자료로 활용하였다.
셋째, 대부분의 유삼이 황토색이고 사신용 유삼이 적색인 경우가 있었는데 군사용은 청색이 많았다. 넷째, 민간에서는 개인이 유삼을 제작하고 칙사용은 별공작에서, 군사용은 각 군영에서 제작하였다.
『실록』과 『일성록』 등 관찬사료와 훈련도감·금위영·장용영·무위영의 군영 관련 고문서를 분석한 결과, 군사용 유삼은 무명유삼[木油衫]과 종이유삼[紙 油衫]의 두 가지가 공존하였다. 무명유삼은 무명으로 옷을 만들고 들기름인 법유를 바르고 덧발라서 만들 었고, 종이유삼은 낙폭지나 정초지로 옷을 만들고 가장자리를 무명으로 두른 후 법유를 발라서 방수처리를 하였다. 군영에서는 비옷인 유삼 뿐 아니라 화약무기와 군막을 눈과 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우구(雨具)를 제작했는데 용도나 재료에 상관없이 청색으로 염색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삼의 관리체계를 고찰한 결과, 동일 복식이라도 신분에 따라 지급빈도가 다르고 관리기준이 달라졌다. 신분과 역할별로 유삼의 지급 연한을 정해놓고 매년 2월과 8월에 점검하여 연한이 되기 전에 파손하거나 분실한 경우 해당 군사를 처벌하고 배상을 하도록 하였다. 단 공무로 인한 파손, 화재로 인한 소실은 배상 대신 즉시 교환이나 지급을 해주었고 사고나 질병으로 군복무가 불가능하면새로 들어오는 군사에게 넘겨주었다.
연구방법은 아직까지 군사용 유삼 유물이나 회화는 발견된 예가 드물어서 문헌기록을 중심으로 연구를 전개하였다. 『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의궤』 등 관찬사료와 개인문집, 장서각과 규장각에 소장된 군정 관련 고서(古書)와 군영에 관한 각종 고문서(古文書)를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 과거시험용 종이인 정초지를 재활용하기도 하였다. 영조 5년(1729) 어가행렬을 수행하는 훈련도감 군졸에게 종이유삼[紙衫]을 지급했을 때 과거시험에서 떨어진 시험지인 낙폭지(落幅 紙) 800축을 비변사에서 훈련도감으로 보내어 삼 (衫)을 만들고 여기에 법유를 발라서 유삼을 만들도록 하였다.29) 원래 낙폭지로 종이갑옷[紙甲]30), 서북변방 군사들의 방한용 의복인 유의(襦衣)나 납의(衲衣)31), 우비용 의복인 유의(油衣)32)등 군사복식을 만드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호조(戶曹)와 각 지역의 관찰사는 과거시험을 마치고 나면 낙폭지를 모아서 비변사(備邊司)로 보내도록 되어 있었다.
지정된 연한 내에 파손하거나 분실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배상에 관련된 규정도 정해놓았다. 유삼을 비롯한 군기를 연한 이내에 파손하는 군사는 곤장으로 처벌하였고, 분실하는 군사는 곤장을 치고 배상도 하게 하였다.
대상 데이터
『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의궤』 등 관찬사료와 개인문집, 장서각과 규장각에 소장된 군정 관련 고서(古書)와 군영에 관한 각종 고문서(古文書)를 수집하여 분석하였다. 즉 『만기요람(萬機要覽)』군정(軍政)편과 함께 유삼이 기록된 훈련도감․금위영․장용영․무위영의 고문서를 연구 자료로 활용하였다.
성능/효과
첫째, 유삼은 종이로 만든 유삼[紙油衫]과 무명으로 만든 유삼[木綿油衫, 木 油衫]의 2가지 종류가 존재했다. 금위영과 어영청의 기록에서 청목면으로 만든 유삼을 포함한 것으로 보아 두 군영 모두 청색 무명으로 만든 목유삼과 종이로 만든 지유삼이 공존했다. 다만 지유삼의 수량이 목유삼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이 기록에는 지유삼으로 통칭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우선 의복용 재료는 일반적으로 유삼은 주(紬)나 삼승포로 만든 데 비해 군사용은 대부분 무명이나 종이로 만들었고38), 방수용 재료는 일반에서는 삼씨기름ㆍ들기름ㆍ참기름에 계란ㆍ활석ㆍ송진ㆍ태포즙(太泡汁) 등 다양한 재료를 혼용한 데 반해 군사용은 들기름인 법유를 주로 사용하였다. 다음 색상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유삼이 백색직물을 기름에 결은 황토색이었고 외국 사신용 유삼은 적색인 경우도 있었으며 군사용 유삼은 청색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제작을 담당하는 주체에 있어서 일반용은 개인이 만들었고 칙사용은 행사 부대시설을 담당하는 지원기관인 별공작에서 담당하였으며 군사용은 각 군영에서 제작되었다.
둘째, 목유삼이 지유삼보다 고급이었다. 왕을 직접 호위하던 친위군영인 용호영과 훈련도감에서는 목유삼의 기록이 두드러지고 금위영․어영청․총융청에서는 지유삼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둘째, 방수용 재료에서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기름에 계란·태포즙 등을 혼합한 반면 군사용은 법유에 결어 만들었다.
둘째, 의주 지역의 강해동이라는 사람이 만드는 당시 최고의 유삼 제작법으로 삼승포 반폭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셋째, 다른 민간법으로서 참기름을 발라 그늘에서 말리는데, 계란가루ㆍ활석가루ㆍ송진가루ㆍ태포즙(太泡汁)ㆍ법유를 섞어 비옷 안팎에 4-5번 바르는 방법이다.
둘째, 방수용 재료에서 민간에서는 여러 가지 기름에 계란·태포즙 등을 혼합한 반면 군사용은 법유에 결어 만들었다. 셋째, 대부분의 유삼이 황토색이고 사신용 유삼이 적색인 경우가 있었는데 군사용은 청색이 많았다. 넷째, 민간에서는 개인이 유삼을 제작하고 칙사용은 별공작에서, 군사용은 각 군영에서 제작하였다.
셋째, 목유삼은 청색 무명으로 제작되었다. 모든군사용 목유삼이 청색이었다고 단언할 수는 없으나 금위영과 어영청의 유삼 중 일부는 청색 무명으로 제작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유삼을 중심으로 명칭과 형태, 종류별 재료와 제작법, 착용방식, 지급방식과 연한, 관리와 점검방식 등 군사의 의생활을 밝혀내었다. 연구의 제한점으로는 군사용 유삼의 유물 및 회화, 사진자료의 부족으로 문헌기록에 치중한 경향이 있으며, 문헌에서는 청색 유삼이 많았는데 회화에서는 황토색인 차이에 대해 원인을 밝히지 못한 점을 들 수있다.
지급 연한을 살펴보면 행차 호위·형벌·시행·순찰 등의 역할을 담당한 군졸인 순령수와 뇌자는 유삼의 지급 연한이 짧아서 자주 지급되었다.
이상의 기록으로부터 유삼의 종류와 특징에 대해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유삼은 종이로 만든 유삼[紙油衫]과 무명으로 만든 유삼[木綿油衫, 木 油衫]의 2가지 종류가 존재했다. 금위영과 어영청의 기록에서 청목면으로 만든 유삼을 포함한 것으로 보아 두 군영 모두 청색 무명으로 만든 목유삼과 종이로 만든 지유삼이 공존했다.
후속연구
이상의 연구를 통해 유삼을 중심으로 명칭과 형태, 종류별 재료와 제작법, 착용방식, 지급방식과 연한, 관리와 점검방식 등 군사의 의생활을 밝혀내었다. 연구의 제한점으로는 군사용 유삼의 유물 및 회화, 사진자료의 부족으로 문헌기록에 치중한 경향이 있으며, 문헌에서는 청색 유삼이 많았는데 회화에서는 황토색인 차이에 대해 원인을 밝히지 못한 점을 들 수있다. 후속연구로는 군사용 유삼과 일반 유삼의 형태 및 구조적 차이, 가격의 차이 등을 살펴보고 군사용 유삼의 특징을 분석하는 연구를 제안한다.
후속연구로는 군사용 유삼과 일반 유삼의 형태 및 구조적 차이, 가격의 차이 등을 살펴보고 군사용 유삼의 특징을 분석하는 연구를 제안한다. 이러한 연구의 축적을 통해 군사복식과 의생활문화를 살펴보고 나아가 조선시대 군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리라 기대한다.
연구의 제한점으로는 군사용 유삼의 유물 및 회화, 사진자료의 부족으로 문헌기록에 치중한 경향이 있으며, 문헌에서는 청색 유삼이 많았는데 회화에서는 황토색인 차이에 대해 원인을 밝히지 못한 점을 들 수있다. 후속연구로는 군사용 유삼과 일반 유삼의 형태 및 구조적 차이, 가격의 차이 등을 살펴보고 군사용 유삼의 특징을 분석하는 연구를 제안한다. 이러한 연구의 축적을 통해 군사복식과 의생활문화를 살펴보고 나아가 조선시대 군사에 대한 이해를 넓히리라 기대한다.
질의응답
핵심어
질문
논문에서 추출한 답변
증보산림경제에 기록된 세가지 유삼 제작 방법은?
차이점을 밝히기 위해 영조 42년(1766)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 濟)』에 기록된 유삼의 제작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같은 3가지가 있다.34) 첫째, 의주(義州) 지역의 민간 법으로서 주(紬) 26자로 옷을 만든 후 삼씨기름과 들기름 각 5홉을 섞어서 입으로 뿜어 바르고 기름종 이로 싸서 차지도 덥지도 않은 방에 놓아두는 방법 이다. 둘째, 의주 지역의 강해동이라는 사람이 만드는 당시 최고의 유삼 제작법으로 삼승포 반폭으로 만드는 방법이다. 셋째, 다른 민간법으로서 참기름을 발라 그늘에서 말리는데, 계란가루ㆍ활석가루ㆍ송진가루ㆍ태포즙(太泡汁)ㆍ법유를 섞어 비옷 안팎에 4-5번 바르는 방법이다.
유삼은 무엇인가?
유삼(油衫)은 비와 눈을 막기 위해 기름에 결은 옷으로 우의(雨衣)를 의미한다. 『물명고(物名攷)』에 는 ‘雨衣’가 ‘油衫’으로 언해되어 있고, 『역어유해보편 (譯語類解補編)』『동문유해(同文類解)』『몽어유해 (蒙語類解)』『방언유해(方言類解)』에는 ‘유삼’이 ‘雨 衣’로, 『역어유해(譯語類解)』『왜어유해(倭語類解)』 에는 ‘유삼’이 ‘油衫’의 우리말 풀이로 기록되어 있다.
유의나 유삼의 형태는 어떤 형태로 추정되는가?
이상의 기록으로부터 유의나 유삼의 형태는 여자의 치마 형태로 처네처럼 머리에 둘러서 착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진인이 소매와 깃이 달려있는 유의를 입고 우비용 모자를 착용한 모습을 좋다고 여긴점으로 보아 당시 조선의 유삼은 소매와 깃이 달려 있지 않은 형태였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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